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캔버라(영어: Canberra)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45만 명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내륙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전국에서는 8번째로 큰 도시이다.[1]
목차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 면적: 814.2 km²
- 지역어: 영어
캔버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쪽, 수도 준주의 북쪽 끝에 있으며, 시드니에서 남서쪽으로 280km, 멜버른에서 북동쪽으로 66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시드니, 멜버른 등에 비하면 작지만 큰 도시들이 모조리 해안가에 몰린 호주에서는 가장 큰 내륙 도시이다. 캔버라의 거주민을 캔버런(Canberran)이라고 한다. 캔버라는 기복이 완만한 평원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발고도 450∼480m 지점에 있어 연평균기온은 13℃이다. 기하학적 가로망이 뻗어 있는 전형적인 계획도시이다. 목장, 농경지로 이용되어 왔으나 1908년 수도로 선정되어 전세계에서 공모한 도시계획을 바탕으로 1913년에 착공하였으며 1927년에 멜버른에서 수도를 옮겼다. 시가지는 동서로 흐르는 몰롱글로강을 이용한 인공호를 중심으로 여러 모양의 광장과 환상(環狀), 방사상, 바둑판 모양의 가로가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정부가 있는 도시이며 오스트레일리아 국회의사당을 포함하여 연방 정부 산하 행정기관 대부분이 이 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호주의 수도답게 중앙 정부의 고소득 고위 공무원들이 모여 인구 밀도에 비해 물가가 높다. 호주 의회, 국방부, 외교부 등 대부분 국가기관이 자리했고 호주의 방첩기관인 안보정보국(Australian Security Intelligence Organisation; ASIO)과 비밀정보국(Australian Secret Intelligence Service; ASIS). 신호정보국(ASD)의 본부도 이 곳에 위치한다. 각국의 대사관 역시 모두 캔버라에 위치한다. 캔버라대학(1930)을 비롯하여 사관학교, 국립도서관 외에 블랙산 기슭에는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1940)이 있고 스트로믈로산에는 천문대가 있다. 이 밖에 동물원, 박물관, 병원 등의 문화 시설도 정비되어 있다. 숲속의 수도(Bush Capital)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도시와 정원이 어우러진 분위기를 낸다. 또 캔버라에는 호주국립대학교가 있어 1963년 캔버라를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도시를 학문의 수도(capital of scholarship)라고 부르기도 하였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캔버라의 인구는 약 45만 명으로, 국내 제8위 규모이지만, 해상 교통이 없는 내륙 도시로는 아주 규모가 큰 도시에 속한다. 계획적으로 부도심 위성 지구를 개발하고 있다. ACT 영역 내에서 개발 지구가 아닌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취락은 없다. 경계를 넘어가면 뉴사우스 웨일즈 퀴인비얀이 계획되지 않은 위성 도시가 되고 있다. 표준시는 뉴사우스 웰일스 주와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표준시이다. 즉 UTC+10시간으로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 아침부터 다음 해 4월의 첫 번째 일요일 이른 아침까지는 1시간 빨리 시간을 계산한다.
캔버라는 비교적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내륙의 고원 지대에 있기 때문에 따듯하고, 더운 여름과 호주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 한겨울에는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많다.
역사[편집]
영국의 식민지화 이전에 캔버라가 건설될 지역은 호주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캔버라 지역에 처음 정착한 영국인들은 근처에 사는 두 개의 은군나발족(Ngunnawal)의 부족을 묘사했다. 캔베리(Canberry) 씨족 또는 은간브라(Nganbra) 씨족은 주로 설리번 크릭(Sullivan's Creek) 근처에 살았고 블랙 마운틴의 기슭에 의식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피알리고(Pialligo) 씨족은 현재의 캔버라 공항 근처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의 정착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암석 보호소, 암벽화 및 조각품, 매장지, 캠프 및 채석장, 석기 도구 및 배치가 포함된다. 유물은 초기 인간 활동이 21,000년 전 해당 지역의 어느 시점에서 발생했음을 암시한다.
1820년 10월, 찰스 트로스비(Charles Throsby)가 영국 최초의 탐험대를 이끌고 이 지역을 방문했다. 1820년과 1823년 사이에 네 번의 다른 탐험이 일어났으며, 1823년 6월 탐험가 마크 존 큐리(Mark John Currie)에 의해 처음으로 정확한 지도가 제작되었다. 이 단계에서 그 지역은 석회암 평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영국의 이 지역 정착은 아마도 1823년 말, 조슈아 존 무어(Joshua John Moore)가 고용한 수석 목축업자인 제임스 코완(James Cowan)이 현재의 액턴 반도(Acton Peninsula)에 양 목장을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어는 1823년 이 지역에서 토지 허가를 받았고 1826년 12월 16일 공식적으로 부지 매입을 신청했다. 그는 그 부동산에 캔베리(Canberry)라는 이름을 붙였다. 1827년 4월 30일, 무어는 편지로 캔버리의 1,000에이커(405ha)를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식민지 주민들도 곧 무어의 선례를 따라 이 지역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1825년경 부유한 상인 로버트 캠벨(Robert Campbell)을 대신하여 일하는 제임스 에인슬리(James Ainslie)가 양 목장을 설립하기 위해 도착했다. 그는 피알리고(Pialligo) 일족의 아름다운 땅을 보여준 현지 원주민 소녀의 안내를 받아 그 지역으로 갔다. 이 지역은 캠벨의 소유지가 되었고 캠벨이 스코틀랜드식 명칭인 던트룬(Duntroon)으로 변경하기 전에 처음에는 피알리고(Pialligo)로 명명되었다. 캠벨의 가족은 후에 현재 영국 왕립 군사 대학인 던트룬 장교들이 사용하고 있는 인상적인 석조 집을 지었다. 캠벨 부부는 다른 농부 가족이 자신의 땅을 일하기 위해 정착지를 후원했다.
다른 주목할 만한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로는 1827년 현재 호주 총독의 관저가 있는 야랄룸라 사유지를 설립한 헨리 도니슨(Henry Donnison)과 1828년에 던컨 맥팔레인(Duncan Macfarlane)을 고용하여 제라봄베라(Jerrabomberra) 사유지를 조성한 존 팔머(John Palmer)가 있다. 1년 후 존 맥퍼슨은 스프링뱅크 사유지를 설립하여 이 지역에서 최초의 영국인 소유자가 되었다.
리드 교외에 있는 성공회 세례자 요한 성당은 1845년에 축성되었고 현재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건물이다. 세인트 존의 교회 묘지에는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 있다. 그것은 "도시의 성역"으로 묘사되었으며 수도가 주변에서 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은 영국 마을 스타일의 교회로 남아 있다. 캔버라의 첫 번째 학교인 세인트 존스 학교(현재는 박물관)는 교회 옆에 위치했으며 같은 해인 1845년에 문을 열었다. 이 학교는 캔버라 에 살았던 블런델 아이들을 포함한 지역 정착민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지어졌다.
유럽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원주민 인구는 주로 그들의 사회의 파괴, 그들의 땅에서의 이탈, 그리고 인플루엔자, 천연두, 알코올 중독, 홍역과 같은 도입된 질병으로 인해 감소하였다.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가 대영제국의 자치령이 됐을 때, 수도의 자리를 놓고, 멜버른과 시드니가 충돌하였다.
1908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양대 대도시인 시드니와 멜버른이 타협 끝에 캔버라 땅을 국가 수도 입지로 선정하였다. 1911년에 이 두 도시 간의 자본 싸움을 끝내기 위해, 캔버라의 건설이 시작되어, 캔버라는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분리되었다. 멜버른과 시드니 사이에 직선을 뺀 거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캔버라가 건설되었다. 캔버라는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와 더불어 계획 도시로 유명하다. 도시 설계를 놓고 국제 경연을 열어 시카고의 건축가 월터 벌리 그리핀과 매리언 매호니 그리핀이 선정되었으며 1913년에 도시 건설이 시작되었다. 캔버라의 설계는 전원 도시 운동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도시내에 넓은 자연 초지를 받아들여 캔버라는 "숲이 우거진 수도"(Bush Capital)란 별명을 얻었다.
1915년 저비스 베이 준주는 연방수도의 바다에 밖으로 연방 정부에 이양되었다. 1927년 임시 수도 멜버른에서 캔버라로 천도하고 1929년에 처음으로 캔버라 국회가 열렸다.
1960년에 일단 캔버라는 완성되었다. 캔버라는 미국인 건축가 월터 벌리 그리핀에 의해 설계된 인공 도시이며, 그의 이름 붙여진 인공 호수 벌리 그리핀 호수가 있다.
세계 대전과 대공황으로 캔버라의 발전이 지체되기도 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번영하는 도시로 부상하였다.
1988년 12월 호주 수도 준주(Australian Capital Territory)는 영연방 의회에 의해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2003년 1월 18일 캔버라의 일부 지역이 산불로 휩싸여 4명이 사망하고 435명이 부상당했으며 500채 이상의 가옥과 호주국립대학교 스트롬로 산 천문대의 주요 연구 망원경이 파괴되었다.
2014년 캔버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2017년에는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의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방문하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다.[3]
교통[편집]
항공[편집]
캔버라 국제공항에서 동부 근교에 위치한 뉴사우스 웨일즈 남부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애들레이드, 퍼스 사이에 정기 항공편이 운항한다.
철도[편집]
시내 남동부 킹스톤 캔버라 역(Canberra railway station)은 캔버라의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수송했다. 현재는 시드니와 여객 특급 열차가 운행하고 있다.
도시철도[편집]
캔버라 도시철도는 건설 중 인 도시철도 체계이다.
시외버스[편집]
도심 지역의 졸리몬트 관광객 센터 (Jolimont Tourist Centre)는 고속 버스터미널에서 시드니와 멜버른에 노선이 발착한다.
도로[편집]
고속도로는 뉴사우스 웨일즈 남부의 각 도시에 방사상으로 뻗어있다. 시드니 - 멜버른 사이 내륙 쪽을 연결하는 흄 하이웨이에 접속 지점은 캔버라 북쪽 야스이다.
대중교통[편집]
캔버라 시내의 많은 대중교통은 국영 호주 수도 특별 자치구의 버스 네트워크(Australian Capital Territory Internal Omnibus Network, ACTION 영어 공식)이다.[4]
행정 구역[편집]
행정구역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의 7 구(District) 108동(Division/Suburb)으로 구성되어 있다.
캔버라에는 시청과 같은 캔버라만을 관할하는 독자적인 법인격 행정기관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공공 사무는 캔버라가 속한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준주에서 담당한다.
- 건갈린구(Gungahlin)
- 몰롱글로구(Molonglo Valley)
- 벨커넨구(Belconnen)
- 워든구(Woden Valley)
- 웨스턴구(Weston Creek)
- 캔버라중구(Canberra Central)
- 터게라농구(Tuggeranong)
도시 구조[편집]
캔버라는 계획 도시로, 미국의 건축가 월터 벌리 그리핀이 설계하였다. 주요 도로는 격자꼴이 아닌 바퀴와 바퀴살 모양으로 뻗어있다. 도심지는 두 수직축에 자리잡고 있는데, 수변축은 벌리 그리핀 호이며, 의례적 육지축은 캐피털 힐의 의회 의사당에서 북동쪽으로 앤잭 대로를 따라 애인슬리 산 기슭 오스트레일리아 전쟁 기념관으로 뻗은 축이다.
벌리 그리핀의 세 축을 통하여 의회 삼각지가 형성되어 있다. 한 축은 캐피털 힐에서 연방 대로를 따라 시티 힐 주변 공무 중심지로 이어지며, 두 번째는 이 곳에서 헌법 대로를 따라 러셀 힐의 국방부 구역까지이고, 마지막으로 여기서 킹스 대로를 따라 다시 캐피털 힐에 이른다.
캔버라의 도시 배치는 더 넓게 보면 도시 주변 세 산봉우리인 애인슬리 산, 블랙 산, 레드 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앤잭 대로와 애인슬리 산-빔버리 봉 사이의 대략적인 선이 도시의 주요 대칭축을 이루고 있다. 수도 준주에서 가장 높은 산인 빔버리 봉은 캔버라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52km 떨어져 있다. 앤잭 대로의 정확한 위치는 애인슬리 산과 캐피털 힐(과거의 쿠라종 힐) 사이이다.
그리핀 부부는 애인슬리 산, 블랙 산, 레드 힐에 정신적인 가치를 부여하였으며, 원래 꽃으로 각 산을 뒤덮을 계획이었다. 세 산에 덮을 꽃은 각자 단일하게 원색으로 정하여 정신적인 가치를 나타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실행되지 않았다. 사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도시 건설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전후 다툼이 벌어져 그리핀의 계획을 실시하기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캔버라는 모범적인 도시 설계로 들어섰으며, 도중에 스키장과 해변 사이에 건설되었다. 지리적인 요소 덕분에 자연 냉각의 덕을 보았다.
캔버라의 도시 지역은 산업 단지나 마을을 비롯하여 구역, 도심, 공동체 중심지, 지역 교외의 위계로 나뉘어 조직되었다. 캔버라에는 일곱 구역이 있는데, 각 구역은 교외 지역으로 구획되었으며, 교외지 대부분은 각자 도심을 두고 있으며 이곳은 상업과 사회 활동의 장으로 주로 쓰인다.
지도[편집]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오세아니아 같이 보기[편집]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