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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년 로스킬데 조약 이후 국경선이 더 남쪽으로 다시 조정되면서 칼마르의 전략적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1689년 왕은 칼스크로나 남쪽에 주력 해군기지를 세웠으며 칼마르는 스웨덴의 주요 군사 전초기지 중 하나였던 지위를 잃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36741&cid=66751&categoryId=66764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칼마르]〉, 《네이버 지식백과》</ref> | 1658년 로스킬데 조약 이후 국경선이 더 남쪽으로 다시 조정되면서 칼마르의 전략적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1689년 왕은 칼스크로나 남쪽에 주력 해군기지를 세웠으며 칼마르는 스웨덴의 주요 군사 전초기지 중 하나였던 지위를 잃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936741&cid=66751&categoryId=66764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칼마르]〉, 《네이버 지식백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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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욀란드섬]]은 면적 1,342㎢, 인구 약 2만 5천명(1992년). 길이 136km, 너비 3∼15km이다. 욀란드섬과 본토의 사이에는 칼마르순드 해협이 있으며, 주로 평지로 되어 있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북유럽]]의 전란시대에는 자주 싸움터가 되었다. 8∼10세기에는 [[바이킹]]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당시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29814&cid=40942&categoryId=33294 두산백과 : 욀란드섬]〉, 《네이버 지식백과》</ref> | |
== 지도 == | == 지도 == |
2024년 6월 26일 (수) 03: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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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마르주(스웨덴어: Kalmar län)는 스웨덴 남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
개요
칼마르주의 면적은 11,171㎢이며 인구는 247,711명(2022년)이며 주도는 칼마르이다. 남서쪽으로는 블레킹에주, 서쪽으로는 크로노베리주와 옌셰핑주, 북서쪽으로는 외스테르예틀란드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발트해를 경계로 고틀란드주와 마주보고 있다. 주 동부에 있는 욀란드 섬 또한 칼마르주에 속한다.
욀란드 섬은 1634년부터 칼마르주의 일부였고, 1819~26년 기간 잠시 독립된 주였으나 다시 칼마르주에 포함되었다. 전통적으로 왕실의 휴양지이며 사냥터로 17세기에 지어진 보르그홀름 성(Borgholm Castle)이 있다. 1972년 6km에 달하는 욀란드 대교(Öland Bridge)가 개통되어 칼마르주와 연결된다. 남쪽 절반은 40km에 달하는 석회암 지층이며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있고, 희귀생물의 보고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최남단은 오텐비 자연보호구역(Ottenby Nature Preserve)이다.
12개의 자치시(Municipalities)로 구성되며 주요 도시는 주도인 칼마르와 베스테르비크(Västervik)이다. 인구 약 4만 여명의 칼마르는 1027년에 형성되어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도시개발이 진행되었다. 18세기 초에 건설되어 스웨덴 고전주의의 걸작인 칼마르 대성당(Kalmar Cathedral)은 시의 랜드마크이다. 12세기부터 건축된 칼마르 성(Kalmar Castle)은 1397년 칼마르 연합이 결성된 역사적 장소로, 오랫동안 곡물창고와 감옥으로 사용하다, 현재는 주의 박물관이 들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매년 가을 스웨덴 최대 규모의 음악행사인 라이브하트 페스티벌(Live at Heart Festival)이 개최된다.
인구 약 2만 명의 베스테르비크(Västervik)도 오랜 역사를 갖는 도시로 놀이공원과 골프클럽을 갖춘 스웨덴 최대 규모의 휴양시설인 리싱스바데트 리조트(Lysingsbadet Resort)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남부에 칼마르와 크로노베리주의 주도인 벡셰(Växjö)와 중간에 위치한 넓은 지역인 글로스리켓(Glasriket)은 유리왕국(Kingdom of Crystal)으로 불리는 유리제조의 본산지이다. 이 지역에는 많은 유리제조 공장과 스튜디오가 있어 관광객이 쇼핑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관광상품이 잘 갖추어져 있다. 칼마르와 욀란드 대교로 연결된 욀란드 섬은 스웨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꼽힌다. 섬에는 스웨덴 왕실이 사용하였던 궁전과 고대유적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풍차중 하나인 샌드빅스 밀(Sandviks Mill) 등 여러 볼거리가 있으며, 연중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해안선과 청정한 자연으로 자전거 하이킹과 자연휴양지로 유명하다.[3]
자연환경
주 면적의 60% 이상이 우거진 침엽수림이며 서쪽 지역은 습지와 화강암 암석 지형이 많으며, 해안 지역은 넓고 비옥한 농경지와 목초지이다. 대부분이 농촌 지역으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스톡홀름(Stockholm)과 예테보리(Gothenburg) 등 주요 도시와 300~400km 이내에 위치하고 교통도 발달해 욀란드 섬을 포함해 역사문화와 생태관광지로 스웨덴 내 5대 관광지역 중 한곳이다.
역사
12세기부터 덴마크와 핀란드를 잇는 전략적 지역으로 1397년 칼마르에서 노르웨이, 덴마크와 스웨덴이 칼마르 연합(Kalmar Union)을 맺어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왕국이 되었다. 그러나 덴마크의 주도권에 불만을 품은 스웨덴의 저항으로 양국은 이후 수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이며 동맹은 해체되었다. 당시 칼마르는 덴마크에 맞서는 전략적 도시였으나 17세기 이후 덴마크가 쇠퇴하자 군사적 중요성은 약화되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634년에 창설되었으나 크로노베리주(Kronoberg) 등 여러 주에 통합되었다가 1683년 이후 독립된 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산업
발트해로 연결되는 항구를 갖추어 중세부터 조선업이 발달하였고 기계, 금속, 임업, 펄프와 목재 등 전통적 제조업과 농업, 낙농업과 식품산업도 활발하다. 인접한 크로노베리주(Kronoberg)와 함께 스웨덴 유리산업의 중심지이다. 최근에는 바이오에너지와 관광산업이 성장하였다.
칼마르
칼마르는 스웨덴 남동쪽 발트해에 접하고 있는 도시로 칼마르주의 주도이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스웨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1658년 로스킬데 조약 이후 덴마크와 국경선이 남쪽으로 조정되고, 주력 해군기지가 칼스크로나에 세워지면서 전략적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최근 들어 산업 도시로 발전하고 있으며,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칼마르 주변은 예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석기시대 무덤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마을이 있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는 11세기 때 것이다. 중세 민간 설화에 따르면 노르웨이 왕 성올라브(Saint Olav)는 자신의 배를 칼마르로 옮기게 했다. 칼마르의 가장 오래된 도시 인장은 1255년에서 1267년 사이 언젠가 만들어진 것으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세기에 수비와 감시를 위해 둥근 탑을 세우는 등 칼마르 성을 건설하는 기초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탑은 13세기에 계속 확장되었다. 그곳에서 1397년 7월 13일에 마가렛 여왕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가 지도자들을 불러 회합을 가져 1523년까지 지속되는 칼마르 연합 조약을 체결하였다. 덴마크 국경 근처(당시 스코네 지방에 있는 블레킹에주, 할랑드주, 스코네주는 덴마크의 일부였다)라는 칼마르의 전략적 위치와 항구를 가진 무역 도시라는 성격 때문에 여러 번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각각 독립된 시기에 일어난 두 건의 칼마르 블러드배스(Bloodbath, '피의 숙청')가 있다. 첫째는 1505년에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의 존 왕이 칼마르 시장과 시의원을 사형에 처했고, 둘째는 나중에 스웨덴의 칼 9세가 된 칼 공작이 1599년에 정적 22명을 처단한 사건이었다.
1540년대에 구스타브 바사 1세 왕과 그의 아들들인 에릭 14세, 스웨덴의 존 3세는 이 성을 재건해 오늘날처럼 웅장한 르네상스 성으로 만들었다. 칼마르는 1603년에 교구가 되었고, 1915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1634년 칼마르주가 창설되면서 칼마르는 자연스럽게 수도가 되었다.
1611~1613년에는 덴마크가 칼마르 성을 포위하면서 시작된 칼마르 전쟁으로 고통을 받았다. 1611년은 칼마르 역사상 가장 어두운 해로 언급되고 있지만,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성 근처에서는 계속 많은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마지막은 1670년대 스카니안 전쟁 때였다. 도시는 총 22회에 걸쳐 포위를 겪었다. 그러나 성을 뺏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658년 로스킬데 조약 이후 국경선이 더 남쪽으로 다시 조정되면서 칼마르의 전략적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1689년 왕은 칼스크로나 남쪽에 주력 해군기지를 세웠으며 칼마르는 스웨덴의 주요 군사 전초기지 중 하나였던 지위를 잃었다.[4]
욀란드섬
욀란드섬은 면적 1,342㎢, 인구 약 2만 5천명(1992년). 길이 136km, 너비 3∼15km이다. 욀란드섬과 본토의 사이에는 칼마르순드 해협이 있으며, 주로 평지로 되어 있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북유럽의 전란시대에는 자주 싸움터가 되었다. 8∼10세기에는 바이킹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당시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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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칼마르주〉, 《위키백과》
- ↑ 〈칼마르주〉, 《나무위키》
- ↑ 〈두산백과 : 칼마르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칼마르〉,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욀란드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칼마르주〉, 《위키백과》
- 〈칼마르주〉, 《나무위키》
- 〈두산백과 : 칼마르주〉,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스웨덴 칼마르〉,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욀란드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북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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