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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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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

사랑채(舍廊房, room in detached house)는 가부장의 일상의 거처실이자 남성접객에 대한 접객공간으로 주택 외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공간이 좁은데다 앉은 키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며, 시각적으로 아담하게 정리된 선과 면의 형태로 구성된다. 사랑채는 주인이 거처하는 방이면서 손님을 맞는 응접실 역할도 했는데, 주인은 양반이면서 글하는 선비이기 때문에 방안을 유교적 덕목(德目)에 걸맞게 꾸민다.[1]

개요[편집]

사랑방 또는 사랑채는 한국의 전통주택에서 가부장의 생활공간이자 학문과 예술로 마음을 닦아 맑게 하고, 손님을 접대하며, 묵객들이 모여 담소하거나 취미를 즐기던 공간으로 양반 사대부들의 집에는 반드시 사랑채가 갖추어져 있었다. 여성이 가장이 된 경우에도 남성이 주로 사용했다. 요즈음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친근한 공간의 의미로 사용한다. 강원도 유일한 국토부 선도지역 통리 도시재생 지원센터에는 이런 의미의 사랑채를 몇 개 만들어 놓아 주민학교 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계층이 낮은 가정에서 사랑채는 여성의 공간인 안방의 맞은편에 위치하였다.

사랑채는 한국식 전통 가옥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취미를 즐기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사랑방이나 외당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 문화에서는 손님이 숙박할 수 있도록 사랑방이 안채와 별도로 존재할 정도로 접대의 관습에 매우 친화적이었다.

초가집 정도에서는 당연히 볼 일이 없고, 나름 규모가 있는 기와집은 되어야 마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옥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주거는 폐쇄적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당과 생활공간 사이에서 시야에 걸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는 곳 같은 대외적 공간과 사적공간인 안방을 분리하는 용도로 사랑채가 존재한다.

중국 북경의 전통적 주거형태인 사합원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연친화적이지만,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분리하면서 중간적 역할을 하는 곳을 두는 것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랑에서는 주로 글을 읽거나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므로 문갑, 서안, 연상, 지통 등 문방가구와 팔걸이, 보료, 방석, 장침, 병풍 등이 있다.[2]

역사[편집]

고려시대 말즈음부터는 고관대작들이 벼슬길에 오를 예정인 재야인사나 기인들을 초빙하여 그들의 재주와 능력을 사전에 보는 일종의 면접장소 같은 용도로 사용 되었으나 조선조에 이르러선, 바깥주인의 관리 아래 논객들이 논전을 벌이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집의 바깥주인은 안채와 떨어져 있는 사랑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것이 풍속이다. 그러니까 손님들이 머무르며 주인과 상담하는 곳이 사랑방이다. 하여 사랑방은 다른 말로 客(손 객)자나 外(바깥 외)자를 써서 객간, 객당, 외당, 외실이라고도 하였고, 또 온갖 정보를 듣는 곳이니까 중국에서는 耳(귀 이)자를 써서 '耳房(이방)'이라고도 하였다.

숙종실록(1680년 8월 13일) 등에서 증명되는 것처럼 사랑방(舍廊房)은 한국의 토속 한자어로 본래 음은 '샤랑방'이었다. 舍(사)자의 바른 음이 '샤'이기 때문이다.

사랑방은 줄여서 사랑이라고 하며, 더 줄여서 '舍(사)'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산시문집 제4권에 나오는 시구 "舍客伐其榦(사객벌기간)"에서의 舍는 '사랑방'을 뜻한다.

'사랑방'의 핵심 글자는 舍인 것이다.후한의 유명한 문자학자인 허신은 그의 저서 <설문해자>에서 '舍(사)'를"市居(시거)"라 설명하였다. 이에 대해 청대의 문자학자 단옥재는 "이때의 市자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빈객들이 거하며 머무는 곳을 뜻한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거듭 주석을 달자면, 舌(혀 설)이 부수자인 舍(집 사)에는 빈객들이 머무르며 담론하는 바깥채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외곽 건물을 뜻하는 廊(랑)자를 합해 '사랑'이 나왔고, 거기에 다시 방(room)자를 합성한 말이 '사랑방'이다.

그러니 본래 '사'에 아래아를 쓰는 '사랑(love)'이란 말과 혼동하여 '사랑방'을 '사랑을 나누는 방' 쯤으로 인식하면 매우 곤란하다. 또한 사랑방의 마지막 글자인 '房(방)'의 경우 '집' 또는 '방'을 뜻하는데, 한 가지 뜻에만 집착할 경우 사랑방의 의미가 굴절되어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사랑방은 시쳇말로 전형적인 오프라인 카페이다. 한국 각처의 사랑방은 하루 종일 이런저런 얘기로 뜨겁게달아오르는 민심의 현장 그 자체이니, 민심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들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조선 사회에서 지배층을 이루고 있었던 사람들은 선비 또는 사대부라 불렸던 사족(士族)들이다. 이들은 유학의 이념과 도덕을 바탕으로 사회를 교화하는 것을 지배계층의 주된 임무로 여겼다. 그들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방안으로 유교경전, 역사 등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상호 교류하였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모시는 서원, 개인적으로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 그리고 경치가 뛰어난 곳에 세웠던 크고 작은 정자(亭子)가 대표적인 활동했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비들은 자택에 사랑방을 두고 학문을 익히면서 주변사람들이나 명사들과 교류하였다. 선비들의 사랑방은 집안의 생활공간인 안채(본채)와 분리되어 있었으며, 집안의 어른인 가장이 주로 거처하였다. 조선은 유교사회를 표방하였기 때문에 근검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겼으 사랑방은 외관상으로는 정갈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사랑방이 외부 사람들이나 명사들과의 교류 장소인 까닭에 외관상 근검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당히 수준 높은 책자나 물품 등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방에는 선비들이 소중히 다루었던 종이, 붓, 먹, 벼루의 문방사우와 이들을 보관하기 위한 여러 용구들이 있었고, 또한 책자나 서화를 배치하여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3]

다른 나라에서 사랑채[편집]

영미권의 전통적인 저택에서는 사랑채와 비슷하게 지역 주민들이 모여 사담을 나누는 장소로 팔러(parlor)라는 공간이 있었다. 팔러는 호텔로 치면 라운지에 해당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한국과는 달리 입식문화였기 때문에, 의자와 카페트, 테이블 등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4]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사랑방〉, 《네이버지식백과》
  2. 사랑방〉, 《위키백과》
  3. 사랑방(舍廊房)〉, 《네이버블로그》, 2018-09-08
  4. 사랑방〉,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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