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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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고(Marigot)는 프랑스령 생마르탱(프랑스어: Saint-Martin)의 수도이다. 약 5,7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1]
개요
마리고는 카리브해 서인도제도의 세인트마틴섬의 북쪽 부분과 인근 섬들을 포괄하여 구성된 프랑스 해외 집합체인 생마르탱의 주요 도시이다. 마리고는 세인트마틴섬의 서쪽 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해안에서 서쪽으로 마리고만과 섬 내부의 언덕을 따라 동쪽으로 뻗어 있다. 원래 늪에 있는 어촌 마을이었던 마리고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통치기간 동안 수도가 되었고 성채 요새를 지었다. 오늘날, 그 건물은 마리고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포트 루이스에 있는 투르 교회의 세인트 마틴 성당은 1941년에 지어졌다. 마리고는 열대 사바나기후에 속하며 일년 내내 매우 따뜻하거나 덥고 습한 날씨를 보인다. 마리고는 진저브레드 하우스와 노천 비스트로가 있는 전형적인 카리브해 마을이다. 장날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이다. 과거에는 사탕수수를 중심으로 한 플랜테이션 농업과 제염업이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마리고에는 프린세스 줄리아나 국제 공항(Princess Juliana International Airport)이 있으며 카리브 해 지역 대부분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 항공(Air France),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 유에스 항공(US Airways), 캐나다 항공(Air Canada) 등 주요 외항사가 다수 취항하는 동카리브의 허브 공항으로 파리, 암스테르담, 뉴욕, 마이애미, 시카고, 필라델피아, 토론토 등 북아메리카와 유럽 주요 도시로의 직항 노선이 개설되어 있다. 프린세스줄리아나 국제공항은 활주로가 해변 바로 가까이에 붙어 있어, 항공기의 이착륙이 해변을 거니는 관광객의 머리 바로 위에서 이루어지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공항이기도 하다. 마리고는 크루즈의 주요 기항지이며, 인근의 앵귈라와 생바르텔레미로 향하는 국제 페리 노선도 개설되어 있는 곳이다. 앵귈라행 페리는 매 시간마다 운항하며, 25분이 걸린다. 생마르탱의 경제는 대부분 관광업에 의존하는데, 전체 노동력의 80% 이상이 관광업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한다. 2011년에는 23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카리브해 지역의 관광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2]
역사
세인트마틴섬에 처음으로 주민이 정착한 것은 기원전 800~300년경 남아메리카의 오리노코(Orinoco)강 유역에서 이주해 온 아라와크족(Arawak)으로, 이들은 세인트마틴을 ‘여성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Oualichi’로 불렀다. 다른 이름으로는 ‘소금의 땅’이라는 뜻의 ‘Sualouiga’로도 불렀는데, 이것은 섬에 다수 분포하고 있는 염호(鹽湖)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기원후 1400년경 호전적인 카리브(Carib) 인디언들이 이주해 왔으며, 콜럼버스가 1493년 섬을 처음 발견할 당시까지 계속 거주하였다.
콜럼버스가 1493년 제2차 항해에서 세인트마틴 섬을 처음 발견하고 에스파냐 영토로 선언하였지만, 실제 섬에 처음으로 진출한 유럽인은 1631년의 네덜란드인들이다. 세인트마틴섬은 브라질의 네덜란드 식민지와 본국을 연결하는 항로상의 경유 지점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운영에 필요한 천연 소금 저장고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고 섬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덜란드가 세인트마틴에 요새를 구축하는 것을 알게 된 에스파냐 군대는 1638년에 다시 섬을 공격하여 손에 넣게 되지만, 섬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곧 관심을 잃고 방치하였다. 결국 에스파냐는 1648년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섬을 내주었고, 두 국가는 조약이 체결된 산의 이름을 딴 콩코르디아 조약(Treaty of Concordia)을 맺어 섬을 둘로 나누고 프랑스가 북쪽을, 네덜란드가 남쪽을 차지하였다. 두 국가 간의 마찰로 인해 이후 2세기 동안 경계는 빈번하게 변경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프랑스가 전체 면적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하였다.
콩코르디아 조약은 2개의 국가와 통합된 섬 모두를 인정했기 때문에, 이에 따라 두 국가 사이에는 어떠한 물리적 경계도 만들지 않았으며, 사람과 상품은 양 지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약은 오늘날까지도 지켜지면서 세인트마틴은 우호적인 섬(Friendly Island)이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이후 영국의 침략이 계속되면서 1648년부터 1816년까지 세인트마틴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 간에 7차례나 점유국이 바뀌었다. 최종적으로 1816년 파리 조약(Treaty of Paris)에 따라 생마르탱은 프랑스령으로 확정되어 과들루프(Guadeloupe)의 속령이 되었으며, 신트마르턴은 1839년 네덜란드령으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56년 포르투갈에 의해 브라질에서 쫓겨난 네덜란드인들이 생마르탱으로 이주하면서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생산 기술을 가진 이들에 의해 경제가 번성하게 되었다. 18세기부터는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수입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8~19세기 동안 면화, 담배, 사탕수수의 재배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하지만 1848년에 프랑스 지역에서 노예 해방 조치가 실시된 것을 시작으로 1863년에 네덜란드 지역에서도 노예 해방이 실시되면서 노예 노동력에 기반을 둔 플랜테이션 경제는 급격히 쇠퇴하였다.
20세기 들어 경제 침체가 지속되면서 1920년대에는 세계적인 정유 회사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이 네덜란드령 퀴라소(Curaçao)에 석유 정제 시설을 세우자, 많은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갔으며, 미국령 버진아일랜드(Virgin Islands)와 미국 본토로도 다수가 옮겨 가면서 1920년대에 전체 인구가 18%나 감소하기도 하였다. 1939년에는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섬 전체를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자유항(free-port)으로 만들었으며, 생마르탱과 신트마르턴 간에도 관세와 간접세를 폐지하면서 두 지역 간의 상업적, 경제적 교류의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는 유럽을 대신하여 미국과의 무역이 확대되었으며, 1943년 미국 해군이 현재 신트마르턴의 프린세스줄리아나 국제공항(Princess Juliana International Airport)이 있는 부지를 군사 기지로 개발하면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이때부터 섬의 전 지역에서 영어의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여 영어가 제2의 언어가 되었다.
1946년에 프랑스가 식민지법을 폐지함에 따라 과들루프가 프랑스의 지방 행정 구역인 주(département)가 되면서 생마르탱은 과들루프 주의 하위 행정 구역인 시(commune)가 되었다. 1957년에는 유럽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를 설립하는 로마 조약(Treaty of Rome)이 체결됨에 따라 프랑스 정부에 의해 유럽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1963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생마르탱과 생바르텔르미를 관할하는 부지사(sous-Préfet)를 신설하여 파견하기 시작하였으며, 2009년에는 지사(Préfet)가 관할하는 것으로 승격되었다. 1965년에 미군이 건설한 활주로를 공항으로 변경하여 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부터 관광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 이에 따라 인구 역시 급격히 증가하였다.
2003년 3월 프랑스의 헌법 개정에 따라 해외 영토의 헌법적 지위가 완전히 변하게 되었는데, 새 법에 따라 프랑스 본토에는 없는 독특한 행정 체계인 해외 자치 지역(collectivités)으로 규정되었다. 2003년 12월에 생마르탱의 헌법적 지위를 자치 지역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고, 76%가 찬성하면서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2007년에 과들루프 주의 생마르탱 시에서 생마르탱 해외 자치 지역으로 공식적으로 변경되었다.[3]
생마르탱
생마르탱(프랑스어: Saint-Martin, 공식 명칭은 생마르탱 공동체(프랑스어: Collectivité de Saint-Martin))은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 집합체이다. 2007년 2월 22일 세인트마틴섬의 북쪽 부분과 인근 섬들을 포괄하여 프랑스 해외 집합체로 분리되었다. 섬의 남쪽 부분인 신트마르턴은 네덜란드령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공식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사탕수수를 중심으로 한 플랜테이션 농업과 제염업이 중심이었지만, 현재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주도는 마리고이다.
세인트마틴섬은 콜럼버스의 2차 신대륙 탐험 항해 때인 1493년 섬을 발견하였고 마침 세인트 마틴의 순례 축제일에 도착하여 섬의 이름이 산마르틴(San Martin)으로 불리게 되었다가 오늘날의 세인트마틴이 되었다. 콜럼버스가 섬을 발견할 당시 이미 섬에는 카리브 인디언 또는 아라와크(Arawak) 라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 후 17~19세기까지 유럽의 팽창주의에 의해서 식민지를 확장해 나가던 시기에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등의 나라들에 의해서 소금과 설탕 등을 생산하면서 노예를 유입하게 되고 원주민의 문화와 유럽, 아프리카의 문화가 혼합되면서 섬의 문화는 매우 다양해지고 풍부해졌다. 섬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네덜란드령 지역은 밤의 유흥 생활과 볼거리가 많은 해변, 카지노 등의 관광을 즐길 수 있고 프랑스령 지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누드 해변, 보석과 의류 쇼핑, 구아바(Guava) 열매로 만든 럼주(Rum), 풍부한 프랑스 카리브 요리 등의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다양한 항공편이 프린세스 줄리아나 국제공항(Princess Juliana International Airport)에 취항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호텔과 빌라, 리조트 등의 숙박시설과 다양한 레스토랑들이 있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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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마리고〉, 《위키백과》
- 〈생마르탱〉, 《위키백과》
- 〈마리고, 세인트 마틴〉, 《요다위키》
- 〈생마르탱의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카리브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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