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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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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아
아피아 위치

아피아(Apia)는 오세아니아폴리네시아 사모아제도에 있는 섬나라 사모아(영어: Sāmoa)의 수도이며 사모아의 유일한 도시이다. 아피아는 사모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우폴루섬의 북쪽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4만 명이다.[1]

개요[편집]

아피아는 독일인이 건설한 항구도시로 해안을 따라 발달해 있으며 근대적인 모습을 지닌다. 1959년에 수도가 되었다. 남태평양의 교통상 요지며 무전국(無電局)도 있다. 연안에는 산호초가 많아서 항해하는 데 위험이 따르고 대형기선이 접안할 수 없었는데, 국제연합의 원조로 매립공사가 실시되어 지금은 대형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의 사이에 정기항로가 있으며, 서사모아의 주요 수출품인 코프라, 코코아, 바나나 등은 이곳을 통하여 수출되며 고기, 설탕, 자동차는 주된 수입품이다. 시가지에는 전통적인 주택과 서양적인 주택이 혼재하고 있다. 근교에는 《보물섬》의 저자 R.L.스티븐슨의 무덤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아피아는 바이시가노강(Vaisigano) 어귀의 천연 항구에 위치하고 있다. 두 개의 주요 능선이 바이시가노강 양쪽에 남쪽으로 뻗어 있으며 각각 도로가 있다. 이들 중 더 서쪽에 있는 것은 섬 중앙을 가로질러 우폴루의 남쪽 해안까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몇 안 되는 도로 중 하나인 크로스 아일랜드 로드(Cross Island Road)이다.

아피아는 열대 우림 기후(쾨펜 기후 분류에 따른 Af)를 특징으로 하며 연중 일정한 기온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풍이 지배적인 기상 메커니즘이고 그 외에도 사이클론이 몇 개 있기 때문에 기후는 적도 지역이 아니다. 아피아에서 가장 건조한 달은 7월과 8월로 평균 약 80mm 비가 내린다. 가장 습한 달은 12월부터 3월까지로, 월평균 강수량이 300mm를 쉽게 초과한다. 아피아의 연중 평균 기온은 26°C이다. 아피아는 연평균 약 3,000mm이다.[3]

역사[편집]

아피아는 원래 작은 마을이었고, 사모아의 수도가 되면서 그 이름을 따왔다. 아피아 마을은 많은 마을을 포함하는 거대한 도시 지역으로 성장한 더 큰 현대 수도인 아피아 내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 나라의 다른 모든 정착지와 마찬가지로 아피아 마을에도 파사모아(fa'a Samoa) 에 따르면 고유한 마타이(지도자)와 파알루페가(계보 및 관례적인 인사)가 있다.

현대 도시인 아피아는 1850년대에 건설되었으며 1959년부터 사모아의 공식 수도가 되었다. 스우마누타파 포가이(Seumanutafa Pogai)는 1898년 사망할 때까지 최고 추장이었다.

아피아 항구는 1889년 3월 15일 독일, 미국, 영국에서 온 7척의 선박이 태풍이 분명히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이동하는 선박이 체면을 잃지 않도록 항구를 떠나기를 거부한 악명 높은 해군 대치 장소였다. 시속 1마일의 속도로 항구를 떠나 폭풍을 이겨낼 수 있었던 영국 순양함 칼리오페호(Calliope)를 제외하고 모든 선박은 침몰하거나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다. 거의 200명의 미국인과 독일인의 목숨을 잃었다.

서사모아는 1900년부터 1914년까지 아피아를 수도로 하여 독일령 사모아로 독일에 의해 통치되었다.

1914년 8월 뉴질랜드 원정군에 의한 독일령 사모아 점령이 시작되었다. 뉴질랜드는 1920년부터 1962년 사모아가 독립할 때까지 서사모아 신탁 영토로서 이 섬들을 통치했다. 처음에는 국제연맹의 C등급 위임통치령 하에 있었고, 1945년 이후에는 유엔 신탁통치령으로서 통치했다.

사모아는 1900년대 초 민족 마우 운동(Mau movement)의 후원 하에 조직된 정치적 독립을 위한 투쟁을 겪었다. 이 기간 동안 아피아의 거리는 비폭력 시위와 행진의 장소였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모아인들이 체포되었다. "검은 토요일"로 알려지게 된 1929년 12월 28일, 마을에서 평화로운 마우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뉴질랜드 경찰은 최고 추장 투푸아 타마세세 레알로피 3세(Tupua Tamasese Lealofi III)를 살해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해군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우폴루 해군 기지를 건설하고 운영했다.[4]

우폴루섬[편집]

우폴루섬(Upolu)은 오세아니아폴리네시아 사모아제도에 있는 섬나라, 사모아(영어: Sāmoa)에 있는 화산섬이다. 길이는 동서 최장 75km, 남북길이 24km, 면적은 1,125km²이다. 우폴루섬은 사모아제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사모아 인구 대부분이 거주하며 사모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섬이다. 섬 북부에는 사모아의 수도인 아피아(Apia)가 위치한다. 우폴루섬은 태평양에 있는 해저화산 활동과 현무암으로 형성된 섬이다. 우폴루섬은 서쪽에 이웃한 사바이섬과 더불어 서사모아의 주도(主島)를 이룬다. 타원형으로 된 화산섬이며 섬 서단에는 팔레올로 국제 공항이 있다. 이웃한 섬인 사바이섬과는 달리 우폴루섬에서는 화산 폭발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이 섬은 오잘라바섬(Ojalava) 또는 오졸라바섬(Ojolava)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폴루섬은 예로부터 폴리네시아인이 독립왕국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열강의 쟁탈 대상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은 이 섬에 총면적 1.6km²에 달하는 농지를 소유했으며 1894년 그곳에서 사망했다. 우폴루섬은 독일령, 뉴질랜드령 등을 거쳐 1962년 서사모아의 일부로 독립하였다. 비가 많아 오지(奧地)는 밀림에 뒤덮여 있으며 거주지는 대체로 거초(裾礁)가 있는 해안에 국한되어 있다. 땅은 기름지며 바나나와 코코야자 농장이 발달하였다. 면적은 사바이섬보다 작으나 수도인 아피아가 있고 사모아 전인구의 3/4이 집중해 있으며 정치, 상업의 중심인 아피아항(港)이 섬의 북해안에 있는 만(灣)에 발달해 있다. 2009년 9월 29일 아침 6시 48분경 아피아에서 남쪽으로 약 195km 정도 떨어진 진원으로서 진도 규모 8.0에 달하는 지진(2009년 사모아 지진)이 발생했으며 우폴루섬 남동부에서는 약 10m 정도에 달하는 해일이 덮쳐 마을이 침수되고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5]

사모아[편집]

사모아(영어: Sāmoa)는 오세아니아폴리네시아 사모아제도에 있는 섬나라이다. 정식 국명은 사모아독립국(사모아어: Malo Sa'oloto Tuto'atasi o Sāmoa, 영어: Independent State of Samoa)이다. 수도는 아피아이다. 동쪽에 접하는 미국령 사모아와 구별하기 위하여 서사모아(Western Samoa, 문화어: 서부사모아)라고도 부른다. 사모아는 오세아니아 날짜 변경선의 동쪽 멜라네시아의 동단 피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800km 해상에 위치하는 화산군도이다. 주도 사바이는 이 지방 최대의 섬이며, 높이 1,858m의 실리실리산이 솟아 있고, 다음으로 큰 우폴루섬에는 높이 1,100m의 피토산이 솟아 있다. 사바이섬은 용암류로 뒤덮인 토지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섬이 큰데도 불구하고 전인구의 불과 1/3이 거주할 뿐이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해안과의 사이에는 좁은 평지가 있어 취락은 거의 이곳에 입지한다. 연평균 기온은 27℃ 정도이나 무역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아 연강수량은 3,000~4,000mm 안팎이다. 비는 11월부터 4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오는데 산지에서는 6,000mm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섬 전체는 열대식물에 뒤덮여 습도가 높으며 거의 동위도상에 있는 타히티나 피지보다 무덥다.[6]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 처음 이주할 때 정착한 땅으로 여겨지며 유럽인과의 접촉은 18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오면서 시작되었다. 1722년 네덜란드 항해가 야코프 로헤벤이 사모아 제도를 발견했다. 이후 1830년 선교사들이 사바이섬에 정착했고, 그 뒤를 이어 1840년에 첫 이주민이 왔다. 이들은 사모아를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모아는 왕국이었으나 계승 분쟁이 벌어졌고 영국, 독일, 미국 3개국이 태평양 진출을 위해 점령을 시도하면서 부족들을 이간질시켜 내전을 벌이게 하거나, 이들에게 총기를 비싼 값에 외상으로 팔게 하여 어업권과 온갖 경제적 이득을 차지하는 수법으로 경제를 말아먹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1899년 태풍으로 인해 함대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협정을 체결하여 서사모아는 독일령 사모아로 하고 동사모아는 미국령 사모아로 분할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자 1914년 뉴질랜드가 사모아를 점령했고, 1920년 국제연맹에서 사모아의 위임통치권을 부여받았다. 1947년 뉴질랜드 관할의 신탁 통치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독립 운동이 고조되어 1961년에 유엔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아 그 다음해 1월 1일에 오세아니아에서 최초의 자치국으로 독립하였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아피아〉, 《위키백과》
  2. 아피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Apia", Wikipedia
  4. 아피아〉, 《요다위키》
  5. 우폴루섬〉, 《위키백과》
  6. 사모아〉, 《위키백과》
  7. 사모아〉,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오세아니아 같이 보기[편집]

오스트랄라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오세아니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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