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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3일 (금) 11:15 판

경남 의령군 정곡면에 위치한 호암 이병철회장의 생가 전경. 출처- 의령군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팻말
호암생가 대문채
호암생가 사랑채 내부
광. 호암선생이 태어난 생가의 재산은 천석지기였다 한다. 천석을 쌓았던 광, 곳간에 해당한다.
부자바위 :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露積峯(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穴(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이 물이 빨리 흘러들어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逆水(역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호암 이병철 생가(호암생가)는 삼성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에 있다. '의령 9경' 중 제9경으로 의령군을 대표하는 명소인 호암 생가는 지난 2007년 11월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왔다.

1851년, 호암의 조부께서 대지면적 1,907m²에 전통한옥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은 유년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 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호암 이병철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
- 1976. 11. ‘나의 경영론’(전경련회보)에서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난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를 발의하고 초대회장에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는 특유의 통찰력과 선견력으로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기반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호암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 옴과 동시에 문화, 예술, 교육,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도 큰 업적과 교훈을 남겼다.

관람팁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주변의 산들이 마치 담을 둘러친 것과 같다고 해서 예로부터 '장내(墻內) 마을'로 불렸다. 우리말로는 '담안 마을'이다. 호암이 태어난 고장이다. 뒷동산 역할을 하는 마두산 끝자락을 따라 남서향으로 일자형 평면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전통 한옥집. 호암 생가다.

대지면적 1907㎡에 자리잡고 있는 호암 생가는 전형적인 '전착후광(前窄後廣)'의 양식을 따랐다. 좁게 느껴지는 대문을 지나 들어갈수록 뒤가 넓어지는 구조다. 작은 방 두개를 끼고 있는 대문채를 지나면 우물과 함께 방 2개로 이뤄진 단촐한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다시 우물과 작은 마당을 지나면 부엌과 방2개, 대청으로 이뤄진 안채가 자리한다. 안채 왼편엔 흙으로 지어진 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집터는 작지는 않다. 그렇다고 요란하거나 큰 느낌은 없다. 소박한 집 주인의 풍채가 그림에 잡힌다.

호암 가문이 중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510여년 전이다. 연산군 시대에 16대조 할아버지가 식솔을 이끌고 낙향하면서 부터다.

생가는 고 이병철 회장의 조부인 문산(文山) 이홍석 공이 직접 지었다. 안채의 지붕마루에 수평으로 걸린 '종도리' 하단부에는 '신해년 계사월 신묘일 입주상향'이라고 적혀있다. 1851년부터 집을 짓고 살았다는 뜻이다.

건물은 깨끗하고 단아하게 보전돼 있었다. 본채와 사랑채는 몇 차례 증ㆍ개축을 거쳤는데 국내 최고 대목수인 신응수 씨가 최초 형태로 복원해 놨다고 한다.

부잣길
  • A코스 :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월현천 낚시터와 호미교, 탑바위, 불양암, 호미산성, 정곡면 공설운동장을 거쳐 월현천 남쪽 둑길을 따라 출발지인 호암 이병철 생가 앞 공영주차장으로 돌아오는 6.3km의 길이다. 도보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 B코스 : A코스의 호미교에서 갈라져 월현1배수장, 예동마을과 무곡마을, 성황리 소나무와 성황천을 지나 정곡면 공설운동장에서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는 12.8km로 약 5시간 이상 걸리는 걷기 코스다.

관람안내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
  • 관람문의 : 055-573-0723
  • 개방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월요일 휴관)

교통안내

자가용
  • 내비게이션 : "호암이병철선생 생가" 으로 검색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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