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총
천마총(天馬塚)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경주의 고분이다. 지름 47m, 높이 12.7m이며, 1973년에 발굴되어, 천마도(국보 제207호), 금관(국보 제188호), 금모(국보 제189호) 등 11,297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유물 중에 순백의 천마(天馬)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그림이 그려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가 출토되어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 밖에 서조도(瑞鳥圖)와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도 출토되었다.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대릉원 내)에 위치해있으며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2017년 보수 후 원래 위치에서 조금 밀려서 복원된 목곽을 원 위치로 옮기고 적석과 봉분을 제대로 복원하였으며 관리용 복도 부분도 전시 부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요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천마총은 옆에 위치한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발굴한 곳인데,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 같이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발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1973년 4월 16일 발굴이 시작되어 8월 20일에 발굴되어 발표되기 전까지는 155호 고분으로 불렸다.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 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중 일부가 국립경주박물관 별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금관(金冠)과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이다.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금판(金板)이 가장 두꺼우며 금의 성분도 우수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국보 제 188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천마도장니는 천마총 출토품 가운데 세상을 가장 놀라게 한 유품이다. 장니란, 말 양쪽 배에 가리는 가리개로, 흙이나 먼지를 막는 외에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 겹으로 겹쳐서 누빈 위에 하늘을 나는 천마를 능숙한 솜씨로 그렸는데, 지금까지 회화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는 데 큰 뜻이 있다. 이 고분의 명칭을 천마총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 연유한 것이며, 지금은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 현지 안내문
-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대표적 돌무지 덧널무덤이다. 밑둘레 157m, 높이 12.7m 되는 비교적 큰 무덤으로 5~6세기경에 축조된 어느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구조는 평지 위에 나무널(木館)과 껴묻거리(副葬品)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木槨)을 설치하여 돌덩이를 쌓고 흙으로 덮었다.
- 발굴조사했을 때 금관을 비롯한 유물 11,500여 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 그림(天馬圖)이 그려진 말다래(障泥)가 나왔으므로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꾸몄다. 2017년 9월 18일부터 보수하였으며 2018년 7월 27일에 재개장하였다.
발굴조사
1970년대 초,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도굴되지 않은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된 이후로 고분 조사, 그리고 새로운 국보급 유물이 홍보효과도 크고 민족주의 교육수단으로 유용함에 주목했다. 박정희 본인이 한때 교사였던 만큼 상당히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후임 대통령 전두환은 이쪽에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자마자 거짓말처럼 발굴조사 지원이 확 줄어들었다. 사실 원래대로 돌아간 것에 가깝지만...
당시 박정희는 경주관광개발사업을 지시했다. 천마총 발굴조사는 경주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졸속이었던 무령왕릉 발굴을 반면교사로 삼아 좀 더 계획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정권 차원에서도 관심이 상당히 높아서 천마총 발굴 전 과정을 촬영해 홍보용 영화로 제작할 정도였다. 역대 대통령 중 박근혜 이전까지 고고학 발굴현장을 직접 찾은 유일한 사람이 박정희였다. 1973년 박정희는 천마총 발굴현장을 찾아와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단원들에게는 금일봉을 무려 100만 원씩이나 지급하는 등 지원을 했다. 당시 인부들 하루 인건비가 600원, 발굴조사원이 1200원, 소갈비 1대가 500원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옆에 있는 더 큰 황남대총을 발굴하려고 했다. 황남대총은 신라와 경주는 물론이고 국내를 통틀어 가장 큰 고분이기 때문에 역대급으로 중요한 유물이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발굴기술도 미진했고, 거대한 무덤을 제대로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하기에는 경험도 너무 부족했다. 천마총 이전에 신라 대형고분을 한국인 학자들이 발굴조사한 것은 일본인 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에게 협조받아 발굴한 호우총과 은령총 정도뿐이었다. 게다가 1971년 우연히 발견해 발굴한 무령왕릉은 발굴조사가 단 하루 만에(!) 졸속으로 끝났던 일이 있어서 고고학계는 이런 발굴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의지는 확고했고 학자들은 대통령의 뜻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형분을 발굴하긴 하되 다짜고짜 황남대총을 파지 말고, (훗날 천마총으로 명명되는) 경주 155호분을 먼저 시범 삼아 발굴하자고 제안했다. 하필 천마총을 선택한 것은 천마총이 경주의 고분들 중 고유번호 마지막인 155번이었던 것도 한 이유였고, 황남대총 바로 옆에 있어서 시대 양상이나 무덤 양식도 크기의 차이만 있지 비슷하리라 추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마총도 황남대총보다 작을 뿐 대형고분이었지만, 천마총에서 어지간히 유물이 나오면 박정희도 만족하여 황남대총 발굴을 강요하지 않길 기대한 것이다.
1973년 4월, 조사단은 155호분을 발굴하는 첫삽을 떴다. 그런데 시범 삼아 해보았을 뿐인 고분에서 대박이 터졌다.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국보 제207호), 천마총 금관(국보 제188호), 천마총 관모(국보 제189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국보 제190호) 등 부장품 1만 1297점이 출토된 것이다. 출토유물 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 해도 언급된 4점,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천마총 금제 관식(보물 제617호), 천마총 금제 관식(보물 제618호), 천마총 목걸이(보물 제619호), 천마총 유리잔(보물 제620호), 천마총 환두대도(보물 제621호), 천마총 자루솥(보물 제622호) 등 총 6점이나 된다.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크다고 하며, 단군 이래 한국인이 고스란히 발굴해낸 최초의 금관이다. 천마도는 자작나무[6] 수피로 만들어 천수백 년간 산성 토양 속에 파묻혔는데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 기적. 2010년 11월 13일 방송된 역사스페셜에서 천마총 발굴 당시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직접 보면 소름이 끼칠 것이다.
천마총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유물들이 튀어나오자 박정희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더더욱 황남대총 발굴을 압박했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아직 천마총 발굴 중이던 그해(1973) 6월 하릴없이 황남대총 발굴도 시작했는데 역시 초대박이 터졌다.
출토 유물
국보
- 천마총 금관 - 국보 제188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관모 - 국보 제189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금제 허리띠 - 국보제190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 국보 제207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보물
- 천마총 금제 관식 - 보물 제617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금제 관식 - 보물 제618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목걸이 - 보물 제619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유리잔 - 보물 제620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환두대도 - 보물 제621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천마총 자루솥 - 보물 제622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천마도
최근에 이르러서 천마총의 천마 그림이 말이 아닌 기린의 그림, 즉 기린도(麒麟圖)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린은 성인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의 짐승을 말한다. 몸은 사슴과 같고 꼬리는 소의 꼬리에,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으며 빛깔은 5색이라고 알려져 있다. 천마총에 보이는 천마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머리에 뿔이 표현되어 있고 입에서 신기(神氣)를 내뿜고 있는 것은 기린 그림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며 뒷다리에서 뻗쳐 나온 갈기의 표현은 기린이나 용 등의 신수(神獸)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볼 때 말보다는 오히려 기린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람안내
대릉원 입장권(성인 3천 원)에 포함된다. 대릉원의 여러 무덤 중 유일하게 발굴조사 후 내부를 신라왕릉의 구조를 설명하는 전시관의 형태로 열려있다. 역덕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거대한 언덕들만 있는 공원처럼 보이는 대릉원 관람의 핵심이 천마총 내부인 셈이다. 단 천마총 입구가 잘 안 보이는 뒤쪽 담벼락 쪽에 있어서 대충 보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다.
천마총 내부의 전시는 원래는 수십 년 전 구성이라 좀 낡은 느낌이 있었지만 개선하고자 2017년 8월 18일부터 기존의 고분 내부 관람공간을 폐쇄하고 내부시설 보수와 매장주체부 재복원, 전시매체 개선에 들어가 2018년 7월까지 임시 폐쇄했다. 다만 공사기간 동안 관람객의 볼거리가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해 당시 대릉원 입장료를 무료로 바꿨다. 처음에는 2018년 4월 16일까지 완료한다고 하였으나 6월 24일로 연장하더니, 또 연장되어 7월 27일에야 "천마 새터에 다시 모시다."라는 슬로건으로 준공식을 마쳤다. 내부 전시가 예전에 비해 매우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바뀌었고, 부장된 문화재들의 복제품과 터치스크린으로 관람객의 볼거리가 충실해졌다.
- 이용시간 09:00-22:00
- 대릉원 입장료 : 어른 3,000 / 군인,청소년 2,000 / 어린이 1,000
- 주소 : 경북 경주시 황남동 262
- 전화번호 : 054-743-1925
교통안내
- 버스 터미널, 경주역에서 대릉원 후문까지 걸어 간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대릉원 후문까지 700m, 경주역에서 대릉원 후문까지 1km 정도 이다.
- 10번, 11번 버스 : 월성동 사무소(주민센터)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내려서 조금 걸어야 한다.
지도
동영상
참고자료
- 〈천마총〉, 《경주문화관광》
- 〈천마총〉, 《나무위키》
- 〈천마총〉, 《위키백과》
- 〈신라의 천마총 고분군(古墳群) 제155호 고분〉, 《문화유산채널》
- 박상현 기자, 〈1천500년전 화려한 신라 무덤이 눈앞에 펼쳐지다(종합)〉, 《연합뉴스》, 2018-07-27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