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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6일 (토) 09:4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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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피코 또는 탐피고(스페인어: Tampico)는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멕시코만 연안에 있는 도시이다. 면적은 92.73km², 인구는 31만 명으로 타마울리파스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1]
개요
탐피코는 타마울리파스주의 남동부, 멕시코만에서 내륙으로 약 10km 떨어져 있으며 베라크루스주의 바로 북쪽에 있다. 탐피고는 석유정제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시가는 파누코강 하류의 북안에 있으며 탐피코 유전에서 끌어온 송유관이 집중하여 석유를 적출한다. 20세기 초부터 1930년경까지는 세계적인 석유수출항으로서 알려져 있었으나 30년대 후반, 외국자본이 도입된 정유공장이 들어선 후 그 지위가 저하되었다. 정유관계 시설은 파누코강 남안 수 km에 걸쳐 전개된다. 20세기 초 멕시코의 첫 석유 붐 기간 동안, 이 도시는 "미국의 주요 석유 수출 항구"였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바쁜 항구였으며, 도시의 유명한 건축물에 투자되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멕시코 최초의 유정은 1901년 탐피코 근처 에바노에서 시추되었다. 1923년, 멕시코의 가장 큰 탐피코 근처의 유전이 고갈되어 일자리와 투자가 이탈했지만, 다른 지역의 경제 발전은 이 도시를 항공과 탄산음료 산업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도시는 또한 양털, 삼베, 그리고 다른 농산물뿐만 아니라 은, 구리, 목재 등의 주요 수출항구이다. 현재 컨테이너 화물은 주로 인근 항구인 알타미라 (Altamira)에서 처리된다. 도시는 또한 항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수한 철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유조선을 적재하기 위한 창고와 장비가 잘 발달되어 있다. 주요 도로는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로 연결된다. 탐피코의 북쪽에는 제너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미나 국제공항(IATA 공항 코드: TAM)이 있으며 주로 멕시코시티와 몬테레이로 가는 노선을 운행하고 있으며, 텍사스, 휴스턴으로 가는 항공편도 운항하고 있다.교육기관으로 타마울리파스 자치 대학교는 탐피코에 있는 두 개의 가장 큰 캠퍼스 중 한 곳과 시우다드 빅토리아에 있는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멕시코만 연안은 여름에도 시원하여 해변휴양지로서도 알려져 있으며 낚시나 요트에 적합하고 별장도 많다. 부근의 구릉은 수렵지로서도 뛰어나다. 또 수많은 석호(潟湖)는 들새의 사냥터이며 미국 관광객이 많다.[2]
기후
탐피코는 열대 사바나 기후(쾨펜: Aw)를 가지고 있으며 1월 평균 기온 18°C와 강수 패턴을 기준으로 정의된다. 봄과 가을에는 상당히 쾌적하지만 여름에는 덥다. 평균 최고 기온은 8월에 32°C, 평균 최저 기온은 23°C이다. 겨울은 따뜻하다. 1월 평균 최고 기온은 23°C이고 1월 평균 최저 기온은 13°C이다. 6월부터 10월까지 비가 자주 내린다.
탐피코는 여름 열지수가 40°C에 이를 정도로 습도가 높은 도시이다. 도시는 파누코강과 멕시코만과 인접한 광범위한 습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만을 지나는 한랭전선의 영향을 받고 70~80km/h의 돌풍을 동반한 50km/h의 강풍을 동반한다. 탐피코는 허리케인 지역에도 위치해 있지만, 50년 이상 동안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드물지만, 2011년 1월 하순과 2월 상순에는 한파가 발생하여 기온이 5°C까지 떨어졌으며, 최저 기온은 2월 4일 오전과 정오에 0°C로 떨어졌다. 1895년 2월에 탐피코에 눈이 내렸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해안 지역에서 가장 남쪽에 눈이 내린다는 북미 기록으로 탐피코는 열대지방에서 해수면에서 눈이 내린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3]
역사
탐피코는 수달의 많은 개체군이 서식했던 파누코강 삼각주의 강과 석호로 둘러싸여 있다. 이 지역에는 수세기 동안 연속적으로 사람들이 정착해 왔다. 이 지역에는 초기 화스텍(Huastec) 정착지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중요한 장소는 서기 1000년에서 1250년 사이에 번성했던 라스 플로레스(Las Flores)였다.
1532년,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프란체스코회 신부 안드레스 데 올모스(Andrés de Olmos) 는 이전 우아스텍(Huastec) 마을 위에 건물을 지어 이 지역에 선교부와 수도원을 세웠다. 그의 요청에 따라 스페인 관리들은 1554년에 산 루이스 데 탐피코(San Luis de Tampico)라는 정착지를 세웠다. 이 장소는 1684년에 버려졌고 유럽과 미국의 해적들의 잦은 공격으로 인해 인구는 파누코강 남쪽으로 이주했다. 그 지역은 거의 150년 동안 버려져 있었다.
현재의 도시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1823년 4월 13일 걸프만에서 약 10km 떨어진 파누코강 북쪽 기슭에 건설되었다. 탐피코는 은 수출을 기반으로 경제를 구축했다. 사업 개발은 주로 농업 지역의 무역 중심지이자 시장 도시로 이루어졌다. 마을은 또한 1807년 국제 노예 거래를 금지했던 미국 남부로 불법적으로 아프리카 노예들이 다시 이동하기 위한 흔한 경유지가 되었다. 1829년 8월, 스페인은 탐 피코 지역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쿠바에서 군대를 파견 하여 탐피코를 침공했지만, 9월에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Antonio López de Santa Anna) 장군이 스페인군을 강제로 항복시키고 멕시코의 탐피코 통제권이 다시 확립되었다.
멕시코 최초의 유정은 멕시코 석유 공사(Mexican Petroleum Corporation)를 설립한 캘리포니아 출신 에드워드 도헤니(Edward Doheny) 에 의해 1901년 탐피코(Tampico) 근처의 에바노(Ebano)에서 시추되었다. 20세기 초 탐피코에서는 석유 개발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산업과 관련하여 상당한 규모의 미국 국외 거주자 커뮤니티가 발전하였다. 대략 1910년부터 1920년까지 지속된 멕시코 혁명의 발발과 함께, 미국은 시민들과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황을 감시했다. 도헤니는 자신의 사업 중 일부를 이곳에서 독점 운영하던 스탠다드 석유 회사(Standard Oil Company)에 매각했다. 석유 생산 지역은 "황금 벨트"라고 불릴 정도로 생산성이 높았다.
에바노, 파누코, 후아스테카, 툭스판으로 알려진 유전은 모두 도시의 반경 160km 안에 위치해 있었다. 석유는 종종 강을 따라 바지선에 실려 운반되었다. 항구로의 석유 수송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1901년부터 치졸 운하를 건설했다. 이 운하의 깊이는 1.8m, 폭은 7.6m이며 유전을 통해 남쪽으로 120km 뻗어 텍스판(Tuxpan)까지 이어진다.
멕시코 혁명 당시인 1914년 4월 9일, 10명의 멕시코 군대와 9명의 USS 돌핀호(USS Dolphin) 소속 미 해군 수병들은 미군이 연료 공급을 시도하는 동안 통신이 실패하여 서로 대결했다. 도시에 주둔 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Victoriano Huerta) 장군의 군대는 북부와 남부의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체포됐다가 나중에 풀려났지만, 미국은 인정을 요구하는 우에르타의 요구에 분개했다. 그 결과 탐피코 사건(Tampico Affair)이 일어나자 미국은 해군과 해병대를 베라크루스 항구에 파견하여 무력을 과시하기 위해 7개월 동안 이 도시를 점령했다. 각 해안에서 발생한 반미 시위로 인해 일부 미국 시민을 미국 남부 도시의 난민 캠프로 대피시키기 위해 다른 미 해군 선박이 사용되었다. 미국의 점령은 우에르타의 몰락에 기여했고 베누스티아노 카란자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행동에 대한 미국에 대한 지속적인 적대감 때문에 멕시코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중립을 유지하도록 보장했다.
1970년대에 탐피코는 현재 탐피코 대도시 지역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항구도시와 시우다드 마데로 교외를 합병했다. 탐피코에는 훌륭한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항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시티와 미국으로 가는 철도 및 항공 연결도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39년 석유산업을 국유화해 75년간 유지해왔다. 2014년 11월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 대통령은 페멕스(Pemex)의 독점을 종식하고 민간 기업을 석유 및 가스 산업에 다시 참여시키는 정책 변경을 발표했다. 분석가들은 가장 큰 발견이 해외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지만, 새로운 기술은 탐피코와 같은 성숙한 유전에서도 석유를 생산할 수 있다. 2015년 초, 정부는 169개 블록에 대한 입찰을 받아들일 계획을 세웠는데, 그중 47개가 탐피코에서 110km 이내에 있었다. 이 지역과 같은 성숙한 분야에서는 소규모 기업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 지역에는 광범위한 셰일 오일 매장량이 있으며, 미국 에너지 정보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은 멕시코가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셰일 오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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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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