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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7일 (월) 10:38 기준 최신판

봉은사(奉恩寺, Bongeunsa)
봉은사(奉恩寺, Bongeunsa)
봉은사 전경
봉은사 천왕문
봉은사 판전
일제강점기에 찍은 봉은사 전경

봉은사(奉恩寺, Bongeunsa)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사찰이며,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794년 연회국사가 창건한 봉은사는 21점의 지정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사찰 중 하나다.

개요[편집]

봉은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으로, 조계사의 말사(末寺)이다.

본래는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산사(山寺)였지만, 강남 지역의 발달 및 도심화로 인해 현재처럼 도시 가운데 있는 모습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선정릉의 능침사찰이었고, 현재는 흔치 않은 도심 속의 고찰(古刹)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강남 한복판에 있어서 다른 산사들과는 달리 접근이 편리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려면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현임 주지는 원명 스님이다.

역사[편집]

조선불교의 중흥도량[편집]

봉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했던 고승으로 원성왕에 의해서 국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견성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 들어 견성암은 수도산 아래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이름도 봉은사로 고쳐 부르고 당시 불교중흥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이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특별히 봉은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중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붕어하자 다음 왕위에 오른 사람이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다.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이후 8년 동안 문정왕후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8년의 섭정이 끝난 후에도 한 동안 문정왕후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기간 동안 문정왕후는 폐지된 승과고시를 부활해서 봉은사에서 승려를 뽑는 승과고시를 치르게 한다. 또한, 당대 고승인 보우대사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는 한편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후 승과고시를 통해 배출된 서산, 사명, 벽암 등의 고승들이 연이어 이곳 봉은사의 주지를 역임하면서 숭유억불의 기조 속에서도 봉은사를 중심으로 조선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판전(版殿) 글씨와 문예부흥기 봉은사[편집]

문정왕후의 철권통치가 그녀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자 봉은사 위상이 급격히 쇠락하게 된다. 하지만 서울 도성에서 한강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대찰 봉은사는 조선후기 문예부흥기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다. 특히 추사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며 남호 영기 율사가 주도했던 80권 화엄경 경판 조성 불사에 동참했다. 추사의 글씨 가운데 최고이자 최후의 명작으로 꼽는 판전 현판 글씨를 남겼다. 이 글씨는 현재까지도 봉은사 판전에 부착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봉은사는 경기 남부의 서울을 비롯한 광주, 고양, 양주, 시흥, 수원, 여주, 이천, 양평, 파주 등 8개 군 78개 말사를 관할하는 본사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1912년 봉은사 주지로 취임했던 청호 학밀(晴湖 學密) 스님은 역사상 최악의 홍수로 기록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봉은사의 사재(寺財)를 털어 인근 주민 708명을 구함으로써 불교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9년에 큰 화재를 겪었으며, 1950년 6.25 전쟁 때 전각이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이후에 재건되었다. 때문에 봉은사 건물은 판전 등 소수의 건물을 제외하면 주로 1940년대와 1980년대 전후로 재건된 것들이다.

한때 경기도 광주군(現 경기도 광주시)에 속하여 경기도 사찰로 분류되었으나, 1963년에 이 지역이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경기도 사찰에서 서울특별시 사찰로 변경되었고, 후에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강남구 관할로 편입되었다. 지금은 상상이 안 가지만,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뚝섬 유원지에서 사실상 뗏목에 가까운 나룻배를 타고 봉은사에 다녀오기도 했다.

1964년에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수련도량이 되어 대학생불자 조직의 효시가 되었으며, 1972년에는 대장경을 한글로 옮기는 동국역경원이 봉은사에 설치됨으로써 역경사업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부동산 진통[편집]

강남이 개발되기 전까지 봉은사 주변은 허허벌판 논밭이었고, 한양에서는 배를 타고 가야하는 오지와 다름없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봉은사는 주변에다 말죽거리의 1만 평 논까지 합쳐 10만 평에 달하는 땅을 갖고 있었다.원래 대명중 근처에 일주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강남이 개발되면서 갈등이 생겼다. 이 중에는 박정희 정부시절 강탈당한 수도산 절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에 세워진게 바로 종로에서 넘어온 경기고등학교다.

시초는 조계사나 여타 한국 불교사찰들이 다 그랬지만,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대처승과 비구승의 갈등이었다. 8.15 광복 이후 봉은사는 꾸준히 왜색 불교 정화활동을 벌여, 1965년에야 겨우 비구승이 대처승을 몰아내게 된다. 그러나 이 사이에 정부는 개발지 한가운데를 차지한 봉은사의 땅을 싸게 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대처승과 그 가족들이 봉은사의 땅을 불법으로 파는 등 진통이 있었다.

이후로도 부유한 절의 주지 임명권을 둘러싸고 많은 갈등이 터져 나왔는데, 그 중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것이 1988년 이른바 '봉은사 사태'였다. 폭력배들까지 동원되어 절의 주지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졌었다.

특징[편집]

전통과 첨단의 공존

봉은사 주변은 서울을 대표하는 최첨단 시설이 밀집한 곳이다. 한국과 교역하려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전초기지로 삼는 무역센터가 봉은사 승과평 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규모 컨벤션센터인 코엑스와 테헤란밸리로 불리는 IT업종 밀집지역도 옛 봉은사 자리에 있다.

2009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의 왕릉 가운데 선릉과 정릉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어 그 능침사찰이었던 봉은사와 더불어 강남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강남역이나 압구정, 88서울 올림픽을 치른 종합운동장 등 세계적인 명소이자 강남을 대표하는 번화가들이 모두 봉은사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산재해 있다.

볼거리[편집]

사실 봉은사 전체가 볼 거리이다. 도심 속 숲으로 이루어진 봉은사는 자연을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근처 코엑스몰과 근접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사찰 입구에는 거대한 일주문이 있으며 2마리의 코끼리 석상이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경내에는 법왕루, 대웅전, 북극보전, 선불당 등 법당과 1996년에 세운 미륵대불상이 있다.

과천에서 기거하던 말년 추사 김정희가 자주 찾던 절인만큼, 대웅전과 판전의 현판은 그의 작품이다. 특히 판전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작품으로, 어린아이의 글씨 같아 보이면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초월한 느낌을 주는 글씨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편집]

근대까지 서울경기 일원의 본사 역할을 수행했던 봉은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1996년 1월 7일에 봉안된 미륵대불이 유명하다. 봉은사의 10년 숙원사업이었던 이 미륵대불은 높이 23m로서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관촉사의 은진미륵보다 5m 정도 높다. 고려 충혜왕 5년(1344년)에 만들어진 청동은입사 향완(보물 321호)은 공예 기술이 절정에 달했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표면에 제작연대와 만든 사람들을 기술한 103자의 명문이 남아 있어 형태미와 더불어 문화재적인 가치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보물 1819호)은 조선 효종 2년(1651년)에 당대 최고의 조각승인 승일(勝一)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17세기 불교조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불상들이다.

이외에도 앞서 소개한 추사의 판전 현판 글씨와 조선시대 승과고시 장소로 사용되었던 선불당, 판전 내부에 보관중인 화엄경 경판과 사천왕상, 영산전 십육나한상 등의 조각상과 대웅전 삼장보살도를 비롯한 10여 점의 불화 등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조선후기 조각과 회화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보물[편집]

  •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보물 제321호)
  •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819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편집]

  • 봉은사 선불당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
  • 봉은사 판전 현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3호)
  • 봉은사 목 사천왕상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0호)
  • 봉은사 목 삼불상(석가불, 아미타불, 약사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6호)
  • 봉은사 목 삼존불상(석가불, 가섭존자, 아난존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9호)
  •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8호)
  • 봉은사 대웅전 신중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
  • 봉은사 판전 신중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0호)
  • 봉은사 괘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1호)
  •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2호)
  • 봉은사 칠성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3호)
  • 봉은사 삼세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4호)
  • 봉은사 삼장보살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5호)
  • 봉은사 감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6호)
  • 봉은사 영산회상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
  • 봉은사 십육나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8호)
  • 봉은사 쟆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5호)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편집]

  • 봉은사 영산전 사자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8호)
  • 봉은사 영산전 신중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9호)

템플스테이[편집]

봉은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1,700년 동안 한국인의 삶과 함께 하며 수행의 전통을 지켜온 유서 깊은 사찰에서 고유의 아름다움과 수행자들의 일상을 경험하며 심신을 맑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봉은사에서는 도심 속 전통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과 삶을 경험하는 사찰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당일 및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부처님의 법향이 넘치는 봉은사에서 '나'의 존재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성을 다시금 되짚어 볼 수 있는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일정안내 바로가기 클릭

사건 및 사고[편집]

  • 2010년 10월 26일, 찬양인도자학교라는 개신교 단체에서 봉은사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는 동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되었다. 이 동영상에는 불교가 우상숭배라는 주장이 있으며, 동영상에 출연한 사람이 "주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크고 웅장한 절이 있어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종교 비하 논란이 일기도 했다.이들은 다음날 봉은사를 찾아가 사과를 하였고, 봉은사 스님은 이를 받아들였다.
  • 2010년 직영사찰 전환 문제로 정치권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여기에 당시 주지승이었던 명진 스님이 개입되었다는 일설이 돌면서 봉은사 승려들과 신도들이 강력반발하기도 했었다. 이에 당사자인 명진 스님은 승적을 포기하고 조계종단 승적까지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 안건과 종정 비방, 종단 비방 건으로 승적이 박탈되었다.
  • 2016년 12월 29일에, 봉은사 미륵보살상 앞에서 31세 여성이 분신 자살을 하는 사고가 있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김씨(31세 여성)가 몸에 인화성 액체를 뿌린 후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소방 당국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숨졌다고 한다. 김씨는 과거 과대망상 증세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추가적으로 발생한 인명 피해나 재산 피해는 없었다. 참고로 해당 관련 기사의 모든 기사가 '관음보살상' 앞에서 벌어진 사고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곳은 미륵보살상 앞이었다.
  • 과거 공무원들의 서류 조작 범죄로 서울 강남 일대 땅을 잃은 봉은사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2심 모두 이겨 400억원대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이용안내[편집]

봉은사의 야경 고층 빌딩이 즐비한 삼성동에 자리 잡은 봉은사 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도심에서 나오는 네온사인과 바람마저 고요한 봉은사의 불빛은 강한 대비를 통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 야경이 멋있기로 손꼽히는 장소 중 하나다.

  • 이용시간 : 법회, 기도 불공 등 사찰 일정에 따라 이용 시간에 차이가 있음
  • 장애인 편의시설
- 장애인 안내(휠체어 대여 및 기타)
- 장애인 전용 주차장
- 장애인화장실
  • 이용시설안내

법회 행사, 기도 불공, 불교 교육 외

  • 템플스테이 1박 2일 프로그램 10명 이상 ~ 30명 이하

※ 참여하는 TEAM의 일정과 취향에 따라 프로그램 수정, 조절 가능. 선택 프로그램의 추가에 따른 비용은 참가자가 부담하여야 함

  • 템플라이프 1) 공통 프로그램 - 사찰 안내 2) 기본 프로그램 - 참선, 다도, 스님과의 대화 3) 수행 프로그램 - 발우공양, 예불체험(새벽·저녁), 자비명상, 108배, 사경 4) 기타 프로그램 - 연(꽃)등 만들기, 인경 * 참가 대상 - 내국인, 외국인 누구나 가능 * 운영 형태 - 별도 정해진 기간 없이 사전 예약을 통해 원하는 날짜에 신청 가능 (단, 참가자 10명 이상 접수 시 가능)

외국인을 위한 템플라이프 봉은사는 목요일에 유난히 외국인들이 많다. 목요 상설 템플라이프 때문이다. 정문 바로 안쪽에 있는 문사수에서 매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사찰안내, 연꽃만들기, 다도시연, 스님과의 대화 등 모든 프로그램은 영어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1만원이다. 현장에서 바로 접수 가능하다.

  • 전화번호 : 02-3218-4800
  • 주소 :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봉은사)
  • 교통 정보
- 7호선 청담역 2번 출구 도보 15분
- 2호선 삼성역 6번 출구 도보 10분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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