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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탈리아주 - 안탈리아주(튀르키예어: Antalya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타우루스산맥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며 15개 군을 관할한다. 안탈리아주는 튀르키예 관광 산업의 중심지이며 튀르키예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30%가 이곳을 찾는다. 해안선의 길이는 657km에 달하며 해변과 항만, 고대 도시인 크산토스가 있다. | + | |
− | *부르두르주 - 부르두르주(튀르키예어: Burdur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남서쪽으로는 물라주, 남쪽으로는 안탈리아주, 서쪽으로는 데니즐리주, 북쪽으로는 아피온카라히사르주, 동쪽으로는 이스파르타주와 접하며 11개 군을 관할한다. 튀르키예의 "호수 지방"에 위치하며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다. 주 이름은 부르두르 호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주에서 두 번째로 큰 살다 호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 + | * '''[[안탈리아주]]''' - 안탈리아주(튀르키예어: Antalya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타우루스산맥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며 15개 군을 관할한다. 안탈리아주는 튀르키예 관광 산업의 중심지이며 튀르키예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30%가 이곳을 찾는다. 해안선의 길이는 657km에 달하며 해변과 항만, 고대 도시인 크산토스가 있다. |
− | *하타이주 - 하타이주(튀르키예어: Hatay ili)는 [[튀르키예]] 남부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아다나주와 오스마니예주,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하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1939년 6월 29일 튀르키예에 편입되었다. | + | |
− | *이스파르타주 - 이스파르타주(튀르키예어: Isparta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사과와 앵두, 포도, 장미 재배와 융단 제작으로 유명하며 13개 군을 관할한다. | + | * '''[[부르두르주]]''' - 부르두르주(튀르키예어: Burdur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남서쪽으로는 물라주, 남쪽으로는 안탈리아주, 서쪽으로는 데니즐리주, 북쪽으로는 아피온카라히사르주, 동쪽으로는 이스파르타주와 접하며 11개 군을 관할한다. 튀르키예의 "호수 지방"에 위치하며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다. 주 이름은 부르두르 호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주에서 두 번째로 큰 살다 호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
− | *메르신주 - 메르신주(튀르키예어: Mersin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0개 군을 관할하며 파울로스가 태어난 곳인 타르수스가 위치한다. 2002년까지는 이첼 주(İçel)라고 불렀지만 튀르키예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주 이름이 주도 이름과 일치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주 번호가 33번인 이유는 당시 튀르키예의 67개 주를 튀르키예어 알파벳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을 때 이첼 주가 33번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 | |
− | *카흐라만마라슈주 - 카흐라만마라슈주(튀르키예어: Kahramanmaraş ili)는 [[튀르키예]] 중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0개 군을 관할한다. | + | * '''[[하타이주]]''' - 하타이주(튀르키예어: Hatay ili)는 [[튀르키예]] 남부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아다나주와 오스마니예주,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하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1939년 6월 29일 튀르키예에 편입되었다. |
− | *오스마니예주 - 오스마니예주(튀르키예어: Osmaniye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996년 아다나주의 일부가 분리되면서 신설되었으며 7개 군을 관할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8A%80%EB%A5%B4%ED%82%A4%EC%98%88%EC%9D%98_%EC%A3%BC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ref> | + | |
+ | * '''[[이스파르타주]]''' - 이스파르타주(튀르키예어: Isparta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사과와 앵두, 포도, 장미 재배와 융단 제작으로 유명하며 13개 군을 관할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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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메르신주]]''' - 메르신주(튀르키예어: Mersin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0개 군을 관할하며 파울로스가 태어난 곳인 타르수스가 위치한다. 2002년까지는 이첼 주(İçel)라고 불렀지만 튀르키예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주 이름이 주도 이름과 일치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주 번호가 33번인 이유는 당시 튀르키예의 67개 주를 튀르키예어 알파벳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을 때 이첼 주가 33번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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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흐라만마라슈주]]''' - 카흐라만마라슈주(튀르키예어: Kahramanmaraş ili)는 [[튀르키예]] 중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0개 군을 관할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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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스마니예주]]''' - 오스마니예주(튀르키예어: Osmaniye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996년 아다나주의 일부가 분리되면서 신설되었으며 7개 군을 관할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D%8A%80%EB%A5%B4%ED%82%A4%EC%98%88%EC%9D%98_%EC%A3%BC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ref> | ||
== 지중해 == | == 지중해 == |
2024년 7월 26일 (금) 15:25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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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지역(튀르키예어: Akdeniz Bölges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1]
개요[편집]
지중해지역의 면적은 90,348㎢이며 인구는 9,423,231명(2010년 기준)이다. 남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에게지역, 북쪽으로는 중앙아나톨리아 지역, 북동쪽으로는 동아나톨리아 지역, 동쪽으로는 남아나톨리아 지역과 접하며 남동쪽으로는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튀르키예의 지중해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를 띤다. 연안 지방의 여름은 덥고 건조한 편이며 겨울은 온화하고 서늘하고 습한 편이다. 내륙 지방은 스텝 기후와 대륙성 기후를 띠는데 여름은 덥고 건조한 편이며 겨울은 춥고 눈이 내리는 편이다. 길고 고운 모래사장, 푸른 크루즈 여행, 그림 같은 자연을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이 땅의 역사를 증언하는 수많은 고대의 문화유산과 현대적인 숙박 시설이 공존하고 있어 역사탐방이나 휴양 등 모든 종류의 휴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지역이다.
지중해지역에는 다채로운 특성의 관광 도시들이 많이 모여 있다. 남부 지중해지역의 안탈리아는 튀르키예의 관광 수도이며, 메르신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문화적 풍요로움 외에도 훌륭한 해변이 있는 관광 도시다. 안다나는 자연, 문화 및 요리의 땅이다. 튀르키예의 지중해 지역은 인근의 다채로운 도시에서 영향을 받아 요리와 문화의 풍부한 조화를 만들었다. 지중해 요리는 다양한 과일, 야채, 고기 및 생선 요리로 구성되며, 올리브 오일과 향신료를 사용하여 풍미를 강조한다.[2]
역사[편집]
오늘날의 튀르키예 영토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아나톨리아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이 상호작용하는 장소로서 지구상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인류가 거주하던 땅이었다. 차탈회윅(신석기 3기), 차외뉘(신석기 1기에서 신석기 3기), 네발리 코리(신석기 2기), 하클리아르(신석기 3기), 괴베클리 테페(신석기 2기), 메르신 등 초기 신석기 시대 거주지는 지구상 최초의 인류들이 살던 거주지로 여겨진다. 트로이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철기 시대까지 취락이 지속되었다.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 아나톨리아 사람들은 인도-유럽어, 셈어, 카르트벨리어를 비롯하여 기원이 불확실한 여러 언어를 썼다. 사실 고대 인도-유럽어인 히타이트어와 루위아어를 놓고 서구 학자들은 아나톨리아가 인도-유럽어를 확산시킨 중심지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쿠르간 가설에 밀려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 튀르키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소인데 아시리아 제국이 존재하였다.
이 땅에 들어선 최초의 제국은 히타이트로 기원전 18세기에서 13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 다음은 인도-유럽 계통의 프뤼기아인들이 패권을 잡았으나, 기원전 7세기에 킴메르인의 침략으로 멸망한다. 프뤼기아의 가장 강력했던 후계국가는 뤼디아, 카리아, 뤼키아였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아나톨리아 해안에는 아이올리스와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였다. 이 지역은 기원전 6~5세기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진출한다. 셀주크 튀르크인들이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나타났다. 1243년 룸 술탄국 나타났으며 13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점차 베이들을 통합하기 시작하였다.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스탄불 지역에 로마의 수도로 비잔티움을 지었으나 동로마 시대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명되었고 오스만 제국에는 이스탄불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연합군이 이스탄불과 이즈미르를 점령하면서 튀르키예의 민족 운동이 촉발되었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의 주도로 세브르 조약 규정을 철회시키기 위한 튀르키예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1922년 9월 18일, 이스탄불과 이즈미르에 있던 연합군은 퇴각하였으며, 새로운 튀르키예의 나라가 건국되었다. 11월 1일에 새로이 열린 의회는 공식적으로 술탄국을 폐지하여, 623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종식되었다. 1923년 7월 24일 로잔 조약에서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 국가로서 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23년 10월 29일에 새 수도 앙카라에서 튀르키예 공화국이 정식으로 건국을 선포하였다.
무스타파 케말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구 오스만의 잔재를 털어내고 새로운 세속 공화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여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1924년에 그는 632년 이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였고, 튀르키예 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했다.
1925년에는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과거에 금지되었던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 남녀평등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민법을 개정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하였으며, 1928년에 튀르키예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가족명에 관한 법'에 따라, 1934년에 튀르키예 의회는 무스타파 케말에게 '아타튀르크'(아버지 튀르키예인, 즉 '국부')라는 명예 성명을 부여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셀림 1세의 재위기에도 계속되었고, 슐레이만 대제의 시대에는 오스만 제국이 남동부 유럽 대부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방까지 장악하며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떠올랐다. 다만 18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도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쇠퇴를 막기 위하여 마흐무트 2세가 19세기 초에 근대화 개혁을 실시하며 군대, 봉건제, 사회 등 모든 전반적인 부분을 대개혁하였다.
1913년에 젊은 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들의 지휘 아래 오스만 제국은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 때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국들이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각 지역과 민족들의 독립 요구가 강해졌고 유럽 국가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오스만 제국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유럽 국가들로 인해 여러 국가들로 나누어 졌다. 튀르키예 지방에서는 튀르키예의 국가 영웅 케말 아타튀르크가 외국 군대에 대항하여 튀르키예 독립전쟁을 전개하였고, 1922년 11월 1일에 마침내 술탄제를 폐지하며 1923년 10월 29일에 튀르키예 공화국을 세웠다. 아타튀르크는 수없이 많은 개혁안들을 내놓았으며, 서구 사상을 들여왔고 새로운 신생 튀르키예 정부에 민주주의와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주입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거의 대부분 튀르키예는 중립을 취하였으나, 1945년 2월 23일에 의례적인 의미로 연합군 측에 참전하였으며, 1945년 유엔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튀르키예 해협에 군사 기지를 요구하는 가운데 옆 나라 그리스에서는 공산주의자와 내전을 벌이면서 위기 상황이 조성되자, 1947년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게 된다. 이 독트린에서 미국은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음을 밝혔으며, 그 결과 미국이 대규모로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하게 되었다.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였으며 튀르키예는 한국의 형제의 나라임을 자처하고 있으나, 키프로스 그리스계 탄압 문제와 쿠르드족 탄압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1952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지중해로 진출하려는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십여 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974년 7월에 그리스인들의 군사 정변으로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실각하고 니코스 삼프손이 독재 정권을 세우자, 튀르키예는 1974년에 키프로스 공화국을 침공하였다. 9년 뒤에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 나라는 오직 튀르키예의 승인만 받은 나라이다.
1945년에 일당제 시대가 종식된 이후, 다당제 시대에는 수십여 년간 긴장을 초래하였으며, 1960년대에 1980년대 사이에 정치적 불안 상태가 계속되면서 1960년, 1971년, 1980년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며, 1997년에는 1997년 튀르키예 군부 협정 시기이기도 하였다.[35] 한편 1980년대 튀르키예 경제의 자유화 이후 튀르키예는 더 강력한 경제 성장과 더 큰 정치적 안정을 누렸다.[3]
행정구역[편집]
- 아다나주 - 아다나주(튀르키예어: Adana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고 남부 지역은 평야, 북부 지역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메르신주, 남동쪽으로는 하타이주, 동쪽으로는 오스마니예주, 북동쪽으로는 카흐라만마라슈주, 북쪽으로는 카이세리주, 북서쪽으로는 니데주와 접하며 15개 군을 관할한다.
- 안탈리아주 - 안탈리아주(튀르키예어: Antalya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타우루스산맥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하며 15개 군을 관할한다. 안탈리아주는 튀르키예 관광 산업의 중심지이며 튀르키예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30%가 이곳을 찾는다. 해안선의 길이는 657km에 달하며 해변과 항만, 고대 도시인 크산토스가 있다.
- 부르두르주 - 부르두르주(튀르키예어: Burdur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남서쪽으로는 물라주, 남쪽으로는 안탈리아주, 서쪽으로는 데니즐리주, 북쪽으로는 아피온카라히사르주, 동쪽으로는 이스파르타주와 접하며 11개 군을 관할한다. 튀르키예의 "호수 지방"에 위치하며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다. 주 이름은 부르두르 호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주에서 두 번째로 큰 살다 호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 하타이주 - 하타이주(튀르키예어: Hatay ili)는 튀르키예 남부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북쪽으로는 아다나주와 오스마니예주,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하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1939년 6월 29일 튀르키예에 편입되었다.
- 이스파르타주 - 이스파르타주(튀르키예어: Isparta ili)는 튀르키예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사과와 앵두, 포도, 장미 재배와 융단 제작으로 유명하며 13개 군을 관할한다.
- 메르신주 - 메르신주(튀르키예어: Mersin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0개 군을 관할하며 파울로스가 태어난 곳인 타르수스가 위치한다. 2002년까지는 이첼 주(İçel)라고 불렀지만 튀르키예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주 이름이 주도 이름과 일치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주 번호가 33번인 이유는 당시 튀르키예의 67개 주를 튀르키예어 알파벳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했을 때 이첼 주가 33번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오스마니예주 - 오스마니예주(튀르키예어: Osmaniye ili)는 튀르키예 남부에 위치한 주로, 지중해지역에 속한다. 1996년 아다나주의 일부가 분리되면서 신설되었으며 7개 군을 관할한다.[4]
지중해[편집]
지중해(영어: Mediterranean Sea)는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바다로, 해역 대부분이 세 개의 다른 대륙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북쪽은 유럽, 남쪽은 아프리카, 동쪽은 아시아(레반트)에 접한다.
지중해의 명칭은 말 그대로 "땅 한가운데에" 있다는 뜻이다. 해역의 면적은 250만㎢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연결되는 지점(지브롤터 해협)은 폭이 14km에 불과하다. 지중해의 평균 수심은 1,500m이며, 가장 깊은 지점으로 기록된 곳은 이오니아해의 칼립소 심연(Calypso Deep)으로 그 수심이 5,267m(17,280ft)에 달한다.
해양학에서는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를 이르는 일반적인 개념인 지중해와 이 바다를 구별하기 위해, 유라프리카 지중해(Eurafrican Mediterranean Sea) 또는 유럽 지중해(European Mediterranean)로 칭하기도 한다.
고대 시대부터 지중해는 중요한 교역로로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레반트, 로마, 무어인, 투르크 등 이 지역 여러 민족들이 물자와 다양한 문화를 주고 받았다. "지구의 3/4 지역에 대하여, 지중해는 이 지역의 공통 분모이며, 세계사의 중심이다. 염분은 평균 38% 밀이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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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지중해 지역 (튀르키예)〉, 《위키백과》
- ↑ 〈튀르키예 여행: 지중해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 ↑ 〈튀르키예〉, 《위키백과》
- ↑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
- ↑ 〈지중해〉,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 〈지중해 지역 (튀르키예)〉, 《위키백과》
- 〈튀르키예 여행: 지중해 지역〉, 《네이버 지식백과》
- 〈튀르키예〉, 《위키백과》
- 〈튀르키예의 주〉, 《위키백과》
- 〈지중해〉,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서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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