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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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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에 위치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조성희
1층 외부 상징광장에 설치된 작품 <역사의 파도>
상설전시1관
상설전시2관
상설전시3관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국가보훈부 소속 박물관이다. 기념관은 이전에 서대문구의회 건물이 있었던 부지에 건설됐고, 본래 2021년 11월 23일에 개관할 예정이었으나 추가 공사로 연기되어 2022년 3월 1일에 정식 개관했다.

지상 4층, 지하 3층 건물로 상설전시실 3개와 특별전시실 1개로 구성되어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극복하고 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하는 곳이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의 역사적 발자취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곳으로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시작되는 과정과 이후 독립이 되기까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바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다.

개요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제의 정신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재조명하여 후대에 전승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임정기념관의 규모는 부지 3,656㎡(1,106평), 건축 연면적 9,7036㎡(2,935평), 전시면적 총 2,240㎡(678평)로 지하3층 지상4층 건물에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특별전시실, 라키비움, 상징광장, 수장고, 다목적홀, 옥상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3 ·1운동부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 활동이 주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 특별전시실에서는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를 주제로 개관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기념관 1층 옥외광장에는 '역사의 파도'라는 주제의 상징벽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임시정부의 독립 염원과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이르는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건립 배경

201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의지를 표명했고, 2019년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계획이 추진됐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기념 시설들이 상하이, 충칭 등 중국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에 국내에도 기념관을 건립해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제의 정신을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기념관 건립의 목적이 됐다.

조직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고위공무원단 나급)
  • 운영지원과
  • 전시운영과
  • 연구교육과

소개

무엇보다 서대문독립공원 인근에 위치하여 서대문형무소와 3.1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송재 서재필 선생 상, 독립관 등 서울에서도 임시정부와 관련이 깊은 장소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서대문독립공원과 서대문형무소까지 둘러보면 역사적 아픔과 함께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과 나라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지하 3층, 지상 4층 건물에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특별전시실, 라키비움, 옥외 상징광장, 수장고, 다목적홀, 옥상정원 등이 갖춰져 있다. 1층 내부에는 중앙홀, 특별전시실과 복합문화공간이 있고, 외부 상징광장에는 <역사의 파도>라는 작품이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상징 기념 작품인 <역사의 파도>는 거대한 크기의 철골 구조로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AR 콘텐츠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사의 파도> 작품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고, 일제에게 강탈된 주권과 국토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선열들의 고귀한 독립정신과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향후 계속될 미래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1층은 특별전시실이다. 2층, 3층, 4층은 상설전시실 1-3관으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연결되어 있다. 2층은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인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27년간 정부로서 활동한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목숨을 바쳤던 사건과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 세워졌다. 3.1운동을 통해 독립국임음 선언했으나 이를 실행에 옮길 곳은 찾기 힘들었다. 국내에는 조선충독부가, 중국과 러시아에는 일본영사관이 설치되어 있어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프람스는 자유·평등·박애 등 혁명 정신을 중시하여 자신의 조계에서 펼쳐지는 독립운동에 우호적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원년(1919년) 4월 수립할 때부터 1932년 4월까지 13년 동안 프랑스 조계에 청사를 두고 활동했다. 임시정부는 일본의 감시와 수색, 재정의 어려움 때문에 여러 차례 청사를 옮겨야 했는데, 임시정부의 청사로 알려진 곳은 12곳이다.

김구와 한인애국단,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 다롄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카이로 회담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1943년 1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영·중 3국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3국 정상들은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 독립하게 할 것을 결의'했고, 이를 12월 1일 선언했다. 한국은 당시 연합국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은 유일한 국가로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이 거둔 가장 큰 성과였기에 매우 중요하다.

현재 국군의 뿌리인 한국광복군 창설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미국·영국 등 연합군과 공동 작전을 펼치며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싸웠던 내용, 한국광복군 군복, 사진이 잘 전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2년을 맞은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전시 수도였던 충칭의 자링빈관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중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이 거행되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이 정식으로 출범한 것이다.

3층 상설전시 2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사람들에 대한 전시가 이어진다. 대한민국 국회의 시초인 임시의정원의 의회 활동과 정당을 살펴보고, 한마음 한뜻으로 임시정부를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대한민국 임사정부 요인과 가족들의 삶,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도운 사람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태평양전쟁에 대한 전시를 확인할 수 있다.

4층 전시실은 임시정부에서 정부로 넘어가는 시기를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로 부터 '헌법'과 '민주공화국'이라는 제도와 국호, 연호, 국가의 상징과 기념일 등을 이어받은 과정을 알아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임시정부로서는 일본의 패망이 분명히 기쁜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힘으로 광복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컸다. 환국 이후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 속에서도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힘쓴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1]

이용안내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 279-24
  • 교통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개관시간 : 10:00~18:00. 입장 마감 17:00
  • 휴관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유일인 경우 그 다음 날 평일), 1월 1일, 설날, 추석
  • 입장료 : 무료
  • 누리집
  • 문의 : 02-772-8708

동영상

지도

각주

  1. 조성희 시민기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기억하는 역사의 파도〉, 《내 손안에 서울》, 2023-04-13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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