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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9일 (금) 18:13 판

가을빛 자태 뽐내는 선정릉.
선릉 정릉

선정릉(宣靖陵, 사적 199호)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조선 왕릉으로 세 개의 능이 있다고 하여 삼릉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이 곳에는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무덤인 선릉, 11대 임금 중종의 무덤인 정릉이 있다.

개요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합쳐 선정릉(宣靖陵)이라 하는데, 선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495년에 성종의 능인 선릉을 세웠고, 그 뒤 1530년에 성종의 제2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의 능을 선릉의 동쪽에 안장하였다. 이는 왕과 왕비의 능을 정자각 배후 좌우 두 언덕에 각각 한 봉분씩 조성한 경우로 동원(同原) 이강(異岡) 형식이라 한다. 그 후, 1544년에 만들어진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이 1562년에 문정왕후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원당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당리의 풍수지리가 좋지 않아 옮긴 것인데, 이곳 또한 매년 여름이면 능이 침수되어 재실에 물이 들어가는 피해를 입었다. 결국, 중종과 함께 안장되기를 바랐던 문정왕후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태릉(泰陵)에 홀로 안장되어 있다. 선정릉은 임진왜란 때 왜병(倭兵)에 의해 파헤쳐지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현재까지도 도심 한가운데에 남아 보존되고 있다. 사적 제199호이고, 2009년 6월 30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선정릉은 빌딩숲이 빽빽하게 자리 잡은 강남에서 흔치 않은 녹지인데다가 부지 규모도 매우 큰 편이다. 테헤란로, 봉은사로, 선릉로, 삼성로 사이 거의 한 블록이 다 선정릉 부지이다.

선정릉의 능침사찰로는 같은 삼성동 안에 봉은사가 있는데, 도보로는 1.5km(23분 소요), 차량으로는 1.8km(6분) 정도가 소요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때문에 관광 동선을 짤 때에는 코엑스 - 봉은사 - 선정릉을 하나로 묶는 편이다. 다만, 선정릉은 관람이 유료(1,000원)인데다가 큰 길가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편이라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는 않는 편이다.

역사

1494년, 성종이 승하하면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에 안장되었고 1530년에는 계비 정현왕후가 승하하면서 같은 곳에 왕릉으로 안장되어 지금의 선릉이 만들어졌고 이후 1544년에는 중종이 승하하면서 바로 한 울타리에 있는 왕릉인 정릉에 안장되어서 선정릉 및 삼릉이 형성되었다.

서기 1593년, 임진왜란 와중에 정릉처럼 도굴당했다. 선정릉 도굴사건 항목 참조. 그래서 빈 무덤이다.

1963년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일대가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구로 분리되면서 이 지역일대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선정릉 및 삼릉 일대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개발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영향으로 지금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왕릉이 되었다.

서쪽으로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선릉이 있고 동쪽으로 중종의 정릉이 있으며 선릉과 정릉이 멀리 떨어져있지만 한 울타리에 있었고 강남 한복판에서도 보기 드물게 소나무숲과 야산 등이 있기 때문에 개발 이전의 옛 광주군 언주면 시절의 강남을 말해주고 있다.

선릉(宣陵)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형식으로 안장되어 있다.

비릉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다른 석물들은 왕릉과 같으며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왕릉에는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안에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모습을 한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난간석은 12칸이며 그 밖에 양석·호석·망주석·문석인 등의 석물이 있다.

정릉(靖陵)

조선 제11대 왕 중종무덤으로, 선릉과는 달리 중종 홀로 묻힌 단릉(單陵)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조선왕릉 중 왕만 홀로 묻힌 경우는 후대에 왕릉이 된 단종의 장릉을 제외하고 태조의 건원릉과 중종의 정릉뿐이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선릉의 석물제도를 본떴다.

정릉은 원래 중종의 두번째 왕비(제1계비) 장경왕후의 무덤인 희릉의 오른쪽 언덕에 있었으나 세번째 왕비(제2계비)인 문정왕후는 그곳이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인 선릉 옆으로 옮기고 훗날 본인도 하세하면 정릉에 중종과 함께 묻히길 바랐으나, 정릉 근처가 지대가 낮아[4] 여름에 비만 오면 침수되었다 하여 결국 강남의 정릉이 아닌 노원구의 태릉에 묻혔다. 당시 침수가 되면 정자각 앞에 배가 떠나닐 정도였다고 한다. 침수가 잦자 다시 묏자리를 옮기려고 하였으나 "거듭해서 묏자리를 옮기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로 상소가 쏟아져서 중단되었을 정도로 당시에도 그런 이야기는 별로 먹히지도 않았다. 풍수지리가 맞건 틀리건 생전에 그만큼 문정왕후가 아들을 죽도록 들볶아 댔던 탓도 크다.

야사에서는 문정왕후가 죽은 뒤, 문정왕후의 무덤을 정릉으로 정했는데, 마침 한강에 큰 물이 들어 정릉이 잠겼다. 그러자 명종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묻히길 거부하시는구나!' 하며 결국 태릉으로 묫자리를 옮겼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은 이와는 다른 능으로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가 안장된 곳이다.

교통

부지 남쪽으로는 테헤란로과 서울 지하철 2호선이, 북쪽으로는 봉은사로와 서울 지하철 9호선이 지나가고, 서쪽으로는 선릉로와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이 지나간다. 선정릉역보다는 선릉역에서 내리는 게 입구에서 가장 가깝다. 멀지 않은 곳에 삼성중앙역도 있다.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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