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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스폴'''(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Тирасполь, 몰도바어: Тираспол/Tiraspol, 영어: Tiraspol, 문화어: 찌라스뽈)은 미승인국가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있는 [[도시]]이다. 드니스테르강 동쪽에 위치하며, 1992년 이래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도시)|수도]]이다. 그리스어로 '티라스'는 드네스트르강, '폴'은 도시를 의미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8B%B0%EB%9D%BC%EC%8A%A4%ED%8F%B4 티라스폴]〉,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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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스폴'''(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Тирасполь, 몰도바어: Тираспол/Tiraspol, 영어: Tiraspol, 문화어: 찌라스뽈)은 미승인국가 [[트란스니스트리아]](러시아어: Приднестровье, 우크라이나어: Придністров'я, 몰도바어: Нистрения)에 있는 [[도시]]이다. 드니스테르강 동쪽에 위치하며, 1992년 이래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도시)|수도]]이다. 그리스어로 '티라스'는 드네스트르강, '폴'은 도시를 의미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8B%B0%EB%9D%BC%EC%8A%A4%ED%8F%B4 티라스폴]〉, 《위키백과》</ref>
  
 
==개요==
 
==개요==

2023년 12월 5일 (화) 13:54 판

티라스폴
티라스폴 위치

티라스폴(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Тирасполь, 몰도바어: Тираспол/Tiraspol, 영어: Tiraspol, 문화어: 찌라스뽈)은 미승인국가 트란스니스트리아(러시아어: Приднестровье, 우크라이나어: Придністров'я, 몰도바어: Нистрения)에 있는 도시이다. 드니스테르강 동쪽에 위치하며, 1992년 이래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이다. 그리스어로 '티라스'는 드네스트르강, '폴'은 도시를 의미한다.[1]

개요

티라스폴은 명목상 몰도바의 남동부에 있는 도시이자 미승인국가인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이다. 면적은 55.56㎢, 인구는 약 13만 명이다. 1792년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원수에 의해 도시가 세워졌다. 러시아 제국에 이어 소련도 이 도시를 계속 통치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한때 루마니아 왕국에 함락되기도 했다. 헌법상으로 따지자면 수도 키시너우와의 관계는 한국의 서울부산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사실상 서울과 평양의 관계라고 봐야 한다. 명목상 몰도바 제2의 도시이지 실제로는 행정력은 전혀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티라스폴의 주민구성은 74%가 러시아-우크라이나계로, 72%가 루마니아-몰도바계인 키시너우와 대조를 이룬다. 티라스폴은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체 정부, 의회, 경찰, 군대를 갖고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러시아어: Приднестровская Молдавская Республика)의 수도이다. 몰도바 정부는 트라스폴을 포함한 드네스트르강 동쪽 지역을 몰도바에 속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자치지역으로 지정하였다. 티라스폴은 습윤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는데, 아울러 해양성 기후와의 경계지대에 위치한다. 여름은 더위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편이며, 강수량은 연중 고르지만 6, 7월에 비교적 많다. 티라스폴에는 10월25일거리에 정부와 의회 청사, 영광의 기념물, 수보로프광장, 티라스폴시청, 드라마극장 등이 있고 셰프첸코거리에 그리스도탄생성당이 있다. 티라스폴은 가구, 전기 제품 생산 같은 경공업이 활발하다.[2][3]

역사

수천 년 동안 여러 민족이 살았던 땅에 1792년에 러시아제국 군대가 들어와 요새를 쌓았다. 러시아제국의 알렉산데르 수보로프 원수가 근대 티라스폴을 건설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보로프광장에 있는 그의 기마상은 티라스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1828년에 러시아 정부는 밀수를 막기 위해 티라스폴에 세관을 설치했다. 세관은 오데사세관장 밑에 속해 있었다. 세관은 빵, 종이, 석유, 포도주, 설탕, 과일 등의 선적을 검사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이후 소련이 성립되자, 티라스폴은 우크라이나 공화국 내에 수립된 몰다비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속하게 되었다. 이 공화국은 루마니아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를 공식 언어로 하였다. 수도는 1929년에 발타에서 티라스폴로 옮겨졌고 1940년까지 이어졌다. 1940년에 몰로토프-리벤트로프협정에 따라 소련은 루마니아로부터 티라스폴을 포함한 베사라비아를 할양받았다. 1941년 추축국이 소련을 침공한 후에 티라스폴은 루마니아군에 점령되었다. 루마니아군이 점령한 동안 티라스폴은 루마니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 기간에 티라스폴의 거의 모든 유대인이 이곳에서 죽거나 독일의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 끌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1990년 1월 티라스폴 시민들은 주민투표를 실시해 티라스폴이 독립된 영토임을 선언하였다. 근처의 도시 벤데도 역시 몰도바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0년 9월 티라스폴은 새 트란스니스트리아몰도바 공화국의 수도로 선언되었다. 새 공화국은 소련 당국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나톨리 루캬노프 같은 몇몇 유력한 소비에트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은 몰도바로부터 사실상 분리되었으며 드네스트르강의 동쪽 지역은 티라스폴을 수도로 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으로 독립을 선언했으나 국제적으로 나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4]

교통

티라스폴에서 1967년에 트롤리버스 운행이 시작되었다. 티라스폴에서 13여 km 떨어진 벤데리까지 트롤리버스가 운행된다. 2013년에는 와이파이 설비가 장착된 트롤리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트롤리버스 외에 더 오래된 운송 수단인 버스가 여전히 다닌다. 티라스폴에서 북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그리고리오폴과 키시너우, 콤라트 등으로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티라스폴에 철도가 연결된 것은 1867년이다. 이 철도를 통해 우크라이나오데사, 몰도바키시너우로 연결된다. 1992년까지 주당 30회 열차가 운행되었으나 트란스니스트리아 독립 후 몰도바로의 열차편은 주 3회 또는 4회로 줄었고 오데사로의 열차는 매일 운행된다. 철도역은 시내 키로프공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5]

문화

티라스폴 인구의 41%가 러시아인이고 32%가 우크라이나인, 18%가 몰도바인이다. 이곳에 러시아정교회 신자들을 위하여 1992년 종교적 자유가 회복되었다. 티라스폴에 1930년에 세워진 트란스니스트리아국립대학이 있다. 문화생활은 지역 또는 주립 기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티라스폴에는 중앙도서관, 푸시킨도서관과 마야콥스키도서관, 어린이도서관 등이 있다. 공화국의 집이라 불리는 문화의 집이 시내 중심에 있다. 티라스폴심포니오케스트라, 트란스니스트리아합창단, 비오리카댄스포크음악극단이 문화의 집에 들어 있다. 티라스폴에는 1930년부터 드라마극장이 있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국립대학이 대학역사박물관, 고고학박물관, 동물학지질학박물관, 고생물학박물관을 운영한다.

경관과 명소

트란스니스트리아지방의 중심인 티라스폴은 동서로 뻗어 있는 10월25일거리가 중심 대로이다. 이 대로 양쪽에 주요 건물과 기념물들이 있다. 10월25일거리에 정부와 의회 건물이 있고 그 앞 광장에 레닌의 상이 높이 솟아 있다. 레닌상 맞은편 10월25일거리 건너편에 젤린스키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가스마스크를 발명하여 제1차 세계대전 때 많은 생명을 구한 유기화학자 니콜라이 젤린스키가 유년 시절을 보낸 집으로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젤린스키박물관 바로 옆은 지역사박물관이다. 그리고 그 옆의 넓은 공간에 기념물지구가 있고 기념물지구 안에 영광의 기념물이 있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소비에트아프간전쟁, 트란스니스트리아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을 기리는 곳이다. 영광의 기념물이 있는 광장은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이 광장에 기념물지구를 만들기로 1970년대 초에 결정이 되었고 1972년에 기념물지구가 문을 열었다. 2009~2010년에 영광의 기념물은 다시 지어졌다. 기억의 집이 세워져 1990~1992년에 전사한 모든 트란스니스트리아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또한 슬퍼하는 어머니상이 만들어졌다. 새로 지어진 영광의 집은 2010년 8월 초에 문을 열었다. 2011년 10월에는 영광의 집 앞에 매우 특이한 모습의 성게오르그예배당이 세워졌다. 정교교회인 이 예배당은 넓은 광장의 좁은 면적에 높이 솟은 모습으로 꼭대기는 정교회의 전형적인 둥근 돔이 있다. 영광의 기념물 앞에는 전차기념물도 있다. 이 전차는 T-34형으로 2차대전 때 부다페스트전투에서 쓰였던 것으로 헝가리에서 옮겨져왔다.

영광의 기념물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수보로프광장이 있고 광장 가운데에 수보로프의 기마상이 서 있다. 수보로프는 18세기 러시아의 장군으로 역사상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승리의 과학'이라는 전략서를 남겼고 "열심히 훈련하고 쉽게 승리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수보로프광장 옆에 티라스폴시 문화의 집과 영화관이 있다. 10월25일거리의 동쪽 끝 부분에 티라스폴시청과 트란스드네스트리아대학, 드라마극장이 있다. 드라마극장 동쪽은 승리공원으로 승리공원 입구에 웅장한 문이 있고 문에는 러시아어로 승리공원이라고 적혀 있다. 승리공원 안에 어린이놀이터와 볼링장이 있고 승리공원 서쪽에는 아이스링크와 티라스폴공화국경기장이 있다.

셰프첸코거리에 티라스폴에서 가장 큰 정교회인 그리스도탄생성당이 있다. 표트르 라블론스키가 설계한 이 교회는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지어졌다. 이 교회는 러시아정교회의 티라스폴과 두버사리 교구 교회이다. 1999년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이 교회의 모습이 담긴 우표가 발행되었다. 2001년에는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정교회 기념 금화와 은화에 이 교회 모습이 들어갔고 2004년에 발행된 100루블 지폐 뒷면에 이 교회 모습이 담겼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티라스폴〉, 《위키백과》
  2. 티라스폴〉, 《나무위키》
  3. 티라스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티라스폴〉, 《요다위키》
  5. 티라스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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