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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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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연방 국기

도미니카연방(Commonwealth of Dominica)은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이다. 바다 건너 주변에는 북서쪽에 있는 아이티, 남쪽으로는 그레나다, 베네수엘라 등이 있다. 영어 국호의 커먼웰스(commonwealth)는 '연방'이라는 뜻이 아닌 단순히 '나라'라는 뜻이지만 한국에는 도미니카연방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도미니카공화국과는 별개의 국가이다.

경제는 농업, 특히 바나나감귤류, 코코넛 재배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며, 1990년대 들어 관광산업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 외에 농산물 가공업과 섬의 목재 자원을 이용한 재재업이 존재하며, 시민권 판매로 얻는 수익 또한 국가재정에서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개요[편집]

역사[편집]

유럽인들이 도미니카에 들어오기전에는 카리브족의 일파인 칼리나고족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아메리카 지역들을 발견하였지만 도미니카는 한 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관심을 받지 않았고, 이 덕분에 주변 섬에서 상륙자들에 의해 밀려난 원주민 난민들이 도미니카로 이주하여 정착하기도 했다.

한 세기 후, 스페인인들이 도미니카에 상륙하여 부분적으로 식민지화에 성공했다. 이후 프랑스아메리카의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한 회사인아메리카 제도 회사가 도미니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지만, 실제로는 군사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스페인인들이 점차적으로 도미니카에서 밀려났으며, 1642년과 1650년 사이에는 프랑스의 선교사가 도미니카를 방문하였다.

1600년대의 카리브 해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이 식민지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다투었는데 1660년에 체결된 프랑스와 영국간의 합의로 도미니카는 다음 세기를 위한 중립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도미니카의 삼림자원, 특히 목재는 양국이 도미니카를 탐내게 만들었고, 이는 1690년에 프랑스가 도미니카에 목재를 생산하기 위한 캠프와 영구 정착지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715년에 마르티니크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도미니카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후 1727년, 도미니카는 프랑스의 정식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프랑스는 도미니카를 커피를 생산하는 농장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이를 위하여 흑인 노예들을 다수 수입했는데 이로 인해 백인 인구보다 흑인 인구가 많아졌다.

1761년,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7년전쟁이 일어났으며 영국군은 프랑스의 카리브 해 식민지들을 점령하면서 도미니카도 영국에게 점령당했다. 결국, 1763년에 체결된 파리조약에 의해 프랑스는 영국에게 도미니카를 넘겼다. 같은 해에, 영국은 좀 더 도미니카를 통치를 강화하기 위하여 도미니카에 백인들을 대변하는 의회를 설치했다. 미국 독립전쟁 기간인 1778년엔 프랑스가 다시 도미니카를 되찾았지만, 1783년의 파리 조약에 의해 영국에 돌려주게 된다. 그후 프랑스는 1795년과 1805년 두차례에 걸쳐 도미니카를 침공하였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도미니카에 대한 지배권을 굳힌 영국은 1805년에 도미니카에 작은 식민지를 설립하였고 1831년에는 유색 인종들에게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로 인해 1834년에는 유색 인종 세사람이 의회로 진출하였다. 이후 1838년에는 의회의원들의 절반 이상이 유색 인종으로 채워지게 되었지만, 1896년부터 영국 본토에서 파견된 주지사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고, 유색 인종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는 축소되었다.

20세기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이 영국편에서 두차례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프랑스 난민들이 일부 도미니카에 정착하기도 했다. 대전이 종식된 이후, 1958년까지 도미니카는 영국의 속령으로 남아있었지만, 1958년에 도미니카는 서인도제도 연방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인도제도 연방은 대중의 무관심, 편협한 민족주의 등으로 5년도 되지 않은 1962년에 해체되어버렸으며, 도미니카는 다시 영국의 속령이 되었다. 1967년, 도미니카는 영국에 의해 준 국가로 격상되었고, 이어서 1978년 11월 3일 독립하였다.

독립 2년뒤인 1980년, 도미니카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은 도미니카의 경제를 추락시켰고, 이로 인하여 도미니카 연합 출범후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1981년에 백인 우월주의자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정부가 뒤집힐 뻔 했다. 허리케인으로 망가진 경제는 1980년대말까지는 회복되었지만, 이후 국제적인 바나나 가격의 하락 때문에 1990년대 들어 또다시 추락했다.

2000년 총선에서는 또 한번의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2000년 총선에서 정권을 획득한 사회민주주의 정당 도미니카 노동당은 그 뒤에도 현재까지도 여당으로 남아있다.

지리[편집]

도미니카연방은 섬나라이고 사실상 국경이 없는 나라이다. 윈드워드 제도에서 가장 북쪽에 속하기도 하며 전체 면적은 754km²이다.

대다수의 영토가 열대 우림으로 덮여 있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온천인 끓는 호수가 있다. 폭포와 강이 많이 있는데 이미 멸종했다고 추정된 동식물이 상당수 도미니카 연방에 서식하고 있기도 하다. 화산 지형이 나타나며 모래 해변이 아름다워서 스쿠버 다이빙으로 유명하다.

전해지는 말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돌아가서 신세계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는 청을 받았을 때 그는 현재의 도미니카에 대해 묘사했다고 한다. 그는 종이를 대충 구겨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도미니카 연방이 높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모르네 트로이 피 국립공원은 화산 지형이 드러나는 열대 우림으로서 1955년 4월 4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도미니카 연방은 오래 전부터 베네수엘라와 영토 분쟁이 있었다. 도미니카 섬에서 서쪽으로 220 km 떨어진 작은 암초이며 베네수엘라의 실질적인 지배 상태에 있는 아베스 섬(스페인어: Isla Aves; Bird island)에 대해 양국이 분쟁 중이다.

정치[편집]

대통령이 국가 원수인 대통령제 국가지만, 군대는 없다.

도미니카 연방의 의회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21명의 의원들과 총리 또는 야당 지도자가 임명한 9명의 의원들, 법무 장관의 직권으로 임명된 1명의 의원, 총 31명이 맡고 있다.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친다. 선거권은 만 18세 이상의 영연방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면서 도미니카 연방 국내에 거주지 등록을 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선거에 출마하려면 만 21세 이상의 도미니카 연방 시민권을 가지고,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며, 영어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184 미국 달러를 예치해야 한다. 총선거는 5년마다 열린다.

도미니카 노동당과 연합노동자당의 2개 정당이 원내로 진출했으며, 2004년부터 도미니카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다.

인구[편집]

주민은 아프리카계, 유럽계, 물라토 등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오기 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이 남아 있는 경우는 카리브 제도 동부에서는 이 나라 뿐이다. 3000명 정도가 섬의 동해안에 살고 있다.

언어는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오랜 프랑스의 지배로 인해 일상 생활에서는 프랑스어, 파트와어로 불리는 크레올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경험으로 몇몇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수도 로조(Roseau) 역시 '갈대'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도미니카 연방은 영연방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도미니카연방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소앤틸리스제도 같이 보기[편집]

소앤틸리스제도
리워드제도 1
리워드제도 2
윈드워드제도
리워드 앤틸리스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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