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링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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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링겐(독일어: Freistaat Thüringen)는 독일 중부에 위치한 연방주이다.[1]
개요
튀링겐주의 면적은 16,202.35km²이며 인구는 2,126,846명(2022년 12월)이다.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작센주, 남쪽으로는 바이에른주, 서쪽으로는 헤센주, 북서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북쪽과 북동쪽으로는작센안할트주와 접한다. 주도는 에어푸르트이다.
독일어 발음으로는 튀링엔이 적절하다. 독일어의 ng는 영어와 달리 /g/가 덧나지 않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튀링겐이 올바른 표기이고 독일 관광청도 이 두 가지 용어를 섞어서 쓴다.
현재 독일의 정중앙인 니더도얼라(Niederdorla)가 바로 이 주에 있다.[2][3]
자연환경
튀링겐주의 북쪽은 하르츠산맥, 남쪽은 튀링거발트와 프랑켄발트 사이의 단층으로 형성된 분지로, 잘레강(江) 등이 흐른다. 연 강수량은 분지 내부에서 500∼600mm, 주변 산지에서 1,200mm 이상으로 대조적이며, 연평균기온도 저지에서 8℃, 산지에서 4℃로, 분지는 따뜻하고 건조하다.
역사
지금의 튀링겐 지방은 고대부터 게르만족의 왕국 투링기(Thuringii)가 있던 곳이다. 투링기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헤르문두리(Hermunduri)의 후손들이란 뜻으로, 헤르문두리의 어미인 'duri'에서 시간이 지나 변형된 'thuri'와 후손을 뜻하는 '-ing'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추정된다. 6세기 프랑크 왕국에게 복속된 후 프랑크 왕국은 그 지방을 그대로 이어 튀링겐 변경백령을 만든다. 튀링겐 변경백은 동프랑크에 속하게 되면서 공작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공작의 대우를 받게 되었으나, 온전한 공작령은 아니였기 때문에 독일의 5대 공국(부족 공국)(작센, 바이에른, 슈바벤, 프랑켄, 로트링겐)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908년 튀링겐의 마지막 공작이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죽으면서 작센 공작령으로 흡수된다. 이후 튀링겐은 변경백들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후 4백년간 수많은 후작과 다른 지역에서 옮겨운 귀족들에 의해 각축장을 벌였다.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루도빙거(Ludowinger) 가문이 튀링겐 전역을 지배하였으나 1247년 하인리히 라스페(Heinrich Raspe)가 후사 없이 사망하며 공백이 생겼고, 하인리히 라스페의 조카인 브라반트 공작부인 튀링겐의 조피(Sophie von Thüringen)와 베틴 가문 출신의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Heinrich der Erlauchte)의 17년간의 튀링겐 계승 전쟁 끝에 튀링겐은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가 상속하고, 튀링겐 동부의 일부를 헤센으로 분리하여 튀링겐의 조피의 아들 하인리히가 상속하며 헤센 방백국이 탄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튀링겐은 베틴 가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베틴 가문은 마이센과 튀링겐을 분할상속했지만 1440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 1482년 작센 선제후 에른스트에 의해 베틴 가문의 모든 영지가 통합되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의 둘째 아들이자 에른스트의 동생 알브레히트가 분할 상속을 요구하자 이를 못이긴 에른스트는 1485년 라이프치히 조약을 체결하여 본인은 작센 선제후 자리와 작센-비텐베르크 공작령, 남부 튀링겐을 가져갔고, 알브레히트에게는 작센 공작위와 마이센 변경백령, 북부 튀링겐을 나누어주면서 베틴 가문은 다시 분열되었다.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며 에른스트 계열은 개신교로 개종하고 신교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1547년 슈말칼덴 전쟁에서 신교도인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에 사로잡히자 폐위당해 베틴 가문 본가인 에른스트 계열의 선제후직은 방계인 알브레히트 계열로 이전되었고 1806년 작센 왕국이 된 후 지금의 작센 주가 된다.
에른스트가 상속받은 남부 튀링겐은 4대를 거친 1554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의 세 아들이 분할 상속하여 에른스트 대공국들(Ernestinische Herzogtümer) 또는 작센 공작령들의 시초가 되었다. 이들 영토의 경계는 1572년에 에어푸르트 분할로 재조정되었고, 그 이후의 변화상은 한 공작령의 제후의 대가 끊기면 그 영토를 다른 공작령들이 나눠먹는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영토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는고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826년에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령의 대가 끊기면서 영토 재조정을 한 것을 마지막으로 1개 대공국, 3개 공국으로 확정되었다.
작센 공작령들 말고도 튀링겐 지역에는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 로이스 가문의 영토들이 분립해 있었다. 슈바르츠부르크 가문의 영토들은 1599년에 2개로 나뉘어진 영토가 20세기까지 이어졌고, 로이스 후작령들은 1678년경에는 9개로 분립되다가, 1806년에 2개로 정리되었다.
튀링겐 제국(諸國)이라는 이들 소공국들은 1826년에 8개로 정리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1871년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910년 당시 총면적 12,325㎢에 159만 명의 인구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일곱 제후들이 모두 퇴위하면서 각 소국들은 자유주로 개편되었다가, 1920년에 이들 자유주를 모두 통합해 현재의 명칭인 튀링겐 자유주로 바꾸어 제2차 세계 대전이 끌날때까지 유지한다.
1945년 미군이 점령했으나 종전 이후 소련군 관할 지역이 되었고, 오늘날의 주도인 에어푸르트를 비롯한 노르트하우젠, 뮐하우젠 근교 지방을 흡수하면서 튀링겐 주의 경계가 이때 대략 확정되었다. 1952년에 이르러 동독 중앙정부가 주정부들을 해체하자, 에어푸르트 관구와 게라 관구와 줄 관구로 나뉘어졌으나, 1990년에 이르러 동서독 양국의 평화통일을 실행하기 직전에 주정부가 부활하였다.
경제
밀·사탕무·야채·과일 등이 재배되고, 특히 에르푸르트 부근의 화초와 야채 재배는 유명하다. 또한 지하 자원이 풍부하여 점판암·암염(岩鹽)·칼륨·갈탄 등을 산출한다. 기계·완구·유리·섬유 공업 외에 면적의 1/3이 삼림으로 덮여 있어 제재공업이 활발하다.
인구
통일 직전이었던 1987년의 인구수가 270만 명에 달했었다. 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부유한 서독 지역으로의 이주가 급증하여 인구수가 빠르게 감소했다. 2022년에 210만이 되어 30년 사이에 무려 60만이 줄었다. 출산율도 1.42명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고령화+인구이탈 콤보로 골치를 앓는 다른 구 동독지역에 비하면 한 시름 놓은 상황이다. 그러다가 2023년에 212만 명으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촌 지역의 인구감소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종교
작센과 함께 중세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의 중심지로 루터회의 본산과 같은 곳이었지만 공산정권을 거치면서 많이 세속화되었다. 인구의 70%가 무교인 상황이다. 그나마 개신교가 25%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한 때 나마 이곳이 루터회의 성지였음을 알려주고 있기는 하다.
요리
튀링겐 요리 중 단연 손꼽히는 두가지를 고르자면 지리적 표시 보호제로도 보호받는 명물 소시지 튀링어 브라트부어스트(Thüringer Bratwurst), 그리고 감자로 만든 완자 튀링어 클뢰세(Thüringer Klöße)가 있는데 두가지 모두 튀링겐을 넘어서도 인지도가 높은 음식들이다. 특히 브라트부어스트 모양의 소시지는 핫도그로 발전했고. 그 이외에 튀링겐 요리는 전반적으로 고기 음식이 많은 편으로 그레이비 소스로 간한 쇠고기 룰라드 린더로울라데(Rinderroulade), 맥주에 끓여낸 돼지고기 스튜 튀링어 비어플라이쉬(Thüringer Bierfleisch), 마리네이드에 건포도와 같이 절인 쇠고기를 생강빵과 곁들여먹는 튀링어 자우어브라텐(Thüringer Sauerbraten), 마조람에 돼지 어깻살을 버무려 숙성시킨 후 꼬치에 굽는 튀링어 무츠브라텐(Thüringer Mutzbraten), 돼지 목살을 맥주에 절였다가 그릴에 구워낸 튀링어 로스트브래텔(Thüringer Rostbrätel) 등이 있다. 튀링어 브라트부어스트 말고도 튀링겐의 소시지는 수준이 높아서 간을 이용한 튀링어 레버부어스트(Thüringer Leberwurst), PGI급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선지 소시지 튀링어 로트부어스트(Thüringer Rotwurst) 등도 유명하다.
튀링겐 요리는 또한 케이크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는 프랑스풍 가토, 크림 바른 케이크나 달달한 패스트리 등을 선호하는 반면에 튀링겐에서는 전통적인 독일식 블레히쿠헨(Blechkuchen)을 선호한다. 크리스마스, 결혼식, 장례식 등 어떤 행사에서도 블레히쿠헨을 찾아볼 수 있으며, 자연히 최소한 열가지 이상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튀링겐은 양조사업 전통이 오래 되었으며, 현재도 고타(Gotha), 알텐부르크(Altenburg), 에어푸르트(Erfurt), 쾨스트리츠(Köstriz)에 양조장을 다수 거느리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필스너(Pils)와 흑맥주(Schwarzbier)가 주종을 이뤄왔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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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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