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물
칠석물은 칠석(七夕)날에 오는 비를 말한다.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흘리는 눈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칠석비(七夕雨)라고도 한다.
개요[편집]
칠석물은 음력 7월 7일 칠석(七夕)을 전후로 내리는 비를 칠석비(七夕雨)라고도 한다. 칠석비를 칠석우(七夕雨), 칠석물이라 하고 칠석에 비가 오는 것을 가리켜서 칠석물지운다, 칠석갈이한다, 칠석아래비라고도 한다. 또한 칠석비로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한다. 강원도 양양 지방에서는 이날 비가 오면 견우와 직녀가 만나 흘리는 기쁨의 눈물로 보고 농사의 풍작을 점쳤다고 한다. 이날은 견우와 직녀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고 울고 헤어질 땐 가슴 아파 울었는지 간간히 해가 나고 맑아지는 듯하다가 쏟아질 땐 굵은 빗방울이 세차게 땅으로 꽂혔다. 그래도 비가 와주었으니 올 가을엔 모든 농가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여름 끝자락까지 더운 날씨가 계속되지만 그래도 칠석을 넘기며 바람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다 알지만, 혹시 아이가 외국 친구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궁금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답게 조금씩 다른 버전이 있기는 하다. 이는 그중의 하나이다. 이전까진 견우와 직녀의 사랑 이야기로만 대강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헤어진 이유가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 못해 하늘님의 노여움을 샀고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열심히 일한 뒤에 주어지는 혜택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견우와 직녀가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그리하면 비가 오지 않으니 설화와 현실 그 어딘가에 만나는 지점이 흥미롭다.[1][2]
유래[편집]
『세시잡기(歲時雜記)』에 의하면, 음력 7월 6일에 오는 비를 세거우(洗車雨)라 하고, 7월 7일에 오는 비를 쇄루우(灑淚雨)라고 한다. 세거우는 직녀가 타고 갈 수레를 씻기 위한 것이라 하며, 쇄루우는 견우와 직녀가 이별에 쏟아내는 '눈물의 비'라고 한다.[2]
지역사례[편집]
칠월 칠석날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기에 이날의 비는 해후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는 비는 작별의 눈물이라 한다. 한국의 민간에서는 칠석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거나 병을 쫓는 영험이 있어 빗물로 목욕을 하고 물맞이를 한다.
경남 사천시 서포면 선전리 선창마을에서는 칠석날에 아침밥을 일찍 먹고 물을 맞으러 간다. 이날 물을 맞으면 한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경남 통영시 용남면 삼화리 양촌마을에서는 칠석날 약물을 맞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고 몸에 좋다는 말이 있는데, 칠석날 떠오는 샘물을 '약물'이라고 불러 이를 떠와서 머리를 감는다.
경북 상주시 사벌면 원흥 1리에서는 칠석날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날씨가 좋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점을 치기도 한다. 또한 칠석에 비가 오면 곡식이 줄어 흉년이 든다고 믿기도 한다.
전북 임실에서는 "칠석날 비가 오면 곡식 칠석을 덜고, 백중날 비가 오면 백석을 던다."는 말이 있어서, 칠석과 백중날 비가 오면 곡식의 양이 줄어든다고 여겨, 이날 비가 오면 좋지 않다고 한다. 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서원마을에서는 칠석을 즈음하여 칠석물이 들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김매기까지 끝내고 햇볕을 충분하게 받아야 벼가 성장하는데, 비가 오면 모든 것이 좋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경남 지역에서는 칠석 아래(칠석 전 이삼일간) 비가 와야 그해 시절이 좋다고 하여 '칠석아래비'라고 한다. 부산 지역에서는 칠석에 비가 오거나 흐린 것을 '칠석물지운다' 또는 '칠석갈이한다'라고 한다. 칠석갈이를 하면 농작물에 흉년이 들고, 미역이 잘 안 된다고 믿는다.[2]
의의[편집]
칠석비가 만남과 이별의 비라고 여기는 것은 중국의 견우직녀 전설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전설과는 무관하게 칠석비가 농작물이나 해초의 풍년 또는 흉년을 예측하는 대립된 관념으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질병과 같은 액을 쫓기 위한 물맞이 행사도 전승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칠석의 액쫓기 행사는 고유의 신앙에 기초를 둔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2]
칠석[편집]
칠석은 명절 중 하나로, 음력 7월 7일을 일컫는다. 양력으로는 대부분 8월에 온다. 양력을 기준으로 2022년은 8월 4일, 2023년은 8월 22일, 2024년은 8월 10일이다. 가끔씩 광복절(8월 15일), 입추(8월 7일~8일) 또는 말복과도 겹친다. 다른 이름으로 칠성날(七星-), 꼼비기날, 농현, 풋구(경상북도 북부), 호미씻이(경상북도 문경), 꼼비기(구미 선산지역), 호미걸이(전라북도 군산)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려진다.
유래
칠석(七夕)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주(周)나라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대한민국에 유입되었다.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바탕으로 헤어져서 못 만나던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까마귀와 까치들이 만들어준 오작교 위에서 만나는 날이다. 칠석에는 비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설화에 의하면 견우와 직녀가 반가워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고, 칠석날 전후에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타고 갈 수레를 물로 씻어서 준비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다.
또한 칠석에는 까치와 까마귀가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칠석이 지나면 까치의 머리털이 벗겨져 있는데 오작교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견우와 직녀가 까치 머리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대한민국도 일찍이 삼국시대에 이 설화와 풍속이 있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고려 공민왕이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궁궐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다고 하였고,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이 있다. 궁중 밖의 민간에서도 칠석의 풍속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모습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풍속
밀국수, 밀전병, 호박전 등을 먹는다. 또, 칠석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풍속이 행해졌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詩題)로 시를 짓게 하였다. 또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장롱 속의 옷가지와 책장의 책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끼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이 있었는데, 걸교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칠석날 새벽에 부녀자들이 참외, 오이 등의 과일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빈다. 저녁에 상 위로 거미줄이 쳐 있으면 하늘에 있는 직녀가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여기고 기뻐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그 위에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 놓은 뒤, 별에게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빌고 다음 날 아침 재 위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
별과 조상과 자연과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풍속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행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칠석제, 용왕제, 밭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천신(薦新)하며 밀국수, 밀전병, 호박도래전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석음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먹고 칠석놀이라 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가무로 밤이 깊도록 놀기도 한다.[3]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