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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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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piao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3월 23일 (목) 11:4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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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섬
몬트리올 섬의 행정구역
몬트리올섬 위치

몬트리올섬(영어: Island of Montreal, Montreal Island), 몽레알섬(프랑스어: île de Montréal)은 캐나다 퀘벡주의 남쪽, 세인트로렌스강오타와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하중도(河中島)이다. 섬의 면적은 25km²이고 둘레는 31km이다. 몬트리올섬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하중도이다. 섬 내에는 몬트리올 외에도 웨스트마운트(Westmount), 도르발(Dorval) 등 여러 행정구역이 있다.[1]

개요

몬트리올섬은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서 동쪽으로 196km 떨어져 있고 퀘벡 주도인 퀘벡에서 서쪽으로 258km 떨어져있다. 몬트리올섬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몬트리올은 캐나다에서 토론토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자 퀘벡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1642년에 '마리아의 도시'라는 뜻의 빌마리로 설립된 이 도시는 도시 중심의 봉우리가 세 개로 이루어진 루아얄산 (Mont-Royal, 몽루아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몬트리올은 어원과 이름이 똑같은 몬트리올섬과 몇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섬은 비자르섬이다. 몬트리올은 퀘벡주를 위시한 프랑스어권 캐나다의 최대도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명실상부 캐나다 제1의 도시였으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로 '10월 위기'와 퀘벡 주의 프랑스어 우선 정책 등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현재는 그 지위를 영어권 캐나다 지역인 토론토에 내주었다. 한편 북미의 파리라는 별칭이 있는데, 실제로 프랑스어권 도시 중에서 파리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 광역권이다. 퀘벡주는 2002년 몬트리올섬 내의 모든 도시들을 몬트리올시로 통합한 바 있으나, 각 지자체들의 반발로 2006년 9개 행정구역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이 다시 떨어져 나갔다.[2][3]

어원

몬트리올(locally)은 표준 프랑스어, 퀘벡 프랑스어, 캐나다 영어의 발음은 조금씩 차이난다. 모호크어에서는 몬트리올을 치오차게(Tiohtià:ke)라고 하며, 물줄기가 만나는 곳을 뜻한다. 오지브웨어에서는 이곳을 무니양(Mooninyaang)이라고 부르며 '첫 번째 쉼터'라는 뜻이다. 루아르 계곡의 라플레슈에서 온 유럽의 정착민들은 1642년에 설립한 이 마을을 '마리아의 도시'라는 뜻인 빌마리 (Ville-Marie)라고 지었다. 오늘날의 이름은 도시 중심에 있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루아얄산에서 비롯하였는데 한 가설에 따르면 이 이름은 몽 레알 (mont Réal)에서 비롯하였으며, 16세기 프랑스어에서는 레알 (réal)과 루아얄 (royal)을 혼용해서 몽레알로 굳어졌다는 설이다.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는 1535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두 번째로 다다랐을 때 이곳을 뒤덮고 있는 산을 보면서 "산 근처에는 오슐라가 마을이 자리를 잡았고 마을 외부는 요새로 둘러싸였다. 우리는 이 산을 루아얄산이라고 명명한다."라고 여행록에 기록하였다. 카르티에와 동행하던 측근은 클로드 드 퐁브리앙으로 프랑스 오크어 지역인 몽레알성의 영주였다. 몽레알과 뒤집어진 이름인 레알몽은 프랑스 남부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이었다. 또다른 가설은 1556년 지도에서 이 산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몬테 레알 (Monte Real)이라고 표기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퀘벡주 지명위원회는 이는 오해라며 부정하였다.

역사

몬트리올섬의 지역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볼 때 원주민들은 5천 년 전부터 살고 있었다. 11세기에서 16세기 말까지 호우더노우쇼우니(뉴욕)의 이로쿼이족들과는 민족과 문화적으로 다른 세인트로렌스 이로쿼이족이 몬트리올섬에 자리를 잡았다. 유목 생활을 하던 기존 원주민들과는 달리 이들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농경 민족이었다. 이들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지냈는데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1535년 10월 2일에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원주민들이 오슐라가(Hochelaga)라는 마을에서 천여 명 정도 살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1611년, 샹플랭은 몬트리올섬에 플라스 루아얄(La Place Royale)이라는 모피 무역소를 설치하였다. 1616년 지도에 따르면 이 섬은 누벨프랑스의 총독이 되고자 했던 프랑스의 고위 관리인 빌므농의 이름을 따서 빌므농섬이라고 하였다. 1639년 제롬 르 루아예르 드 라 도베르시에르는 원주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도하기 위해 지어진 몬트리올 노트르담회의 이름으로 몬트리올섬의 영주가 되었다. 도베르시에르는 새로운 영지에 전도하기 위하여 당시 30세였던 폴 쇼메데 드 메종뇌브가 식민지에 새로 정착할 주민들을 이끌었다. 이들은 1641년에 프랑스를 떠나 이듬해에 퀘벡에 도착하였다. 1642년 5월 17일, 몬트리올섬 남부 강가에 빌마리(Ville-Marie)라는 정착지가 세워졌고 메종뇌브는 첫 총독으로 추대받았다. 정착지에는 잔 망스가 이끄는 예배당과 교회가 지어졌다. 1643년, 빌마리는 이로쿼이족의 습격으로 공격받았다. 1651년 봄에 들어서서는 이로쿼이족의 공격이 잦아지고 과격해지면서 빌마리는 멸망 위기에 처했다. 메종뇌브는 모든 정착민들이 요새에서 엄호하도록 하였다. 1652년, 몬트리올 식민지 인구는 급격히 줄어 이듬해에 프랑스에서 100여 명을 더 데려와야 했다. 1653년 가을에 프랑스에서 100명이 도착하기 전 몬트리올의 인구는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모피 무역이 몬트리올의 주요 경제 성장원으로 경제성장을 거듭한 빌마리는 1685년에 들어서서 인구가 600여 명에 달했고 대부분은 작은 목조 주택에 살고 있었다. 쉴피스회는 1672년에 도로를 놓았고 1687년에는 빌마리 주위를 울타리로 성벽을 쌓았다. 프랑스인들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모호크족이 빌마리에 있는 모피 무역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길 바랐다. 1730년대에는 교외 지역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몬트리올의 인구는 3,000여 명으로 늘어났으며 몬트리올은 모피 무역뿐만 아니라 농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1754년,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대치하였다. 프랑스는 몬트리올섬에 몬트리올 성벽 뿐만 아니라 로레트, 몽타뉴, 푸앵토트랑블, 센빌 등의 요새가 있었다. 1763년 7년 전쟁이 막을 내리고 파리 조약으로 몬트리올은 프랑스령에서 영국령으로 바뀌었다.

몬트리올이 영국령이 되면서 무역은 대영 제국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당시 광활한 땅의 중심지였던 몬트리올에 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인들이 정착하면서 이들은 무역 부호로 성장하였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과 동시에 모피 무역 위주였던 몬트리올 경제는 산업 혁명과 더불어 대량 생산과 운수업 위주로 전환하면서 주요 산업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1860년대에는 빅토리아 철교가 개통하면서 몬트리올은 철도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880년에는 캐나다 태평양 철도 본사가 몬트리올에 자리를 잡으면서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철도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1951년, 몬트리올의 인구는 100만 명을 돌파하였지만 토론토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캐나다 제1도시의 위상에 위협을 받기 시작하였다. 1940년대부터 토론토 증권거래소의 거래량이 몬트리올을 추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트리올은 50년대와 60년대에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여 1967년에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고, 시내에 고층 건물이 하나둘씩 올라가고, 고속도로가 확충되고 지하철이 개통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몬트리올의 경제 및 문화에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하였다. 시내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대규모 종합병원이 두 곳에 지어지고 생로랑가 연선에 카르티에드스펙타클이 형성되고, 몬트리올 트뤼도 공항이 확장되고, 기존 샹플랭대교가 사뮈엘 드 샹플랭대교로 교체되고, 튀르콧 나들목이 재건설되고, 광역급행철도 공사가 한창이면서 몬트리올은 또다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4]

기후

몬트리올은 습윤 대륙성 기후로 쾨펜의 기후 구분에서 Dfb에 속한다. 여름에는 덥고 습하며 7월 기준 평균 기온이 섭씨 26도에서 27도이고, 30도를 넘어가는 경우가 곧잘 있다. 그러나 한랭전선으로 여름 초반과 막바지에는 차갑고 건조하며 바람이 센 경우도 곧잘 있다. 겨울에는 춥고, 눈이 오고, 바람이 매섭게 불며, 가끔가다 얼음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1월 기준 평균 -10.5도에서 -9도 사이의 날씨를 기록한다. 하지만 기온이 영상권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어서 1월과 2월에 평균 4일씩 비가 오기도 한다. 보통 12월 첫째 주나 둘째 주에 오는 눈은 3월 말까지 남아있다. 수은주가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체감 온도가 영하 30도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봄과 가을에는 날씨가 무난하지만 일교차가 높으며, 봄 일교차가 가을보다 더 큰 편이다. 늦은 봄이나 가을에는 인디언 서머라고 하는 때아닌 무더위가 간간히 일어나기도 한다. 눈폭풍은 11월과 3월에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4월에도 일어날 수 있다. 4월 말부터 10월에는 보통 눈이 내리지 않지만, 간간히 5월 중순이나 10월 초중순에 눈이 오는 경우가 있다.

캐나다 환경부가 관측한 몬트리올의 역대 최저 기온은 1957년 1월 15일에 관측된 영하 37.8도이고, 최대 기온은 1975년 8월 1일에 관측된 영상 37.6도로, 둘 다 도르발 국제공항에서 관측되었다. 현대 기상 관측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1859년 1월 10일 오전 7시에는 최저 기온이 이보다 5도 낮은 영하 42도를 기록하였다. 연간 강수량은 1,000mm 정도로, 이는 11월에서 3월까지 오는 210cm의 눈을 포함한다. 천둥은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흔하며 열대 폭풍으로 많은 비가 내리거나 강풍이 몰아칠 수 있다. 몬트리올은 연간 2,050시간의 햇빛이 들어오며, 여름에는 높은 강수량으로 비가 오는 날이 많지만 겨울에 비해 일조량이 높은 편이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몬트리올섬〉, 《위키백과》
  2. 몬트리올〉, 《나무위키》
  3. 몬트리올 섬 (누나부트)〉, 《요다위키》
  4. 몬트리올〉,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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