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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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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s1208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16일 (수) 12:1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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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입구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형성된 곳이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거의가 중국 음식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은 초기 정착민들의 2세나 3세들이어서 1세들이 지키고 있었던 전통문화를 많이는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과거 화교가 가장 많이 살았던 곳이 차이나타운이다. 오늘날의 인천 차이나타운은 많은 중국 음식점과 이국적인 거리를 조성해 놓았고 데이트 코스에도 좋은 곳이다. 수십개의 중화요리집과 중국제과점, 카페가 성업중이며 삼국지벽화거리, 자유공원, 동화마을 등 여러 볼거리가 많습니다. 주말에 방문하면 거리를 가득 채운 관광객들과 여러 이름난 중국집 앞에 길게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상세

과거에는 노후화된 분위기에 중화권적인 조형물이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주거지와 상업 지역이 밀집해 있던 곳이지만 대대적인 정비사업 이후로 매우 깔끔해졌고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 지역이 되었다.

무엇보다 여기가 인천항 개항 당시 도심이었고, 서구 문화가 유입되는 곳, 일본인과 화교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근대식 공원, 최초로 건설된 세관 등이 이 지역 부근에 있었다. 당시 공화춘이 있던 지역으로 짜장면이 발생한 지역으로 명성이 있다.

최근에는 재한화교 거주지, 인천화교소·중산중고등학교, 중화요리점, 만두집, 도교 사원, 불교 사찰, 공묘, 중화감리교회, 짜장면 박물관, 화교 역사관, 한중 문화관 등 중화권과 관련된 곳 외에도 개화기 시절 건설된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성당, 대한성공회 내동성당, 구 선교사 자택 등 서양식 건물, 적산가옥 등 일본식 건물이 남아있다.

북성동에 위치해 있다. 인천 중구 도심 지역은 외국인이 많은 동네이고 재한화교의 비율이 높다. 이는 재한화교와 같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차이나타운 개발을 했다.

처음에는 성공적이지만은 않았지만 도심 재개발 이후 인근 동화마을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수가 늘어 성공하게 되었다. 특히 차이나타운의 경우 관광상품화가 되면서 짜장면의 개발지, 전례지로 하려는 인천시 자체의 노력, 재한화교의 노력 및 일부 귀국 등으로 인해 중화 요리가 유명하다. 주변에 맛있는 만두 가게, 월병 가게 등이 있다.

한국에서 과거 재한화교가 많이 살았던 차이나타운이다. 오늘날의 차이나타운은 재한화교 거주지, 인천화교소·중산중고등학교, 중화요리점, 만두집, 도교 사원, 불교 사찰, 공묘, 중국인 교회인 중화감리교회, 짜장면 박물관, 화교 역사관, 한중문화관 등 중화권과 관련된 곳이 많아 이국적인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에는 짜장면, 짬뽕 대신 다른 중화요리를 판매하는 가게도 있고, 월병, 만두 등을 팔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 주민들은 차이나타운 외 인근 중국집을 찾기도 하는데 인근 지역 쪽도 재한화교가 운영하는 곳들이 많다. 실제로 차이나타운에 와서 다른 중화 요리를 찾기도 한다.[10]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대대적으로 확산되면서 인천 차이나타운 역사상 유례없는 불황에 시달리고는 했다. 다른 원도심 내 재래시장들과 비슷하게, 사스나 메르스 때도 이 정도 불황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심각하다며 해당 구역 상인들은 그야말로 사업이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상당수는 휴업 중이고 일부 가게는 폐업도 고려했었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온상처럼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국 공산당과 연관되었다는 오해를 받아 제노포비아와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냉전 시기에 쓰이는 중공이라는 단어가 다시 쓰일 정도였다. 특히 화교 역사, 양안관계를 모르는 한국인들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 거주민들은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을 보유하는 이중국적자나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 중 하나만 갖는 단일국적자의 비중이 높으며, 중화민국과 관계가 깊고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공산당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리고 거리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아닌 중화민국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다수 눈에 띌 정도인데다 간체자 간판이 하나도 없고 정체자 간판만 있다. 이러한 광경이 목격되고 하면서 이제는 오해가 풀려서 중화민국 출신의 한국 화교를 중국 공산당과 엮는 사람은 없다.

2022년 4월 이후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시작되면서 인천 차이나타운도 소생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전철 수인선의 개통으로 그간 인천에 오기 힘들던 용인, 성남, 수원, 화성, 오산 등 경기 남부 지역 사람들까지 찾게 되어 더욱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공화춘

인천차이나타운에 공화춘이라는 식당이 있다. 그러나 그 공화춘은 1911년 개업한 공화춘이 아닌 판권을 구입하고 부지를 고친 공화춘이며 재한 화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큰 건물을 세워 영업 중인 공화춘은 원조 공화춘이 폐업하고 난 후 한 사업가가 상표만 가로채서 2004년 개점한 곳이며 이런 사정을 아는 인천 토박이들은 절대로 그 가게에 가지 않는다.

진짜 공화춘 창업자 가문이 운영하는 가게는 인천역 인근 신승반점이다. 1983년 원조 공화춘이 폐업하기 3년 전에 공화춘 주방에서 일하던 창업주인 우효광의 막내딸 우란영과 사위 왕입영이 독립하여 세운 가게가 신승반점이다.

현재는 외손녀 왕애주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수요미식회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며, 찹쌀탕수육과 더불어 반숙 계란이 올려져 있는 유니짜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본점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고, 서울에 프랜차이즈 지점도 있다.

거주민

이 지역 주민들은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화교들이며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국인들 중에는 양안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중국과 대만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아 최근 반중 감정을 등에 업은 제노포비아의 희생양이 자주 되고 있다.

그러나 재한 화교들은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을 지원했고, 중국공산당 때문에 졸지에 실향민이 된 피해자이다. 그렇다 보니 중화민국에 우호적이고 반공, 반중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주한 대만 대표부와 교류가 많고 주한 중국 대사관 측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이 지역의 재한 화교들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대만 정부총통 선거, 대만 입법위원 선거, 대만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는 대만 보수 정당인 국민당을 지지한다.

차이나타운이지만 일부는 본국의 실효지배 지역인 대만으로 귀국하거나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을 갔고, 나머지 대부분은 한국 국적으로 귀화하거나 영주권을 취득해서 한국인 혹은 중화민국 공민으로 분류되거나 이중국적을 가져서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을 모두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다른 조선족 거주지에 간체자 간판이 흔한 것과 달리 이곳에는 한국어나 정체자로 쓰인 간판이 많고 오히려 대만의 타이베이, 가오슝 등과 비슷하다. 주민들 대부분이 한국어에 능숙해 다른 한국 마을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깔끔하고 치안 상태가 좋다는 것 역시 차이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중화권 문화 요소가 있고, 중화요리 식당이 많이 있지만, 한국어로 능숙하게 주문하고 주방에서 중국어로 대화하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한국어를 모르는 재한 화교보다 한국어를 잘 하고 중국어를 못 하는 재한 화교들도 있다.

일단 중국 대륙이 고향 땅이기는 한데, 최소 40대 이하 한국 화교 대부분은 중국 대륙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평균적으로는 한국인으로 동화된 사람의 수가 대부분이며 한국인과 화교 사이 태어난 2세들이 나오는 1980년대 출생 이후 세대부터는 적어도 한국어를 모르는 화교는 없고 국적도 대한민국 혹은 중화민국 이중국적이거나 한국 단독 국적의 비율이 높다. 남자들은 군복무까지 한다.

주요 볼거리

이름에 걸맞게 많은 중화요리점, 인천화교소·중산중고등학교, 만두집, 도교 사원, 불교 사찰, 공묘, 중화감리교회, 짜장면박물관, 화교역사관, 한중문화관, 자유공원, 인천항,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성당, 대한성공회 내동성당, 구 선교사 자택, 적산가옥 등 볼거리가 많다.

여기는 재한화교들이 많이 거주하고 이들이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며 대만과 교류가 많기 때문에 중국 대륙보다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거리 자체가 깔끔하고 질서정연해서 중국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 사람이면 인천 차이나타운이 그 선입견을 해소할 좋은 장소이다.

주말에 방문하면 거리를 가득 채운 관광객들과 여러 이름난 중국집 앞에 길게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표 메뉴에는 백짜장, 백년짜장(옛날짜장) 등이 있으며 백년짜장을 시키면 중국의 작장면(炸醬麪)의 모습과 한국의 짜장면의 맛을 가진 요리를 만날 수 있다. 현재의 짜장보다 조금 더 짜고 춘장 맛이 강하고 물기가 없다.

거리가 깔끔하고 중국 분위기로 잘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다만 중국집 메뉴가 천편일률적이고 호객행위가 다소 있는 편인데, 백짜장은 몇몇 음식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중국과 별 관련없는 튀르키예식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나 사탕수수 음료수 가게도 보인다. 물론 중국에서도 투르크계 소수민족 위구르족이나 카자흐족 등이 튀르키예식 문화를 갖고 있긴 하지만, 소수민족들하고 별 관련이 없어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나의 특색이 돋보이기보다 장사가 잘 되는 아이템에 몰리는 모습은 한국의 다른 관광지의 문제점을 그대로 닮아있다.

한편 차이나타운 뒤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자유공원에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과 인천상륙작전의 지휘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맥아더 동상은 인천의 마스코트로 받아들여지는 명물 중 하나다.

벽화 거리에 초한지 및 삼국지의 주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서양 미술에서 보던 작품과 구도를 공유한다. 이를테면 6번 그림은 진승·오광의 난을 묘사하는데,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오마주(Homage)했다. 15번 항우의 무용은 말탄 나폴레옹 황제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51번 그림 패왕별희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본떴다.

교통안내

자가 차량 이용시
  • 차량 네비게이션에서 인천 차이나타운을 입력
  •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로59번길 주소를 입력
대중교통 이용시
  • 1호선 인천역 - 인천역 1번 출구에서 동쪽으로 150미터 도보이동
  • 버스
  • 좌석 : 307
  • 간선 : 2, 10, 15, 28, 45
  • 지선 : 인천e음11 인천e음12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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