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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크라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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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크라이슬러(Walter Chrysler)
크라이슬러(Chrysler)
스텔란티스(Stellantis)

월터 크라이슬러(Walter Chrysler)는 2021년 1월 출시된 스텔란티스(Stellantis) 산하의 피아트 크라이슬러(Fiat Chrysler)에 소속되어 있는 미국 자동차 브랜드인 크라이슬러(Chrysler)의 창시자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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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월터 크라이슬러 혹은 월터 퍼시 크라이슬러(Walter Percy Chrysler)는 1875년 4월 2일 미국 캔자스주 와미고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월터 크라이슬러는 18세가 되면서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Union Pacific Railroad)의 견습생으로 취직되면서 기차를 보고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하였으며 견습생 시절에 자기가 애용하는 공작 도구를 거뜬히 만들어 기계에 대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는 30세가 되던 해에는 시카고 철도회사(Chicago Great Western Railroad)에서 주당 200달러를 받으면서 감독관으로 근무했다. 33세에 그는 재산이 700달러뿐이던 그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 5,000달러짜리 로코모빌 투어러 자동차를 구입해 타고 다녔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 시카고 모터쇼 전시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모터쇼를 구경한 그는 자동차가 어떤 원리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지에 의문을 갖게 되어 자신의 차를 몽땅 분해해 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관심은 기관차에서 자동차로 옮겨졌으며 회사도 자동차와 관계있는 곳으로 옮겼다. 1912년에는 아메리카 기관차 회사(American Locomotive Company)에서 자동차 제작 업무를 담당하다가 뷰익 자동차회사의 공장장으로 초빙된다. 그는 1916년 뷰익 사장이 되었고 1919년에는 GM의 부사장직도 겸하면서 뷰익을 GM의 가장 유력한 디비전으로 만들어 놓는다. GM의 부사장이 되기까지 승승장구하던 크라이슬러는 1919년 GM 회장인 윌리엄 듀런트와 마찰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엄청난 주식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퇴임 6개월 후 그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윌리스 오버랜드(Willys-Overland Co.)와 맥스웰(Maxwell Motor Co.)을 500만 달러에 인수해 회생을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대망의 1924년 맥스웰의 경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으며 새로운 분위기로 새 출발을 하고자 사명을 크라이슬러(Chrysler Corporation)로 변경한 것이 오늘날의 크라이슬러로 이어진 것이다. 1925년 6월 회사 설립 신고를 하고 그가 설계한 고압축 엔진을 장착한 크라이슬러 6(Chrysler Six)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회사의 기반을 다져 나가게 된다. 1928년에는 닷지(Dodge)社를 인수해 크라이슬러의 디비전으로 포함시켰고 포드, 쉐보레에 경쟁할 디비전으로 플리머스(Plymouth)를 만들었다. 1926년에는 크라이슬러 역사에 주축이 될 임페리얼(Imperial) 시리즈의 발판을 마련해 놓았으며 임페리얼 시리즈는 초기 3가지 모델로 출시되어 1927년 한 해에만 4만 8천여 대를 판매하였다. 월터 크라이슬러는 1934년 발표한 에어플로우(Airflow)가 실패하면서 서서히 경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유작으로는 1937년 출판된 한 미국 근로자의 삶(Life of an American Workman)이라는 자서전과 뉴욕 중심에 우뚝 솟은 높이 319.4m의 77층짜리 크라이슬러 빌딩(Chrysler Building)이다. 1940년 8월 18일 65세의 일기로 미국 뉴욕주 그레이트넥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1967년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2][3][4]

주요 활동[편집]

크라이슬러 식스
크라이슬러 빌딩

크라이슬러 식스[편집]

월터 크라이슬러는 여러 자동차회사를 거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차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윌리스 오버랜드에서 알게 된 프레드 제더(Fred Zeder), 오웬 스켈턴(Owen Skelton), 칼 브리어(Carl Breer)에게 맥스웰 차머스의 새 모델 개발을 맡겼다. 크라이슬러가 삼총사라고 부른 세 사람이 설계한 새 모델은 1923년 9월 1일에 시제차 모델 B-70이 만들어졌고 1924년 뉴욕 오토쇼에 맞춰 양산차가 완성됐다. 그러나 실제 판매할 수 있도록 양산된 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토쇼에 전시할 수 없게 되자 크라이슬러는 모터쇼 본부인 호텔 로비를 빌려 자신의 차를 전시했다. 전시된 차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인기 모델이던 뷰익 식스(Six)와 값이 비슷했지만 무게는 300kg 이상 가벼웠다. 자동차 엔진 성능이 비슷하던 시기인 만큼 가벼운 차의 성능이 더 뛰어난 것은 당연했다. 직렬 6기통 3294cc 엔진은 압축비가 4.7:1로 뷰익의 3.5:1보다 높았고, 68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당시에 이렇게 압축비가 높은 엔진을 쓴 중형 승용차는 미국에 없었다. 영국 리카르도(Ricardo)의 영향을 받은 L-헤드 연소실은 스파크 플러그가 연소실 가운데 맨 꼭대기에 놓인 것이 특징으로 노킹 방지 효과가 있었다. 변속기는 건식 클러치를 쓴 수동 3단이었다. 당시 양산차에 흔치 않았던 기술도 폭넓게 쓰였다. 알루미늄 피스톤, 완전 가압식 윤활, 튜브식 앞 차축, 에어 클리너, 교체식 엔진 오일 필터를 쓴 것도 이 차가 처음이었다. 유압 쇼크 업소버도 기본 장비에 포함되었다. 유압브레이크는 록히드(Lockheed) 설계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독자 개발했다. 록히드가 특허받은 설계는 실제로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경쟁차와 비교하면 비교적 크기가 작았다. 휠베이스는 2,864mm로 뷰익 식스보다 훨씬 더 짧았고 범퍼를 제외한 길이는 4,064mm에 불과했다. 게다가 크라이슬러가 시장에 나온 시기는 동급 시장에서 경쟁이 절정기에 이르러 여러 회사가 문을 닫는 일이 많았던 때였다. 그러나 약점보다 강점이 많았다. 값에 비해 고급스러운 실내외 디자인과 꾸밈새가 대표적이었다. 고급스러운 모습은 나중에 크라이슬러 엠블럼을 디자인한 올리버 클라크(Oliver Clark)가 그렸고, 차체는 코치빌더 피셔 보디(Fisher Body)가 만들었다. 차체는 5인승 투어링에서 고급스러운 타운카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나 되었다. 뛰어난 성능은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시속 113km인 최고 속도는 경쟁 모델인 뷰익 식스보다 훨씬 더 높았을 뿐 아니라 값이 두 배 이상이던 패커드 스트레이트 에이트(Packard Straight Eight)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크라이슬러는 이 차가 7초 안에 시속 8km에서 시속 40km까지 가속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1924년 기준으로는 놀라운 성능이다. 가벼운 무게도 뛰어난 성능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유압식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속도에 비해 제동 성능이 뛰어났다. 6기통 엔진을 얹었다는 뜻으로 식스(Six)라고도 불린 크라이슬러의 첫 차는 큰 성공을 거뒀다. 첫해에만 3만 3,000여 대가 생산되어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이 차의 성공을 바탕으로 월터 크라이슬러가 맥스웰 차머스의 경영권을 쥐면서 회사 이름은 1925년 6월 크라이슬러로 바뀌었다. 자동차 브랜드로서 크라이슬러의 역사는 이처럼 화려하게 시작되었다.[5]

크라이슬러 빌딩[편집]

1928년 미국 자동차기업 크라이슬러의 창업자인 월터 크라이슬러가 뉴욕 도심에 259.4m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마천루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한창 잘나가던 회사를 상징하는 멋진 사옥을 갖고 싶었던 월터 크라이슬러는 건축가 윌리엄 반 앨런과 의기투합해 맨해튼그랜드센트럴역 인근에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등장했다. 맨해튼은행이 260m의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밝힌 것이다. 크라이슬러 측은 고민 끝에 꾀를 하나 냈다. 빌딩 꼭대기에 38m짜리 철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극비리에 진행된 첨탑 작전은 빌딩 높이를 319.4m로 만들었고 완공 시점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우뚝 서게 됐다. 1930년 선보인 크라이슬러 빌딩은 지상 77층, 지하 1층으로 지어진 뉴욕의 랜드마크이다. 영화 맨인블랙 3편, 스파이더맨, 아마겟돈 등에도 자주 등장했던 뾰족한 첨탑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 회사를 상징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아르데코 첨탑은 자동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처럼 생겼고 빌딩 내부에도 날개 달린 라디에이터 캡, 바퀴, 자동차 모양 등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6]

각주[편집]

  1. "Walter Chrysler", Wikipedia
  2. 월터 크라이슬러〉, 《위키백과》
  3. 유쾌한창조, 〈(펌) 자동차를 빛낸 사람들-월터 크라이슬러〉, 《네이버 블로그》, 2005-05-12
  4. 월터 크라이슬러 Walter P.Chrysler (1875~1946)〉, Horseless Vehicle
  5. 류청희, 〈브랜드 역사의 시작 #14. 삼총사가 만든 크라이슬러 모델 B-70〉, 《오토헤럴드》, 2019-01-21
  6. 정상범, 〈(만파식적)뉴욕 크라이슬러빌딩〉, 《서울경제》, 2019-03-11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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