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워폴스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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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워폴스카주(폴란드어: Województwo małopolskie)는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주이다.[1][2]
목차
개요
마워폴스카주의 면적은 15,108㎢이며 인구는 3,432,295명(2021년)이다. 서쪽으로는 실롱스크주, 북쪽으로는 시비엥토크시스키에주, 동쪽으로는 포드카르파츠키에주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한다. 주도는 크라쿠프(Kraków)이다. 3개 도시군과 19개 군, 182개 그미나(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1999년 1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신설되었으며 이 지역의 오래된 이름인 마워폴스카(소폴란드)를 따라 명명되었다. '소폴란드'란 뜻으로 반대로 포즈난, 칼리시 같은 도시들이 위치한 비엘코폴스키에는 '대폴란드'란 뜻이다. 역사적인 의미의 마워폴스키에/소폴란드와 현대 폴란드 행정구역으로서 마워폴스키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역사적인 의미의 대폴란드, 소폴란드와 실레시아 지역을 합하여 중세 초기 폴란드 왕국의 영토를 이룬다.[3]
자연환경
북쪽으로는 시비엥토크시스키에산맥, 서쪽으로는 폴란드 쥐라기 고원(유라크라코프스코 쳉스토호프스카)에 닿아있다. 폴란드에서 기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남부는 주의 절반을 차지하는 폴란드 최고봉인 해발 2,499m의 리시산(Rysy mountain)이 위치한 타트라산맥(Tatra Mountains)으로, 흔히 폴란드의 고원(Polish Highlands)으로 불리며 온천수가 풍부한 휴양지이다.
역사
8세기부터 폴란드인이 거주하였고, 17세기 초 폴란드 왕국의 수도가 바르샤바로 이전되기 전까지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폴란드 민족의 국가가 형성된 지역이다. 또한 크라쿠프(Kraków)는 수세기간 폴란드 내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였다. 19세기 이후 폴란드가 강대국에 의해 분할되면서 오스트리아에 편입되었고, 20세기 초 독립과 함께 문화와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공산주의 유토피아(communist utopia)로 불릴 정도로 많은 공장과 제철소가 들어선 중공업의 중심지였다.
교육
야기엘론스키대학교
폴란드 마우폴스카주 크라쿠프(Kraków)에 위치한 폴란드 최고(最古)의 연구 중심 공립대학교 야기엘론스키대학교는 1364년 5월 12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3세(Kazimierz III)에 의해 일반 대학(Studium Generale)으로 처음 설립된 것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설립 당시 인문학, 의학, 법학 3개 학부를 갖추었다. 카지미에시 3세가 사망하자 1390년대까지 문을 닫았고 1400년 7월 야기에워 왕(King Vladislaus Jagiełło)에 의해 다시 설립되면서 신학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대학은 왕립야기엘론스키대학(Royal Jagiellonian College)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5세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200명 이상의 학생이 매년 입학했고 특히 법학, 수학, 천문학 분야 교육에 명성이 높았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지역이 종교에 따라 나눠지고 16세기 후반 유럽 내 대학 수가 증가하면서 외국인 학생의 입학이 크게 줄어들었으나 학교는 계속 유지되었고, 16세기 말 교명이 크라쿠프대학(Kraków Academy)으로 바뀌었다.
1773년 국립교육위원회가 조직되고 휴고 코원타이(Hugo Kołłątaj)가 개혁을 주도하면서 1777년부터 1786년 사이 대학 조직을 개편하였다. 또한 천문대와 식물원, 대학클리닉 등의 설립이 시작되었다. 1795년 크라쿠프지역이 오스트리아로 병합되면서 1805년에는 리비우대학교(Lviv University)에 통합되기도 하였다. 1817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명으로 바뀌었다. 1846년 크라쿠프가 다시 오스트리아에 점령된 후 대학 구조는 오스트리아식으로 개편되고 독일어가 주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갈리치아(Galicia)에 자치권이 부여되면서 다시 학내에서 폴란드어를 사용했고 건물이 새로 설립되는 등 인문학과 과학분야의 프로그램이 모두 확대됐다. 1923년에는 농학부가 개설되고 1939년에는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제2차 세계기간 동안 나치 점령을 받으면서 폐교되었으나 1942년부터 비밀리에 교육은 다시 재개되었다. 이후 신학과 농업학, 의학부가 폐쇄되는 등 대학구조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일부 학자들의 연구활동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2020년 현재 법·행정학, 의학, 보건학, 물리·천문·응용컴퓨터학, 생물학 등 16개 학부 아래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두고 있다. 대학중앙도서관은 많은 소장 자료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등 중세시기 작성된 원고 등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약 4만 명의 학생이 재학중이고 교직원 수도 약 4천 명에 이른다.
주요 졸업생으로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를 비롯하여 폴란드 문학의 황금시대를 이룬 시인 코하노프스키(Jan Kochanowski), 세계 최초로 등유정제에 성공했던 폴란드의 약사 이그나치 루카시에비치(Ignacy Łukasiewicz), 폴란드 출신 화학자인 올체프스키(Karol Olszewski), 문화인류학자인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Kasper Malinowski),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Andrzej Duda) 등이 있다.[4]
크라쿠프
폴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마워폴스키에주의 주도이다. 폴란드 남부의 비스와강 상류에 위치한다. 11세기부터 600년 가까이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점령국 독일의 총독부령 본부가 있었으나, 연합군 측이 도시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폭격을 삼간 덕분에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구시가지는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라쿠프는 1296∼1611년 기간 폴란드 왕국의 수도로 왕들의 도시(the city of kings)로 불린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피해를 입지 않고 도시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구시가지 내 바벨언덕(Wawel Hill)의 두 번의 화재 이후 14세기에 새롭게 건설된 바벨대성당(Wawel Cathedral)과 비스와강(Vistula River) 기슭의 왕궁(Royal Castle)이 대표적 명소이다. 2000년대 들어 크라쿠프는 유럽의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폴란드에서 두 번째 규모인 요한바오로2세 크라쿠프발리체국제공항이 위치한 최적의 입지로, 정보통신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해 많은 스타트업과 다국적 기업의 지사가 활동하는 첨단산업 도시로 변모하였다.
크라쿠프 외곽에는 13세기부터 개발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엘리치카(Wieliczka)의 소금광산이 있는데 바벨대성당 및 왕궁과 함께 197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세계 최초로 기록된 폴란드가 자랑하는 유산이다. 또한 크라쿠프와 인접한 플라쇼프(Plaszow)와 서쪽으로 72km 떨어진 오시비엥침(Oswiecim)에는 2차 대전시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가 들어서 약 110만 명의 유대인이 사망한 곳이다. 크라쿠프 서남부의 작은 도시 바도비체(Wadowice)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탄생지로 시내에는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5]
크라쿠프 역사 지구
크라쿠프의 역사 지구(Cracow's Historic Centre)는 바벨 성(Wawel Castle) 기슭에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시장 광장(market square), 내부 장식이 화려한 역사적 건물과 궁전 및 교회들이 있는 크라쿠프는 13세기 상업 도시로서 명성을 떨쳤다. 14세기에 지은 요새의 흔적, 고대 시너고그(Synagogue, 유대교 회당)가 있는 남쪽의 중세 카지미에시(Kazimierz) 지구, 야기엘로니안(Jagiellonian) 대학교, 폴란드 왕들이 묻혀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 등은 크라쿠프 역사 지구의 매력적인 역사의 증거이다.
뛰어난 중세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크라쿠프 역사 지구는 시장 광장이 들어선 중심지,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살았던 바벨 성이 있는 언덕, 카지미에시 지구의 시가지, 스트라돔(Stradom) 구역의 4개 핵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폴란드의 옛 수도였던 크라쿠프의 역사 지구는 바벨 성 기슭에 있다. 유럽 최대 규모의 시장 광장과 내부 장식이 화려한 역사적인 건물과 궁전 및 교회들이 있는 크라쿠프는 13세기에 상업 도시로서 명성을 떨쳤다. 14세기에 지은 요새의 흔적, 고대 시너고그가 있는 남쪽의 중세 카지미에시 지구, 야기엘로니안 대학교, 폴란드 왕들이 묻혀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 등은 크라쿠프 역사 지구의 매력적인 역사의 증거이다.
길들이 완벽하게 직각으로 교차하여 격자를 형성하는 것이 특징인 스타레 미아스토(Stare Miasto, 신시가지)는 볼레스와프 5세가 바벨 언덕 부근에 흩어져 사는 여러 민족을 통일하기 위해 명령하여 1257년에 조성되었다. 중세에 이곳을 둘러쌌던 벽은 없어졌지만, 벽에 달렸던 정문과 1499년에 도시 주요 출입구에 만들어졌던 조그만 벽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역사 지구 부근에는 1880년까지 크라쿠프 내 유대인이 살았던 카지미에시 지구가 고립되어 있다. 다른 도시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대인 문화는 크라쿠프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곳에 살던 64,000명가량의 유대인이 모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어, 전쟁 후 6,000명만이 돌아왔다.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Ⅱ)가 공부했던 야기엘로니안 대학은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유럽에서도 매우 오래된 대학에 속한다. 크라쿠프 역사 지구에는 교회와 수도원도 많다. 바벨 석회암 언덕은 폴란드의 국경이 발트 해에서 흑해에 이르던 시기에 왕이 살던 왕궁을 비롯한 매우 중요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현재 왕궁의 박물관에는 화려한 융단, 왕실의 보물(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대부분 소실되었다)과 깃발, 고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벨 언덕에 있는 고딕 양식의 성벤체슬라스(St Wenceslas) 대성당은 그 외관에 성당이 겪었던 복잡한 역사가 깃들어 있다. 대성당에서는 수세기 동안 폴란드 왕가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중요한 의식들이 거행되었다.
바벨 성이 있는 언덕에는 전설에 나오는 슬라브족의 왕자이자 우두머리인 크라크(Krak)의 동굴이 있으며, 성이 비슬라(Wisla) 강과 인접한 부분의 언덕 아래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바벨 성 입구에서부터 기념물과 멋진 역사적 건물들이 늘어선 고대 왕도(王道)가 시작되며, 이 길을 따라가면 크라쿠프 역사지구의 시장 광장, ‘리네크 그워브니(Rynek Głowny)’가 나타난다. 각 변의 길이가 200m로 중세 유럽의 공공 광장으로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광장의 중심에는 고대의 옷감 시장인 직물 회관 건물이 있으며, 한쪽에는 고딕 양식의 성모 승천교회(church of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Mary)가 우뚝 솟아 있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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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마워폴스카주〉, 《위키백과》
- ↑ 〈마워폴스키에〉, 《나무위키》
- ↑ 〈두산백과: 말로폴스키주〉,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 야기엘론스키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크라쿠프〉,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네스코 세계유산 : 크라쿠프 역사 지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마워폴스카주〉, 《위키백과》
- 〈마워폴스키에〉, 《나무위키》
- 〈두산백과: 말로폴스키주〉,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 야기엘론스키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크라쿠프〉, 《네이버 지식백과》
- 〈유네스코 세계유산 : 크라쿠프 역사 지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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