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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킹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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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위치

블레킹에주(스웨덴어: Blekinge län)는 스웨덴 남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

개요[편집]

블레킹에주의 면적은 2,941㎢이며 인구는 153,131명(2011년)이며 주도는 칼스크로나이다. 스웨덴 면적의 0.7%에 불과하고 인구는 약 16만 명으로 21개 주 중 면적은 가장 적고, 인구는 19번째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스코네주, 북쪽으로는 크로노베리주, 칼마르주와 접하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발트해와 접한다.

5개의 자치시(Municipalities)로 구성되며 주요 도시는 주도인 칼스크로나, 칼스함(Karlshamn) 및 론네뷔(Ronneby)로 이들 도시 모두 인구는 3만여 명 내외이며 바다와 접한다. 칼스크로나는 스웨덴이 덴마크로부터 블레킹에주를 획득한 2년 뒤 1680년에 해군기지로 건설한 도시로 현재도 해군과 해안경비대가 주둔한다. 1998년 해군기지와 도시 일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웨덴 유일의 바로크 미술 양식이 남아있고 해안 쪽으로는 3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블레킹에 군도(Blekinge archipelago)가 펼쳐져 있다. 1680년에 지어져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군사 구조물인 쿵스홀름 요새(Kungsholm's Fortres), 블레킹에 박물관(Blekinge Museum)과 해군 박물관(Naval Museum)이 대표적 명소이다. 냉전시기인 1981년 소련 잠수함이 군도 근처에서 좌초되어 스웨덴과 소련간 일시적인 긴장이 야기된 적이 있다.

칼스함은 덴마크 왕국시절 작은 어촌 항구였으나, 스웨덴이 본 지역을 획득한 이후 항구와 요새를 건설하면서 설탕정제 등 여러 산업과 무역이 발달한 항구도시로 발전하였다. 도시 외각에는 TV와 라디오방송 전송을 위한 높이 335m로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위치해 랜드마크가 되었다. 론네뷔는 정원의 도시로 시내의 브룬스파켄 공원(Park Brunnsparken)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2]

자연환경[편집]

해안은 저지대의 육지내륙으로 패어있고 기복이 심하며, 앞 바다는 1,000여개 이상의 으로 구성된 군도가 펼쳐져 있다. 북쪽의 내륙은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자라는 스몰란드 고원(Småland Plateau)이다. 해안지대는 스웨덴에서 기후가 가장 온화한 곳으로 도시가 집중되어 대부분의 주민이 거주한다.

유서 깊은 문화유적은 많지 않지만 황무지, 해안과 군도가 집약된 아름다운 경관과 온화한 기후로 관광과 휴양지로 명성이 높다. 블레킹에 군도는 회색바다표범 서식지이며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로 47개의 자연보호구역이 지정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군도의 많은 섬은 '강꼬치 왕국(Kingdom of Pike)'으로 불릴 정도로 바다낚시의 명소이다. 칼레함 북부의 라슬론겐 호수(Lake Raslången) 일대는 스웨덴 최남단에 위치한 황야지대로 2011년부터 라슬론겐 생태공원(Ekopark Raslången)으로 지정되었고, 하이킹과 카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연어, 농어와 송어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주를 관통하는 270km의 블레킹에 트레일(Blekinge Trail) 코스는 목초지, 산림과 호수풍경을 감상 할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역사[편집]

역사적으로 덴마크의 영토였으나 1658년 로스킬레화약(Treaty of Roskilde)으로 스웨덴에 양도되었다. 덴마크 왕국시대에는 어업위주의 가난한 지역이었으나 1680년 스웨덴이 해군기지와 함께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상업과 무역 중심지로 빠르게 발전한 곳이다. 블레킹에주는 1683년에 설립되었다.

산업[편집]

스웨덴의 정원(Garden of Sweden)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농업지역으로 감자, 채소와 과일이 재배되고 스웨덴 모피의 25%가 본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근래 들어 경작지가 감소하고 있다. 19세기부터 석재채석, 철강, 직물, 제분산업이 발달하였고, 자동차, IT 기기 제조 등도 활발해 제조업 고용율이 스웨덴 평균을 웃돈다.

주요도시[편집]

칼스크로나[편집]

칼스크로나는 스웨덴 블레킹에주의 주도로 블레킹에제도(諸島) 동부에 있는 30개 들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스웨덴에서 유일한 바로크 양식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동남쪽 해안 끝에 있어 발트해 맞은편과 연결성이 뛰어나다. 군항을 중심으로 도시의 일부는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스툼홀멘섬은 이전에는 해군이 소유했으며 오늘날에는 국립 해군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도시 외곽에는 스웨덴의 제도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칼스크로나제도가 있다. 몇몇 섬은 페리로 도시와 오갈 수 있다.

칼스크로나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는 텔레노르, 에릭슨, 록스텍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정보기술 기반 산업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1989년에 설립된 기술연구소가 있는 블레킹에 공과대학의 본관 캠퍼스가 있다. 이곳은 스웨덴에서 박사학위를 발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학으로 직원 600명과 학생 8,000여 명이 있다

칼스크로나는 1680년 8월 10일 스웨덴 해군이 스톡홀름 지역에서 농사와 방목에만 쓰이던 트로쇠섬으로 이전하면서 설립되었다. 당시 스웨덴은 발트해 지역에서 군사 강국이었지만, 스웨덴 남부 지역이 불과 몇 십 년 전에 정복되었기 때문에 덴마크에 대항하려면 전략적으로 더 나은 장소가 필요했다.

스웨덴 함대는 스톡홀름과 가까운 곳에 있던 시기에는 겨울에 항구가 얼어 갇히는 일이 있었기에 남쪽으로 옮겨가야 했다. 트로쇠섬은 독일과 발트 지방까지 항해 거리가 짧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도시 이름은 스웨덴의 칼 11세 왕을 기리는 뜻으로 '칼의 왕관'을 의미하며, 란스크로나라는 도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여 1750년에는 약 1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스웨덴에서 가장 큰 도시들 중 하나였다. 그때 지어진 바로크식 건물들은 대부분 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 그래서 도심은 건축적으로 다소 획일적인 모습이다.

칼스크로나의 조선소는 도시와 거의 동시에 설립되었다. 1711년 조선소는 노동자 1100명을 거느린 스웨덴 최대의 기업체였다. 가장 오래된 폴헴 선착장은 해안 절벽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크리스토퍼 폴헴('스웨덴의 다빈치'로 불리는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로프공장으로 역사적인 레프슬라그아르바난도 있는데, 이 공장은 현재 가이드 투어를 통해 개방하고 있다.

칼스크로나는 설립 때부터 조성된 거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거리는 모두 격자형으로 뻗어 있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도심 곳곳에 자유롭게 불어 닥친다. 해군항을 중심으로 도시의 일부는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1981년 10월, 위스키급 소비에트 잠수함 S-363(스웨덴에서는 'U137'로 알려져 있음)이 칼스크로나 바로 외곽의 스투르쾨 근처에서 좌초했다. 언론은 이를 '얼음 넣은 위스키' 사건이라고 묘사했다.

이 사건은 스웨덴과 소련 간 긴장감을 일시적으로 고조시켰다. 잠수함의 좌초는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승무원들의 음주 때문으로 추정되지만, 당시 불특정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로 여겨진다.[3]

칼스함[편집]

칼스함은 스웨덴 블레킹에주의 도시이다. 1664년에 왕실 헌장과 도시 특권을 받았다. 당시 스웨덴 칼 10세 구스타브 왕은 발트해 근처에 있는 이 도시의 전략적 위치를 깨달았다. 1666년에 이 마을은 칼스함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칼의 항구라는 뜻이다. 해안 지역은 연어 낚시를 할 수 있고, 암석 해안과 숲이 우거진 한적한 마을이 펼쳐져 있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인근 궁발라 마을에는 FM과 TV 송수신을 위한 335m 높이의 밧줄 묶인 돛대가 있다. 그것은 다른 곳에 있는 같은 높이의 돛대와 함께 스웨덴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또 칼스함에는 3개의 굴뚝이 있는 스테르뇌 발전소가 있는데 여기서 폴란드로 전력을 송전한다. 해안인 뫼룸손에서는 연어 낚시를 할 수 있고, 암석 해안과 숲이 우거진 한적한 마을 등이 있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인다.

도심의 동쪽에는 유명한 에릭스베리 빌트파르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유럽 들소, 크라운 사슴, 말코손바닥 사슴, 멧돼지와 같은 다양한 토종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오래된 농장이다.

칼스함의 미에온 개천 출구에는 항구 및 어촌 보데쿨과 농장 보데토르프가 있었다. 뫼룸손 하류에는 번성하는 연어 어장이 있었다.

스웨덴은 1658년 로스킬데조약을 통해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했다. 국왕 칼 10세 구스타브는 즉시 해안을 시찰했고 이곳에서 천혜의 항구를 발견했다. 에릭 달베리가 설계한 요새는 1659년 보왼과 1675년 카스텔레트라고 불리는 프리에스홀멘에 세워졌다.

이 도시는 외국상인들을 적극 유치한 결과 무역이 활기를 보였다. 그 때문에 덴마크의 시샘을 받아 덴마크 군대가 1676~1678년에 두 번에 걸쳐 마을을 공격했다. 주민 정착은 급속히 확대되어 1700년에 647명의 시민을 헤아렸다. 1710년 전염병으로 인구가 줄었다.

농산물과 광물을 기반으로 한 산업은 18세기에 정착되었다. 1763년의 화재로 마을의 북부가 파괴되었고, 1790년에 또 다른 화재가 발생했다. 1810년의 대륙 간 전쟁 때문에 칼스함은 상품 거래 기회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번창했다. 펀치 음료, 담배, 코담배 가루가 이 도시의 주요 생산물이었다. 공예는 1880년경에 제조업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흔했다.

1883년엔 6,529명의 시민이 거주했고 도시계획은 63헥타르에 달했으며, 693개의 공터에 건물이 세워졌다. 1874년에 개통된 철도는 칼스함과 북부의 비슬란다를 연결했다. 1890년에는 해안 철도가 건설되었다.

1876년 L. O. 스미드는 알코올 생산공장을 세우고 1884년에는 새로운 증류소를 설치했다. 이 시설은 1893년엔 설탕정제소로 전환되었다. 1912년에 옛 정유 공장에서 식물성 기름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AAK라는 상표로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화강암 채석장에서 돌을 캐내 다듬어 파는 일은 1850~1940년경에는 수출산업이었다. 1962년 뫼룸에는 제지공장이 세워졌다.

1975년 이래로 칼스함 항구는 점차 마을 서쪽의 스틸레뤼드 지역으로 이전했다. 칼스함은 칼스크로나의 스웨덴 해군기지에서 약 50km 떨어져 전략적으로 민감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4]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블레킹에주〉, 《위키백과》
  2. 두산백과 : 블레킹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3.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칼스크로나〉,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칼스함〉,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같이 보기[편집]

북유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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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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