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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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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piao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2월 24일 (화) 16: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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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삼족오
한나라 벽화에 그려진 삼족오 (오른쪽)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삼족오 (가운데)
진무 천황의 활 위에 앉은 삼족오

삼족오(三足烏) 또는 세발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이다. 해를 상징하는 원 안에 그려지며, 종종 달에서 산다고 여겨졌던 원 안의 두꺼비에 대응된다. 삼족오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금오(金烏) , 준오(踆烏)라고도 한다.[1]

개요

삼족오는 3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까마귀로, 동아시아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가루다나 금시조에서 내려온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자연스레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도 3개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삼신일체사상(三神一體思想), 즉 천(天), 지(地), 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 고조선 시대의 제기로 사용된 삼족정(三足鼎)과 연관시켜 ‘세 발’이 천계의 사자(使者), 군주, 천제(天帝)를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삼족오의 발은 조류의 발톱이 아니라 낙타같은 포유류의 발굽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하늘 높이 떠 있는 해가 바로 삼족오라거나, 또는 해 안에 삼족오가 살고 있다고 한다. 태양의 흑점을 신격화했다는 말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원래 검은 새는 아니지만 해를 등지고 있기 때문에 검게 보일 뿐이다.'라는 설도 있다. 삼족오가 까마귀가 아니라 단지 새의 이름이 오(烏)이며, 다리가 3개 달린 오이므로 삼족오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까마귀 오(烏)자의 다른 뜻이 바로 저 새의 이름을 뜻하는 고유명사라는 뜻이 된다. 삼족오 설화는 고구려의 문화 유물에서 나타나는 상징으로서, 고구려 민족의 태양 숭배와 신화적 표상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2]

설화

삼족오로 추정되는 새가 등장하는 설화는 두 편이 있다. 구전으로는 <금오산전설>을 들 수 있다. 금오산(金烏山)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인데, 금오산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금오산은 원래 대본산(大本山)이었다. 당나라 국사가 빛을 내며 나는 를 따라왔더니 이 금오산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후로 까마귀가 빛을 내어 날아왔다고 하여 금오산이 되었다고 한다.'라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문헌으로는 <연오랑세오녀>를 들 수 있다. 157년(아달라왕 4)에 동해 바닷가에 살던 연오와 세오 부부가 움직이는 바위를 타고 일본에 가자 일본 사람들이 두 사람을 왕과 귀비로 모셨다. 그때 신라에는 해와 의 빛이 없어졌다. 변고를 살핀 관원이 해와 달의 정기가 신라에 있다가 일본에 갔기 때문에 이변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아달라왕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연오와 세오 부부에게 돌아오라고 하였으나, 연오는 아내인 세오가 짠 비단을 신라에 가져가서 하늘에 제사지내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 하였더니 해와 달이 전처럼 다시 밝아졌다.[3]

역사

중국 기록을 보면 삼족오(三足烏)의 이름은 태양 안에 있는 흑점이 까마귀처럼 보인 데서 비롯하며, 발이 세 개인 것에 대해서는 양(陽)을 나타내는 수라는 설과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는 설이 있다. 한국 자료로는 진파리 1호분, 덕화리 1호분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삼족오를 두루 확인할 수 있다. 대개는 공작 벼슬을 달고 있으며, 날아오르려고 하거나 날개를 접고 얌전히 서 있는 까마귀의 모습으로 원륜(圓輪) 안에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까마귀의 모습 대신에 비둘기나 기러기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예도 있다. 그리고 삼족오의 문양은 고려 지광국사현묘탑비(址智光國師塔碑), 삼보명자수가사(三寶名刺繡袈裟)와 조선시대 이곤(李坤, 1462~1524)의 묘비, 박운(朴雲, 1493~1562)의 묘표 등에서도 확인된다.

특징

우리에게는 고구려 문화재에서 삼족오의 형태를 다수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분 벽화 등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현대 동아시아에서 흔히들 '달에는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듯이 삼족오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해'를 상징하기 때문에 무덤에서도 하늘을 구성하는 해의 상징으로서 그려둔 것이었다. 고구려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 자체가 삼족오였던 것은 딱히 아니며, 고구려에서 삼족오를 계루부 고씨 왕실 및 나라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나 정황 또한 없다. 기본적으로는 한•중•일 삼국에 걸친 공통적인 전설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 등에서 고구려군 깃발의 문양으로 흔히 등장하는데 이는 삼족오를 곧 고구려의 고유한 상징 문양으로 오해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머리에 볏이 있는 삼족오는 한국 고유의 삼족오가 맞지만 금관과 백제금동대향로 문서에 있는 사진처럼 볏이 달린 새 모양 장식은 신라백제에도 있었기에 볏이 달린 새가 오직 고구려만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며, 고구려의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삼족오는 그냥 후손들이 하나의 문화 재해석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제4대 국새 인뉴 역시 제3대 국새와 마찬가지로 봉황을 채택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전각 예술가였던 고암 정병례씨가 기증한 삼족오 문양이 들어간 직인을 받았다. 정씨는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 후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의 의뢰를 받아 제작했다. 이 직인은 가로·세로 7㎝, 높이 18.5㎝의 직육면체로, 측면 네 곳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삼족오가 태양을 배경으로 새겨져 있다. 직인 바닥에는 ‘Ban Ki-moon Secretary-General The United Nations(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라는 글씨와 함께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나라마다 삼족오가 생긴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한국에서 삼족오는 이미 원형인 까마귀의 개념을 벗어나 봉황과 동일시 되었으므로 결론적으로 국새 인뉴를 삼족오 형상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별 쓸데없는 말이 된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삼족오가 단순히 까마귀라면 굳이 볏이 있을 필요가 없으므로 이 학설에는 나름 타당성이 있다.

중국 신화에선 삼황오제 중 제곡의 아들들인 태양 10개가 삼족오 10마리라고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따르면 삼족오는 원래 금색이지 검은색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이 삼족오들은 멋대로 단체비행해서 지상에다가 이상고온을 일으키는 등 깽판을 치며 막무가내로 놀다가 예에게 활을 맞아 9마리가 죽고 한 마리만 겨우 살아남아 태양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모로는 달의 여신인 상희가 있었고, 사촌자매들로는 15개 달이 있었는데, 얘들은 딱히 사고쳤다는 언급도 없다. 현재 삼족오를 표현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진 바로는 기원전 4천 년 무렵 중국 황하 중상류 지역의 양사오 문화 토기이다.

일본 신화에도 태양의 화신이라 일컬어지는 야타가라스라는 이름의 삼족오가 있다. 일본 건국신화에서 진무 천황이 동쪽으로 원정을 떠났을 적에 먼 타향에서 길을 잃자 야타가라스가 신들의 명령을 받고 천황의 길을 안내해주기도 했다. 야타가라스의 도움으로 진무 천황은 야마토를 정복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임진왜란에도 참전한 사이카슈(雑賀衆) 스즈키 가문의 문장도 이것이었으며, 현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엠블럼도 붉은 태양을 쥐고 있는 삼족오이다.[4]

동아시아 문화 속의 삼족오

중국

삼족오 문양이 처음 등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5천 년에서 3천 년 사이에 중국 황하 중류에 존재했던 양사오 문화이다.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양사오 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천 점의 토기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 문양이 발굴되었다. 상나라의 수도인 은허(殷墟) 후가장(侯家莊) 1004호 묘에서 발굴된 청동제 사각형 솥에도 삼족오 문양이 발견되었다. 또한 랴오닝성 차우양 지구 원태자 벽화묘에도 삼족오 문양이 있다.

중국에서 삼족오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전한 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와 산해경(山海經)이다. 이에 대해서 장형(78~139)의 영헌(靈憲)에서는 홀수는 양이니 다리가 3개인 새가 태양에 있고 짝수는 음이니 다리가 4개인 토끼가 달에 있다고 풀이하였다.(“日者,陽精之宗。積而成烏,象烏而有三趾。陽之類,其數奇。月者,陰精之宗。積而成獸,象兔。陰之類,其數耦。”)

한국

한국에서는 씨름무덤(각저총), 쌍영총, 천왕지신총 등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삼족오가 많이 그려져 있다. 《삼국유사》의 기이편(紀異扁)에는 소지왕 10년 때에 까마귀가 나타나 사람에게 해야할 일이나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영험한 존재로 등장한다.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도 삼족오가 등장하는데, 연오랑(燕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둘 다 이름에 까마귀 오(烏)자가 붙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까마귀를 빛의 상징으로 보았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는 의천의 가사에서 보이며, 조선 시대에는 일부 묘석에 삼족오가 새겨져 있다. 한국의 삼족오는 중국과 일본의 삼족오와는 달리 머리에 공작처럼 둥글게 말린 벼슬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그 외형에서 확실한 차이점이 있다. 벼슬은 국가통치조직에서 나랏일을 담당하는 직위나 직무를 상징한다.

약식의 유래는 고려시대 후기 때 승려 일연이 1281년에 쓴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조에 기록되어 있다. 488년 신라의 소지왕이 음력 1월 15일에 왕이 경주 남산에 있는 정자인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다. 이때에 까마귀가 날아와 왕이 신하들에 의해서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왕은 역모를 꾀하려던 신하와 궁주(宮主)를 활로 쏘아 죽여서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때부터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 정하여, 까마귀를 기념하여 찰밥을 지어 제사지냈으며, 약식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 및 재야사학에서는 삼족오의 기원이 한민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

일본에서는 개국 신화에서 천황의 군대의 길 안내를 한 태양신의 사자인 일본의 삼족오 야타가라스(八咫烏)가 고대 고분과 각종 유물에서 등장하고 있으며, 아직도 쿠마노본궁대사(熊野本宮大社) 등에서 모시는 대상이기도 하다. 천황이 즉위식 때에 입는 곤룡포의 왼쪽 어깨에는 삼족오가 자수로 놓여 있다. 또한 일본축구협회에서는 삼족오를 엠블렘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영상

각주

  1. 삼족오〉, 《위키백과》
  2. 삼족오(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삼족오(한국민속문학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삼족오〉,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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