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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퀘벡은 [[세인트로렌스강]] 하구에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지점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퀘벡이라는 지명은 알곤킨 언어로는 "강이 좁아지는 곳"을 뜻한다. 퀘벡은 1608년에 [[프랑스]] 탐험가인 사무엘 드 샹플랭이 이곳에 정착지를 세운 이후로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퀘벡 구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미국과 캐나다를 통틀어 도시에 남아있는 유일한 성벽으로 1985년에는 구도심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어권 아메리카 대륙의 핵심 도시로 퀘벡시는 퀘벡주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면서 캐나다 주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의 정착지 중 한 곳으로 1608년에 세워졌다. 퀘벡은 프랑스령인 누벨프랑스 및 영국령 로어캐나다의 식민지 수도이기도 하였으며 짧은 기간동안 통합 캐나다의 수도로 '오래된 수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1년부터 퀘벡은 캐나다에서 캘거리, 에드먼턴, 사스카툰에 이어 네 번째로 가장 경제가 발전된 도시이자 퀘벡주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은 도시이기도 하다. 퀘벡시의 성장 분야는 생명공학, 제조업, 관광업, 생명과학, 건강 및 영양 관련업, 보험 및 응용 기술 등이 있다. 퀘벡은 또한 항만에 있어서 주요한 도시이기도 하다. 퀘벡항은 캐나다에서 [[밴쿠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화물을 처리하는 항구이다. 도시에는 1823년 이래의 성채를 비롯하여 17세기 이래의 건축물이 많아 캐나다 최대의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1852년에 설립된 캐나다 최고(最古)의 라발대학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오래된 수도'(la vieille capitale)로 알려진 퀘벡은 북미에서 깊은 역사와 다양한 박물관 및 문화 시설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08년에 퀘벡시는 설립 400주년을 맞아 불어권 아메리카 대륙의 중심지로서 다채로운 축하 행사를 주관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0903&cid=40942&categoryId=34127 퀘벡(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ref> | ||
− | + | ==역사== | |
+ | ===선사시대=== | ||
+ | 퀘벡이 있는 곳은 1만 4천 년 전에 만년설 아래에 잠겨 있었다. 이천 년 이후, 이 지역은 물에 침수되었고 빙하가 녹으면서 샹플랭 해가 형성되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의 세인트로렌스강이 되었다. 이 당시 물 위에는 퀘벡 언덕만 보였고 6천 년 이후, 오늘날의 퀘벡이 수면 밖으로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 | ||
+ | ===설립 이전=== | ||
+ | 퀘벡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인 정착지 중 한 곳으로, 미국과 캐나다를 통틀어 구도심의 성벽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있는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1535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가 1536년 봄에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 성벽을 쌓았다. 이후 카르티에는 1541년에 이곳에 정착지를 세울 목표를 두고 돌아왔으나 원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상당히 추운 날씨로 일 년 만에 손을 떼어야 했다. | ||
+ | ===프랑스령=== | ||
+ | 1608년 7월 3일,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외교관인 새뮤엘 드 샹플랭이 [[세인트로렌스강]]에 이로쿼이족이 버려둔 정착지인 스타다코나에 퀘벡이라는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1629년 [[영국]]이 차지했다가 곧 다시 프랑스에 넘어가는 등 여러 차례 영국과 프랑스 간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 사이 이 곳은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뉴프랑스의 행정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나, 1763년 파리 조약으로 정식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그 후로도 프랑스인은 프랑스어 사용과 관습 유지를 인정받았으나, 영국계와의 대립이 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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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지배가 끝난 1763년에 다다라서는 퀘벡은 인구 8천 명의 마을로 성장하였으며 이곳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성벽과 저택은 근처에 있는 생장과 생로쉬의 판자촌과 대비를 이루었다. 퀘벡은 도시풍이 감도는 작은 식민지 도시였지만 주변 시골 경치와 잘 어우러졌으며 인근 주민들은 잉여 농산물과 장작을 프랑스에 거래하기도 하였다. | ||
+ | ===영국령=== | ||
+ | 1775년 12월 31일, [[미국]]에서 한창 영국에 맞서 독립 혁명이 일어나던 도중, 미국 독립군들이 퀘벡을 영국령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캐나다 침공 작전의 일환으로 영국군과 퀘벡 전투를 벌였다. 이 도중 리처드 몽고메리가 전사하고 베네딕트 아놀드가 부상당했으며, 대니얼 모건 등 400명 이상이 포로가 되었다. 미 독립군의 패배에 따라 퀘벡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미국의 일부로 편입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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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캐나다와 벌이던 1812년 전쟁은 퀘벡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후 미국군의 공격을 염려하여 영국군은 1820년에 퀘벡 시타델을 건설하였다. 미국군은 1812년 이후로 캐나다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시타델은 1871년까지 영국군 최대의 주둔지로 남게 되었다. 이후 퀘벡 시타델은 여전히 캐나다 국군이 쓰고 있고 관광 명소로 남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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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0년, 캐나다 주가 생긴 이후로, 퀘벡은 킹스턴, 몬트리올, 토론토 및 오타와와 더불어 주도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1867년, 오타와가 캐나다 연방의 수도가 되었다. 연방제 국가 건설을 위한 퀘벡 회담과 캐나다 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 ||
+ | ===연방 결성 이후=== | ||
+ | 캐나다 연방이 결성된 지 6년이 지난 1872년, 캐나다 총독인 더퍼린 경이 퀘벡 성채 안에 관저를 짓기로 하였고 영국계 장교들의 도움으로 총독 관저가 지어졌다. 더퍼린 경이 퀘벡에 온 이후, 이 도시를 관광 도시로 변모하고자 하였다. 더퍼린 경은 성채를 온전히 보존하고 벽을 재건하였으며 성 문을 확장하고 더퍼린 경의 이름을 딴 테라스를 지을 것을 지시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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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와 20세기 내내 퀘벡은 영국 등지에서 북미에 정착하려는 이민자들의 주요 목적지였으며, 1830년대에 퀘벡시는 연간 3만 명의 이민자를 받게 되었으며 3분의 2는 아일랜드인이였다.<ref>〈[https://yoda.wiki/wiki/Quebec_City 퀘벡시]〉, 《요다위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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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 | ||
+ | 퀘벡은 여러모로 캐나다의 다른 도시와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일단 구 시가지는 고풍스런 누벨 프랑스의 향취를 보전하고 있어서 처음 온 사람은 여기가 북미인가 프랑스인가 헷갈리게 된다. 개척시대의 유산이 보존된 중소 도시가 나름대로 꽤 있는 미국인들조차도 퀘벡 시티에 오면 북미에서 이곳 만큼 유럽식 미관을 잘 간직한 도시는 없을 거라고 인정한다. 비외 케벡 (Vieux-Québec, 구 퀘벡, 구시가지)과 누보 케벡(Nouveau-Québec, 신 시가지)이 있는데, 관광지로써 인기가 좋은 쪽은 단연 구도심 지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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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퀘벡은 대체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다. 북아메리카에 보존된 프랑스식 도시이다. 프랑스인 관점에서도 당시 모습이 잘 보존된다는 것으로 인해 이색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성수기인 여름이 되면 역사 지구 구도심 일대는 관광객과 지역 인구가 뒤섞여 인파로 북적인다. 구도심은 들어가는 진입로부터 떡하니 성벽이 등장하는 등 예사롭지 않다. 북미에서 흔치 않은 성벽 도시이며, 미국, 캐나다 유일의 현존 읍성이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역사 도시로 등재되었다. 퀘벡 시티의 명불허전 랜드마크인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인근을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는 산책로이다. 1877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886년에 완공된 퀘벡주의 주의회 의사당 건물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도심인 Vieux-Québec 지역 안에 속해있진 않고 구도심 바깥에 위치하고 있지만 거리가 가깝다. 내부와 외관 모두 꽤 고풍스러운 멋이 있어서 바로 근처의 시타델이나 구도심 지역을 방문하는 김에 같이 둘러보기 괜찮은 장소로 꼽힌다.<ref>〈[https://namu.wiki/w/%ED%80%98%EB%B2%A1%EC%8B%9C 퀘벡시]〉, 《나무위키》</ref> | ||
==채굴업체 입주상황== | ==채굴업체 입주상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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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의 2018년 1월 10일 보도내역과 블룸버그 2월 2일 보도내역에 따르면 6개월전만 하더라도 퀘벡에는 상업적인 규모를 갖춘 채굴기업들이 없었으나 지금은 비트팜스, 비트메인 테크놀로지스가 운영을 하고 있으며 BTC.top, 비트퓨리그룹도 이전준비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35곳의 채굴기업들이 전화로 문의를 하면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채굴업체는 아니지만 전력소모가 큰 기업들인 아마존닷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센서도 이미 퀘백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의 2018년 1월 10일 보도내역과 블룸버그 2월 2일 보도내역에 따르면 6개월전만 하더라도 퀘벡에는 상업적인 규모를 갖춘 채굴기업들이 없었으나 지금은 비트팜스, 비트메인 테크놀로지스가 운영을 하고 있으며 BTC.top, 비트퓨리그룹도 이전준비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35곳의 채굴기업들이 전화로 문의를 하면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채굴업체는 아니지만 전력소모가 큰 기업들인 아마존닷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센서도 이미 퀘백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 | ||
− | 블룸버그 통신의 전망으로는 2018년에 최소 50여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업체들이 캐나다에 등록할 상 싶고 캐나다도 암호화폐 채굴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 + | 블룸버그 통신의 전망으로는 2018년에 최소 50여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업체들이 캐나다에 등록할 상 싶고 캐나다도 암호화폐 채굴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비트팜스]] 채굴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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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D%83%80%EC%99%80 오타와]〉, 《위키백과》 | ||
+ | * 〈[https://namu.wiki/w/%ED%80%98%EB%B2%A1%EC%8B%9C 퀘벡시]〉, 《나무위키》 | ||
+ | * 〈[https://yoda.wiki/wiki/Quebec_City 퀘벡시]〉, 《요다위키》 | ||
+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50903&cid=40942&categoryId=34127 퀘벡(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 정보라 기자, 〈[http://decenter.sedaily.com/NewsView/1RUDX75LOW 캐나다 퀘벡, 전세계 암호화폐 채굴기업에 "러브콜"]〉, 《서울경제》, 2018-01-11 | * 정보라 기자, 〈[http://decenter.sedaily.com/NewsView/1RUDX75LOW 캐나다 퀘벡, 전세계 암호화폐 채굴기업에 "러브콜"]〉, 《서울경제》, 2018-01-11 | ||
* 윤재준 기자, 〈[http://www.fnnews.com/news/201802021513272660 中 가상화폐 규제에 투자자들 전력 싸고 추운 캐나다로]〉, 《파이낸셜뉴스》, 2018-02-02 | * 윤재준 기자, 〈[http://www.fnnews.com/news/201802021513272660 中 가상화폐 규제에 투자자들 전력 싸고 추운 캐나다로]〉, 《파이낸셜뉴스》, 2018-02-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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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프랑스어: Québec, 영어: Quebec)은 캐나다 퀘벡주의 주도이다. 퀘벡주 카피탈나시오날 행정 지역의 중심 도시로, 퀘벡 주의회와 같은 주요 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인구는 약 55만 명이고 광역 인구는 84만 명으로 퀘벡주에서 몬트리올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이다.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구도심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1]
목차
개요[편집]
퀘벡은 세인트로렌스강 하구에 강폭이 갑자기 좁아지는 지점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퀘벡이라는 지명은 알곤킨 언어로는 "강이 좁아지는 곳"을 뜻한다. 퀘벡은 1608년에 프랑스 탐험가인 사무엘 드 샹플랭이 이곳에 정착지를 세운 이후로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퀘벡 구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미국과 캐나다를 통틀어 도시에 남아있는 유일한 성벽으로 1985년에는 구도심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어권 아메리카 대륙의 핵심 도시로 퀘벡시는 퀘벡주 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면서 캐나다 주요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의 정착지 중 한 곳으로 1608년에 세워졌다. 퀘벡은 프랑스령인 누벨프랑스 및 영국령 로어캐나다의 식민지 수도이기도 하였으며 짧은 기간동안 통합 캐나다의 수도로 '오래된 수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2001년부터 퀘벡은 캐나다에서 캘거리, 에드먼턴, 사스카툰에 이어 네 번째로 가장 경제가 발전된 도시이자 퀘벡주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은 도시이기도 하다. 퀘벡시의 성장 분야는 생명공학, 제조업, 관광업, 생명과학, 건강 및 영양 관련업, 보험 및 응용 기술 등이 있다. 퀘벡은 또한 항만에 있어서 주요한 도시이기도 하다. 퀘벡항은 캐나다에서 밴쿠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화물을 처리하는 항구이다. 도시에는 1823년 이래의 성채를 비롯하여 17세기 이래의 건축물이 많아 캐나다 최대의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1852년에 설립된 캐나다 최고(最古)의 라발대학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오래된 수도'(la vieille capitale)로 알려진 퀘벡은 북미에서 깊은 역사와 다양한 박물관 및 문화 시설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08년에 퀘벡시는 설립 400주년을 맞아 불어권 아메리카 대륙의 중심지로서 다채로운 축하 행사를 주관하였다.[2]
역사[편집]
선사시대[편집]
퀘벡이 있는 곳은 1만 4천 년 전에 만년설 아래에 잠겨 있었다. 이천 년 이후, 이 지역은 물에 침수되었고 빙하가 녹으면서 샹플랭 해가 형성되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의 세인트로렌스강이 되었다. 이 당시 물 위에는 퀘벡 언덕만 보였고 6천 년 이후, 오늘날의 퀘벡이 수면 밖으로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
설립 이전[편집]
퀘벡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인 정착지 중 한 곳으로, 미국과 캐나다를 통틀어 구도심의 성벽이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있는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1535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가 1536년 봄에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 성벽을 쌓았다. 이후 카르티에는 1541년에 이곳에 정착지를 세울 목표를 두고 돌아왔으나 원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상당히 추운 날씨로 일 년 만에 손을 떼어야 했다.
프랑스령[편집]
1608년 7월 3일, 프랑스의 탐험가이자 외교관인 새뮤엘 드 샹플랭이 세인트로렌스강에 이로쿼이족이 버려둔 정착지인 스타다코나에 퀘벡이라는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1629년 영국이 차지했다가 곧 다시 프랑스에 넘어가는 등 여러 차례 영국과 프랑스 간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그 사이 이 곳은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뉴프랑스의 행정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나, 1763년 파리 조약으로 정식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그 후로도 프랑스인은 프랑스어 사용과 관습 유지를 인정받았으나, 영국계와의 대립이 심했다.
프랑스 지배가 끝난 1763년에 다다라서는 퀘벡은 인구 8천 명의 마을로 성장하였으며 이곳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성벽과 저택은 근처에 있는 생장과 생로쉬의 판자촌과 대비를 이루었다. 퀘벡은 도시풍이 감도는 작은 식민지 도시였지만 주변 시골 경치와 잘 어우러졌으며 인근 주민들은 잉여 농산물과 장작을 프랑스에 거래하기도 하였다.
영국령[편집]
1775년 12월 31일, 미국에서 한창 영국에 맞서 독립 혁명이 일어나던 도중, 미국 독립군들이 퀘벡을 영국령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캐나다 침공 작전의 일환으로 영국군과 퀘벡 전투를 벌였다. 이 도중 리처드 몽고메리가 전사하고 베네딕트 아놀드가 부상당했으며, 대니얼 모건 등 400명 이상이 포로가 되었다. 미 독립군의 패배에 따라 퀘벡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미국의 일부로 편입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이 캐나다와 벌이던 1812년 전쟁은 퀘벡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후 미국군의 공격을 염려하여 영국군은 1820년에 퀘벡 시타델을 건설하였다. 미국군은 1812년 이후로 캐나다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시타델은 1871년까지 영국군 최대의 주둔지로 남게 되었다. 이후 퀘벡 시타델은 여전히 캐나다 국군이 쓰고 있고 관광 명소로 남게 되었다.
1840년, 캐나다 주가 생긴 이후로, 퀘벡은 킹스턴, 몬트리올, 토론토 및 오타와와 더불어 주도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1867년, 오타와가 캐나다 연방의 수도가 되었다. 연방제 국가 건설을 위한 퀘벡 회담과 캐나다 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연방 결성 이후[편집]
캐나다 연방이 결성된 지 6년이 지난 1872년, 캐나다 총독인 더퍼린 경이 퀘벡 성채 안에 관저를 짓기로 하였고 영국계 장교들의 도움으로 총독 관저가 지어졌다. 더퍼린 경이 퀘벡에 온 이후, 이 도시를 관광 도시로 변모하고자 하였다. 더퍼린 경은 성채를 온전히 보존하고 벽을 재건하였으며 성 문을 확장하고 더퍼린 경의 이름을 딴 테라스를 지을 것을 지시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 내내 퀘벡은 영국 등지에서 북미에 정착하려는 이민자들의 주요 목적지였으며, 1830년대에 퀘벡시는 연간 3만 명의 이민자를 받게 되었으며 3분의 2는 아일랜드인이였다.[3]
관광[편집]
퀘벡은 여러모로 캐나다의 다른 도시와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일단 구 시가지는 고풍스런 누벨 프랑스의 향취를 보전하고 있어서 처음 온 사람은 여기가 북미인가 프랑스인가 헷갈리게 된다. 개척시대의 유산이 보존된 중소 도시가 나름대로 꽤 있는 미국인들조차도 퀘벡 시티에 오면 북미에서 이곳 만큼 유럽식 미관을 잘 간직한 도시는 없을 거라고 인정한다. 비외 케벡 (Vieux-Québec, 구 퀘벡, 구시가지)과 누보 케벡(Nouveau-Québec, 신 시가지)이 있는데, 관광지로써 인기가 좋은 쪽은 단연 구도심 지역이다.
퀘벡은 대체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다. 북아메리카에 보존된 프랑스식 도시이다. 프랑스인 관점에서도 당시 모습이 잘 보존된다는 것으로 인해 이색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성수기인 여름이 되면 역사 지구 구도심 일대는 관광객과 지역 인구가 뒤섞여 인파로 북적인다. 구도심은 들어가는 진입로부터 떡하니 성벽이 등장하는 등 예사롭지 않다. 북미에서 흔치 않은 성벽 도시이며, 미국, 캐나다 유일의 현존 읍성이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역사 도시로 등재되었다. 퀘벡 시티의 명불허전 랜드마크인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인근을 방문하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하는 산책로이다. 1877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886년에 완공된 퀘벡주의 주의회 의사당 건물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도심인 Vieux-Québec 지역 안에 속해있진 않고 구도심 바깥에 위치하고 있지만 거리가 가깝다. 내부와 외관 모두 꽤 고풍스러운 멋이 있어서 바로 근처의 시타델이나 구도심 지역을 방문하는 김에 같이 둘러보기 괜찮은 장소로 꼽힌다.[4]
채굴업체 입주상황[편집]
2017년 9월에 중국정부에서 가상화폐에 규제를 진행하는데 따라 기존에 중국에서 채굴사업을 추진하던 업체들은 뿔뿔이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였으며 상당수 업체가 퀘백으로 넘어갔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의 2018년 1월 10일 보도내역과 블룸버그 2월 2일 보도내역에 따르면 6개월전만 하더라도 퀘벡에는 상업적인 규모를 갖춘 채굴기업들이 없었으나 지금은 비트팜스, 비트메인 테크놀로지스가 운영을 하고 있으며 BTC.top, 비트퓨리그룹도 이전준비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35곳의 채굴기업들이 전화로 문의를 하면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채굴업체는 아니지만 전력소모가 큰 기업들인 아마존닷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센서도 이미 퀘백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전망으로는 2018년에 최소 50여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업체들이 캐나다에 등록할 상 싶고 캐나다도 암호화폐 채굴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비트팜스 채굴장이 있다.
채굴사업 외부여건[편집]
채굴사업의 특성상 전자기기들의 작동에 따른 전력소모와 과열을 방지하기 위한 냉각시설에 소모하는 전력은 상당한 규모에 이르기에 전력공급의 원활여부와 전력단가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캐나다 퀘벡은 이 면에서 상당히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며 천혜의 채굴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전력공급
퀘벡에서 전력공급을 담당하는 국영전력회사 하이드로 퀘백 (Hydro Quebec) 은 수력발전회사이며 캐나다 3대 국영전력회사에서 발전용량 규모가 두 번째에 위치하고 수력발전회사에는 첫 위치를 차지한다. 캐나다 수력자원의 40% 이상이 퀘백에 있으며 이러한 원인으로 하이드로 퀘백의 수력발전규모는 전 세계에서도 앞에 서있다. 2001년도 수력발전용량은 33,016MW이며 최대발전가능용량은 66,286MW 현유 기술로 발전가능한 용량은 34,844MW이다. 수력발전은 63개 수력발전소에서 이루어지며 115KV와 735KV 배송선로로 전력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하이드로 퀘벡의 소개에 따르면 60만 가구가 10년간 사용할 전력도 확보해놓고 있다고 한다.
2017년말 기준으로 퀘벡시 주택용도의 전력요금은 5.82 CAD (4.56 USD)/kW, 2018년 4월 1일부터 집행하는 액외용도의 추가 전력사용은 3.30 CAD (2.58 USD)이다.
▷ 기후
퀘벡의 기후특징은 겨울이 길고 추우며 눈이 많이 온다. 7월 평균온도 최고/최저 기온이 26/13 이며 1월 평균 최고/최저 기온이 -8/-18 이다. 상기 기후 특징으로 채굴사업을 추진하는데 냉각시설에 투입하는 전력을 줄일 수 있으므로 상당히 좋은 외부 환경조건이 주어져 있다.
▷ 기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어있으며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쉽다.[5][6][7][8]
채굴관련 정부정책[편집]
2018년 3월 6일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하이드로 퀘벡은 지난 몇 주에 수백 차에 달하는 전력 사용 신청서를 접수하였으며 누계 총량은 9,000MW를 초과한다. 이는 이 회사의 현행 37,000MW 발전량의 1/4을 초과하며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의 상한을 넘어선다고 하였다. 채굴회사들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 업체들이다. 퀘벡주 정책은 채굴업체들의 전력소요는 기존의 주민들과 기업사용자들의 전력사용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되는 걸로 마지노선을 긋고 있다.[9]
2018년 6월 7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퀘벡주 정부가 채굴업자들의 전력사용총량을 500MW로 제한하도록 요청하였다. 이외 해당 산업계의 역할을 재정비할 때까지 신규 사업자 전력신청은 중단하는 걸로 요청했다.[10]
2018년 6월 22일 하이드로 퀘벡은 채굴자들을 심사한 후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새로운 전력공급 방침에 따르면, 채굴자들은 본 기관이 각 메가와트(Megawatt) 당 창출하는 일자리, 현지 주민 고용여부 그리고 투자금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평가 점수를 바탕으로 채굴자들은 한정된 500-메가와트 상당의 전력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하이드로-퀘벡은 새로운 채굴 시설을 가장 빨리 가동할 수 있는 기관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채굴자들은 지역 전력 수요에 따라서 사용 전력을 연간 최대 300시간까지 줄여야 한다.[11]
2019년 5월 4일 하이드로 퀘벡은 블록체인산업에 300MW전력을 추가 공급한다고 전했다. 이는 기존에 현유 사용자들한테 허가를 내렸던 158MW에 달하는 전력공급과 기타 도시공용시설기관에서 허가를 내준 210MW 전력공급량외에 증가 된 공급수량이다. 신규로 증가된 전력은 채굴기업들의 취직인원 수량, 취직인원 급여총액, 투자가치와 열 회수 등 방면에서 평가점수를 매겨 분배한다. [12]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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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오타와〉, 《위키백과》
- ↑ 〈퀘벡(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퀘벡시〉, 《요다위키》
- ↑ 〈퀘벡시〉, 《나무위키》
- ↑ Dick, 〈比特币矿工开始关注魁北克 强大的电力供应成为魁北克的傲人优势〉, 《金色财经》, 2017-11-21
- ↑ 정보라 기자, 〈캐나다 퀘벡, 전세계 암호화폐 채굴기업에 '러브콜'〉, 《디센터》, 2018-01-11
- ↑ 윤재준 기자, 〈中 가상화폐 규제에 투자자들 전력 싸고 추운 캐나다로 - 〉, 《파이낸셜뉴스》, 2018-02-02
- ↑ 秋雨罄石, 〈加拿大电力市场报告〉, 《百度文库》, 2011-11-03
- ↑ Lester Coleman, 〈魁北克电力公司疲于应付矿工雪花般的电力请求〉, 《价值区块链》, 2018-03-06
- ↑ 김명희 기자, 〈캐나다 퀘벡, 암호화폐 채굴 프로젝트 승인 중단 "전력요금 인상"〉, 《 전자신문 》, 2018-06-08
- ↑ 〈캐나다 퀘벡주, 암호화폐 채굴자 전력 경쟁 심사 제안〉, 《 블록인프레스 》, 2018-06-22
- ↑ 区块链铅笔, 〈加拿大的“丰水期” 监管机构推挖矿电力使用新规〉, 《链财经》, 2019-05-04
참고자료[편집]
- 〈오타와〉, 《위키백과》
- 〈퀘벡시〉, 《나무위키》
- 〈퀘벡시〉, 《요다위키》
- 〈퀘벡(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정보라 기자, 〈캐나다 퀘벡, 전세계 암호화폐 채굴기업에 "러브콜"〉, 《서울경제》, 2018-01-11
- 윤재준 기자, 〈中 가상화폐 규제에 투자자들 전력 싸고 추운 캐나다로〉, 《파이낸셜뉴스》, 2018-02-02
- 김명희 기자, 〈캐나다 퀘벡, 암호화폐 채굴 프로젝트 승인 중단 "전력요금 인상"〉, 《전자신문》, 2018-06-08
- 블록인프레스, 〈캐나다 퀘벡주, 암호화폐 채굴자 전력 경쟁 심사 제안〉, 《블록인프레스》, 2018-06-22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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