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나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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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나푸티(Funafuti)는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작은 나라 투발루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며 행정 중심지이다. 인구는 약 6천3백 명이며 투발루의 나머지 지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인구의 약 60%가 거주하고 있다.[1]
개요[편집]
푸나푸티는 투발루를 구성하는 푸나푸티섬(Funafuti Island)의 동쪽에 위치한다. 푸나푸티섬 30여 개의 작은 산호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변의 33개 환초의 육지 면적은 2.4km²이다. 공식적으로는 푸나푸티섬 전체가 그 수도인데 이는 환초 전체를 책임지는 단일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1819년 서방에 처음 알려진 뒤, 1915년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3년에는 미군 기지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30여 개의 작은 산호섬으로 이루어진 푸나푸티환초의 중심지이고, 공항 근처에 관공서와 호텔, 병원 등이 모여 있다. 교회와 마을은 공항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중되어 있다. 원주민은 폴리네시아계이며, 코코스야자 열매의 배젖인 코프라 생산지로 유명하다. 현재는 인근 5개의 무인도와 함께 남태평양 지역환경프로그램(SPREP)에 의해 해상보호구역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해발고도 4.5m가 넘는 곳이 있을 정도로 지표면이 낮아,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 있다. 또 세계에서 물이 가장 귀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섬 안에 하천이나 호수가 전혀 없어 빗물을 받아 먹을 물로 사용하는데, 1999년부터 일본이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장비를 설치해 식수난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피지섬으로 통하는 항공로가 개설되어 있다.[2]
기후[편집]
푸나푸티는 열대 우림 기후(Af)를 가지고 있다. 사이클론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적도성 기후로 간주되지 않는다. 일년 내내 엄청난 양의 강우량이 발생하며, 몬로비아(Monrovia), 프리타운(Freetown), 코나크리(Conakry)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습한 수도이다. 마을에는 비가 200mm 미만으로 내리는 달이 없으며 연간 평균 강수량은 약 3,500mm이다. 열대 우림 기후를 가진 많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일년 동안 기온의 변화는 거의 없다. 일 평균 기온은 일년 내내 약 28°C를 유지한다.[3]
역사[편집]
푸나푸티의 구전 역사는 창립 조상이 사모아 출신이었다고 한다. 푸나푸티를 처음 방문한 유럽인은 아렌트 스카일러 드 페이스터(Arent Schuyler de Peyster)였다. 그는 뉴욕 출신의 미국인이었으며 영국 군함을 타고 항해하던 무장한 사병선 레베카(Rebecca)의 선장이었다. 1819년 5월 페이스터는 남부 투발루 해역을 통과하여 푸나푸티를 목격했다. 그는 코번트리의 국회의원이자 레베카의 화물 소유자였던 영국 정치인 에드워드 엘리스(Edward Ellice)의 이름을 따서 엘리스섬(Ellice's Island)이라고 이름 지었다.
1841년 찰스 윌크스(Charles Wilkes)가 이끄는 미국 탐험대가 푸나푸티를 방문했다. 미국은 1856년 구아노 제도법 에 따라 푸나푸티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으며 1979년 체결된 우호조약이 발효된 1983년까지 이 영유권을 유지했다.
1850년대에 존 오브라이언(John O'Brien)은 투발루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그는 푸나푸티의 무역상이 되었고 푸나푸티의 가장 중요한 추장의 딸인 살라이와 결혼했다. 영국 출신인 알프레드 레스티오(Alfred Restieaux)는 1881년 7월부터 1888년 또는 1889년까지 푸나푸티에서 상인으로 거주하며 일했다.
1882년 미국 수산위원회 회원들은 USFC 알바트로스(Albatross)를 타고 푸나푸티(Funafuti)를 방문하여 태평양 환초의 산호초 형성을 조사했다. 방문 기간 동안 선장의 서기이자 사진작가인 해리 클리포드 파셋(Harry Clifford Fasset)은 푸나푸티의 사람들, 지역사회, 풍경 사진을 찍었다. 사진작가 토마스 앤드류(Thomas Andrew)]는 1885-86년경 푸나푸티를 방문했다.
1892년, HMS 로얄리스트(HMS Royalist)의 에드워드 데이비스(Edward Davis) 선장은 그가 방문한 각 섬에서 관찰한 무역상과 무역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제공했다. 데이비스는 존 오브라이언을 푸나푸티의 무역업자로 확인했고 오브라이언도 1896년 환초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894년 루돌프 페스테틱 드 톨나(Rudolph Festetics de Tolna) 백작과 그의 아내 에일라(Eila), 그리고 그녀의 딸 블랑쉬 하긴(Blanche Haggin)은 요트를 타고 푸나푸티를 방문했다. 백작은 푸나푸티의 남성과 여성의 사진을 찍는 데 며칠을 보냈다.
1860년부터 1900년까지 푸나푸티의 인구는 280명에서 300명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푸나푸티 우체국은 1911년경에 문을 열었다.
태평양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엘리스제도는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 길버트제도에 대한 후속 해상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되었다. 1942년 10월 2일 미국 해병대 제5방위대대가 푸나푸티에 상륙하여 작전은 일본군이 1943년 3월 27일 발견할 때까지 비밀로 유지되었다.
푸나푸티섬의 섬 주민들은 미군이 비행장(현재 푸나푸티 국제공항), 76병상 규모의 병원, 퐁가팔섬에 해군 기지와 항구 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작은 섬으로 옮겨졌다.
푸나푸티에는 다윈의 드릴(Darwin's Drill)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얕은 물 유기체의 흔적이 깊은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과학적 조사의 일환으로 런던 왕립학회가 1896년, 1897년, 1898년에 시추공을 뚫었다. 그것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산호초 형성 이론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1896년 탐험대의 리더인 솔라스 교수는 환초 연구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드니 대학의 에지워스 데이비드(Edgeworth David) 교수는 1896년 탐험대의 일원이었고, 1897년 탐험대의 리더였다. 탐험대의 사진작가들은 푸나푸티의 사람, 공동체, 장면을 기록했다.
이론을 검증하는 역할과 관련하여 푸나푸티 환초는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이 2022년 10월에 발표한 목록에 전 세계 100개 '지질 유적지'를 모아 놓은 목록에 포함되었다.
1972년, 푸나푸티는 1972-73년 남태평양 사이클론 시즌 동안 사이클론 베베(Cyclone Bebe)의 결로에 놓여있었다. 베베는 길버트, 엘리스, 피지섬 그룹을 강타한 프리시즌 열대성 저기압이었다. 사이클론 시스템은 10월 20일에 처음 발견되었다. 10월 22일까지 강화되고 크기가 커졌다. 21일 토요일 오후 4시쯤, 비행장의 산호초 사이로 바닷물이 거품을 내며 약 1.5m 높이까지 치솟았다. 사이클론 베베는 10월 22일 일요일까지 그 지역을 계속해서 파괴했다. 석호에 있던 엘리스 제도 식민지의 배 모아나라오이(Moanaraoi)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세 척의 참치 보트가 난파됐고 환초에 파도가 일었났다. 어른 2명과 생후 3개월 된 어린이 1명이 파도에 휩쓸리고, 난파된 참치잡이 배에 타고 있던 선원 2명이 물에 빠져 숨지는 등 5명이 숨졌다. 사이클론 베베는 이 지역의 가옥과 나무의 90%를 파괴했다. 폭풍 해일은 퐁가팔레(Fongafale)와 푸나팔라(Funafala)의 바다 쪽을 따라 길이가 약 16km이고 바닥 두께가 약 3.0m에서 6.1m인 산호 잔해 벽을 만들었다. 폭풍 해일은 또한 그 지역의 신선한 식수 공급원을 파괴하거나 오염시켰다.[4]
투발루[편집]
투발루(Tuvalu)는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에 있는 섬나라로, 키리바시, 나우루, 사모아, 피지와 가깝고 하와이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중간 쯤에 위치한다. 4개의 암초섬과 5개의 환초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면적은 26km²로, 면적 순위로는 바티칸시국과 모나코, 나우루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나라이다. 인구는 11,000명 정도로서, 주권국 중에서는 인구 순으로 바티칸시국과 나우루 다음으로 인구가 세번째로 적다. 지구온난화로 영토가 바다에 잠기고 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발루에 처음 거주한 사람들은 폴리네시아인이다. 1568년 스페인의 항해가 알바로 데 멘다냐 데 네이라는 남방 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도중 이 섬을 지나갔다. 1819년, 푸나푸티 환초는 엘리스섬으로 이름 붙여지고, 후에 이 이름은 9개의 모든 섬에 붙여지게 되어 '엘리스제도'(Ellice Islands)가 되었다. 19세기 말 투발루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916년 엘리스 제도는 길버트제도에 편입된다. 1974년, 엘리스제도는 투표를 통해 투발루라는 이름으로 후에 키리바시가 되는 길버트 제도에서 분리된다. 1978년 10월 1일에 투발루는 완전히 독립하여 영연방에 가입하였다. 법의 체계는 영국의 일반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 9월 5일 투발루는 189번째 국제 연합 회원국이 되었다. 투발루의 섬들은 모두 해발 4.5m 이하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섬이 2개가 바다로 가라앉게 되고 남은 섬도 모두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나라가 점점 잠기고 있고 일부 주민들이 뉴질랜드 등의 인근 국가로 이주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잦은 국토 침수 문제는 실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해발고도가 매우 낮고 조금씩이나마 가라앉고 있는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사실이며 학계에서는 대략 2060년쯤 되면 투발루의 거의 대부분 섬이 바다에 잠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세계 환경 단체와 인권 단체에서 침몰하는 투발루를 돕자는 환경 운동을 벌이고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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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푸나푸티〉, 《위키백과》
- 〈투발루〉, 《위키백과》
- "Funafuti", Wikipedia
- 〈후나푸티〉, 《요다위키》
- 〈푸나푸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오세아니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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