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하회마을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하회민속마을, 하회마을, 하회민속촌 등으로도 불린다. 하회(河回)라는 이름 그대로 강물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고 있다. 도산서원과 함께 안동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보물 2점, 국가민속문화재 9점 등을 포함하여 11점이고 이밖에 국보 2점이 있다.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제34차 회의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다.
본래 풍산 류씨(柳氏) 가족이 살았던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었던 류성룡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아직까지 풍산 류씨 성을 가진 주민이 많다. 배우 류시원과 사랑하기 때문에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유재하도 이 곳 출신. 당연히 이 두 사람도 풍산 류씨이다. 또한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도 JTBC 썰전 에서 자신의 큰집이 이곳이라 밝힌 적이 있다.
현재 하회마을이 있는 땅은 과거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 사람들이 먼저 정착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하는데 차츰 류씨가 늘어나면서 두 가문은 세월이 흐르며 타 지역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하회탈의 제작자는 허도령이라고도 하고 허정승의 묘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어 지금도 허씨들이 묘소의 관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수지리상 길지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마을 북쪽에 산이 접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북쪽에도 평지 가운데 야트막한 산이 있긴 있으나 남쪽은 아예 강 건너자마자 산지가 펼쳐진다. 주산인 화산도 북쪽보단 동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북서쪽 방향으로 숲을 만드는 등 비보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으로, 본관이 풍산 류柳씨인 사람은 자신의 신상을 증명하면 입장료를 내지 않고 무료로 출입할 수가 있다.
목차
개요[편집]
안동하회마을은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인 겸암 류운룡 선생, 서애 류성룡 선생의 출신 고장으로 유명한 이 곳은 대대로 풍산류씨가 살아 오는 동성부락이다. 낙동강물이 흐르다가 이 지역에서 마을을 감싸 돌면서 흐른다고 하여 '하회'라는 지명이 붙었다. 별신굿탈놀이와 하회탈이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물로 지정된 입암고택(사랑채 : 고려양식, 안채 : 이조양식, 불천위 사당 : 2채)과 충효당(경내에는 영모각이 있음.)을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고택과 정사들, 서낭당, 정려각, 노거수 등이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 이후의 전통적인 가옥군, 영남의 명기(名基)라는 풍수적 경관, 오랜 역사적 배경, 별신굿과 같은 민간전승 등이 잘 보존된 민속마을이다. 전국유수의 풍산 류씨 동성촌락이며, 그 터전은 낙동강의 넓은 강류가 마을 전체를 동·남·서 세방향으로 감싸도는 명기이다. 지형은 풍수학적으로 태극형(太極形)·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다리미형이라고 한다. 이곳은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의 유력한 씨족이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635년(인조 13)의 기록을 보면 벌써 류씨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류씨의 입향조는 8세 전서공 류종혜(典書公 柳從惠)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과 같은 동족기반은 중흥조 류운룡(柳雲龍)·류성룡(柳成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류운룡은 시조에서 14대의 종손이며 류성룡은 지손인데 이 두 계손들을 겸암파(謙菴派)·서애파(西厓派)로 부르기도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숲이 절경을 이루며 조선전기 이래의 건축물과 하회별신굿탈놀이, 선유줄불놀이 등의 민속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 안동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민속마을이다.
이 마을을 감싸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의 상류이며 그 둘레에는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그 서북쪽에는 울창한 노송림이 들어서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강류의 마을 쪽이 백사장인데 반해 건너편은 층암절별으로 여러 정대(亭臺)가 자리잡고 있어 승경(勝景)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강의 최대폭은 대략 300m이고 최대 수심은 5m에 이른다. 강 건너 인근과의 교통수단은 나룻배이며, 과거에는 음력 7월 보름에 부용대 밑에서 시회가 열렸으며 유명한 줄불놀이가 벌어졌었다. 이 강상유화(江上流花)의 놀이는 화회별신굿과 함께 이 고장의 오랜 민간전승놀이이다. 별신굿에 쓰이던 가면(하회탈과 병산탈)들은 국보(1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어 하회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풍산으로부터의 진입도로와 연결된 큰 길이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데 이 마을길 북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한다. 현재 120가구에 290여명이 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곳은 안동양진당(306호)과 충효당(414호)이 있고, 중요민속자료로는 하회북촌택(84호), 하회원지정사(85호), 하회빈연정사(86호), 하회류씨주가옥(87호), 하회겸암정사(89호), 하회남촌택(90호), 하회주일재(91호) 등이 있다. 이들 지정 가옥들은 모두 류씨집안의 소유이며, 그 중에서도 규모나 유래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양진당, 충효당, 북촌택, 남촌택, 옥연정사, 겸암정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전통가옥들 외에도 소규모의 토담집과 붕담집은 기본적 건축재료인 진흙만으로 벽체를 쌓아올리는 원초적 민가축조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평면구조도 一자집, □자집, 튼□자집 등 다양한 민가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과거 신분제사회에서의 반상(班常)의 생활을 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마을역사[편집]
- 고려 중엽 허도령이 하회탈을 제작
- 고려 중엽 김해 허씨 웃골(거먹실) 정착
- 고려 중엽 광주 안씨 향교골에 정착
- 고려 말기 풍산류씨 공조전서 류종혜 선생이 입향
- 1572년 서애선생이 풍악서당을 옮겨 병산이라 함
- 1587년 서애선생 45세 옥연정사 창건
- 1592년 임진왜란1601년서애선생 「징비록」집필
- 1613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병산서원 중창
- 1647년「징비록」16권 7책으로 간행
- 1928년 조선총독부 하회별신굿 중지 조치
- 1930년 가구수(유씨158호, 각성132호, 주택300여채)
- 1934년 낙동강 대홍수1963년총가구 266호, 인구1,507명
- 1964년 국보제121호 하회탈 및 병산탈 지정
- 1969년「징비록」국보 132 호 (지정일 : 1969-11-07)
- 1979년 11월「하회마을조사보고서」간행
- 1982년 제방축조
- 1983년 12월「하회마을 민속 조사보고서」간행
- 1984년 01월 국가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하회마을 지정(1.10)
- 1992년 11월「사단법인 하회마을보존회」인가
- 1999년 04월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 방문(4.21)
- 2005년 11월 13일 부시(父) 대통령 방문
- 2009년 엘리자베스2세 방문 10주년 기념 행사
- 2009년 08월 미국 전 대통령 조시 w 부시 방문
- 2010년 07월 31일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 - 제3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브라질)
마을 특징[편집]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기와집)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주민 및 가옥[편집]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한말까지 35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다. 마을 내에는 총 127가옥이 있으며 43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127개 가옥 중 12개 가옥이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적 지형(地形)[편집]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세거(世居)한 성씨(姓氏)들[편집]
하회마을의 풍산류씨의 세거 이전에는 허씨(許氏)와 안씨(安氏)가 먼저 세거하였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래되고 있으며, 하회탈의 제작자가「허도령」이었다는 구전(口傳) 및 강 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許政丞)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다. 숭정(崇禎)15년(1642)의 동원록(洞員錄)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허씨와 안씨(安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입향(入鄕)에 관한 전설(傳說)[편집]
풍산류씨(豊山柳氏)는 본래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本鄕)이 풍산(豊山)이지만, 제7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공이 화산에 여러 번(가뭄, 홍수, 평상시) 올라가서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관찰한 후에 이곳으로 터를 결정했다고 한다.
입향에 관하여'나눔'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집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기둥이 3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던 중 꿈에 신령이 현몽하기를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큰 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및 짚신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활인(活人)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 후 풍산류씨들은 계속된 후손들의 중앙관계에의 진출로 점점 성장하였으며,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의 조선중기에 배출한 명신들로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하회마을의 전래 놀이[편집]
-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을 위한 놀이와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병존하였다.
- 하회별신굿탈놀이 ------ 굿을 겸한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 하회선유줄불놀이 ------ 시회(詩會)를 겸한 선유(船遊) 놀이
무형문화재[편집]
안동 하회마을은 하회탈춤으로도 유명하다. 선유 불꽃놀이는 선비들의 놀이이고, 별신굿 탈놀이는 서민들의 놀이이다. === 하회별신굿탈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약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서낭신에게 별신굿을 해 왔는데, 굿과 아울러 서낭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행하여 지던 탈놀이였다. 우리 나라의 탈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해 온갖 쓴 소리를 내 뱉는다. 이는 서민의 유일한 언로였다. 1928년 이후로 단절되다가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화회탈과 함께 발굴하여 재생을 하였고, 서울대학교 이두현 교수에 의해 대사관을 통해 홍보되었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여덟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유 줄불놀이[편집]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는 매년 음력 7월 16일, 안동의 선비들이 부용대 단애 밑을 흐르는 강 위에서 선유시회를 겸한 불꽃놀이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선유 줄불놀이다.
유형문화재[편집]
국보[편집]
- 징비록
징비록은 국보132호로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필사본 징비록은 경상도 관찰사 조수익이 서애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 25년에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으며, 숙종 21년에는 교토 야마토야에서도 간행되었고, 1712년 조정에서는 징비록의 일본 유출을 금하였다.
- 하회탈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탈 중 가장 오래된 탈이다. 지금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9개의 탈만 전해지며, 이 중 3개의 탈은 분실되었다.
고택[편집]
- 입암고택 또는 양진당
보물 제306호인 입암고택은 입암(立巖)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 또는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른다. 현재 풍산 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 제306호이다. 사랑채는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가지며, 안채는 조선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 충효당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서애의 문하생과 삼림들이 장손 류원지를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류의하에 의해 확장된 조선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저서와 유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식수가 있다.
- 작천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87호로 작천고택 또는 류시주 가옥이라고 부른다. 원래 작천 류도관의 호를 따서 작천고택이라고 불렀는데, 현재의 집주인인 류시주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도 한다.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다랐으며, 1934년 대홍수로 1채가 유실되고 현재는 일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이어지는 앞마당에는 작은 토담을 쌓아 사랑방 손님과 안채의 부녀자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것이 재미있는 특징이다.
- 하동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77호로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고 하여 하동고택이라고 불린다.
- 귀촌고택
풍산 류씨 귀촌파(龜村派)의 종가집이며, 사당에는 귀촌 류경심 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의 어머니 영양남씨와 며느리 문소김씨는 모두 열녀로 정려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 북촌댁
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로 북촌댁은 1797년 정조 21년에 지중추부사 류사춘에 의해 처음 건물이 세워졌고, 1862년 철종 13년에 경상도도사 류도성에 의해 증축되어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을 북쪽의 99칸 집으로 불리었으며, 사랑채와 안채, 별당, 사당,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큰 사랑채인 북촌유거와 중간 사랑인 화경당, 작은 사랑인 수신와를 비롯하여 안채, 등이 있고, 류이좌의 유품이 몇 점 남아 있다.
2007년 2월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2008년 한류스타 배용준이 이곳 화경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 남촌댁
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로 정종 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내부에 있던 진귀한 도서와 골동품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있다.
- 주일재
주일재는 국가민속문화재 제91호로 사랑채, 안채, 사당, 광채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사랑채가 이고, 왼편으로 내외담이라고 하는 작은 담장이 있다. 안채로 통하는 문 앞에 쌓아서 안채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
- 지산서루
지산서루(志山書樓)는 대문없이 널찍한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가 있는 고택이다. 사랑채는 정사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으며, 우승지와 대사간을 지낸 류지영이 독서에 매진하기 위해 지은 도사관이다. 그의 호를 따서 사랑채 이름을 지산서루로 하였다.
- 하정재
원지정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택으로 사랑채의 마루에서 보면 부용대와 시내가 한눈에 보이며 동쪽으로는 화산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전형적인 선비의 음풍농월을 즐길 수 있는 고택이다.
- 담연재
담연재는 신축된 전통양식의 저택이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 때 이곳 앞마당에서 하회탈춤 공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탤런트 류시원의 부친 소유의 저택이다.
서원[편집]
- 병산서원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사적 제260호로 1572년 서애 류성룡이 31세 때에 건립하여 후진을 양성하던 서원이다. 서애의 사후 7년 후인 1614년 서애를 존경하던 사림들이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류성룡을 배향하였고, 서애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 사후에 그도 배향하였다. 1863년 병산으로 사액을 받았으며, 복례문, 만대루, 동재, 서재, 입교당, 장판각, 존덕사,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다.
- 화천서원
화천서원은 부용대 동쪽 기슭에 세워져 있으며, 겸암 류운룡을 배향한 곳이다. 정조 10년 경덕사(景德祠)를 세워 이곳에 배향하였고, 고종 5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강당과 주소만 남고, 철거되었다가 1996년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당 경덕사를 비롯해, 강당인 숭교당, 동재와 서재, 문루 지산루, 원문 유도문, 주소 전사청 등이 있다.
정사[편집]
- 원지정사
원지정사(遠志精舍)는 조선 중기의 정자 건축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85호로 원지산(遠志山)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여 원지정사로 이름지었다.
- 빈연정사
빈연정사(賓淵精舍)는 서애 선생의 친형으로 원주목사를 지낸 겸암 류운룡 (柳雲龍)이 서재로 사용하던 집이다. 부용대의 절벽 아래 깊은 곳은 빈연(賓淵)이라고 부렀는데, 이것을 따서 이름지었다. 1583년에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국가민속문화재 제86호이다.
- 옥연정사
옥연정사(玉淵精舍)는 국가민속문화재 제88호로 서애 류성룡이 재정적인 문제로 세우지 못하다가, 탄홍 스님이 자청하여 10년동안 시주를 거두어 선조9년 1576년 짓기 시작하여, 선조 19년 1586년에 완성하였다. 이때 서애의 나이 45세였고, 집을 완공한 뒤 4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1605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모두 잃고, 이곳에 은거하여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내부에는 서당으로 사용하던 세심재(洗心齊)와 서애가 거주하며, 징비록을 지었던 원락재(遠樂齋)가 있다. 하회마을에서 나룻배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 겸암정사
겸암정사는 국가민속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567년 명종 22년 겸암 류운룡이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조선 중기 양식의 정자채이다. 정사는 2층 누각 형식으로 되어 있고, 겸암정이라는 현판은 스승인 이황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 상봉정
상봉정(翔鳳亭)은 마을 강건너 서쪽 언덕에 있으며, 서애는 봉이 나는 형국이라 하여 상봉대(翔鳳臺)로 이름짓고 정사를 지으려 하였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류운룡의 증손인 류세철이 현재의 정사를 세웠다.
민간신앙과 자연[편집]
하회마을에는 서낭당을 비롯해, 서낭당을 오르는 길 오른편에 국신당으로 부리는 오두막이 있다. 삼산당의 느티나무와 함께 민간 무속신앙의 존재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삼신당 느티나무[편집]
마을 중앙에는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측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풍산 류씨 입향 시조인 전서공이 심었다고 전해지며, 이 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재앙을 입는다는 토속신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풍수지리상 마을의 혈에 해당하는 곳으로 하당으로 불리며, 정월과 대보름에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화수당 노송[편집]
연좌루에서 서쪽 건너편으로 내려보면 수백년 이상된 노송이 눈에 두드러진다. 옛날에는 이곳에 화수당이 있어 3.1 독립운동 때에 이 소나무 앞에 사람들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만송정[편집]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용대[편집]
부용대(芙蓉臺)는 하회마을을 마주보고 있는 높이 80m의 절벽으로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이다. 하회마을에서 부용대로 가려면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한다. 2019년 5월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안동 방문 20주년을 기념해 앤드루 왕자가 안동을 찾는 것을 기념해 섶다리가 완공됐다. 하지만 2020년 7월 집중호우로 유실되었다.
정상에 올라가면 하회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은 선유줄불놀이의 장소로 유명하다. 이곳 정상에서 강건너 만송정까지 200m 정도되는 동앗줄 다섯 가락을 내걸고, 심지에 불을 붙인 길이 45cm 정도의 숯봉지를 1m 간격으로 달아 부용대 쪽에서 불붙은 숯봉지를 끌어 올리는 놀이가 선유줄불놀이이다.
부용대 중턱에 겸암정사와 옥연정사가 위치해있다.
박물관[편집]
탈박물관[편집]
하회마을에서 수집한 각종 전통 하회탈과 탈춤에 필요한 온 갓 것들을 수집해 놓은 곳이다. 전시실은 제 1전시실 한국관과 제2전시실 세계관, 제 3전시실 아프리카관으로 나뉘며, 한국관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된 13종류와 지방문화재 2종류 나례에 사용되는 탈 등 200여점을 전시한다. 세계관에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의 탈들을 소개한다. 아프리카관에서는 콩고와 자이르를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의 탈과 악기, 생활용품 등을 전시한다.
- 엘리자베스 Ⅱ 영국여왕 방문기념관
관광팁[편집]
유명한 여행지라 어느정도 정보가 알려진 편이지만, 여행자들이 잘 모르는 정보 몇 가지가 있다.
안동역과 안동터미널을 경유하는 210번, 급행2번으로 하회마을 장터까지 갈 수 있다. 주민이 아닌 이상 관광객들은 하회마을 장터에서 내려서 매표소로 표를 끊고 마을로 가는 무료셔틀을 이용해야 한다. 하회마을에서 나갈 때는 210번이나 급행2번을 타도 된다.
날씨 특성 상, 봄과 가을을 추천한다. 민속마을 특성상 여름에 에어컨이 돌아가는 장소가 드물고 겨울에도 산간지역 + 강변이라 바람이 춥다. 봄에는 벚꽃이 늦게 피며, 천변길을 따라 핀 벚꽃이 무척 아름다운 장소이기도 하다. 개화기는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기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내부로 들어가는 도로가 하나다. 이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일단 하회마을 장터가 나온다.
식당과 기념품점이 모여있는 하회마을 장터는 하회마을과 작은 고개를 하나 두고 분리되어 있다. 차를 가져왔다면 하회마을 장터 옆의 공영주차장에 주차한 후 마을까지 들어가는 무료셔틀을 타면 된다. 하회마을 내부에도 주차장이 존재하는데 명절이나 공휴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무료로 개방한다.
강에는 나룻터와 나룻배가 있는데 강을 건너는 나룻배는 주말에만 운영한다. 배에 적힌 번호로 연락하면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2020년 6월 현재는 섶다리를 놓아서 나룻배는 운영하지 않는다. 강을 건너가면 화천서원이 나온다. 화천서원을 따라서 절벽 정상으로 금방 올라갈 수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부용대이다. 부용대에서는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주말에 왔다면 꼭 가봐야 할 코스다. 또한 2019년 엘리자베스 2세 방문 20주년 기념으로 앤드루 왕자가 방문했을 때 설치한 섶다리가 있는데 이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안동시에서는 본래 낙동강 수위의 상승 등으로 인한 안전 문제로 인해 2019년 6월 14일에 철거할 예정이었으나, 관광객들의 인기가 매우 높아서 일단 같은해 8월 14일까지 연장해서 보존하기로 했다. 아예 섶다리를 영구 보존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10월경 두어번의 태풍으로 수위가 높아졌을때 다리가 떠내려가 버렸다. 2020년 6월경 다시 섶다리를 놓았는데 7월에 집중호우로 다시 떠내려가 버렸다.
결론적으로 현재 하회마을에서 낙동강을 건너 부용대를 가는 방법은 없다. 육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차량으론 10분 내외 거리지만 도보로는 1시간 30분 내외 거리에 부용대로 가는 교통편도 없어 포기하는 것이 편하다. 부용대와 하회마을을 전부 관광하고 싶다면 아예 하회마을 권역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회마을 내부에서 인근 병산서원으로 가는 선비길이라는 산책로가 존재한다. 두 관광지가 대중교통으로 오가기엔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서 상당히 불편하기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없다면 그냥 둘 사이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길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도 무척이나 수려하다. 단 카카오 지도나 네이버 지도에서도 뚜렷하게 표시가 안 될 정도고[6] 관광안내사나 주민들만이 알고 있는 코스이니 관심이 있다면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가보도록 하자. 지도에는 산을 넘어가는 등산로만 표시되지만 산허리 아래를 걸어가는 산책로도 존재한다. 다만 거의 도보로 1시간 정도의 코스이니 체력 안배와 여행 시간 계획을 잘 짜는 게 좋으며, 인적이 드문 곳이라 혼자 걷기는 좋지 않을 수 있고 흙길이라 비가 온 직후는 피하는 것이 좋다.
주변명소[편집]
봉정사[편집]
봉정사(鳳停寺)는 672년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천등산에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6차례에 걸쳐 중수를 하였으며, 극락전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며 국보 제15호에 지정되어 있고, 대웅전은 보물 제 55호, 화엄강당은 보물 448호, 고금당은 보물 제 449호에 지정되어 있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도 이곳을 찾은 유명 사찰이며,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다.
관광안내[편집]
- 관련 행사개요
-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
- 1월 ~ 2월 : 매주 토, 일 오후2시~3시 (하회마을 상설공연장)
- 3월 ~ 12월 : 매주 화, 수, 목, 금, 토, 일 오후2시~3시 (하회마을 상설공연장)
- 7월 ~ 9월 : 매주 토, 일요일 19시~20시 (안동댐 개목나루 여름특별공연)
-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 관람료 : 무료
- 장소 : 하회마을내 탈춤 전수관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매년 9월 마지막주 금요일부터 10일간)
- 이용시간
-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
- 이용요금
- 관람료
- - 일반 개인 : 5,000원, 청소년 : 2,500원, 어린이 : 1,500원
- - 일반 단체 : 4,000원, 청소년 : 2,000원, 어린이 : 1,200원
- - 안동시민 개인 : 1,000원, 청소년 : 500원, 어린이 : 400원
- - 안동시민 단체 : 900원, 청소년 : 400원, 어린이 : 300원
- 단체는 30인 이상
- (1) 만 13세부터 18세 청소년
- (2) 하사관 이하 정복 착용 병사
- 65세 이상은 무료
- 장애 1급부터 3급까지는 본인 및 보호자 1인 무료
- 장애 4급부터는 본인만 무료
- 체험안내
- - 민속체험(멧돌, 절구, 다듬이방망이, 짚공예), 교육체험(접빈다례, 예절교육), 문화체험(가훈쓰기)
- - 소요시간 : 1시간 내외
- 주차료 : 무료
- 고가옥전통체험
- 하회마을 보존회 054-853-0109
교통안내[편집]
안동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승강장에서 246번 버스(하루 8회)로 45분 소요
⊙ 버스시간
- 시내 → 하회마을
- 06:20, 08:40, 10:30, 11:25, 14:05, 14:40, 16:00, 18:10
- 하회마을 → 시내
07:15, 09:50, 11:50, 12:50, 15:00, 16:10, 17:00, 19:00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안동하회마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hahoe.or.kr/
- 〈안동 하회마을〉, 《위키백과》
- 〈하회마을〉, 《나무위키》
- 손민호 기자, 〈세계유산 하회마을, 옛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중앙일보》, 2020-06-26
- 〈안동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 〈하회마을〉, 《안동관광》
- 〈한국의 미소가 느껴지는 안동 하회마을〉, 《문화유산채널》
- 김용준 기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 2019년 역대 최대 100만 관람객 방문〉, 《경북뉴스》, 2020-01-02
- 〈안동 하회마을 (安東 河回마을)〉, 《국가문화유산포털》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