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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니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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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치
빈니차주 위치

빈니차주(우크라이나어: Вінницька область)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위치한 주이다.[1][2]

개요

빈니차주의 면적은 26,513㎢이며 인구는 1,529,123명(2021년)이며 주로 주도는 빈니차이다. 주 남서쪽에는 드네스트르강이 흐른다. 남쪽으로는 몰도바와 국경을 접하며 서쪽으로는 체르니우치주흐멜니츠키주, 북쪽으로는 지토미르주, 동쪽으로는 키예프주와 체르카시주, 키로보흐라드주, 남동쪽으로는 오데사주와 접한다.

빈니차주는 광물 자원이 풍부한 편이며 주 안에는 이탄과 고령석, 석류석, 형석 등 1,159개에 달하는 광산이 있다. 질 좋은 광천수로도 유명한 곳이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많은 연관이 있는 지역인데, 포로셴코가 설립한 로셴의 본사가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국회의원 재임 당시 지역구도 이 지역에 있었다.

교육

빈니차국립공과대학교

빈니차국립공과대학교는 우크라니아 빈니차주 빈니차에 있는 국립 공학특화 대학교이다. 1960년 설립됐다. 학술부문은 8개 학부 및 대학으로 구성됐으며, 산하에 40여개의 학과가 편제됐다. 학사와 석박사 과정에서 수십 개의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해외 50여개 대학교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2022년 QS 세계대학순위에서 신흥유럽 및 중앙아시아지역(EECA) 대학 가운데 351-400위권에 포함됐다. 2023년 에듀랭크(EduRank)의 세계대학순위에서는 세계 7785위, 유럽 대학 중 1760위, 우크라이나의 169개 대학 가운데 89위를 기록했다.

1960년 빈니차에 키예프식품산업대학의 일반기술학부가 설립됐다. 빈니차 일반기술학부는 1964년 키예프폴리테크닉대학의 빈니차 분교가 됐다. 빈니차 분교에 25만m2의 부지가 할당되어 2개의 강의용 건물과 기숙사 등이 건설됐다. 1974년 빈니차 분교를 기반으로 빈니차폴리테크닉대학이 설립됐으며, 1994년 빈니차국립공과대학교(Vinnytsia State Technical University)로 개편됐다. 2003년 정식으로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지위가 부여됐다.

빈니차 캠퍼스에는 8개의 강의 및 실험용 건물과 6개의 기숙사가 있다. 기숙사 수용인원은 2,500명이다. 530석 규모의 현대식 식당과 학생-교직원들이 리듬체조와 피트니스, 탁구, 무술 등을 즐기는 피트니스센터가 있다. 학생 운동팀은 20여 개가 활동한다. 빈니차에서 100km 떨어진 곳에 스포츠단지가 있다. 이 대학교 캠퍼스가 소재한 빈니차는 빈니차주 주도이며 산업중심지이다. 우크라이나 공군본부가 있다.[3]

빈니차

빈니차는 우크라이나 중서부 남부흐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빈니차주의 행정 중심지다. 1363년 리투아니아의 요새로 처음 역사에 등장했다. 1362년 포딜리아(Podillya; 우크라이나어 Поділля, 현재의 우크라이나 중서부와 남서부, 몰도바 북동부 지역을 뜻하는 역사적 명칭) 지역을 차지한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은 타타르족과의 접경지대에 여러 개의 요새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빈니챠다.

도시명은 선물로 주어진다는 뜻의 옛 슬라브어 비노(vino)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을 점령한 리투아니아의 알기르다스(Algirdas) 공작이 그의 조카들에게 선물로 준 것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다.

빈니챠는 1400년에서 1569년 사이에만 30번 이상 타타르의 습격을 당했다. 1558년 남부흐강의 캠프섬에 새로운 요새가 세워졌고, 강 우안(右岸) 지역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났다. 좌안(左岸)의 구(舊)시가지도 꾸준히 확장됐다.

1569년부터 빈니챠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게 됐다. 1598년에는 폴란드 브라츨라프(Bratslav; 우크라이나어 Брацлав; 폴란드어 Bracław)주(州; voivodeship, 폴란드의 행정 구역 단위)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빈니챠는 점차 농촌에서 제조 및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다. 16세기 빈니챠에서는 정기적인 장이 섰고, 여러 개의 길드 조직이 있었으며, 흑해 연안의 도시들과 무역이 이루어졌다. 빈니챠가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1580년, 1593년, 그리고 1634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전역에 효력을 미치는 면세 무역 특권이 부여된 것이나, 1640년 마그데부르크(Magdeburg) 도시법에 따른 권리를 부여받은 사실로 입증된다. 마그데부르크 도시법은 부유한 시민들이 선출한 의회가 도시의 모든 문제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자치권이다.

16세기와 17세기 빈니챠에는 종교적인 발전도 이루어졌다. 1570년대 빈니챠의 시민들은 정교회 형제단을 만들었다. 이들이 후원한 학교는 거의 2세기 동안 운영됐다. 1632년 정교회 대학도 문을 열었다. 폴란드인은 1617년과 1624년에 가톨릭 수도원을 잇달아 세웠고, 1642년 예수회 대학을 설립했다.

1653~1667년 카자크에 탈환됐던 빈니챠는 다시 폴란드의 수중에 넘어갔다가 1672~1699년에는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폴란드는 다시 빈니챠를 지배하게 됐지만, 1793년 폴란드의 2차 분할 이후 빈니챠를 비롯한 포딜리아 평원 일대는 러시아 제국의 땅이 되었다.

빈니챠는 1797년 러시아 제국의 포딜리아현(縣; Guberniya, 러시아 제국의 행정구역 단위)에 속한 빈니챠군(郡)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가 1798년 도시의 지위를 얻는다. 빈니챠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었고, 1860년 빈니챠에는 약 1만 명의 주민, 5개의 학교, 병원, 극장 및 190개의 상점과 극장 등이 있었다.

빈니챠 개발의 중요한 원동력은 1871년에 건설된 키이브(Kyiv)-발타(Balta) 철도선이었다. 이 노선의 개설로 빈니챠는 키이브 · 오데사(Odessa) · 모스크바(Moscow) ·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와의 교통이 크게 개선되었다. 19세기 후반 빈니챠의 경제는 급성장했다.

빈니챠는 포딜리아현의 식품산업 및 무역을 이끄는 중심지가 되었다. 인구는 1860년 1만 명에서 1897년 3만 명으로 증가했다. 1897년 당시 인구의 약 35%는 유대인이었다.

1914년 빈니챠는 포딜리야현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소비에트 정권의 행정 구역 개편 후 1932년 빈니챠주의 주도가 되었다.

1941년 독일군에 점령된 빈니챠는 1944년까지 독일군의 통치를 받았다. 1943년 독일군은 이 지역에서 9,434구의 시신을 발굴했는데, 이는 스탈린(Stalin)의 대숙청기인 1937~1938년에 소련의 비밀경찰에 의해 사망한 우크라이나인으로 추정되었다. 이와 별도로 독일 나치군은 빈니챠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대학살을 벌였다. 빈니챠에서 발생한 희생자는 최소한 2만 8,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빈니챠는 대규모 산업 및 통신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인구는 1939년 9만 3,000명에서 1970년 21만 1,400명, 1979년 31만 4,000명으로 증가했다.

빈니챠의 산업 생산량은 빈니챠주 전체 생산량의 약 50%를 차지한다. 기계제조, 금속 가공, 화학산업 외에도, 대형 식품 가공업과 의류 · 신발 제조업, 건축 자재업 공장 등이 있다. 목공 및 가구 산업도 경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빈니챠는 구소련과 우크라이나 공군의 주요 기지이기도 하다. 소련의 전략 미사일부대 본부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빈니챠에 주둔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한 후에는 우크라이나 공군사령부가 1992년부터 빈니챠에 주둔하고 있다.

빈니챠는 충분한 습도와 길고 따뜻한 여름 및 비교적 짧고 추운 겨울을 가진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1월 평균 기온은 -5.8℃, 7월 평균 기온은 18.3℃다. 연평균 강수량은 638mm다.[4]

빈니차 미사일 공격

2022년 7월 14일, 러시아군이 발사한 칼리브르 미사일 3발로 인하여 최소 26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빈니차 미사일 공격은 테러리즘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빈니차에 애착이 있던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테러리스트 국가라고 비난했다. 이후 해당 공격에 대해 복수할 것을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로 전향한 러시아군들로 이루어진 자유 러시아 군단은 빈니차, 크레멘추크,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 도시에서 민간인들을 죽인 푸틴 정권의 만행을 비판했다. 러시아를 테러리스트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방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번 공격으로 희생된 어린이(4세)의 SNS 영상을 공개하며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전범인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시의 군사동원 담당 부관 스타니슬라프 르지츠키(Stanislav Rzhitsky) 중령이 현지시각 2023년 7월 10일 오전 6시, 도시 휴양 공원에서 조깅 도중 정체불명의 가해자들에 의해 총살당했다. 르지츠키는 러시아 해군 크라스노다르 잠수함 함장으로, 본 미사일 공격의 책임자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다음 날 용의자를 체포하였다. 해당 인물은 전 우크라이나 가라데연맹 회장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해당 인물이 부차 학살이 벌어진 부차 출신의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조깅하는 생전 모습과 그를 뒤쫒는 용의자의 모습이 담긴 CCTV도 공개하였다.(KBS의 보도) 하지만 해당 함장이 이임한 뒤 벌어진게 본 사건이라면서, 단순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이라는 주장도 있다.[5]

지도

동영상

각주

  1. 빈니차주〉, 《위키백과》
  2. 빈니차주〉, 《나무위키》
  3. 세계의 대학 : 빈니차국립공과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우크라이나 빈니챠〉, 《네이버 지식백과》
  5. 빈니차 미사일 공격〉,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유럽 같이 보기

동유럽 국가
동유럽 도시
동유럽 지리
동유럽 문화
동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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