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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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해(Koro Sea)는 태평양에 위치한 바다로, 서쪽으로는 비치레부섬, 동쪽으로는 라우제도와 접하며 피지의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코로해는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다.[1][2]
비티레부섬[편집]
비티레부섬(피지어: Viti Levu) 또는 비치레부섬은 태평양 남부에 위치한 피지의 섬으로, 피지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은 10,388km²이며 길이는 146km, 넓이는 106km이다. 피지의 수도인 수바가 위치하며 피지 인구의 70%, 약 60만 명이 살고 있다. 비티레부섬은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한 섬으로 오스트레일리아판과 태평양판 사이의 지질학적으로 복잡한 지역에 있다. 비티레부섬은 활동 연장 단층선에 접해 있는 구역에 놓여 있는데, 이 구역의 얕은 대부분 지진의 중심이다. 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와이나미말라(Wainimala)에 속하는 에오세이나(Eocene) 및 로어 미오세(Lower Miocene) 시대에 형성된 암석이다. 하위 부분은 현무암에서 트라키테, 라임라이트까지 등급이 매겨진 화산 흐름과 화산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티레부섬은 피지공화국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약 6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피지아군도 전체의 중심지다. 피지의 14개 성중 8개가 비티레부섬에 있으며 행정 구역상으로는 서부구(바주, 난드로가나보사주, 라주)와 중부구(나이타시리주, 나모시주, 레와주, 세루아주, 타일레부주)에 속한다. 지진과 화산폭발로 섬은 다소 험준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지형은 남북으로 이어지는 산맥에 의해 대략 반반으로 나뉜다. 섬의 중심에는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피지에서 가장 높은 산, 1324m까지 솟아 있는 토마니비산(Mt. Tomanivi)이 있다. 섬의 동쪽은 특히 산에 많은 비가 내리며 열대 습윤 숲이 있는 곳이다. 서쪽은 산맥의 비 그림자에 있으며 눈에 띄게 건조하며 피지의 열대 건조림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서부에서는 사탕수수 생산이 번창하고 동부에서는 낙농업이 발달하고 있다. 섬에는 면적 70km²에 소 7000마리가 사는 피지의 가장 큰 소 목장이 있다. 비티레부섬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곤충 중 하나인 자이언트 피지안 장수하늘소의 유일한 서식지다.[3]
피지[편집]
피지(Fiji)는 오세아니아 멜라네시아 동부에 있는 섬나라이다. 정식 국호는 피지공화국(Republic of Fiji)이다. 동쪽으로는 통가, 왈리스 푸투나와 가깝다. 1874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1970년에 독립하였다. 세계적으로는 작은 나라이지만 오세아니아에서는 호주,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에 이어 5번째로 큰 나라이다. 경도 180°선이 피지의 중앙을 통과하기 때문에, 본초자오선이 지나는 영국과 정확히 밤낮이 반대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지구의 1일 차이를 결정짓는 날짜 변경선이 피지를 피해서 동쪽으로 크게 빗겨가게 그어져 있기 때문에 두 섬의 날짜가 1일이나 차이나지 않는다. 피지의 국토면적은 18,376㎢로 제주특별자치도의 9배 크기로, 경상북도보다 약간 작다. 인구는 약 92만 명으로 성남시와 비슷하며 수도는 수바(Suva)이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바누아투와 통가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남태평양 도서국가들의 허브와 같은 곳으로 교통의 요지로 볼 수 있다. 피지에는 332개의 섬이 있는데, 대부분은 화산섬이며, 전체 섬 중 1/3은 무인도이다. 피지에서 가장 높은 곳은 비티레부섬에 있는 토마니비산으로서 높이는 해발 1,324m이다. 가장 큰 섬은 비티 레부(Viti Levu) 섬으로 면적은 10,388km²이다. 경기도보다 살짝 작은 크기이며 피지 인구의 70%가 거주하고 인도계들도 몰려 있으며, 1,324m 높이의 피지 최고봉 토마니비 산이 있다. 그리고 20cm 길이의 크고 아름다운 피지 장수하늘소가 서식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큰 바누아레부섬은 비티레부 보단 작지만 제주도 3배 넓이의 큰 섬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키리바시가 이 섬에 땅을 사려 한다고 한다는 오보가 있었으며, 현재 정부에서는 구입하려는 계획이 없다고 한다. 피지 북쪽엔 로투마(Rotuma)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여타 피지하고는 상당히 이질적이라 이 곳은 피지의 속령으로 분류된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물론 의무교육으로 인하여 로투만(Rotuman)들도 의사소통하는 덴 아무 문제가 없다.[4]
역사[편집]
3,500년전 부터 인류가 피지로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은 마탕갈리라고 부르는 부족들을 형성했다. 기원 1000년 경에는 통가(Tonga), 사모아(Samoa) 등 폴리네시아인들로부터 침입을 겪으면서 커다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풍습이 일반적으로 행해졌고, 권력 세습식의 일부다처제를 통한 족장의 강력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부족간 결혼은 집단간을 잇는 주요한 방식이었지만 서로간 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내부 족벌 전쟁으로 가족끼리 싸움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1643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 피지를 발견했고, 1822년 백인들이 레부카(Levuka)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백인 거주자들은 주로 선교사나 백단향 무역상들이었다.
통일 피지 왕국을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은 라투 세루 에페니사 다콤바우(Ratu Seru Epenisa Cakobau)인데, 그는 피지 동부 해안에 위치한 바우섬(Island of Bau)의 추장이었다. 주위의 섬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둔 그는 1853년 자신을 투이 비티(Tui Viti; 왕으로 번역하거나 대추장으로 직역하기도 한다.)로 선포하고 1854년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1871년에 피지 전역을 통일했다. 하지만 통가, 미국 등 외부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1874년에 피지를 영국에 그대로 넘겨,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 당국은 피지인이 게으르다고 여겨 피지로 인도인들을 데려와 노동자로 고용했다. 그리고 토지제도가 성립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을 축적한 인도인들은 피지의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현지 의회가 생길 당시 피지의 추장들과 백인 남성, 그리고 1929년 부유한 인도계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다. 일반 피지인들과 여성은 한참 후인 1963년에 가서야 선거권을 얻었다.
1970년 피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피지 자치령이 출범했다. 독립한 피지는 경제권을 잡은 인도인과 정치권을 잡은 피지인의 세력다툼이 이어졌다.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정당은 피지인들의 동맹당이었다. 그러나 1977년 동맹당이 다수의석 확보에 실패해 인도계의 국민연합당이 정권을 잡게 되자 피지계인 조지 카콤바우 총독은 재선거를 실시해 피지계 동맹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1987년 인도계의 피지노동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자 피지계인 시티베니 람부카 중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국 여왕이 다스리는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을 선언하고 1992년까지 군정을 실시했다. 군정이 끝나고 치러진 선거에서 람부카가 승리했으나 람부카는 1999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피지노동당의 인도계 출신 마헨드라 초드리가 피지의 총리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민간인인 조지 스페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이를 진압했지만, 진압된 후에 다시 피지인이 집권했다. 2000년과 2006년에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2006년 12월에 발생한 쿠데타는 이미 같은 해 11월부터 예고되었으며, 인도계를 대변하는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준장이 정권을 잡았다. 2009년 4월 사법부가 프랭크 바이니마라마가 일으킨 쿠데타에 대하여 위법 판결을 내리자 라투 조세파 일로일로바투 울루이부다(Ratu Josefa Iloilovatu Uluivuda) 피지 대통령은 헌법을 무력화하고 모든 대법관들을 해임시키고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언론들을 강경하게 탄압했다. 2012년 1월 7일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2014년 9월 17일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졌고, 이 선거에서 현 여당인 피지퍼스트가 59.2%의 득표율로 과반의석(32석/50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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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멜라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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