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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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소말리어: Muqdisho, 아랍어: مقديشو, 문화어: 모가디쇼)는 소말리아의 수도이자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다. 인구는 130만 명이며 인도양 해안의 베나디르 지역에 위치한 도시는 수세기 동안 중요한 지역의 항구로서 역할을 해 왔다.[1]
개요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 인도양에 면한 항구도시이다. 시가는 이슬람 교도의 도시답게 아라비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이탈리아에 의하여 서구화하였다. 그리스 여행 문서인 에리트리아해의 페리플러스(Periplus)에 따르면 1세기 일찍이 인도양을 따라 무역이 모가디슈 지역에 있는 소말리족에서 다른 커뮤니티까지 연결되었었다. 서기 900년경 도착한 아라비아반도 출신 무슬림 무역업자들과 함께, 모가디슈는 상업을 위한 적합한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1871년 이후 잔지바르 왕국의 영토였으나, 1892년 이탈리아의 조차지가 되었으며, 1905년 이탈리아가 잔지바르의 추장으로부터 이를 사들여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의 수도로 정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2월~1950년까지는 영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바나나 및 가죽을 수출하며, 제한적이긴 하지만 육류·어류 가공, 제당 및 조면 등의 공업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1년 중앙 정부의 몰락과 함께, 모가디슈는 적수 민병대와 계속하여 교전 중이다. 시민 불안의 수해와 에티오피아인의 거주에 반대하는 방치된 폭동 사태는 모가디슈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법 상태인 도시로 만들었다. 도시의 현재 인구의 어림은 그곳의 전 거주자들의 대다수가 떠났기 때문에 150만 명에서 3백만 명까지 범위를 가지며 매우 변화가 심하다. 모가디슈 시가지 서쪽에는 영국 보호령 시기 설립된 소말리아 국립 대학이 있다. 시설 규모는 아프리카 대륙에 소재한 대학치곤 상당히 큰 편이며, 학부 규모도 큰 대학이었다. 하지만 1990년 경제 위기로 인해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자금 지원이 끊기고 결국 캠퍼스는 폐쇄되었다. 내전 시기에 교내는 폐허로 변했으며, 교사는 피난민들의 거처로 쓰였다. 1997년에는 이 대학의 전직 교수, 박사 과정생 등이 모여 비영리 사립 대학인 모가디슈 대학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차 소말리아 내전이 종식 단계에 들어가 소말리아 정부가 안정되자, 정부는 소말리아 국립 대학의 재개교를 준비했다. UN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5백만 달러를 지원 받아 대학 시설물을 정비하고, 인적 구성원을 갖춰 2014년 8월 재개교하였다.[2]
지리 및 기후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바나디르 행정 구역(고볼)에 위치한 북동부 아프리카의 뿔의 인도양 연안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자체는 도시와 동일한 범위에 있으며 역사적인 베나디르 지방보다 훨씬 작다. 도시의 특징으로는 하마르바인(Hamarwein) 구시가지, 바카라 시장(Bakaara Market), 게지라 해변(Gezira Beach)이 있다. 모가디슈의 모래 해변에는 생기 넘치는 산호초가 있으며 수년 만에 최초의 관광 리조트를 위한 최고의 부동산이다.
적도 근처에 위치한 도시로서 모가디슈는 건조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소말리아 남동부의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온 반건조 기후(쾨펜 기후 분류, BShw)로 분류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부 소말리아의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더운 건조 기후를 가지고 있다. 도시는 비교적 건조한 반면, 해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상대 습도는 일년 평균 79%로 다소 높다.
모가디슈의 일년 내내 평균 기온은 27°C이고, 평균 최고 기온은 30°C, 평균 최저 기온은 24°C이다. 월별 평균 온도 판독값은 3°C 차이가 나며, 이는 초해양 및 아형 초해양 대륙성 유형에 해당하다. 연간 강수량은 평균 429.2mm이다. 연간 47일의 습한 날이 있으며, 이는 연간 12%의 강우 확률과 관련이 있다. 도시는 연간 평균 3,066시간의 일조량을 가지며 하루 8.4시간의 일조량을 가지고 있다.[3]
역사
고대 인도와 로마 사이의 해상 무역에서 예멘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소말리아 일대도 부를 향유했다. 고대 예멘, 힘야르 왕국의 주민들이 이 모가디슈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비아 반도가 가까워 8세기부터 아랍인들과 함께 이슬람교가 유입 및 급속도로 아랍화, 이슬람화되어 아랍권 도시로 순식간에 변모하였다.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는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한 모가디슈 술탄국이 있었다. 당시 모가디슈는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과 페르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도시이자, 동아프리카 황금 및 상아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할 수 있었다.
근세 이후로는 오만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905년부터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에티오피아 침공을 노렸으나 실패했고, 이를 대신해 소말리 지역의 남단부를 점령하여 모가디슈에 투자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이후 이 도시의 이름을 모가디시오(Mogadiscio)라고 이름 붙였다. 현재 소말릴랜드가 위치해있는 북부 지방은 영국이, 지부티가 된 동해안 연안은 프랑스가 각각 식민지화를 하였다. 이탈리아 식민 기간 동안 모가디슈 시민 중 2만 2천여 명, 약 44%가 이탈리아인었다고 한다. 이때의 이민 과정 속에서 이탈리아 건축 양식이 이식될 수 있었다. 또한 모가디슈를 휴양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인프라 시설이 보급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1년에는 영국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게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의 신탁통치를 거친 뒤, 북부의 영국령 소말릴랜드와 합체하여 1960년 6월 26일 소말리아라는 국가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때 프랑스령 소말리아인 지부티는 합류하지 않았다.
독립 후에도 한동안은 꽤 잘 나갔다. 1950년대 및 1960년대에는 중계무역업과 휴양하러 오는 유럽인들을 상대로 한 관광업이 꽤 성업을 이루었다. 이러한 기조는 시아드 바레 장군의 집권 초기까지도 이어졌으나, 1970년대 그가 무리하게 오가덴 전쟁을 일으켰다 패배한 뒤 가뭄이 겹치면서 소말리아는 우리가 아는 세계 최빈국으로 주저앉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바레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1년도 안 되어 발발한 소말리아 내전 때문에 모가디슈는 더더욱 혼란상에 휩싸였다. 내전이 시작된 1992년 이후 20년이 넘도록 도시가 전쟁터로 바뀌어 과도 정부와 이슬람 무장 단체인 알샤바브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과도 정부는 형식상으로는 국제적 승인을 받는 정부지만 실질적으로는 수도인 모가디슈조차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2011년 8월, 모가디슈 대부분의 지역에서 알샤바브 반군이 축출되었다. 반군이 여전히 자폭 테러와 지뢰 설치 등의 게릴라 전술을 펼치고는 있으나 땅은 이미 내준 것이나 다름이 없어, 모가디슈도 과거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다만 소말리아의 내전은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고 테러 공격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전쟁을 딛고 새롭게 태어나는 모가디슈. 현재는 산 페드로 술라, 카라카스를 능가하는 살인율과 범죄율로 골치 썩고 있는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야말로 발 들이는 순간부터 죽음에 두려워할 정도.
2012년 3월 6일에 터키항공이 외국 항공사로는 20년 만에 모가디슈에 취항했다. 2023년 기준 아프리카와 중동의 일부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다.[4]
테러
2010년대에 들어서 안정된다는 일각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테러가 발생하여 소말리아 내전은 현재진행형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2017.10.15에도 모가디슈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그리고 1년도 안 되어 2018년 2월 23일에 모가디슈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되어서 38명이 사망했다. 또한 2018년 9월 2일에 모가디슈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 당했다. 그리고 9월 10일에 폭탄 테러가 다시 발생하면서 최소 6명이 사망했다. 12월 22일에는 대통령궁 인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2019년 2월 28일, 알샤바브가 모가디슈 중심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켰고, 3월 1일 오전까지 소말리아군과 격렬하게 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2019년 3월 23일에 모가디슈의 정부청사에서 차량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5명이 숨졌다. 이후 2달만인 2019년 5월 22일에 대통령궁 인근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일어나 9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7월 8일에 검문소에서 일어난 총격 테러로 5명이 사망했다. 9월 2일에는 차량 폭탄 테러로 인해 최소 8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당했다. 연말에도 테러는 계속되어서 12월 28일에 모가디슈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로 1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2020년 1월 8일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 4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 당했다. 그리고 코로나 19 판데믹 와중에도 내전은 그칠 줄 모르고 더 심해져서 2020년 8월 8일에 모가디슈의 군 검문소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8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 당했다. 2021년 2월 13일에 검문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7월 10일에 바나디르 교차로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했다.
9월 25일에 대통령궁 인근에서 차량 폭탄 테러로 8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2년 4월 23일에 모가디슈의 레스토랑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 당했다.
8월 19일, 모가디슈 하얏트 호텔에서 알샤바브에 의한 테러가 발생해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 당했다.
2023년 6월 10일, 펄 비치 호텔에서 알샤바브의 반란군에 의한 테러 및 인질극이 발생해 16명이 사망하고 최소 10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5]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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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모가디슈〉, 《위키백과》
- 〈모가디슈〉, 《나무위키》
- "Mogadishu", Wikipedia
- 〈모가디슈〉, 《요다위키》
- 〈모가디슈(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아프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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