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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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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지 전경
포석정(鮑石亭)
포석정(鮑石亭)
포석정(鮑石亭)
포석정(鮑石亭)

포석정(鮑石亭)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순환로 816 (배동)에 있는 신라의 별궁이 있던 자리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1호이다. 공식 명칭은 '경주 포석정지'로 통일신라의 의례 및 연회 장소로 이용되었던 정자(亭子) '포석정'이 위치했던 터이다. 건물은 없어지고 석조구조물만 남아 있다. 남북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환경을 최대로 활용하고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에 인공적인 기술을 가미하여 이룩한 조화미는 신라 궁원기술(宮苑技術)의 독특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현재 정자는 없고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이 남아있다. 물길은 22m이며 높낮이의 차가 5.9㎝이다. 좌우로 꺾어지거나 굽이치게 한 구조에서 나타나는 물길의 오묘한 흐름은 뱅뱅돌기도 하고 물의 양이나 띄우는 잔의 형태, 잔 속에 담긴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었으나 오늘날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경주 포석정 뿐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개요[편집]

포석정은 신라시대 왕과 신하가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즐기던 정자다. 포석정은 돌에 홈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그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놓고 술잔을 주고 받으며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돌의 홈 모양이 구불구불한 전복 껍질과 같다고 하여 포석정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현재 건물은 없어지고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물길의 너비는 30cm, 깊이는 20cm, 높낮이의 차이는 5.9cm이며, 타원형 물길의 길이는 22m에 이른다.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물의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담은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포석정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서쪽의 계곡에 있으며 신라 시대는 별궁이 있었으며 현재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석재 구조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 궁중의 연회 장소로 추정했으나 1998년에 많은 유물과 함께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들이 출토되면서 신라 왕실의 별궁이자 신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식을 행하던 곳으로도 알려졌다. 1963년 우리나라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쓴 난중일기에 보면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제사를 올리고 난 뒤에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선비들이 결제사를 올리고 난 뒤에 개울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지어 읊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벌칙으로 3잔의 술을 마시게 한 잔치를 행했다. 이같은 왕희지의 유상곡수를 본을 따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유상곡수연의 유배거를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큰 돌 거북을 만들어 놓고 저수지물을 끌어다가 그 거북의 입으로 물이 나와서 돌 홈으로 흘러가게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의 기록에 의하면 제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하여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남산 신이 임금 앞에 나와 춤을 추었는 데 신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임금은 손수 일어서서 남산 신과 춤을 추고 난 후에 그 춤 추는 모습을 흉내내 보였다. 그 후부터 그 춤이 널리 행해 졌다고 한다. 그 남산 신의 이름을 따서 어무산신 또는 어무상심, 상심무라고 하였으며 그 후에 교려 때까지 전해져 유행했다고 한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 군대의 습격을 받아 이 포석정에서 최후를 맞았다. 백제군이 코앞에 처들어 왔는데도 모르고 화려하게 연회를 베풀며 향락을 즐기던 경애왕은 백제 견훤으로부터 자결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포석정이 연회장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술잔을 물위에 띄우는 것도 제사의식의 하나라는 견해도 있다. 경애왕이 몰락해 가는 신라를 구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다 화를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후백제의 견훤은 경애왕을 죽인 후에 꼭두각시 경순왕을 세웠다.

견훤이 바로 신라를 지배하지 않았던 것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신라와 고려가 힘을 합쳐 백제를 공격해 올가 두려워 했기 때문이였다. 포석정은 왕과 신하가 하늘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린 성스러운 곳이 였다. 왕족이 궁여들과 화려한 연회를 베푼 환락의 장소였다. 또한 적군이 공격해 오는 것도 모르고 환락을 즐기다가 왕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신라 멸망의 비극을 맞고 죽어 간 왕의 한이 어려 있는 곳이다. 포석정 돌 홈에 흐르는 물위에 떠서 돌던 술잔이 마지막 멈추고 난 뒤에 천년이란 세월이 흘러 오늘까지 왔다. 술잔이 떠서 흐르던 포석정의 흔적은 남아 있는데 그 날의 임금과 신하, 백성들은 모두 흙이되어 버렸다.

그러나 포석정의 술잔이 지니고 있는 경건과 환락, 비애의 의미는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구조[편집]

경주의 남산 서록계류에 연한 소림 속에 위치한다.

보통 포석정이라고 하면 포어(鮑魚)의 형태를 모방하여 만든 석구(石溝)를 말하지만 사실 이 석구는 포석정의 한 가지 부속기물일 뿐이다. 일부 네티즌은 구덩이가 무슨 연회 장소냐며 말하지만, 본래 이 위에 포석정의 본 건물이 있었는데 뒤에 없어진 것이다.

포석정의 석구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기 위한 용도이다. 유상곡수연은 4세기 위진남북조시대의 서예가 왕희지에서 비롯됐다. 물이 흐르는 수로의 첫 부분에 술이 담긴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수로를 타고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구조인데, 수로를 기가 막히게 설계하여 술잔이 떠내려가는 중에도 기울어지거나 부딪히지 않았다 한다. 술잔이 떠내려가는 동안 시를 짓고 만약 못 지으면 벌주 3잔을 마시는 식으로 노는 것이 유상곡수연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수로를 물길을 꼬고 수로의 깊이까지 계산하여 설계하여 술잔이 오래 떠내려가게 하여 시를 지을 시간을 벌었다고 한다. 술잔 타이머 관련기사 석굴암과 함께 통일신라 석조건축기술의 정밀함을 그리고 목제 주령구와 더불어 신라인들의 술게임 문화를 알 수 있는 유적.

다만 일제강점기 1915년 철거 후 재설치하는 과정에서 없어진 돌은 새로 보충하는 등 임의로 보수되어 수로곡석(水路曲石)의 원형은 잃어버렸다고 한다. 거기에 위 사진 속에도 보이는 나무가 자라면서 돌을 건드려 미세하게 밀려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므로 지금은 물이 흐르고 술잔을 띄워도 끝까지 흔들림없이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크기를 다양하게 다듬은 돌 63개가 사용됐고 크기는 길이 10.3 m, 폭 7 m 정도이고, 물길 길이는 약 22m이다. 물길의 폭은 최소 24 cm에서 최대 40 cm로 다양하지만, 평균적으로 30 cm 정도이다. 깊이도 평균적으로 22 cm 정도이며 물길의 입구와 출구의 낙차는 40 cm 정도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각 위치마다 속도가 천차만별이다. 뒷산에서 물을 받아 토하는 거북 모양 돌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1871-73년 사이에 누군가가 안동으로 옮겨갔다고 전할 뿐 소재를 모른다. 만약 정말로 물을 토하는 거북이가 있었다면 곧 그 거북이 돌 밑에 배수로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관람[편집]

입장료는 성인 1천 원. 대중교통은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500번, 505번, 506번, 507번, 508번을 타고 포석정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사실 동그란 포석정 수로는 위에서 언급했듯 신라시대 포석정의 '일부 시설'이다. 유물이 출토되고 건물터가 확인됐지만 2018년 현재 볼거리는 수로뿐이다. 입장료가 있는 경주의 네임드 유적지 중에서는 가장 썰렁한 축에 속하므로 역덕이 아니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네임드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단체관광객들은 포석정만 보고 바로 버스 타고 떠나기도 하지만 이 근처는 주변에 보물 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나 소나무숲 사진 포인트로 유명한 경애왕릉, 배동 삼릉 등 다른 유적도 많고, 포석정 바로 뒤는 야외 박물관이란 별명이 있는 남산의 등산로 중 하나이기도 하므로 연계해서 둘러볼 수도 있다.

자동차를 타고 갈 경우 주차장에서 주차요금과 입장료를 함께 받는다. 도보로 갈 경우 주차장 요금소에서 입장권을 사야 하니 이 점 참고하자. 경주시민은 주소가 표시된 신분증을 제시하면 입장료가 면제된다.

동영상[편집]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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