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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2일 (일) 12:39 판

아비에이

아비에이(Abyei)는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위치한 내륙 지방인 쿠르두판의 지명이다. 아비에이 지역의 최대 도시아비에이이다. 아비에이는 2011년 남수단이 독립하기 이전까지는 수단 남쿠르두판 주의 지명이었다. 한편 수단은 국가의 하위 행정구역지구를 설치하였으며 남부 쿠르두판 주에는 하위 '아비에이 지구'라는 행정 구역 이름을 두고 있다. 이 지역은 수단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현재 여전히 아비에이 지역이 수단남수단 중 어느 쪽으로 귀속될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1]

수단 공화국

수단아프리카 대륙에서 세번째로 넓은 나라이자 세계에서 16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2011년 7월까지는 아프리카 대륙 최대국가였으나 남수단이 떨어져 나간 후엔 알제리에게 이 타이틀을 넘긴 지 오래이다. 수도는 하르툼(الخرطوم‎, Khartoum)이다. 북쪽에는 이집트리비아, 서쪽은 차드, 동쪽은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남쪽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남수단과 접경해 있다. 동북쪽의 일부 지역만 홍해에 면해 있으며, 홍해 건너편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마주 보고 있다. 포트수단에서 바다 하나만 건너면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아시르주와 헤자즈주가 나온다.

수단은 국토의 대부분이 사하라사막사헬지대에 속해 있어 쾨펜의 기후구분 중 사막기후(BWh)에 속한다. 다만 남수단과 접하고 있는 남부 지역 일부는 스텝기후(BSh)이다. 우기는 8월부터 10월까지 여름~가을에 걸쳐있다. 우기 전 3월부터 7월까지는 하붑(haboob)이라고 부르는, 황사 저리가라 할 정도의 강력한 모래폭풍이 발생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나라를 관통해서 나일강이 흐르며 수도는 하르툼('카르툼'이라고도 함)이다. 남수단을 지나는 백나일강에티오피아를 지나는 청나일강이 수도인 하르툼에서 하나로 합쳐진다.

수단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지만 세부적인 부족별 차이가 커서 아프리카계 아랍인인 바까라족과 아랍화된 나일로트계 누비아인 및 푸르족, 예멘 및 이집트 쪽에서 넘어온 아랍인들 등이 섞여 있다. 이집트 이주민들의 영향으로 북부에선 피부가 흰 사람들도 조금씩 보인다. 아랍화된 누비아인이 사회의 주류이며, 아랍어가 모어가 아닌 누비아인은 따로 누바족으로 분류된다. 누비아 사막(사하라 사막 동단)의 건조하고 황량한 땅에 주로 이슬람을 믿는 아랍계 주민들이 거주한다. 다르푸르에는 아랍어와 푸르어를 사용하는 나일사하라어족 흑인 푸르족의 경우 종종 아랍인으로도 분류된다. 수단 지역 서부와 차드에 걸쳐 사는 바까라족 아랍인은 수단 지역 북부의 아랍인들과 기원이 다르다. 수단 지역 북부의 누비아 자알리인 아랍인들은 이집트인과 누비아인의 수천년간의 혼혈과 동화로 이루어진 반면, 남부의 바까라 아랍인들은 중세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베두인 탄압을 피해 수단 지역 남부로 이주하여 나일사하라어족 흑인들과 혼혈된 아랍 베두인 약탈자들의 후예이다.[2]

남수단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이며 2011년 2월 수단 공화국 남부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 98.83%가 독립에 찬성, 동년 7월 9일에 공식적으로 수단 공화국에서 독립하였다. 남한이나 서독 등 방위가 들어간 용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분단국가인 경우가 많아서 오해하기 쉽다 보니 수단 공화국을 '북수단'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애초에 민족적,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들을 억지로 묶었던 게 이전의 수단이며, 양측 모두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므로 사정이 다르다. 실제 비르 타윌 지역에 있는 북수단 왕국은 초소형 국민체일 뿐이다.

원래 수단이 소유하던 비옥한 지역을 남수단이 독립하게되면서 90% 이상을 소유하게 되었고 수단은 국토 대부분이 사막지대로 변하고 말았다. 국토가 정글과 늪, 초원으로 이루어져있다. 백나일강이 국토 중앙을 통과한다.

면적은 62만㎢(세계 45위)에, 인구는 1,100~1,300만 가량으로 추산된다. 면적과 인구가 원래 수단의 1/4을 차지한다. 현재 남수단의 면적은 한반도(22만㎢)의 3배는 족히 된다. 더불어 내륙국이다. 동으로는 에티오피아, 서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으로는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케냐에 접한다. 수단과의 국경은 1,000km에 달하는데, 이게 앞으로 골치. 그러나 남수단 내전으로 국가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공용어는 영어이고, 일부 소수 민족의 언어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에도 아랍어 구사 가능자가 많이 존재하지만, 독립 이후 공용어에 포함되었던 아랍어는 퇴출되었다. 일단 수단과 갈라진 계기가 종교와 인종 갈등이기 때문에 수단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는 아랍어가 달갑지는 않은 듯. 남수단은 남수단어라는 언어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려운 게 이 언어도 영어 위주이고, 남수단에서 인구 많은 딩카족 위주로 쓰이던 딩카어 용어를 토대로 표준어로 정하려고 하기에 다른 다수 민족인 지에족이나 무를레족은 이럴 바에는 그냥 영어 쓰거나 차라리 아랍어 쓰자고 결사반대하고 있다. 부족 갈등이 언어 문제에서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3] 기타 유력 종족의 부족어 외에 수도인 주바에서는 아랍어를 바탕으로 하여 많이 간략화되고 각 부족어의 영향을 받은 크리올어인 주바 아랍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 밖에 스와힐리어 쪽에도 접근하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동경 27도 이하의 서쪽 지역은 프랑스어 사용 지역이다.[3]

수단 공화국과 남수단의 관계

수단남수단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이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존재했다. 양국은 영국의 지배와 영향으로 영어도 사용되고 있다. 영토분쟁이 존재한다.

역사적 관계

수단남수단은 고대부터 나일사하라어족 민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리적, 역사적인 이유로 양 지역의 문화와 역사, 사회는 큰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데 건조지대이면서 동시에 북부의 이집트와 인접한 북수단은 이집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반면, 열대 우림 지대에다가 해안과도 떨어져 있던 남수단 지대의 경우 외부와의 교류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북수단의 주요 주민 누비아인들은 나일사하라어족에 속하는 민족 집단이었으나 수천여 년간 이집트인, 아랍인들과 교류한 결과 오늘날 인구 대다수가 아랍어를 사용하는 등 아랍화되었으며, 반면 남수단의 딩카족과 누에르족들은 북수단의 아랍화/이슬람화된 누비아인이나 바까라족 등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고대

수단은 상이집트와 맞닿아있는 이유로 고대부터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지역이었다. 청동기 시대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쿠시 왕국이 대표적이다.

중세

수단 북부의 누비아인들은 이집트와의 교류의 영향으로 언어적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화된 반면, 아랍인 상인들이 침투하기 어려웠던 남수단 열대 사바니 지대 일대에는,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들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소를 치며 유목 생활을 영위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반농반목 사회를 유지하며 유목을 하지만 기마 유목민은 아니다. 기마 유목민들이 양을 주로 키워 고기와 젖을 먹는 데 반해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들은 소를 주로 키우며 소를 죽여 고기를 얻는 대신 소를 죽이지 않고 상처를 내 피를 마시며, 우유도 많이 마신다. 소가 재산과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에 소고기에 대한 터부가 남아있으며, 육류는 대부분 사냥으로 마련한다. 아랍인 노예 상인들이 정기적으로 남수단의 여러 부족들을 습격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랍인들은 이 지역의 부족민들을 절멸시키는 수준으로 체계적인 약탈까지는 하지 못했다. 맘루크 왕조가 영내 베두인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베두인들이 이집트를 떠나 남부 수단으로 탈출하는데 이들은 수단 서부의 유목민 집단 바까라족의 기원이 되었다.

근세

북부의 이슬람화된 누비아계 부족들의 영향으로 남수단과 북수단 사이 중간 지대 중에서도 서부에 해당하는 다르푸르 지역에 거주하는 푸르족들이 다르푸르 술탄국을 건국하였다. 푸르족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조(식물), 기장(식물) 농사 대신에 밀 농사를 짓고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기 시작하였으며, 왕족들을 중심으로 한 초기 형태의 봉건제 사회를 확립하였다. 아랍인 노예 상인들의 지속적인 약탈로 남수단의 주요 민족 집단이었던 쉴룩족이 몰락하고 그 빈자리를 딩카족과 누에르족이 채우게 되었다.

19세기

여러 군소 왕국들과 부족 집단으로 분열되어 있던 북수단과 다르푸르 지역, 그리고 남수단은 메흐메트 알리의 이집트군이 정복함으로써 통일되었다.

20세기

수단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바시르 대통령의 독재하에서 남수단에서 탄압과 학살이 일어났다. 이에 남수단에선 바시르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독립군이 결성돼 바시르 정권과 내전을 치렀다.

21세기

2011년에 남수단은 수단에서 독립했다. 7월 9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의 독립을 축하했다. 7월 14일에 수단 의회는 수단에 거주하는 남수단인이 남수단 국적을 취득할 경우, 수단 국적을 말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9월 19일에 양국은 국경검문소를 세우기로 했다. 10월 8일에 남수단 대통령이 수단을 처음 방문했다.

2012년 3월 27일에 수단과 남수단 사이에서 국경분쟁이 일어나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 방문을 취소했다. 남수단의 기드온 가트판 정보부 장관은 수단군이 벤티우 지역에 있는 유전 근처에 폭탄 3개를 떨어뜨리는 등 공습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4월 4일에 남수단측은 수단군의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지만, 수단측은 부인했다. 4월 18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에 선전포고를 했다. 4월 21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에 송유관 재개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국간 유전 분쟁이 격화됐다. 4월 28일에 수단 군부는 남수단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는 외국인 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유엔의 중재로 양국은 잠시 휴전했지만, 다시 양국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5월 28일에 수단군은 남수단 국경의 분쟁지역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8월 4일에 수단과 남수단을 전면전 직전까지 끌고 갈 정도로 첨예했던 송유관 사용료 분쟁이 타결됐다. 9월 26일에 양국은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10월 7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 국경지역을 개방하기로 남수단측과 합의했다.

2013년 1월 19일에 양국은 국경지대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방안을 두고 협의를 진행했지만, 협의는 결렬됐다. 3월 11일에 남수단의 살바 키르 대통령은 비무장 지역을 설정하기 위해 남수단군에 수단 접경 완충지대에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3월 12일에 남수단은 수단에 석유 수출 재개를 진행했다. 4월 12일에 바시르 대통령이 남수단을 처음 방문했다. 6월 10일에 남수단측은 남수단 영토에 수단 군 병력 3,000여명이 무단 침입했다고 밝혔다. 9월 3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의 석유 송유관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4년 1월 6일에 바시르 대통령이 남수단 정부와 반군 간 유혈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남수단을 방문했다.#1#2 그리고 양국은 유전지대 합동군 병력을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11월 11일에 수단측이 남수단의 식량 지원을 하자 유엔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2015년 2월 26일에 유엔측은 수단, 남수단에 아비에이 분쟁 해결을 촉구했다. 6월 13일에 유엔 난민기구는 남수단 국민 14,000명 이상이 2주일 동안 수단으로 피난했으며 이는 남수단의 석유 생산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6년 1월 28일에 바시르 대통령은 남수단과의 국경을 개방한다고 밝혔다.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이 수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수단 정부가 발표했다.

2017년 2월 26일에 남수단에서 기근이 일어나자 남수단에서 30,000명이 수단행을 선택했다.

2019년에 바시르 대통령이 물러난 뒤, 남수단의 살파 키르 대통령은 수단의 여러 반군 조직 지도자들을 초청해 협상의 로드맵을 작성했다.[4]

아비에이 분쟁

아비에이는 원래 수단의 남코르도판(South Kordofan) 주에 속하였던 곳으로, 면적은 1만 546㎢이다. 이 지역은 원유 매장량과 목초지가 풍부한 곳으로, 1980년대부터 수단 정부군과 남부 반군이 서로 차지하려고 수시로 충돌하여 '아프리카의 화약고'로 불린다. 2011년 7월 남수단(Republic of South Sudan)이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였으나, 아브에이는 특별행정구역(Special Administrative Status)으로 지정되어 수단과 남수단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으로 남았다.

수단 내전은 독립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1956년 1월 영국과 이집트의 통치로부터 독립하여 수단공화국이 수립되었으나, 정치적 실권이 집중된 북부의 아랍계 무슬림 정부와 기독교·토속신앙이 혼재된 남부의 다양한 부족들 간에 갈등을 빚어 독립 직전인 1955년부터 1972년까지 약 17년간 1차 내전을 겪었다. 1978년에서 1982년에 걸쳐 남부 및 남북 경계 지역에서 대규모 전(油田)이 발견되면서 그로 인한 경제적 권리가 2차 내전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1983년 수단 정부가 아디스아바바 협정을 파기하면서 2차 내전이 시작되어 2005년까지 이어졌다.

2005년 수단 정부와 남부 독립세력인 수단 인민해방운동군(SPLM/A) 간에 포괄적 평화협정(Comprehensive Peace Agreement;CPA)이 체결되어 2차 내전이 형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이 협정은 향후 남부의 자치를 인정하는 6년간의 전환기를 거쳐 남부의 분리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평화협정 체결 후 국제사법위원회에서 아비에이의 경계를 결정하였으나, 수단 정부가 불복함으로써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에 수단 정부와 반군이 협상하여 상설중재재판소(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PCA)에 중재를 요청하였고, 2009년 7월 아비에이의 경계가 재조정되어 유전지대인 헤글리그(Heglig) 등이 제외되었다.

2011년 1월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유권자 90% 이상이 투표한 결과 98.83%가 남부 수단의 독립을 찬성하였다. 이어 1월 17일 남북 수단의 내무장관이 만나 아비에이 지역을 공동관리하기로 합의하였으나, 같은 해 5월 수단 정부군이 아비에이를 점령하였다. 이로 인하여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남쪽으로 피란하였으나, 아프리카연합(AU)과 국제연합(UN)이 신속히 대응하여 사태가 진정되고 6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중재로 양측이 아비에이 지역의 비무장화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2012년 4월에는 남수단이 아비에이와 송유관이 연결되는 수단 영역의 헤글리그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독립 후 가장 큰 교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사태는 국제사회의 적극적 중재와 압박으로 남수단이 10일 만에 자진 철수하면서 진정되었다.

2013년 10월에는 아비에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단과 남수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수단을 지지하는 아랍계 미세리야족이 불참하고 딩카족만 참여한 투표에서 99% 이상이 남수단으로 귀속되는 것을 찬성하였으나, 수단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분쟁의 소지가 있다.[5]

지도

북아프리카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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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국가 가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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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1. 아비에이〉, 《위키백과》
  2. 수단 공화국〉, 《나무위키》
  3. 남수단〉, 《나무위키》
  4. 수단 공화국-남수단 관계 〉, 《나무위키》
  5. 아비에이 분쟁〉,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북아프리카 같이 보기

북아프리카 국가
북아프리카 도시
북아프리카 지리
북아프리카 바다
북아프리카 문화
북아프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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