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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옌셰핑에 출행한 스웨덴의 경제학자로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 스웨덴 옌셰핑에 출행한 스웨덴의 경제학자로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 ||
− | 웁살라대학교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33∼1936년 스톡홀름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그후 재무부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1947년부터 외무부에서 근무하였다. 1951년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1957년 재선되었다. 재임기간(1953∼1961) 동안 6·25전쟁을 비롯하여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1961년 9월 콩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로 가던 중 북로디지아(잠비아)의 산중에서 항공기사고로 죽었다. 1961년 죽은 뒤에 | + | 웁살라대학교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33∼1936년 스톡홀름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그후 재무부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1947년부터 외무부에서 근무하였다. 1951년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1957년 재선되었다. 재임기간(1953∼1961) 동안 6·25전쟁을 비롯하여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1961년 9월 콩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로 가던 중 북로디지아(잠비아)의 산중에서 항공기사고로 죽었다. 1961년 죽은 뒤에 [[노벨평화상]]이 추증되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01548&cid=40942&categoryId=40484 두산백과 : 함마르셸드]〉, 《네이버 지식백과》</ref> |
== 지도 == | == 지도 == |
2024년 6월 21일 (금) 15: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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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셰핑주(스웨덴어: Jönköpings län)는 스웨덴 남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
개요
옌셰핑주의 면적은 10,475㎢이며 인구는 369,113명(2022년)이며 주도는 옌셰핑이다. 남서쪽으로는 할란드주, 북서쪽으로는 베스트라예탈란드주, 북동쪽으로는 외스테르예틀란드주, 남동쪽으로는 칼마르주, 남쪽으로는 크로노베리주와 접한다. 지명은 13세기부터 시장개설 권한부여로 장이 열려 스웨덴어로 무역(Junebäcken)을 의미한다.
옌셰핑과 주변은 스웨덴의 예루살렘(Jerusalem of Sweden)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교회들이 있다. 인근 작은 마을 하보(Habo)에 위치한 하보교회(Habo Church)는 1680년에 목조로 지어진 독특한 외관으로 2002년 스웨덴 우정국이 크리스마스의 낭만적인 교회 중 하나로 선정해 기념 우표를 발행한 곳이다. 비교적 최근인 1988년에 문을 연 옌셰핑 서쪽에 위치한 소피아 성당(Sofiakyrkan)도 아름다운 외관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13개의 자치시(Municipalities)로 구성되며 주요 도시는 주도인 옌셰핑과 후스크바르나(Huskvarna)이다. 인구 약 15만 명의 옌셰핑은 스웨덴에서 8번째로 큰 도시로 13세기부터 시장이 형성되어 상업과 교역이 활발하였다. 1612년에 대화재가 발생해 이전보다 동쪽에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여 현재에 이른다. 17세기부터 스웨덴이 여러 전쟁에 휘말리면서 소총을 비롯한 무기와 군복제조로 번영해 도시가 크게 성장하였다. 3개의 호수를 연결하는 운하로 아름다운 풍광과 많은 성과 박물관이 위치한다. 1536년부터 200여 년간 단계적으로 지어진 옌셰핑 성(Jönköping's Castle)은 1737년 화재로 소실되어 감옥과 군대막사로 활용하다 19세기 이후 공원이 된 곳이다. 시의 대표적 명소는 1977년 옌셰핑 출신 건축가 칼 뉘렌(Carl Nyrén)이 설계한 옌셰핑주 박물관(Jönköping County Museum)으로 많은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연중행사가 개최되는 문화 공간이다.
후스크바르나는 옌셰핑과 5km 거리에 위치해 사실상 단일생활권으로 두 도시에 주 인구의 1/4가 거주한다. 17세기 말부터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소총을 공급하였던 곳으로 소형 트랙터와 공작기계 등 기계와 경공업이 발달한 곳이다. 1950년대 이후 인근의 옌셰핑이 성장하면서 위성도시로 인구가 늘었다. 시내에 1689년에 문을 연 후스크바르나 박물관(Husqvarna Museum)은 본 지역에서 수세기 동안 생산한 소총과 군용무기, 자전거와 트랙터 등 기계장비를 모아놓아 인기가 많은 곳이다. [3]
자연환경
평균 고도 400m로 남부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주 면적의 76%가 숲과 나무로 스웨덴에서 산림 비중이 높은 주 중 하나이다. 경작지는 15%에 달해 전국평균을 넘고 호밀, 귀리재배와 낙농업이 활발하다.
역사
1687년 크로노베리주((Kronoberg County)에서 분리되어 구성되었으며, 스웨덴 남부 지방인 스몰란드(Småland)의 북서부와 크로노베리와 칼마르(Kalmar) 지방의 일부를 포함한다.
산업
노동인구의 약 1/3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스웨덴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으로 경공업, 금속가공, 플라스틱, 목제, 가구 및 바이오메스 등 다양한 산업이 위치한다.
옌셰핑
옌셰핑은 스웨덴 남부 스몰란드 지방에 있는 제2의 호수 베테른(Vättern)의 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1831년 스웨덴에서 처음 성냥이 발명된 뒤, 1845년부터 1970년까지 안전성냥을 생산함으로써 유명해졌다. 현재 중요한 노르딕 물류 센터로서 이케아, 일렉트로룩스 등 대기업들의 중앙 창고가 있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큰 삼림 박람회인 엘미아 우드(Elmia Wood)를 비롯해 컴퓨터 게이머 대회인 LAN 파티가 열리고 있다.
1284년 5월 18일 옌셰핑은 베테른호수의 가장 큰 섬인 비싱쇠(Visingsö)에서 주로 통치한 마그누스 라둘로스(Magnus Ladulås) 왕에 의해 그 권리를 부여받은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도시의 이름에서 첫 부분인 'Jön'은 현재 이 도시의 서쪽인 탈라비드에 있는 '유네베켄(Junebäcken)'이라는 개울에서 유래되었다. 이름의 뒷부분 köping은 상거래 장소나 시장을 가리키는 옛말이다.
도시는 위치 때문에 강의 수로를 통해 남쪽 덴마크의 공격을 자주 받아 왔다. 당시 스웨덴 남부 지방인 스카니아, 할란드, 블링게 등은 덴마크에 속했다. 결국 16세기와 17세기 도시가 요새화되기 전까지 여러 번 약탈당하고 불타기도 했다.
옌셰핑은 1845~1970년 사이에 성냥 산업으로 유명했다. 인을 묻힌 성냥은 1831년에 스웨덴에서 발명되었는데, 어떤 물체에라도 그어서 불을 붙일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너무 쉽게 불이 붙어 사고가 많이 나고 독성도 강해 문제였다. 1844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에릭 파쉬(Gustav Erik Pasch) 교수는 새로운 발명품인 '안전성냥-전용 성냥갑'에 대해 특허를 얻었다. 구스타브는 성냥불이 쉽게 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냥머리 안에 있는 화학물질을 분리하고 인을 상자 바깥쪽 별도의 표면에 붙여 성냥을 쳐서 불이 붙게 만들었다.
요한 에드바르드(Johan Edvard)와 카를 프란스 룬스트룀(Carl Frans Lundström)은 구스타브의 특허를 이어 받아 품질을 개선하였다. 그들은 1845년에 옌셰핑에 공장을 짓고 새로운 안전성냥을 제조하였다.
오늘날 이 도시는 노르딕 물류 센터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러 회사(엘크욥, IKEA, 일렉트로룩스, 후스크바르나 등)의 중앙 창고가 있다.
옌셰핑은 1961~1990년 기간 동안 길고 추운 겨울과 짧고 따뜻한 여름의 습윤 대륙성 기후였다. 최근에는 매우 차가운 해양성 기후에 더 가깝다. 그러나 기상 관측소가 고도 228m의 공항에 위치한 반면 도심은 고도 100m이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약간 다르다. 도심은 0.5도에서 1도까지 온도가 더 높을 수 있다.[4]
베테른호
옌셰핑주에 있는 면적 1,912㎢. 호안선 430km, 호면의 높이 88m, 최대수심 120m, 평균수심39m.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길이는 130km에 이르나, 너비는 30km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다른 호수에 비하여 물이 맑고 깨끗하여 투명도는 30m 이상에 이른다. 겨울에도 호수의 전면이 결빙하는 일이 없고, 호수의 북부는 카테가트 해협에서 베네른호(湖)를 거쳐 발트해로 통하는 예타 운하의 일부를 이루어 중요한 교통로의 몫을 하고 있다. 호수의 남쪽에 있는 비징그제섬이 유일한 섬으로 17세기의 고성(古城)과 아름다운 교회가 있고, 호안의 모탈라 ·바드스테나 등지에서는 섬유 공업을 비롯한 경공업이 성하다.[5]
함마르셸드
스웨덴 옌셰핑에 출행한 스웨덴의 경제학자로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어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웁살라대학교와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1933∼1936년 스톡홀름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그후 재무부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1947년부터 외무부에서 근무하였다. 1951년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3년 국제연합(UN) 제2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고, 1957년 재선되었다. 재임기간(1953∼1961) 동안 6·25전쟁을 비롯하여 헝가리동란·중동분쟁 등의 해결을 위해 진력하였다. 1961년 9월 콩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로 가던 중 북로디지아(잠비아)의 산중에서 항공기사고로 죽었다. 1961년 죽은 뒤에 노벨평화상이 추증되었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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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옌셰핑주〉, 《위키백과》
- ↑ 〈옌셰핑주〉, 《나무위키》
- ↑ 〈두산백과 : 옌셰핑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옌셰핑〉,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베테른호〉,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함마르셸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옌셰핑주〉, 《위키백과》
- 〈옌셰핑주〉, 《나무위키》
- 〈두산백과 : 옌셰핑주〉,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옌셰핑〉,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베테른호〉,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함마르셸드〉,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북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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