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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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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업(handcraft, 手工業)은 사람의 손발과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생산하는 공업이다. 공업용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 제도가 도입된 현재 선진국에는 부업이나 전통 공예 정도에나 남아 있지만 개발도상국에선 공장에서 하고 있다.[1][2]

개요[편집]

수공업은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제공업 확립 이전의 공업형태이다. 수공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비롯되었으며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때와 시기를 같이한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의식주 획득의 용구를 모두 수공업에 의해 생산되었으며 일부 석기, 토기, 청동기 등의 형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수공업 및 농업은 아시아적 사회구성체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속에 일체화되었으며 분화(分化)과정은 없었다.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에서도 공예품, 무기 등을 생산하는 수공업자가 일반 농민과 구별된 특수 신분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였으며 수공업은 공동체 구성원 속에서 농업과 미분화(未分化)상태로 정착해 있었다. 수공업자가 특수 신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들어선 후의 일이다. 여기서 수공업은 전적으로 노예의 일이며 각종 수공업품의 생산을 위하여 노예들의 작업장이 생겨나서 3∼12명 정도의 노예를 사용하여 야금(冶金), 무기 제조, 피혁 제조, 도기(陶器)나 약기, 약품 등의 제조가 행하여졌다.[3]

수공업에서 건축, 조각 등 고도의 능력과 천부(天賦)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작업 이외는 자유로운 시민의 정업(正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수공업 중에서도 방직업만은 여자에 의한 가내수공업으로 인정되었다. 중세 유럽에 와서 수공업자의 위치는 크게 변화하였는데 초기의 게르만적 농촌공동체에서의 수공업자는 부락 공동체 속에서 농기구, 생활용품 등의 생산에 전념하여 농민의 농산물과의 교환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점차적으로 고객생산을 확대하게 되나 수공업자에게는 자신의 기술을 믿고 산다는 데서 독자적인 직인기질(職人氣質)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수공업은 현재 약간의 도기, 칠기, 염색, 견직물 등 공예품, 민예품, 귀금속 가공업, 실크인쇄, 토건업의 일부(목수, 미장, 타일) 등 분야에 남아 있다.

종류[편집]

가내수공업[편집]

가내수공업은 가정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이다. 가내수공업은 집 안에서 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작은 규모의 공업이다. 가내수공업은 주문자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원료를 공급받고 기계나 도구를 대여받아 가공임(加工賃)을 받기 위하여 노동하는 것으로 저임금과 나쁜 근로조건이 일반적이다. 가내수공업은 직접생산자가 자신의 집을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공업생산의 형태를 말한다.

공장제 수공업[편집]

분업과 수공업기술에 기초한 자본주의 기업으로서 16세기 중엽 자본주의적 단순협업 이후에 출현하여 별도의 생산 공장에 설비를 차리고 대규모 저숙련 근로자들을 고용하여 저임금으로 단순한 상품을 생산하는 수공업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에 적합하며 산업의 고도화가 달성되지 못한 국가들에서 자주 보인다. 공장제 수공업은 여러 차례에 걸친 제조공정을 한 명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공정을 분업화, 협업화하고 많은 인원을 모아 효율적으로 생산한다. 분업이기 때문에 작업 효율이 향상되고 생산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지만 기계기술 수준은 전근대적인 것에 그친다.[4]

조선시대 수공업[편집]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진전되면서 시장 판매를 위한 수공업 제품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이 시기는 도시의 인구가 급증하여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고 대동법의 실시로 관수품의 수요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간 수공업자인 사장(私匠)들은 장인세만 부담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생산 활동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제품은 품질과 가격 면에서 관영 수공업장에서 만든 제품에 비해 경쟁력도 높았다. 민간 수공업자의 작업장은 흔히 점(店)으로 불리어 철기 수공업체는 철점, 사기 수공업체는 사기점이라 하였다. 민간 수공업자들은 대체로 작업장과 자본의 규모가 소규모여서 원료의 구입과 제품의 처분에서 상업 자본의 지배를 받았다. 대부분 공인이나 상인에게 주문을 받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금과 원료를 미리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선대제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수공업자 가운데서도 독자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직접 판매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농촌의 수공업은 지금까지 자급자족을 위한 부업의 형태로 제조하였으나 점차 소득을 올리기 위하여 상품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늘었고 더 나아가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농가도 나타났다. 농촌에서는 주로 옷감과 그릇 종류가 생산되었다.[5]

근대 이후 수공업[편집]

기계가 탄생하고 근대식 공장이 나타나면서 수공업은 쇠퇴하게 되나 아직까지 기계로 하기 아깝거나 어려운 것들 혹은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이유로 이후로 명맥은 유지하게 된다. 일부는 오히려 그 가치가 더욱 오르기도 하는데 공장에서 양산되는 제품들에 불만족한 중산층 소비자들이 정성이 담긴 나만의 물건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핸드메이드(hand-made) 상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품들 중 일부는 심지어 명품의 지위에 오르게 되기도 한다. 수공업은 그 사회의 문화적 가치와 잘 접목시킨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 경제와 국가를 먹여 살리는 효자상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

수공업에 대한 취급은 수공업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상당수의 수공업은 오늘날 흔히 저임금, 저숙련 이미지가 있다. 흔히 말하는 인형에 눈 붙이기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이는 이러한 수공업들이 특별한 기술 없이 그저 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스위스 시계처럼 고임금, 고숙련의 이미지를 가진 수공업도 있다. 이런 수공업자들은 장인이나 명장 대우를 받기도 한다. 바이올린이나 파이프오르간 같은 악기들도 세월이 흐르도록 여전히 수공업으로 제작된다. 특히 바이올린은 생산의 표준 규격 따위는 없다고 한다.

각주[편집]

  1. 수공업〉, 《나무위키》
  2. 수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3. 수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4. 공장제수공업〉, 《위키배과》
  5. 민영수공업의 발달〉, 《우리역사넷》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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