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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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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회(敎會, church)는 넓은 의미로 사용될 때는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 또는 집회소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로 결성된 가시적 단체를 말하며,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성령으로 맺어진 비가시적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한다.[1]

개요[편집]

금란교회 예배

한국에서 '교회'라고 하면 거의 개신교의 예배 장소로 통용된다. 한편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고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또는 그 장소이다. '개신교도의 집회 장소'로 국한돼있지는 않다. 따라서 원래 의미대로라면 "가톨릭 또는 정교회 신자가 다니는 곳은 '교회'가 아니고 '성당'이다"라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이고, 성당은 엄연히 교회의 일종에 해당한다. '천주교회'라고 이름을 표기한 성당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세계사 서적에서 개신교가 생기기 천 년도 더 전인 로마 시대의 교회를 성당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다만 실질적으로 이런 용법이 보편적이다 보니 가톨릭 신자나 사제도 '교회'를 개신교 예배 장소라는 뜻으로도 쓴다.[2]

어원[편집]

신약성경에서 교회 뜻한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는 보편적인 모든 믿는자 의미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에도 사용했었다. 또한 이 말은 총회나 종교적인 회중을(an assembly, a (religious) congregation)의미한다.[3]

역사[편집]

초기교회[편집]

유대인은 시나고그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전통이었으나, 기독교의 시작과 함께 아나톨리아 곳곳에 교회가 생겼다.

초기 교회들은 지금의 교회와 많이 달라서, 모든 신자들이 재산을 자발적으로 교회에 바쳐 재산을 평등히 나눠 가졌다. 신약의 사도행전을 보면 악의적인 이유로(재산을 절반만 바치고 교회의 보조금을 타먹으면서 명성도 얻으려는 목적으로) 상당수 재산을 교회에 바치지 않고 슬쩍 숨겨놓았다가 하느님의 징벌을 받아 죽은 부부(하나니아스, 사피라)가 나온다. 물론 숨겨놓았다고 벌을 받은 게 아니라 진짜 이유는 재산을 숨겨놓고 다 바쳤다고 야훼 앞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즉 초기의 교회는 근현대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사회주의적 공동체였다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는 역사로 증명된 바 강력한 무엇이 사람을 휘어잡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예를 들자면 근대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념, 인본주의, 제도로 사회주의를 이루었다. 이에 비해 초기 교회는 신앙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이루어졌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소규모였기 때문. 그리고 다른 이유는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정말로 내일~모레면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현대의 시한부 종말론과 비슷하게, 어차피 가까운 시일 내에 종말이 오면 재산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후 중세 서유럽에서는 국가의 업무중 상당 부분을 교회가 담당하였는데 이는 기사나 귀족, 심지어 왕 중에도 교양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문맹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왕이나 귀족 휘하의 행정 조직은 봉건제 때문에 극도로 축소되고 갈갈히 찢겨져 있고,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서 자기네 살림 꾸리는 것이나 겨우 가능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봉건시대의 귀족들은 서로 영토 다툼을 벌이다가 몰락하거나 교체되는 경우가 너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행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시대에 많은 수의 지식인을 갖추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회를 관리할 수 있는 대규모 조직은 신자들이 모이는 장소인 교회뿐이었다. 그래서 호적을 비롯한 많은 행정 업무를 교회에서 담당했다.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받고, 성장하면 첫 영성체를 하고, 견진성사를 받고, 결혼식도 교회에서 하고(혼인성사), 죽으면 장례식도 교회에서 해야 하니, 호적을 관리하는데 교회만큼 좋은 데가 없었다. 또 '종교재판'도 교회에서 맡았다. 이러한 영향은 독일 등 소수의 유럽 국가에 아직도 남아 있어 교회가 '공관서'로 취급되며, 이러한 국가에서 목사는 공무원이다. 일종의 복지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그레고어 멘델 같은 대수도원장은 징세법안에 항의하면서 '교육도 교회의 신부들이 봉사하고, 병원에 수사, 수녀들 파견해서 도와주는데 왜 우리더러 세금 내라고 난리임?'이라고 하소연했다.

다만 교회는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에 '치안 유지'와 그에 따르는 '재판'은 주로 군사 귀족들의 몫이 되었다.

현대[편집]

16세기에 마르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가톨릭과 개신교는 갈라서게 된다.

개신교의 경우, 시대가 흐름에 따라 교통이 빨라지면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한다. 허나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예전 초기 교회가 그리하였듯 타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개신교 신자 자신들도 깨우치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나치게 물질주의적 복음만 가르쳐 덩치만 너무 커지는 바람에 교회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모습이 많다. 개신교의 여러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에서 지나치게 목회자를 양산하는 바람에, 곳곳에 새로 생겼다가 곧 문을 닫는 개척교회도 많으며,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목회자나, 자질이 의심되는 목회자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신학교는 커트라인이 상당히 높았으며, 신학대학원은 소위 엘리트가 아니면 졸업하기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쉬운 편은 아니다만 그 시절에 비해선 지나치게 쉽게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과는 정 반대로 한때 개신교가 대세였던 북유럽은, 점점 교인이 줄어 문을 닫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한국도 교인이 줄어들고 교회만 늘고 반대로 문닫은 경우가 있기에, 북유럽과 반대라고 우쭐거릴 처지가 아니긴 하다. 요즘 목사들 중에는 "한국도 이대로 가다 나중에 북유럽 꼴 나는거 아닌가?"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2]

동아시아의 교회[편집]

한국의 교회[편집]

한국에서는 교회라는 단어가 개신교 예배당 건물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 교회라는 말은 본래 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자체를 의미하는 추상 명사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와 죄를 용서하는 하나의 세례를 믿으며'는 교회 공동체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가톨릭은 대개 '가톨릭교회', '천주교회'가 공식 명칭인데, 이는 눈에 보이는 공간의 개념인 성당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믿음을 가진 신앙 공동체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가톨릭 내에서도 성당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교회를 사용하기도 하니, 교회를 장소적 개념으로 사용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때는 성당 외벽 등에 '천주교 ○○동 교회'식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교회는 대개 '정교회'라는 말 그 자체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정교회도 가톨릭과 같이 '성당'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편이다.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이런 식으로.

천주교(가톨릭 교회)[편집]

명동천주교회

보편적으로 가톨릭은 성당이라고만 칭한다고 생각하지만, 가톨릭 역시 교회라는 명칭을 매우 자주 쓴다. '성당'은 가톨릭 전례를 거행하는 건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면,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 혹은 가톨릭교회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쓴다는 것. 즉 "나는 성당에 다닌다"가 아닌 "나는 가톨릭을 믿는다"가 맞는 표현이다. 가톨릭교회는 교구에서 각 교회가 사목할 관할 구역을 정해 주고, 관할 구역의 신자 수가 너무 많아지면 떼어내서 새 교회를 세운다. 신자는 너무 적은데 뭐가 하나 있어야 미사를 드리겠다 싶은 곳에는 공소를 세우고 본당의 관할에 둔다. 드문 경우지만, 본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성지 성당이 내방하는 신자와 순례자가 많은 덕에 사실상의 본당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사실 성지 부속 성당 관할 신부를 따로 두는터라 공소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개신교 교회[편집]

한국의 영락교회

본래 개신교 교회의 명칭은 예배당. 지금은 예배 의식을 드리는 곳에 국한해서 쓰지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저것이 정식 명칭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를 다룬 문학작품이나 시골 등지의 나이 드신 분들이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20~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젊은 세대들이 그렇게 지칭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한국에서는 교회라고 하면 건물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은근히 강하나, 개신교에서도 원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혹은 회중)와 건물로서의 '예배당'은 별개로 보는 것이 원칙이며, 한국 신학계에서도 이 둘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신학자들이 많다. 개신교 소속의 교회도 자세히 보면 침례교회니 장로교회니 등등 교파 명 뒤에 교회를 쓰는 것이 정식이다. 그리스도교 계열 전반이 죄다 자신의 공동체나 건물을 '교회'라고 칭한다. 한편 미국, 한국과 달리 영국, 독일 등 유럽의 개신교 국가들은 대체로 국가교회 형태로 운영 및 통제해온 역사가 있어서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완전한 독립교단 및 교회들은 자유교회(free church)로 불린다.

북한의 교회[편집]

북한은 일찍이 남한보다 먼저 개신교가 전파되었고, 함경남도 덕원(원산시 일대)에는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가톨릭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들어서는 등 기독교 계통 종교의 활동이 활발했다. 하지만 남북분단의 고착과 6.25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모든 교회, 성당 건물이 파괴되거나 폐쇄되었다. 개신교 신자들의 경우 가정예배처소에서 신앙을 이어간 정도였다. 개신교 단체의 공개적인 활동은 1970년대에 재개되었고, 가톨릭 단체의 공개적인 활동은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재개되었다. 1988년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건립되었으며, 같은 해에는 장충성당이 건립되었다. 북한은 공인 기독교 단체 활동을 허용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기독교 교리상의 본질적인 활동이 아닌 체제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유명무실하게 이름과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에도 일반 신자들의 종교활동은 가정이나 지하교회 등에서 비밀리에 이어져 오고 있다. 외국과 연계된 비공인 기독교 단체 활동은 엄격히 금지되고 적발시 심한 처벌을 받는다. 공인 기독교 단체의 구성원들은 상당수가 6.25 전쟁 이전 기독교인이었던 사람들과 그 자녀, 손자들이다.

1989년 임수경, 문규현 바오로 신부의 방북과 그들의 공개적인 신앙생활은 북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톨릭 교회[편집]

장충성당

1988년 건립된 장충성당은 가톨릭 성당이다. 1934년 선교리 성당이 건축된 자리이나 1949년 김일성 정권이 폭파시킨후 방치 되었다가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급조해서 건축한 현재 북한에 존재하는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천주교의 입장에 의하여 한국인 신부의 장충성당에서의 미사 집전은 불허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로마 교황청도 북한의 장충성당을 공식적인 성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개신교 교회[편집]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북한의 개신교 단체로, 북한 유일의 공인 개신교 단체이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교파를 어디까지나 교파라고 분류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게 조선로동당 산하 통일전선부에서 관리하는 대외에 보여주기식 어용단체일 뿐 진정한 신도나 교회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속 신도들의 신앙심에 대한 논쟁은 있어도,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나 봉수교회등이 어용단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북한 전체 개신교 신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개신교 단체임을 표방한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친척이며 김일성의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이었던 강량욱 목사를 비롯하여 한국전쟁 전부터 개신교 신자로 있던 조그련의 고참 간부 다수가 장로교 출신이라 장로교 직제와 비슷하다. 약칭은 조그련이며 현(現)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강명철 목사, 서기장은 오경우 목사이다. 강명철 목사는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숙부 강량욱 목사 손자이자 강영섭 목사 아들이며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신학원에서 수학했다.

기본적으로는 가짜 신도들의 모임이며 지하교회 신도들도 보호하지 못하는 조선그리스도교 연맹이 그럼에도 존재하는 이유는 1989년 제 13회 세계청년축전을 앞두고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대외로 표방해야 했고, 현재에는 대북제재로 서방세계 지원이 전면 차단된 마당에 식량 지원 등을 목적으로 종교단체나 국제 NGO의 소통창구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산하의 목사들은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종교학과 교수들로 유물론에 기반한 무신론자인 조선로동당원들이고, 신도들은 대부분 통일전선부 간부들의 아내들이라고 한다. 북한에선 노동당 간부들인 가장의 사업에 가족들이 동원되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교회[편집]

일본 구원교회

일본 쪽 창작물에선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본다면 이를 갈 정도로 심하게 왜곡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본은 기독교 인구가 모든 종파를 다 합쳐도 전체 인구의 1%가 안 되니 당연히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고, 그 때문에 작가들이 교회에 신비주의 콘셉트를 깔거나 작가들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왜곡되기 일쑤다. 교회가 그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장소라고 인식하는 한국인과는 차이를 보인다. 물론 한국에서는 진지한 마음으로 영적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퇴마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창작물에 극한된 이야기+일본에서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절대로 일본의 교회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사실 일본도 신앙심 깊은 신자들이 다니는 평범한 교회들은 찾아보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계열 교회는 한국 못지 않게 규모가 꽤 크며 역시 한국인 유학생이나 교포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또, 롯폰기나 아오야마 같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영어 예배를 전문으로 하는 외국인 교회도 많은데 규모도 크고 예배도 자주 열린다.

한국과 무관한 순수 일본 교회들은 대체로 규모가 작고 (주택가 외딴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던가) 현지 신자들이 말 그대로 기도(만)하러 오는 경우가 정말 많다. 한국처럼 끝나고 하하호호 웃으며 다과회를 한다던가 청년회 등의 모임이 있는 게 아니라, 정말 예배 드리고 조용히 기도하고 집에 간다. 조금 규모가 큰 교회는 예배 후 활동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주로 음식을 만들어서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던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보다 더 규모가 큰 중견교회는 순수 일본 교회라기보다는 미국계열 교회가 대부분인데 이쪽은 부인회, 청년회 모임 등이 다양하게 있으며 영어스터디라던가 성경공부, 교회 밴드, 봉사활동 등 활동이 꽤 활발하다.

일본 교회의 특징이라면, 한국처럼 무작정 전도에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일례로 요코하마의 한 교회가 지역 신문에 자기네 교회 광고를 냈는데 하얀 지면에 선전문구라곤 "자살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떨렁 이 한마디였다. 심지어 이 선전문구를 보고 자살할 생각을 접고 교회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중화권의 교회[편집]

중국 본토의 교회[편집]

중국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본토민들이 다닐 수 있는 교회가 몇 있기는 하나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꼭두각시 격이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단 한국인이라면 현지 한인교회를 나가면 되며 중국 국적인 사람은 함께 참석할 수 없다.

홍콩의 교회[편집]

사회 전반적으로 민간 신앙, 불교, 도교 신자의 비중이 상당히 높긴 하나 기독교 교세도 생각보다 적지 않은 동네라 은근히 교회 찾는게 어렵지 않은 편이다.

특이점으로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성공회 교회가 꽤 많다. 그리고 빌딩 많은 도시답게 빌딩에 세들어 사는 교회가 많다. 또한 천주교 홍콩교구, 홍콩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이 정말 많아서 학교 건물에 겸사겸사 교회가 딸려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편. 전자가 홍콩섬, 구룡반도에서 많이 보이는 모습이라면 후자는 신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중화민국의 교회[편집]

중화민국은 개신교 신자였던 장제스의 영향으로 개신교 성향이 강한 듯하지만 전체 인구 중 개신교신자의 비율은 크지 않다.[2]

대형교회 (Megachurch)[편집]

대형교회

기준은 국가나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으나, 대개 출석 교인이 수천 명 단위를 넘어가는 교회를 의미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매주 출석 교인 수가 2,000명 정도만 되어도 대형교회로 취급하지만, 한국에서는 최소한 5,000여 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당연히 교회 건물은 크다. 교회 건물이나 부지로만 대형교회라고 칭하지는 않으나, 보통 교인이 많으면 십일조를 봉헌하는 교인들도 많기에 교회 건물도 따라서 커진다.

대형교회는 해당 교회 소재지로부터 반경 100m 이내에 다른 교회가 하나도 없는데, 이는 대형교회가 하나 있으면 인접한 중소교회의 신자들을 죄다 흡수해서 중소교회들이 망하기 때문이다. 신자들도 대개 독립된 건물에 크고 멋지고 편리하고 깔끔한 교회를 좋아하지, 작고 다 쓰러져가는 상가건물(특히 지하)에 세들어 있는 좁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가 클수록 시설은 넘사벽으로 좋아진다. 진짜 커다란 대형교회의 경우 성가대는 물론 성가악단까지 보유한 경우가 있어서, 예배시간에 관악연주까지 한다.

제일 유명한 대형교회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수영로교회, 온누리교회 등이 있으나, 부지 면적으로 치면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도~지방 등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교회가 더 많다.

문제점[편집]

교회에 다니는 현실적인 이유[편집]

특히 산업화, 도시화 시대에 존재하는 도시 지역 교회들은, 가족과 마을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 개인으로 존재하는 도시민들에게 대가족 내지 마을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이를테면, 가족도 아닌데 매주 최소 1번(주일예배) 이상 만나 간단한 인사, 안부 나눔, 공동 식사를 할 수 있다.

나아가 교회에 열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매일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속회/구역회 모임, 각종 성경공부, 교회 주최 부흥회/세미나, 교회 수련회, 야유회, 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활동 등등 경제활동을 제외한 순수한 인간관계를 추구한다는 입장에서도 이 정도로 매일 의미부여를 하면서 인간관계가 긴밀할 수 있는 조직이 없을 정도이다.(방송반은 피하는 게 좋다.) 매번의 모임은 거의 공동식사와 다과나눔으로 끝난다.

이처럼 도시 교회는 외로운 개개인에게 사실상 유사 대가족, 유사 마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례식, 결혼식, 돌잔치 등 개인 애경사에서 본인 하기에 따라 가족 이상의 상호부조를 하게 되며, 상호부조의 기간이 길어지고 누적 액수가 커질수록 교회를 떠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대형교회-중소교회 간 양극화[편집]

대형교회 하나 때문에 주변의 중소교회 수십 곳은 가난해진다. 근처에 대형마트 하나가 들어서면 주변 재래시장 자영업자 여럿이 몰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개신교회는 개인이 마음대로 설립할 수 있다 보니, 교회 바로 옆에 또 교회가 들어서는 경우, 한 건물 안에 2개 이상의 교회가 세들어 있는 경우도 많다. 작고 빈약한 교회의 바로 옆에 규모도 크고 프로그램도 알찬 교회가 들어서면, 도무지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또한 신학대는 입학하기가 다른 학교/학과보다 수월하고, 배출되는 목사의 수가 워낙 많아 전반적인 교회의 질적 저하가 일어나서, 문제가 더 심화되는 측면이 있다. 집 근처에 있는 소형교회, 개척교회, 중소교회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목사의 권력 집중[편집]

설교를 하는 담임목사와 성도들 간의 개인적인 교제가 없고 부목사 등을 통해 갈음하기 때문에, 교회 구조가 관료제 성격이 강하며, 담임목사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아져 담임목사 개인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 그리고 이로 인한 부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 조성된다. 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감시 기능이 약화되는 것이다.

목사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편집]

목사의 권력은 어떻게 나올까? 곧 교인 수와 교회 자산현황이다. 즉, 교인 수가 많다는 것과 그동안 제대로 종교인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아 세금 관리의 사각지대임을 이용해, 부당 자금거래에 손대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정치권력에 손을 대서 정치인을 압박한다. 당신이 내 뜻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 교인이 전부 상대후보를 찍을 것이다라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유력 정치인들, 그 중 선출직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많은 표가 뭉쳐있는 그 지역의 대형교회와 척을 지기 어렵다. 당장 교인들에게 악법이라 불리는 차별금지법 입법이 상정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애초부터 대형교회 목사들과 신뢰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 모두 해당 문제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부동산 이슈와 맞먹는 후폭풍을 맞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논의를 꺼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적극적인 개신교 우선정책을 폈으며, 미국에서 들여온 자유민주주의 가치, 기독교 가치로 시작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목사, 장로, 권사 등 교회지도자들의 자질 문제[편집]

역설적으로 과거에는 교회가 신문물의 허브 역할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거창한 한국교회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 청소년부, 청년회와 교회에서 이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어 온 '문학의 밤'은 남녀공학이 보편화되기 전,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청소년, 청년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문화적 자유를 누리고 건전한 이성교제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입시 위주 교육이 심해지고 교인들이 청소년기 자녀들을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교회에 잘 보내지 않게 되면서 문학의 밤 행사는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0년대 들어 저출산 세대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데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초등학생 시절까지 부모의 손에 의해 교회에 끌려다니다시피했던 자녀들이 청소년기가 되어 머리가 굵어지고 자기 주장이 생기면서 문학의 밤 행사뿐만 아니라 중고등부 자체가 소수의 청소년들만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교회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군웅할거[편집]

교회마다 특성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목사 취향에 따라 교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교회이며 교회간 연동이 되지 않아서, 교회 하나가 그냥 하나의 세력이 된 상태다. 이 때문에 다른 교회를 다니면 반쯤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교회간 폐쇄성이 극심하며, 그렇기 때문에 전술한 두 문제점인 대형교회-중소교회 간 양극화 및 목사의 권력 집중이라는 문제점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권력다툼[편집]

교회에는 목사와 장로가 있다. 문제는, 장로들도 교회 내부의 권력을 탐한다는 점이다. (장로가 되기 위해서는 거액의 직분 헌금을 내야 한다. 교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3000만원 정도이다. 또한 피아노 같은 물건으로 대체 가능하다 ) 이 때문에 목사와 장로 간에는 항상 권력다툼이 있으며, 이를 평신도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치열하다는 아이러니한 일면이 존재한다. 이게 정말 심할 경우 교회가 쪼개지는데, 목사파와 장로파가 나뉘어 교회가 갈라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신자 개개인의 중요성 감소[편집]

개신교계에서 (특히 영세한 교회에서) 주로 강조하는 것으로, 개별 신자가 교회에서 갖는 존재감이나 역할이 약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신앙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 부분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수 핵심 구성원에게 역할이나 권력의 집중화가 강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목사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때가 있다. 예전에는 교회 목사들이 성도 개개인의 사정까지 다 파고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성향이 줄어들어 신앙이 목적인 성도들은 스스로 성실하게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외적/양적 성장 치중[편집]

교회의 외적/양적 성장을 신앙적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분위기가 팽배해져서,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의 일차 목표가 되는 본말전도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신사도 운동처럼 신학적, 교리적 변질이 생겨날 위험이 높아진다.

세습[편집]

담임목사직의 세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인 박득훈 목사는 2017년의 명성교회 세습 건과 관련하여 "세습이 발생하는 이유는, 교회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라는 논지로 인터뷰를 하였다.

직세습이 어려울 경우 비슷한 규모의 목사들끼리 뭉쳐서 교차세습을 하기도 한다. 서로 상대방 교회에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 목사로 넣는 방식이다. 마커스워십의 예배장소로 유명했던 해오름교회도 세습문제로 시끄러웠다.

오미크론 변이를 국내에 확산시켜 물의를 빚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의 숭의교회는, 무려 3대 세습까지도 했다.[2]

지하교회[편집]

기독교인들이 국가나 타종교 세력의 탄압을 피하려고 만든 교회들을 말한다. '지하교회'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건축학적인 의미의 지하에 자리한 교회가 아닌 경우도 많으며, 이럴 경우 사회문화적인 의미에서의 지하를 뜻하게 된다.

로마 제국 시대 기독교인들이 지하무덤인 카타콤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했다.[2]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교회〉, 《네이버지식백과》
  2. 2.0 2.1 2.2 2.3 2.4 교회〉, 《나무위키》
  3. 교회〉,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 교회〉, 《네이버지식백과》
  • 교회〉, 《위키백과》
  • 교회〉, 《나무위키》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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