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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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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麻谷寺) 전경. '춘마곡'이라는 이름답게 마곡사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마곡사가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동방 제일의 복된 땅(福地)이라 일컬어지던 길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마곡사 전경. 사진제공=마곡사
마곡사 가을 전경
마곡사(麻谷寺)

마곡사(麻谷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개요[편집]

마곡사(麻谷寺)는 충청남도 공주시 태화산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마곡사가 위치한 곳은 예로부터 동방 제일의 복된 땅[福地]이라 일컬어지던 길지이다. 풍수에서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 등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풍경 또한 매우 아름다워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이다. 절 앞에는 태화천이 잔잔히 흐르는데, 조선시대 문인인 이순인(李純仁)은 골짜기의 풍경을 읊은 시에서 마곡사를 물절[水寺]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마곡사라는 사찰명의 유래에 대해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서는 보철화상(普徹和尙)이 법을 얻어 오자 사람들이 삼[麻]처럼 많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여기서 보철은 중국의 마곡(麻谷) 보철인 듯하나, 보철화상이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신라 말에 보철스님의 법을 받아온 무염대사(無染大師)가 스승을 기리기 위하여 마곡사라는 절을 개창했다고도 한다. 한편 충청도 내포 지역에서는 청양의 장곡사(長谷寺), 공주의 마곡사, 현재는 소실된 예산의 안곡사(安谷寺)를 '삼곡사(三谷寺)'라 불렀다고 한다. '긴골절'이나 '삼골절'등의 우리말이 '장곡사'나 '마곡사' 같은 한자어로 바뀌게 되었고, 그 이름이 마곡이다 보니 중국의 마곡 보철이 연상되어 그 관계 속에서 창건주를 마곡 보철과 연관시킨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마곡사는 화승(畵僧) 계보로도 유명해 남방화소(南方畵所)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화승을 대대로 배출하였다. 대광보전의 후불벽 뒤편에는 수월백의관음보살도(水月白衣觀音菩薩圖)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많은 화승을 배출한 마곡사의 전통을 잘 보여준다. 금호(錦湖)-보응(普應)-일섭(日燮)으로 이어지는 화승의 계보를 지니고 있으며, 최근 우리나라 불화의 거장인 송광사의 승려 석정(石鼎,)도 마곡사의 화승 일섭에게 불화를 배웠다고 한다.

마곡사는 구한말 독립운동가였던 백범(白凡) 김구(金九)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죄로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탈옥하였다. 그 후 마곡사에서 숨어 지내다가 하은당(荷隱堂)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圓宗)이라 했다고 한다. 김구가 지냈던 백범당에는 김구의 사진이 있으며, 대광보전 앞에는 김구가 광복 후에 마곡사 시절을 회상하며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다.

마곡사의 산내암자로는 심정암, 부용암, 북가섭암, 토굴암, 백련암, 영은암, 대원암, 은적암 등 8개 암자가 있다.

역사[편집]

640년(백제 무왕 41년, 신라 선덕여왕 9년)에 중국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월정사와 통도사를 창건할 때 선덕여왕에게 토지 200결을 받아 전탑을 세우고 이곳 마곡사도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고려 명종 때(1172년)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하였다.그뒤 보철화상이 주석할 때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이 삼대처럼 빽빽하게 많아서 마곡사라는 절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나말여초의 혼란기에 절이 폐사되고 이곳도 200년 가량 도둑의 소굴이 되었는데, 고려 명종 2년(1172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도둑떼를 몰아낸 후 제자 수우스님과 함께 대규모 불사를 벌여 중창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세조가 이 절에 거둥해서 영산전 현판을 친필로 남기기도 하고 자신이 타고 온 가마를 두고 갔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1651년(효종 2년)에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건했다. 근대에 들어서 구한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탈옥한 뒤에 이곳으로 피신해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생활을 했다. 지금 대광보전 앞 향나무는 당시 김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특징[편집]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가 한 자리에

마곡사 주변의 물과 산의 형태가 태극형이라고 해서 <택리지>나 <정감록> 등 여러 감여서에서는 이곳을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았다. 그래서인지 마곡사에는 시대를 초월한 여러 문화재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마곡사에서는 특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전각의 현판들을 찬찬히 음미해서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볼 것이 신품사현의 하나로 꼽히는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는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다. 큰 글씨임에도 꽉 차 보이고 활달한 기운이 느껴진다. 두 번째 현판은 영산전이다. 세조어필이라 현판 한쪽에 쓰여 있어 재위 중 온양이나 속리산으로 거둥할 때 마곡사에 들러 쓴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표암 강세황의 대광보전 현판이다. 강세황은 시서화 모두에 능한 예원의 총수로 신위와 김홍도의 스승이었다.

이외에도 심검당은 정조 때 청백리였던 조윤형의 글씨이고, 요사에 붙은 마곡사 현판은 근대의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이 그림을 곁들여 쓴 글씨다.

소장 문화재[편집]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 있다.

마곡사는 충남에서 훌륭한 절집들을 한꺼번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사찰의 28본산 가운데 하나이며 충남의 모든 사찰을 관할하는 큰 절이다. 예로부터 춘마곡이라 하여 주위의 봄 경관이 빼어나며 계곡이 깊어서 《택리지》, 《정감록》 등의 지리지나 비기에서도 병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이 일대를 꼽고 있다. 오늘날 마곡사에는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 영산정(보물 제800호) · 대웅보전(보물 제799호) ·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 해탈문 · 천왕문 · 명부전 · 응진전 · 심검당 · 국사당 · 매화당 · 흥성루 · 수선사 · 대향각 · 영각 · 고방 등 건물과 탱화 · 전적 · 판본들이 있다.

보물[편집]

  • 마곡사 영산전 : 보물 제800호
  • 마곡사 오층석탑 : 보물 제799호
  • 마곡사 대광보전 : 보물 제802호
  • 마곡사 대웅보전 : 보물 제801호
  •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 : 보물 제1260호
  • 마곡사 백범일지1929년(상권)1943년(하권) : 보물 1245호

충청남보 유형문화재[편집]

  •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
  • 마곡사 동종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2호
  •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 마곡사 포교당 범종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1호
  •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
  • 마곡사 영산회상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 마곡사 영산전 목조칠불좌상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편집]

  • 마곡사 천왕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2호
  • 마곡사 국사당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3호
  • 마곡사 명부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4호
  • 마곡사 응진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
  • 마곡사 해탈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6호

전각[편집]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명부전
해탈문
천왕문
오층석탑

대웅보전[편집]

아들 점지해 주는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둥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대웅보전!

2층으로 된 대웅보전은 통층으로 전각의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가 있는데 여기에도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설화의 내용인 즉 이렇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 '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기 때문이다.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다고 한다. 이런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아낙이 많아서이다.

대웅전 혹은 대웅보전은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큰 영웅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석하시는 집이라는 뜻이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를 대표하므로 삼세불이라고도 부른다.

대광보전[편집]

대광보전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 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준다.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1788년 조성된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왕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로자나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관음보살님으로 이름나 있다.

영산전[편집]

마곡사의 영산전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특히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의 큰일을 할 인재 배출을 원하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소원을 성취하고 있다.

영산전은 현재 남아있는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에 중수돼 현재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남아있다. 사적입안의 기록에 따르면 영산전에는 세조의 친필인 방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영산전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마곡사의 영산전에는 한 가운데에 과거칠 불을, 그 주위에 1000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님을 일컫는다.

명부전[편집]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그 동안의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기도처이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든 중생들까지 다 구제할 것을 서원하신 보살님이다. 그러하기에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업보와 죄를 소멸할 수 있다.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명부전은 특히 군왕대의 좋은 기운이 모인 곳으로, 참회 정진에 특히 좋은 정진 터이다.

마곡사의 명부전은 1939년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는 전각이다. 건물에는 지장보살님을 중앙 불단에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 'ㄷ'자형의 불단을 만들어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님을 모셨다.

해탈문[편집]

해탈문은 마곡사의 정문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 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으며 태화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부처님의 세계 즉 법계(法界) 에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원력을 갖게 된다고 한다.

두 번째 문인 마곡사 천왕문이 박공지붕집인데 비해 해탈문은 추녀 밑에 처마의 하중을 받고 장식도 겸해 나무쪽을 짜 맞춘 도구를 여러 개 배치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모두 판장 벽으로 막았다. 공포(拱包)는 3제공 형식으로, 제공 조두형(鳥頭形) 돋을새김을 하고 있으며 제공에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정면의 중앙 칸을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양편에는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보현(普賢) 및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을 봉안하고 있다.

천왕문[편집]

천왕문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2호로 지정되었다. 태화산 남쪽 기슭에 있는 마곡사의 두 번째 문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마곡사의 첫 번째 관문인 해탈문은 겹처마 팔작지붕집이지만 천왕 문은 1출목 익공식(翼工式) 공포(拱包)를 짜 올리고 전후면 공포 사이에는 화반(花盤)을 하나씩 설치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박공지붕집이다. 중앙 칸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인 사천왕상 (四天王像)을 조성해 안치했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내부에 걸린 편액(篇額)에는 "1910년 6월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층석탑[편집]

대광보전 앞에 위치한 오층석탑은 보물 제799호로,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부른다.

탑의 2층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 등이 조성되어 있다. 라마식 보탑과 유사한 점으로 보아 원나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의 방위개념으로 모든 방향을 포괄하는 상징 이기도 하므로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영원히 거주한다는 불신상주의 전형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현재불에서 과거불과 미래불이라는 삼세불로의 확대는 시간을 횡으로 가르고 다시 공간적으로 투영되어 사방(四方), 팔방(八方), 시방(十方)에 현재불이 등장함으로서 현재의 다방불, 천불, 삼 천불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모든 중생이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이미 깨달은 상태에 있다는 내재불 사상으로 발전했다. 오층석탑에는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곡사와 김구선생[편집]

마곡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다 간 백범당이라는 건물이 있고 그 옆으로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1946년 여러 동지들과 이곳을 찾아와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가 아직도 파랗게 자라고 있다.

백범선생은 마곡사를 떠난 지 근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 :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라는 원각경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이 향나무를 심었다 한다.

백범 선생은 동학교도에서 승려, 독립군, 상해 임시정부 초대 주석에 이르기까지 투쟁과 투옥 그리고 망명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언제나 해방된 조국, 하나 된 조국의 뚜렷한 목표가 변하지 않았다.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선생의 고절한 생을 흠모하는 것이다. 백범 선생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그곳을 탈옥하여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하다가 하은당이라 불리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圓宗)이라 하였다.

백범일지에는 그의 출가에 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사제(師弟) 호덕삼(扈德三)이 머리털을 깎는 칼(削刀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뚝 떨어졌다.이미 결심을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

출가 당시의 착잡했던 심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지금도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가 있고 지금은 마곡사와 공주 시청이 이곳 삭발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르고 그곳에서 마곡천 절경을 굽어보는 마곡사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또한 마곡사 생태농장에서 군왕대로 이어지는 <백범 솔바람 명상 길>을 두어 마곡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1시간가량 산보하기 좋다.

백범 선생이 지냈던 백범당에는 백범선생의 진영(眞影)과 1946년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백범 선생 뒤로는 왼쪽에는 완장을 찬 좌익이 서있고 오른 쪽에는 넥타이를 맨 우익이 서있다. 이렇듯 백범선생은 사상 보다는 하나 된 조국을 더 원하였다.

사진 옆에는 백범선생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는데 그것은 서산대사의 선시로 다음과 같다.

마곡사와 김구선생.png

관람팁[편집]

고즈넉함 속에서 선인의 지혜를 전하다. 태화산 자락에 있는 마곡사는 백제 때 세운절로 신록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매년 봄에 '신록축제'가 펼쳐진다.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산으로 산의 이름처럼 크고 아름다운 산이라는 태화산에는 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가 있다. 마곡사는 백제 무왕(643년)때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많은 보물이 있으며, 대광보전의 빛바랜 단청이 오래된 절집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사찰의 대광보전, 대웅보전 옆에는 김구선생이 머물던 백범당과 백범명상길로 향기나는 솔바람이 유혹하는 대로 천천히 걷거나 등산을 해도 좋다.

한국문화연수원은 2009년 현대와 전통의 조화로운 형태의 절집으로 개원하였다. 회의실, 대강당, 강의실, 선방, 차실을 두루 갖춘 숙박시설로 템플스테이, 수행프로그램, 기업연수, 체험활동이 가능하고, 백범명상길 3코스길에 있다.

일제강점기 백범 선생이 마곡사(백련암)에서 은거, 수도생활을 할 때 구국의 일념으로 사색했던 길 따라 조성된 백범명상길은 3코스가 있다.

이용안내[편집]

입장료
  • 개인 : 성인 3,000원 청소년, 중고등학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 단체 : 30명이상 성인 2,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이용시간
  • 연중무휴 개방
  • 탬플스테이 : 천 년 고찰 마곡사 주변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십승지로 꼽혔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약 5km 구간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고 태화산의 맑은 숨결을 느끼는 '수리수리 숲소리' 템플스테이는 트래킹을 즐기는 활동가에게도, 봄볕을 사랑하는 몽상가에게도 안성맞춤이다. 매 월 1회 개최되는 '수리수리 콘서트'는 마법 주문 만들기, 마왕 체험(군왕대 오르기) 등 특색 있는 프로그램으로 열정과 긍정의 콘서트로 각광받고 있다.
템플스테이 자체한 안내는 〈여기클릭

교통안내[편집]

승용차[편집]

서울에서
  • 서울IC → 천안(JCT)분기점 → 천안 노산간 고속도로진입->정안IC에서 마곡사 표지판을 따라 국도로 → 604번 지방도이용(18km지점)

1시간 20분 소요

서울천안에서 두번째 방법
  • 서울IC → 남천안IC → 1번국도 대전연기방면 → 623번 도로 → 풍세, 광덕사방면 → 629국도(사곡,유구방향)이용
홍성/예산방면
  • 대전당진 고속도로 유구IC → 유구읍 → 웅진코웨이 공장 → 마곡사
호남(논산,익산)
  • 천안논산고속도로 상행선 → 남공주 IC 지나서 – 공주분기점(공주 JC) → 대전당진 고속도로 (당진방향) → 마곡사
서천방향(서천고속도로)
  • 서공주 IC 지나서 → 서공주 분기점(서공주JC,당진방향) → 마곡사IC
대전에서
  • 대전 유성IC → 32번 국도로 이동(30분 소요)
공주에서
  • 공주에서 예산(아산)방면으로 32번 국도를 이용 직진해서 10km정도 가다가 사곡면에서 우회전해 마곡사 입구까지 진입. 거리는 20km(30분 소요)

대중교통[편집]

  • 공주버스터미널에서 마곡사까지 770번 시내버스 종점하차(오전 6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40분 소요)
주차시설  
승용차 기준 280여대 주차 가능 (요금 : 무료)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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