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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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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jia1222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1일 (화) 17: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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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차(防彈車)는 방탕 성능이 있는 차량을 뜻한다. 대부분 방탄유리와 방탕 성능을 가진 차체로 총알이나 로켓포, 지뢰 등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한다. 두께 수십㎜의 특수강화유리와 강도는 높이고 무게는 줄인 특수강판, 외부충격을 받아 찢겨진 상태에서도 맹렬한 속도로 수십 킬로미터를 갈 수 있는 타이어 등 믿기 힘든 성능을 가진 최첨단의 부품들이 장착되고 있다. 보통 국가원수가 이용하는 의전차장갑차 같은 차량 등이 방탄차에 속한다. 한편 의전차로 사용되는 방탄차는 그 제원과 가격 등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공개된 제원이나 가격을 통해 특정 부품이나 부위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요

방탄차에서 말하는 안전의 개념은 충돌 안전보다는 총탄으로부터의 안전에 무게가 실린다. 방탄차는 총기를 이용한 외부의 습격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자동차로, 주로 국가원수나 요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 밖에도 분쟁지대나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 또는 모종의 이유로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극소수의 개인을 위해 만들어진다.[1] 방탄차의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테러 위협이 늘면서 국가원수는 물론 기업총수와 유명 연예인들이 최첨단의 방탄차를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탄차를 제작하는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굳이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다. 예컨대 영국 왕실의 결혼식이나 미국 대통령 취임 행사 등 세계적 이목이 쏠린 순간,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등장했을 때의 브랜드 홍보 효과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방탄차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이유다. 특히 최근에는 방탄차의 수요층도 다양해지고 있어 방탄차 전문 제작업체와 손잡고 중소형 차량에도 방탄기능을 적용하는 추세다.[2]

역사

메르세데스-벤츠 770K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3]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 프레데리케(Sophie Friederike)[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zegovina)의 사라예보에서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5] 이 사건 이후 방탄차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며 본격적으로 방탄차가 제작되기 시작했다.[6] 방탄을 목적으로 만든 최초의 탈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시 방탄 기능을 갖고 있던 장갑차였다. 1916년, 영국에서 개발된 Mk.1은 무장과 장갑을 갖춘 최초의 근대적 차량이었다. 하지만 군수용이 아닌 민수용으로 완전 방탄기능을 탑재한 차량이 제작된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28년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가 출시한 뉘른부르크 460이었다. 벤츠 770K는 1930년부터 1943년까지 만들어진 벤츠의 기함이었다. 벤츠 770K는 전장 6m, 전폭 2m의 그로서 오프너 투어링 왜건으로 7.7리터급의 8기통 엔진에 슈퍼차저를 장착해 최고출력 230마력을 발휘했고 4륜 독립 서스펜션으로 충격을 흡수해 승차감이 우수했다. 1933년, 벤츠는 이 차를 바탕으로 방탄차를 제작했는데, 그 첫 번째 고객은 히로히토 일본왕이었다. 당연히 나치독일을 이끌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역시 해당 차량을 자신의 의전용 차량으로 선택했다. 그를 위해 1939년에 제작된 벤츠 770K 방탄 모델의 유리부분은 4cm의 두께로 제작했고, 하부 역시 견고하게 제작해 지뢰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었다. 훗날 이 차량은 나치 친위대(SS, Schutzstaffel)장교인 에리히 켐프카(Erich Kempka)가 소장하다가 연합군에 의해 노획됐으며,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2009년 경매에서는 90억원에 낙찰된 바 있으며 2017년 경매에서는 150억원 가량으로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히틀러에게 벤츠 770K가 인도된 다음 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역시 링컨(Lincoln)으로부터 의전용 방탄차를 인도받았다. 루즈벨트는 1939년 12월, 벽돌공으로부터 저격을 받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방탄차의 중요성을 의식, 링컨 방탄 컨버터블을 의전차로 선택했다. 루즈벨트의 방탄차는 1939년형 컨티넨탈(Continental) 컨버터블을 베이스로 24mm 두께의 방탄 유리와 방탄 타이어 등으로 개조한 차량이었다. 또한 경기관총도 구비되어 어느 정도의 공격 기능도 발휘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방탄차는 이승만 대통령의 경호를 위한 의전차였다. 해당 차량은 캐딜락(Cadillac) 프리트우드 62 세단이었으며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가 기증한 것이었다. 이후 윤보선 전대통령도 같은 차종을 사용했으며,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396호로 지정되었다.[7]

동영상

각주

  1. 박병하 기자, 〈자동차 안전의 또 다른 세계, 방탄차〉, 《모토야》, 2018-05-31
  2. 방탄차 - 달리는 전천후 집무실〉, 《자동차대백과》
  3.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 《위키백과》
  4. 조피 프레데리케 폰 바이에른 왕녀〉, 《위키백과》
  5. 사라예보 사건〉, 《위키백과》
  6.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자동차! 방탄차 이야기〉, 《불스원 공식 블로그》, 2020-03-10
  7. 온갖차, 〈VIP를 보호하라! 방탄차의 역사〉, 《네이버 포스트》, 2018-05-02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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