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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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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 휘장
포르토프랭스 전경

포르토프랭스(프랑스어: Port-au-Prince, 아이티어: Pòtoprens)는 아이티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이다. 도시 이름은 프랑스어로 "왕자의 항구"를 뜻한다. 1770년부터 1804년까지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수도였다가, 1804년 아이티 혁명 이후 아이티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 이곳은 아이티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포르토프랭스 대교구의 소재지이다.

2010년 1월 12일, 포르토프랭스에서는 7.0 강도의 지진이 발생해 수십만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2010년 지진으로 특히 피해를 입은 곳은 샹드마르 광장((Place du Champ-de-Mars)으로, 20광장에 있던 대통령궁과 노트르담 대성당, 국립문서보관소, 국립도서관, 국립박물관 등이 무너졌다. 이전에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지진이 발생했는데, 1751년과 1770년 당시에도 지진으로 인해 도시의 많은 시설이 파괴되었다.

개요[편집]

  • 행전 단위: 아이티 수도
  • 면적: 36.04km²
  • 인구: 987,310명(2015년 추정)
  • 지역어: 프랑스어
  • 시장: Lucsonne Janvier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www.portauprince.ht/

역사[편집]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에 포르토프랭스지역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 15세기 말 이 지역은 보헤치오(Bohechío)라는 이름의 원주민 통제 하에 있었다.

1502년부터 1509년까지 히스파니올라의 총독이자 식민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니콜라스 데 오반도(Nicolás de Ovando)는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식민지를 세웠고, 여기에 산타마리아 데 라 파스 베르라데라(Santa María de la Paz Verdadera)라는 이름을 붙이고 산타마리아 델 푸에르토(Santa María del Puerto)라는 항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50년 동안 활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고, 17세기에 들어와 이곳을 일부 프랑스 해적(flibustiers)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해적들은 1650년경 이슬라 데 라 토르투가(Isla de la Tortuga)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을 세웠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 지역은 호피탈(Hôpital)로 알려지게 되었다. 스페인은 프랑스 해적들이 호피탈 인근을 점령하는 것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지만, 결국 1697년 리스윅 조약을 통해 호피탈 인근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프랑스에게 넘기고 말았다. 영토권이 확보되자 프랑스는 호피탈에 생안드레(Saint-André)라는 선장을 보냈지만, 생안드레의 배[엘 프린시페(El Principe, 왕자라는 의미)]가 호피탈 인근에서 난파하자 이후 이름을 ‘왕자의 항구’라는 의미의 포르토프랭스로 바꾸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포르토프랭스는 ‘푸에르토 레푸불리카노(Puerto Republicano)’로 알려졌고, 아이티가 북쪽의 왕당파와 남족의 공화파로 나뉘었을 때, 프르토프랭스는 알렉산드로 페티옹(Alexandre Sabès Pétion)이 이끄는 공화파의 중심지였다.

리스윅 조약 이후 히스파니올라섬의 서쪽에 대한 지분을 얻은 프랑스는 식민지를 잘 통제하기 위해 수도를 좋은 곳으로 선택해야 할 입장이었다. 가장 먼저 프랑스인들이 수도로 고려한 곳은 레오갼느(Léogâne)와 프티 고아브(Petit-Goâve)였다. 하지만 두 곳은 모두 중앙에 위치하고 있지 않은 공통점이 있었고, 레오갼느는 방어가 어려운 지형, 프티 고아브는 기후가 좋지 않다는 각각의 단점도 존재했다. 여러 측면을 고려해 1770년 포르토프랭스는 꺕 아이띠엥(Cap-Haïtien)을 대체해 생도맹그의 수도가 되었고, 1804년 아이티 혁명 이후 아이티의 최초 수도가 되었다. 포르토프랭스는 개발도상국 최초로 1949년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도시이기도 하다. 1949년 세계박람회는 포르토프랭스 설립 2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되었다. 현재 박람회가 개최되었던 자리는 황폐해진 산책로로만 남아 있다.

지리[편집]

포르토프랭스는 히스파니올라섬의 고나브(Gonâve) 만에 위치하였다. 기후는 일년 내내 열대성 기후이며 해안의 기온은 평균 26.7℃이고, 산으로 갈수록 시원해진다. 우기는 4~6월, 10~11월 두 번에 걸쳐 있다.

도시구조[편집]

  • 상류층 거주구역
대부분의 아이티 엘리트(거의 모든 물라토 혹은 비흑인)는 포르토프랭스 남동쪽의 300~500m 윗쪽의 언덕에 있는 쁘띠옹 빌(Pétionville) 교외에 살고 있다. 또한 적은 수이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흑인 중산층도 이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쁘띠옹 빌은 포르토프랭스 교외의 동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심 내부 자체와 분리되어 있다. 이 지역은 주로 주거 및 관광을 위해 개발되었고, 2015년 기준 376,834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2021년 7월 암살된 전 대통령 조보넬 모이즈((Jovenel Moïse)도 이곳에서 기거하다 암살되었다.
  • 슬럼가
대부분의 흑인 도시 노동자 계급은 농부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고, 농촌으로부터 포르토프랭스로 이주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의 시테 솔레이(Cité Soleil) 구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빈곤한 지역에 속한다. 시테 솔레이는 판자촌(금속지붕이 있는 시멘트로 만듦)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장 갱단으로 가득 찬 곳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어린이 또는 청년으로서, AIDS와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상당히 높다.

경제[편집]

일반적으로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실업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공항 주변에는 외국인 소유 공장과 조립공장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는 요리, 땅콩 껍질 벗기기, 그림 및 수공예품 판매와 같은 비공식 부문에서 찾을 수 있다.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전통적으로 커피와 설탕을 수출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신발과 야구공, 배트와 같은 품목을 수출하였다.

문화[편집]

치안[편집]

아이티는 2010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았고, 2018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정치경제적 위피고 폭력이 만연하고 치안이 불안정한 사회가 되었다. 특히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무장단체들 간 충돌이 거세짐에 따라 총격, 방화, 약탈 등이 발생해 민간인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2021년 하반기 기준으로 프르토프랭스 폭력 사태와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약 19,000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대부분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나 피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거주지에서 이탈된 사람들은 주로 파크셀티크(Parc Celtique)라는 임시 구호소에서 생활하는데, 생활상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2019년 하반기에 프르토프랭스에는 학교와 스타디움, 교회 등의 장소에 8곳의 임시 구호소가 세워졌는데, 위생 수준이 열악하고 과밀집된 상황이어서 거주 환경은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구호소 내부에서 여성과 소녀들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고, 성폭력이나 성추행, 물리적 폭력 등이 빈번하게 발생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한 포르토프랭스에서는 아이티인들만 갱단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21년 5월, 타바레(Tabarre)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직원이 퇴근길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기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21년 포르토프랭스 응급실에서 매달 평균 약 100명의 총상 환자를 치료했다고 말한다. 2023년에 이르러서도 포르토프랭스의 치안 상황은 개선될 만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3년 1월, 전현직 경찰 수백 명이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봉쇄하고 공항과 총리 관저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같은 사건의 원인은 잇달아 발생하는 갱단의 경찰관 살해에 격분한 경찰 집단이 시위를 벌인 것이다. 현재 프르토프랭스에서 발생하는 폭력적 사건은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전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무정부 상태가 계속 진행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이티 인권단체 국가인권수호네트워크(RDDH)는 성명을 내고 2021년 7월 앙리 총리 집권 이후 매달 평균 5명씩 78명의 경찰관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또한 유엔은 2023년 기준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60%가 갱단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교육[편집]

포르토프랭스는 1920년 개교한 아이티 주립대학교의 소재지이다. 아이티 주립대학교는 아이티에서 가장 중요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1820년 약학과 법학 대학이 설립되면서 개교하였다. 이후 1942년 다양한 학부가 아이티 대학에 병합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1960년대 학생들의 시위 후에 프랑수아 뒤발리에 정부는 대학을 주립대학교로 개명하여 국가의 책임 하에 두었다.

지도[편집]

카리브해 국가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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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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