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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중기의 목조 건물로, 단일 주거 건축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오죽헌'이라는 명칭은 뒤뜰에 검은 대나무가 자란 것을 계기로 붙었다. 검은 대나무를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오죽(烏竹)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친정집으로 이곳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 |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중기의 목조 건물로, 단일 주거 건축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오죽헌'이라는 명칭은 뒤뜰에 검은 대나무가 자란 것을 계기로 붙었다. 검은 대나무를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오죽(烏竹)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친정집으로 이곳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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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를 비롯해 자경문, 율곡기념관 등을 신축하고 강릉시립박물관과 통합되어 1998년에 개관하였다. 오죽헌 입구에서는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라는 소개 문구로 장소를 소개하였다. | 1975년에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를 비롯해 자경문, 율곡기념관 등을 신축하고 강릉시립박물관과 통합되어 1998년에 개관하였다. 오죽헌 입구에서는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라는 소개 문구로 장소를 소개하였다. | ||
− | 오죽헌은 본래 신사임당 생전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약 백년 전인 15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이 상속되어 신사임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죽헌을 건축한 인물은 | + | 오죽헌은 본래 신사임당 생전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약 백년 전인 15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이 상속되어 신사임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죽헌을 건축한 인물은 최치운이라는 강릉의 명사이며, 최치운에게서 그의 아들 최응현에게 상속되었고, 최응현에게서 그의 사위인 용인 이씨 이사온에게로 상속되었으며, 이사온에게서 평산 신씨 신명화에게 상속되었다. 이 신명화가 바로 신사임당의 친부이자, 율곡 이이의 외조부이다. 신명화는 사위인 권처균에게 물려주었고, 오죽헌의 택호는 권처균의 호 오죽헌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사임당의 외고조부인 최치운에게서 신사임당에게까지 내려온 고택이 바로 오죽헌인 것이다. |
== 개요 == | == 개요 == |
2022년 12월 28일 (수) 17:30 기준 최신판
오죽헌(烏竹軒)은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생가이다. 보물 제165호, 정식 보물 명칭은 강릉 오죽헌(江陵烏竹軒)'이다.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중기의 목조 건물로, 단일 주거 건축으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오죽헌'이라는 명칭은 뒤뜰에 검은 대나무가 자란 것을 계기로 붙었다. 검은 대나무를 까마귀 오(烏) 자를 써서 오죽(烏竹)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친정집으로 이곳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
1975년에 오죽헌 정화 사업으로 율곡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를 비롯해 자경문, 율곡기념관 등을 신축하고 강릉시립박물관과 통합되어 1998년에 개관하였다. 오죽헌 입구에서는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라는 소개 문구로 장소를 소개하였다.
오죽헌은 본래 신사임당 생전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약 백년 전인 15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이 상속되어 신사임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죽헌을 건축한 인물은 최치운이라는 강릉의 명사이며, 최치운에게서 그의 아들 최응현에게 상속되었고, 최응현에게서 그의 사위인 용인 이씨 이사온에게로 상속되었으며, 이사온에게서 평산 신씨 신명화에게 상속되었다. 이 신명화가 바로 신사임당의 친부이자, 율곡 이이의 외조부이다. 신명화는 사위인 권처균에게 물려주었고, 오죽헌의 택호는 권처균의 호 오죽헌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사임당의 외고조부인 최치운에게서 신사임당에게까지 내려온 고택이 바로 오죽헌인 것이다.
목차
개요[편집]
오죽헌은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집이다. 사임당 신씨는 뛰어난 여류 예술가였고 현모양처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며, 신씨의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 시대에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조선 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1390∼1440)이 지었고, 단종 시대에 병조 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했던 최응현의 고택으로 사용되었다. 최응현은 훗날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인 이사온(李思溫)에게 자신의 저택을 물려주게 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도 새부리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간결한 형태로 짜은 익공계 양식으로 꾸몄다. 우리나라 주택 건축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건물이다.
조선 시대 중기의 양반집 모습을 보존한 희귀한 예로서 주심포(柱心包) 계통의 청순하고 소박한 팔작집이다. 평면 구조는 왼쪽으로 향한 2칸이 대청이고 오른쪽 1칸이 온돌방으로 되었으며, 기둥머리에는 창방(昌枋)만이 돌려지고 그 위에 기둥머리를 놓고 초공(初工) 하나로 장설(長舌)과 주심(柱心)도리를 받도록 했고, 기둥 사이에는 화반(華盤)이 한 개 있을 뿐이다. 추녀도 너무 들리지 않고 원만하다. 율곡 이이의 이종사촌인 권처균(權處均)이 자신의 저택 뒤뜰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인 오죽이 자라고 있어서 오죽헌이라는 호를 지었고, 오죽헌이라는 이름 또한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죽헌 바깥쪽에 위치한 외삼문(外三門)인 자경문(自警門)은 율곡 이이가 20세 시절에 지은 자경문(自警文)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가에는 호해정사(湖海精舍)라고 불린 사랑채가 있다. 그 외에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은 별당인 몽룡실(夢龍室)이 있는데, 이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을 때 검은 용이 나타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몽룡실 오른쪽에는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았던 온돌방이 있고, 왼쪽에는 율곡 이이가 6세 시절까지 공부했던 마루방이 있다. 현재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1788년에는 정조의 명령에 따라 율곡 이이의 저서인 《격몽요결》과 유품인 벼루를 보관하기 위한 건물인 어제각(御製閣)이 건립되었는데, 이 건물은 1975년에 진행된 오죽헌 정화 사업에 따라 북쪽으로 옮겨졌다. 옛 어제각 터에는 율곡 이이의 영정이 보관된 문성사(文成祠)가 건립되었다. 1977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5000원 지폐 뒷면의 디자인 소재로 사용되었으며 2006년에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5000원 지폐 앞면에도 오죽헌 몽룡실이 그려져 있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촬영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연혁[편집]
- 조선초기 : 최응현 소유
- 1504년(연산군 10년) : 신사임당 탄생
- 1536년(중종 31년) : 율곡 이이 탄생
- 1788년(정조12년) : 율곡 친필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유년에 쓰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한 어제각(御製閣) 건립
- 1962년 11월 2일 : 제1회 율곡제전(栗谷祭典) 봉행
- 1963년 : 보물 제165호로 지정
- 1975년 6월 30일 : 권씨가로부터 관리 이전
- 1975년 10월 :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
- 1998년 1월 17일 : 강릉시립박물관과 통합
주요 시설 및 건축물[편집]
오죽헌[편집]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 용인 이씨에게 상속되었다.
용인 이씨는 딸을 다섯 두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외손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했는데, 이것이 후에 집 이름이 되었다.
오죽헌은 조선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 건물로 4칸짜리 대청과 2칸짜리 방과 마루로 구성돼 있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천정은 고미반자를 두었으며 삼면은 창호문으로 둘렀다. 주심포와 유사한 이익공계 형식을 보이고 있어, 주심포 집에서 익공식 집으로 넘어가는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조선전기 주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써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적 가치 외에도, 이 곳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남으로써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문성사[편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道德博聞 安民立政)'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율곡 선생이 쓴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건축된 어제각이 있었으나 사랑채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문성사를 건립하여 율곡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율곡 이이 선생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1975년에 표준영정으로 선정되었다. 선비들의 평상복인 심의를 입고 검은색 복건을 쓰고 있다. 현판 글씨 '문성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사랑채 및 안채[편집]
사랑채는 바깥 주민이 거처하던 곳이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곳이다.
어제각[편집]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사용했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율곡기념관[편집]
1965년 건립되었던 율곡기념관이 헐리고 지어지기를 반복하다 2012년 10월 21일 재건축하여 재개관하게 되었다.
전시관에는 오죽헌 소장유물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증한 유물을 더한 신사임당, 율곡 이이, 옥산 이우, 이매창, 고산 황기로의 작품과 이우 후손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사임당 작품으로는 채색 [초충도]와 수묵화, [초서]·[전서] 등의 글씨가 전시돼 있으며, 이이의 유품으로는 학문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술한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과 정조대왕이 어람한 뒤 어제어필한 글씨가 새겨져 있는 [벼루], 그리고 그의 저서들이 전시돼 있다.
매창 작품으로는 [참새]를 비롯한 서정성이 짙은 수묵화와 조선중기의 묵매양식을 잘 보여주는 [묵매도], 이우의 작품으로는 빠르면서 대담하고, 다소 거친 듯 하면서도 분방한 필선이 잘 드러나 있는 그림과 글씨가 전시돼 있다.
황기로의 작품으로는 조선시대 초서의 대가답게 활달하고 분방한 필치를 보여주는 [초서-이군옥 시]와 [초서가행 원석]이 전시돼 있으며 그외 옥산 학정공파의 사회적 지위·문화적 교유·예술적 역량을 읽을 수 있는 덕수 이씨 후손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향토민속관[편집]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용품과 생업도구, 그리고 김영숙선생 기증유물이 있다.
전시실을 들어서면 한약방용구와 각종 생업도구인 직조기기 · 도량기구 · 어업용구 · 목공구 · 산간지방에서 사용하던 사냥용구 등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고, 한쪽으로 강릉단오제의 전경이 디오라마로 전시되어 있다.
주로 강원 산간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물통방아를 경계로, 강원도 민예품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식생활 관련용품 · 여성생활용품 · 남성들의 거처인 사랑방에 놓이는 문방제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영숙선생 기증유물실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유아복, 젊은 남녀가 하나로 합쳐 위로는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손을 후세에 존속시키기 위해서 치르는 혼인의 예에 사용되었던 혼례복, 오정색과 오간색의 천연염직물, 조형미가 돋보이는 노리개를 비롯한 장신구가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강릉시립박물관[편집]
영동지방에서 출토된 각종 선사 · 역사유물과 도자기, 고문서, 전적, 서화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로는 발한동 유적, 신석기시대의 유물로는 지경리 유적,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방내리, 포남동 유적, 초기철기시대의 유물로는 강문동, 병산동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원삼국시대 유물로는 대규모 취락 유적지로서 원삼국시대의 주거양식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는 안인리 유적 출토물과 집자리가 복원 · 전시되어 있다.
고분 유적으로는 신라시대의 고분인 초당동 유적이 모형으로 제작 · 전시되어 있으며, 불교유물로는 한송사지석불좌상이 전시되어 있다.
도자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재현한 디오라마 옆에는 강릉시 현내리에서 출토된 고려백자와 보광리 분청자요지에서 출토된 분청사기편이 전시되어 있다. 그 앞에는 임영지 · 계첩 · 교지 · 상서 · 난설헌시집목판초간본 · 홍길동전 등 우리지역과 관련된 역사서와 문집이 전시되어 있으며, 금강산도 · 관동팔경도 외에 영동지방 서화가인 박기정 · 황승규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율곡인성교육관[편집]
2014년에 착공하여 2016년 11월 준공하였으며, 지상1층 지하1층 1,761m2로 건축되었다.
1층은 안내데스크, 강릉의 역사유래 설명 및 동계올림픽 홍보 동영상, 지하1층은 교육, 영상, 체험 디지털관으로 구성되어 관람객 및 초 · 중 · 고등학생의 교육 및 체험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야외전시장[편집]
선사시대 집자리와 묘제, 그리고 여러 석조물이 전시돼 있다.
원삼국시대 유물로는 대규모 취락 유적지로서 원삼국시대의 주거양식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는 안인리 유적 출토물과 집자리가 복원 · 전시되어 있다.
역사문화관 측면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48호인 조선시대 강릉부사 및 관찰사의 선정송덕비와 청동기시대 고인돌 하부구조 및 신라고분이 복원 · 전시되어 있으며, 향토민속관 측면에는 강릉지방에서 수집된 불교관련 석조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한편에는 관람객이 편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장독대가 조성되어 있으며, 민간신앙 대상물인 진또배기도 있다.
관광팁[편집]
오죽헌은 경포호의 죽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뜰에 줄기가 손가락만하고 색이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오죽헌'이라 이름 붙여졌다.잘 알려진 바와 같이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그러나 오죽헌은 그의 친가가 아니라 외가, 곧 신사임당의 친정집 이었다. '오죽헌'은 선교장에서 650m쯤 계속 가면 7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서 좌회전해 400여 미터 가면 ‘오죽헌’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 '오죽헌'에는 관광객을 배려한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시내로 오가는 버스도 자주 다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다.하지만, 오죽헌 안에 매점 이외에는 따로 식사할 곳은 없기 때문에 경포대나 시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오죽헌'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잘 알려진 이유는 조선 시대의 가장 큰 학자로 손꼽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이기 때문이다. '오죽헌'에는 사임당이 율곡을 낳기 전에 용꿈을 꿨다는 데서 이름 지어진 '몽룡실'이 있는데, 이곳은 온돌방과 툇마루로 된 정면 3큰 측면 2칸의 일자형 집으로 별당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오죽헌'에는 샛담 서쪽에 있는 평범한 건물인 '안채'가 있는데, '안채'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해 놓은 것이다.이외에도 정조 임금이 율곡의 유품인 '격몽요결'의 원본과 벼루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인 '어제각'이 있다.
관람안내[편집]
- 매표시간 : 09:00 ~ 17:00
- 관람시간 : 09:00~18:00
- 휴관일 : 연중무휴
- 문화재 공개관람료(오죽헌/시립박물관)
- 개인 : 어른 3,000원 청소년, 군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만 65세이상 무료
- 단체(30명이상) :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500원
- 애완동물 입장불가
- 주차요금 : 무료
교통안내[편집]
-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죽헌동 201)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오죽헌/시립박물관 홈페이지 - https://www.gn.go.kr/museum/index.do
- 〈오죽헌〉, 《위키백과》
- 〈오죽헌〉, 《나무위키》
- 〈강릉 오죽헌 (江陵 烏竹軒)〉, 《국가문화유산포털》
- 〈오죽헌〉, 《강릉시》
- 〈강릉오죽헌〉, 《강릉관광개발공사》
- 〈<작가와 함께하는 문화유산여행> 오죽헌에서 찾은 뜻 경포호 신혼부부에게서 찾다〉, 《문화유산채널》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