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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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네주(우크라이나어: Рівненська область)는 우크라이나 북서부에 위치한 주이다.[1][2]
개요
리우네주의 면적은 20,047㎢이며 인구는 1,148,456명(2021년)이다. 서쪽으로는 볼린주, 남서쪽으로는 리비우주, 남쪽으로는 테르노필주, 남동쪽으로는 흐멜니츠키주, 동쪽으로는 지토미르주와 접한다. 주도는 리우네이다.
역사적으로는 볼린주와 함께 볼히니아지방에 해당한다. 주도인 리우네는 소련시절 공업도시로 크게 성장을 했으며, 바라시 주변에 리우네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우크라이나 내 가장 높은 출산율을 보여주는 지역이다. 지역의 약 3분의 2 정도가 농촌인 점과 95%의 인구가 우크라이나인인 점이 높은 출산율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주내 도시들 사이에서 출산율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역사
1939년 12월 4일, 소련이 폴란드 제2공화국을 공격하고 동폴란드 지역을 9월 17일 점령하면서 해당 지역을 우크라이나 SSR로 편입해 하나의 주로 만들어졌다. 1991년 소련 붕괴이후 우크라이나어에 맞춰 로브노에서 리우네로 명칭이 바뀌었다.
산업
주도인 리우네는 소련 시절 공업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했으며, 많은 공장들이 이 시절 세워진다. 기계 공업, 금속가공업에 특히 투자를 많이 받아 트랙터 부속품 생산을 많이 했다. 화학공업에도 많은 투자를 받았으며, 섬유, 식품 가공에서도 크게 성장했다. 가구와 관련된 산업은 생산중심지로 성장했다.
리우네
리우네는 우크라이나 리우네주의 주도이다. 폴란드 왕국의 행장에 루테니아 왕국의 한 마을이라고 적힌 것이 역사상 첫 언급이다. 14세기 폴란드 왕국에 의해 루테니아 왕국이 멸망해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편입되었다.
1569년 루블린 조약에 의해 폴란드-리투아니아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93년 폴란드가 분할됨에 따라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된다.
제1차 세계 대전에는 독일 제국, 우크라이나, 볼셰비키, 폴란드에 의해 주인이 계속해서 바뀌었고, 1919년 4월부터 5월까지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수도로도 역할을 해왔다. 리가 평화 조약에 따라 1921년 폴란드 제2공화국에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독소 폴란드 분할에 의해 소련의 통치하에 있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을 결정하면서 1941년 6월 28일 침공을 받았다. 8월 20일,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의 수도가 되었다. 리우네는 유대인들이 전체 거주민의 약 50%를 이룰만큼 유대인 마을이었어서[2] 홀로코스트 정책에 따라 17,500명의 유대인들이 총살 또는 생매장 당했으며, 6000명의 어린이들이 소센키 주변에 비슷한 처지를 당했다. 나머지 유대인들은 리우네 게토에 보내졌다가, 1942년 7월 코스토필로 보내져서 학살을 당했다. 1944년 2월 2일 소련군에 의해 다시 점령당해 우크라이나가 독립하기 전까지 소련의 소속이 된다.
전후, 산업 발전이 이뤄지면서 1958년에는 방송국이, 1969년에는 트램과 공항이 생겨났다. 1991년 6월 11일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가 우크라이나 맞춤법에 따라 Rivne로 이름을 변경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미사일 피해를 받았으며, 3월 14일 방송국이 폭격을 당해 약 20명이 사망했고, 6월 25일에는 러시아군이 사르니에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이 곳도 함께 피해를 봐 4명의 사망자가 속출했다.[3]
우크라이나인
우크라이나는 숲과 강, 평야가 많으며 남쪽으로는 크림 산맥, 서쪽으로는 카르파티야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크라이나 영토의 중심은 드니프로 강(드네프르강, Dnieper River)이다. 동슬라브 민족들이 섬겼던 토속신의 신전이 자리했던 곳도 이 강 인근이었으며, 동슬라브 민족이 처음 세운 국가의 요람인 키이브(키예프)도 이 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우크라이나'라는 말은 1187년 이파티예프 연대기에 처음 등장했다. 이 연대기에서는 '우크라이나'라는 말 대신, 고대 러시아어로 '변방의 영토'를 뜻했던 '오우크라이나'라는 단어로 표기됐다. 12~13세기까지 이 말은 고대 루시의 남쪽 또는 남서쪽 영토를 의미했다. 17~18세기에 이르러서야 '우크라이나'라는 말이 정착됐고 여기에서 '우크라이나인'이라는 말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인을 칭하는 말 중에는 ‘호홀’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것은 우크라이나 카자크(코사크 Cossack) 중 가장 큰 집단이었던 자포로지예 카자크들이 정수리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의 머리를 다 깎는 관습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 표현은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인을 무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19~20세기 초 러시아 서부의 쿠반, 보로네시 주와 같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주민이 한데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이 단어가 가진 경멸적인 색채가 점차 옅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인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9~12세기 키이브 루스 땅에서 살고 있던 폴랴닌, 드레블랴닌, 볼리냐닌, 부자닌 등 동슬라브 여러 종족이 모여 우크라이나 민족을 형성했다고 본다. 이들은 이후 드니프로 강 중류를 중심으로 페레야슬랍스코예 공국, 체르니고보-세베르스코예 공국, 갈리츠코-볼린스코예 공국을 이루었다. 이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갈리츠코-볼린스크 공국은 당시 막 형성되고 있던 우크라이나 민족의 중심지가 되었다. 여기서 서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남동부 영토를 통틀어 일컫는 ‘갈리치나(또는 갈리치아)’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들 공국은 11세기부터 꽤 오랫동안 외세의 침입에 시달렸다. 11~12세기에는 헝가리 영주들로부터, 14세기 중반~15세기 초반에는 폴란드 대상인과 리투아니아인, 16세기에는 투르크 술탄들의 공격을 받았다. 1362년 새로운 공국이 탄생했으나, 곧 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 시기 서쪽 지역에서는 폴란드의 영향력도 강해지고 있었다. 1569년 류블린(Lublin)이라는 폴란드 도시에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간 국가동맹이 체결됐다. 이후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물러나고 폴란드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외세의 지배는 우크라이나 국가 발전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독립과 종교의 자유를 향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단결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인의 민족 투쟁은 17세기까지 이어졌으며, 그 중심에는 우크라이나 카자크들이 있었다. 자포로지예 카자크 부대의 수장인 흐멜니츠키는 1654년 러시아와 페레야슬라브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의 힘을 빌려 폴란드를 자신의 땅에서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것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편입으로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17세기 말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 지역이 러시아에 병합됐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는 데는 그로부터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17세기 체결된 페레야슬라브 조약이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가 주민투표를 거쳐 러시아 땅이 됐기 때문이다. 크림 반도가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소유가 된 것은 1954년인데,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바로 이 페레야슬라브 조약 체결 300주년을 기념하여 크림 반도 소유권을 우크라이나에 넘겨주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러시아는 크림 반도 병합에 대해 자국의 본래 영토를 되찾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으며, 동슬라브와 유사한 문화 가운데에서도 우크라이나 특유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루바하 위에 소매 없이 어깨끈이 달려 있는 긴 치마인 사라판을 입는 러시아 여성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바느질을 최소화한 통자 모양의 치마인 데르기 또는 플라흐타를 입는다. 털실이나 면으로 만든 가내직물을 뜻하기도 하는 플라흐타는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축제 때도 입었다. 축제 때 입는 플라흐타는 길고 밝은 색상의 체크무늬 천으로 만들며 겉에 기하학 무늬나 별, 꽃 등 화려한 장식을 수놓는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서쪽의 유럽 국가들과 동쪽의 러시아로부터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아 왔다. 주변국들과의 관계는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의 행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우크라이나는 2004년 오렌지 혁명 등 러시아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으며 유럽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계속 받고 있는 정치, 경제, 군사적 압박과 우크라이나 동부에 존재하는 친러 세력은 유럽으로 나가려는 우크라이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이런 상황을 경계하며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이처럼 여전히 동과 서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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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리우네주〉, 《위키백과》
- 〈리우네주〉, 《나무위키》
- 〈리우네〉, 《나무위키》
-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우크라이나인 - 동과 서의 갈림길에 선 민족〉,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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