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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鳳停寺)는 신라 시대인 672년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천등산에 창건한 사찰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국보 제15호인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이 있으며,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등이다.
목차
개요[편집]
천등산 봉정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험하지도 않아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이 곳은 우리들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곳이기도 하고 누구나 봉정사에 오면 심신의 피로를 다 잊어버리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등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점차 번잡해 가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조용한 한국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불교를 믿든 믿지 않든 더없이 좋은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께서 다녀가기도 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봉정사는 안동의 명소로서만이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유명한 절이 됐다. 역사가 오래되고 가람배치가 아름다운 것은 물론, 지난 1999년 4월 21일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의 전통마을을 거쳐 봉정사를 찾아와 우리 불교문화의 일단을 살펴보고 간 이후로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영국 여왕의 방문은 이미 그 자체로 봉정사의 역사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가람[편집]
극락전[편집]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건물이다.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柱心包)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극락전 해체 보수공사 때에 1625년(인조3)에 작성한 상량문을 발견하였다. 이 상량문은 '천계 5년 3월'에 중수하면서 작성한 공사 기록인데, '前中創至正 二十三年 癸卯 三月日'이라는 구절이 있다. 중창은 중창(重創)을 의미하며 지정 23년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께서 개창하였다고 상량문의 신라 때에 창건은 이를 가리킨다. 공민왕 1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이보다 오래 전에 이미 건물이 조영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3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갑석을 올리고 크기가 다른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4칸의 구조이다. 이 건물은 감실형으로 주벽이 토벽으로 밀폐되고 따로 낸 문얼굴에 널빤지 2장을 사용한 문짝을 달았고 좌우 협칸에는 살이 각 11개가 달린 광창이 있다. 공포는 외 1출목 주심포의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가구는 9량가인데 그 구성이 매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주 2본이 뒤쪽에 있다. 그러나 평주상의 대량과 퇴량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높이로 만들어진 특색을 보인다. 다른 법당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이다. 대량은 단면이 청자매병의 윤곽을 연상시킨다. 굵지않은 목재를 홍량으로 다듬어 걸었는데 이로 인하여 중첩하는 부재가 거듭됨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맛을 덜고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건물의 내부는 바닥에 방전을 깔고 뒤쪽에만 2개의 고주를 세워 그 사이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하였다. 불단 위에는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였는데, 그 주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몸을 짜맞춘 뒤 다포식 구성을 지닌 지붕을 씌워 집을 마련하였다.
극락전이 지닌 몇 가지 특징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고려까지 계승된 이른바 고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기둥머리와 소로의 굽이 곡면으로 내반되어 있는 점, 대들보 위에 산 모양에 가까운 복화반대공을 배열하고 있는 점, 첨자 끝에 쇠서를 두지 않은 점 등으로 미루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양식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봉정사 극락전의 경우에는 아미타불을 전각의 가운데에 이동식 불단을 설치하여 그 위에 봉안하고 있고 좌우 협시보살은 모셔져 있지 않다. 단지 불단에는 높이 100cm정도의 아미타불만 모시고 있지만 불단의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그린 삼존도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高宗)37년인 1900년에 그린 후불탱화는 가로 195cm, 세로176cm의 크기로 비단 바탕에 5cm폭의 흰 테두리를 두르고 중앙에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그려 전체적으로는 아미타불의 관배를 감싸듯이 배치된 구도를 가지고 있다. 탱화의 표현 기법은 본존불의 경우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상체보다 두부(頭部)를 상대적으로 크게 표현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까지 들어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고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왼손은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는데 손가락 끝이 뾰족하지만 우아한 곡선미를 간직하고 있다. 광배는 원형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그렸다.
좌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은 본존불을 향하여 약간 틀어 앉은 자세를 취하고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그려진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고 왼손은 연꽃 줄기를 잡고 있다. 우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대칭되는 자세를 취하고 보관(寶冠)에 보병(寶甁)을 표시하고 경책을 받쳐들고 있다. 본존불의 두광 좌우에 합장한 아난과 가섭존자가 상반신만 표현되어 있고, 그 위로 화면의 여백없이 구름을 화려하게 그렸으며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광선을 그려넣었다. 탱화하단 중앙에도 한덩이 구름을 그려서 아미타여래가 극락세계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 15호로 지정되었다. 마당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인 삼층석탑이 서 있다.
대웅전[편집]
대웅전의 건립 연대는 자세한 사료가 없어서 정확한 연대를 알지 못하나 건물의 일부를 해체하여 수리할 때 일부분의 묵서명이 발견되어 추정이 가능하다. 이 대웅전은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 추정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자연석의 막돌허튼층 쌓기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건물이다.
겹치마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을 한 이 건물은 산 중턱에 세워진 건물이면서도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원기둥 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올려 놓았으며, 주간이 넓고 오포작(五包作)이라서 포벽(包壁)이 넓게 보이는 반면 기둥은 짧게 보여 매우 안정감을 준다.
공포의 짜임은 내외 모두 2출목으로 외부쪽으로는 쇠서형이며 내부쪽은 교두형(翹頭形)으로 짜여 그 수법이 고려말 조선초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이러한 예는 툇간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전면 3칸은 전부 개방하고 문비를 설치하였는데 궁판 받친 띠살무늬의 사분함(四分閤)이다. 이 문짝은 앞의 쪽마루와 함께 후대의 구조물이다. 기둥위의 공포도 간의 높이를 낮게 하여 기둥의 기초로부터 처마 끝까지의 간격이 다른 다포집에 비하여 작다.
가구(架構)는 일고주구량가(一高柱九樑架)인데 천장이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어서 상부 가구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지붕은 팔작으로 비교적 처마 깊이가 깊고, 처마는 겹처마로서 네 귀의 추녀끝에는 활주를 받쳐 추녀마루를 지탱하고 있다. 내부의 바닥은 널마루를 전면에 깔고 내부 고주(高柱)를 이용하여 후불벽(後佛壁)을 만들었고 고주 앞에는 불단을 짜서 불상을 모셨다. 불단은 150cm정도의 높이로 만들고 청판에는 연화문을 조각하여 장엄하였다. 불단 위에 연화좌를 놓고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주불인 석가모니불은 높이 150cm정도이고 좌 우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높이가 130cm정도 크기이다.
불단 위쪽은 아름다운 소란반자를 설치하고 그 중심에 따로 닫집을 대신해 보개를 구성하여 장엄미를 추구하였다. 보개의 천장에는 구름이 둥실 떠 있는 하늘을 두 마리의 황룡과 백룡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 하늘의 신비함과 권능을 표현하였다. 보개 아래의 본존상 뒷벽에는 불벽(佛壁)을 조성하였다. 대량(大樑)에 세운 간주(間柱)를 의지하여 벽체를 구성한다. 간주에는 아래 위로 주의(柱衣)를 입히고 그 사이에 기둥을 감싸안으며 상승하는 용을 장엄하게 그렸다. 불벽의 앞쪽에는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걸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10대 제자 사천왕 등을 배치한다.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는 강희(康熙) 52년(1713) 윤(潤) 5월 1일 제작한 것으로 크기는 가로 380cm, 세로 360cm이다.
후불탱화를 보수하기 위하여 불사를 할 때에 희귀한 벽화 형태의 후불탱화가 하나 더 발견 되었는데 이 탱화는 수미단과 보개를 연결하는 주불 뒷벽에 채색으로 그려진 가로 세로 약 417cm 크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변상도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꽃비의 표현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고려 변상도의 상단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구도, 벽화 테두리의 연화 당초문의 색상과 기법이 건물 내부 단청과 유사한 점, 벽화가 훼손되어 1712년에 새로이 후불탱화를 제작하여 봉안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대웅전 초창기 때 그려진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 초기 불화자료가 희귀하고, 조선 전기 이전의 후불벽화도 1476년에 그려진 전남 강진의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 3존도가 유일한 것임을 감안할 때, 이번에 발견된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는 우리나라 불화의 도상과 양식 연구 뿐 아니라 회화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 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6월 30일에 국보 제311호로 승격되었다.
고금당[편집]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금당은 극락전 앞 서쪽에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동쪽에 있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건축되어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화엄강당과는 달리 기둥과 기둥의 간격이 좁고 기둥의 키가 높은 구조를 하고 있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연적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놓았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공포는 익공에 가까운 주심포계이며 가구는 고주가 없는 7량가이다. 정면 3칸에는 칸마다 2짝으로 된 띠살문을 달았다. 어간 문의 크기는 중앙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어 좌우의 띠살문보다 높이가 조금 더 크다. 측면과 뒷면은 모두 벽으로 막았고 뒷면의 좌우 협칸에 외문의 띠살문을 달았다.
공포의 구성은 기둥 위에만 포작을 짜올린 주심포계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주두 밑에 헛첨차를 끼우고 그 위에 주두 위에서 나온 살미첨차를 포개 놓았다. 이 위에 도리 방향으로 일출목의 행공첨차를 얹어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는 관계로 익공계로 이해되기도 한다. 측면의 가구는 벽 중앙에 귀기둥보다 약간 긴 원형의 고주를 놓아 대들보를 받치고,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쳤으며, 이 위에 다시 짧은 기둥을 세워서 마루도리를 떠받치고 있다. 도리와 장여를 길게 밖으로 빼내어서 측면 지붕에 깊이감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엄강당에는 대들보와 마루보 사이에 조그만 살창을 두고 있지만 고금당에는 없다.
이것은 화엄강당이 판고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어서 측벽에 살대를 꽃은 통풍창이 있는데 반하여 고금당은 선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살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좌측면에는 아궁이를 내어 난방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내부는 3칸 통으로 공간 활용을 넓게 하였다.
화엄강당[편집]
이 건물은 스님들이 교학을 공부하는 장소인 봉정사의 화엄강당으로 온돌방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극락전과 대웅전이 17세기에 중수되었는데 스님들의 강학공간인 화엄강당도 함께 중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건물 내부는 남쪽 2칸이 부엌, 북쪽 4칸이 온돌방으로 되어있으나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4칸으로 현재의 온돌방 뒤쪽으로 4칸의 마루가 깔려 있으며 부엌이 지금보다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평면 구성이 언제 오늘날처럼 바뀌었는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며 1930년대 이후로만 짐작될 뿐이다.
대웅전 앞 경내에 들어서면 왼쪽에 화엄강당이 동향으로 세워졌으며 그 후면은 극락전의 앞쪽이 된다.
장대석 댓돌 위에 두꺼운 널판을 쪽마루와 같이 깔았는데 사분합의 띠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중앙칸과 북쪽칸은 하나로 통해서 넓은 온돌방이다. 나머지 남쪽칸은 부엌으로 만들었으나 그 박공쪽 벽을 헐어서 내부를 확장하였으므로 건물 원래의 모습이 약간 상하게 되었다.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므로 대웅전 등의 불당에 비교하여 매우 낮은 기둥을 사용하였는데 그 대신 공포의 치수를 보통 이상으로 크게 잡아 건물의 균형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측면에는 중앙에 네모기둥 1개를 세워서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으며 이 대량과 그 위의 동량과의 사이에는 살창을 하나 만들었다. 정량위의 마루대공 좌우에는 소슬창이 보인다. 박공머리에 나와있는 도리 밑을 받친 첨차들은 그 전부가 다포집 계통의 첨차들이다.
1967년 6월 23일 보물 448호로 지정되었다.
3층석탑[편집]
극락전의 정면에 있는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된 탑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 부분은 있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탑의 총 높이는 318cm이다.
2층 기단(基壇)을 쌓아 탑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도, 폭의 변화는 적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만세루[편집]
조선 숙종 때의 건축물이며, 2001년 11월 1일 시도 유형문화재 325호로 지정되었다.
관광[편집]
봉정사로 향하는 길은 대한민국 사찰들의 일반적인 풍경과는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한국 대부분의 사찰로 향하는 길은 깊숙한 산으로 간다든가, 관광객을 맞이하려는 식당 거리가 나타나는 것이 보통. 반면 봉정사로 향하는 길은 안동에 들어선 이래 주변으로 논과 밭이 비슷하게 이어져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볼 수 있다.
입구에 도착하면 봉정사 휴게소라 이름 붙은 식당 겸 슈퍼 하나와 작은 주차장만이 자리하고 있다. 이름 높은 사찰 입구치고는 생소하지만, 시끌벅적하지 않은 분위기가 싫지만은 않다.
봉정사 매표소를 지나 절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가파른 포장도로. 동시에 소나무 등 수목들이 우거져 있어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천천히 거닐며 왼편 숲 속에 숨어있는 정자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조선시대에 봉정사를 자주 찾았다는 퇴계 이황이 계곡 옆에 명옥대라는 정자를 지어 절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겼다고 한다.
소나무 숲의 끝에 이르면 터널을 뚫고 나온 듯이 하늘과 사방이 탁 트이는 장소에 도착한다. 봉정사 경내 주차장에서 보이는 건물들은 최근 새롭게 지은 템플스테이용 건물이고,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찰 경내로 향하는 길은 주차장에서 오른편 경사로를 따르면 나타난다.
부처님 형상으로 꽃을 심어놓은 화단 맞은편의 계단을 올라 만세루를 지나면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봉정사의 본당 건물. 그 양옆으로 자리한 전각들까지 합쳐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건물들이 봉정사 경내의 거의 전부일 만큼 봉정사는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경내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과 고금당(古金堂), 화엄강당, 삼성각, 덕휘루, 그리고 요사인 무량해회(無量海會) 등으로 가득 찼다. 봉정사에는 조선시대 초기에 그린 괘불, 그리고 관음보살 등 중요한 문화재가 그득하지만, 무엇보다도 특히 전각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의외로 봉정사의 역사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 창건이 어떠했다는 것 말고는,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갔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달리 행간을 채울 말이 별로 없는 것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역사 역시 그보다 나은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문헌기록의 부재는 바로 경내 가득히 들어선 건물들의 역사로써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그만큼 우리 건축미술사의 살아있는 현장이요 교과서라고 할 만한 것이다.
봉정사에는 본당 건물과 조금 떨어져있는 영산암도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있다. 유홍준 교수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이렇게 감정의 표정을 많이 담은 마당을 본 적이 없다"라고 표현했다는 영산암.
궁금증을 가지고 영산암에 도착해보면 외부의 독특한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양반들이 사는 정원처럼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져 놀라게 된다. "영산암 앞마당은 일상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는 유홍준 교수의 표현에 따라 불법을 수도하는 곳에서 만난 색다른 모습은 마주한 것만으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한편, 돌아나가는 길에 다시 마주하게 될 부처님 형상의 꽃밭은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도륜스님이 가꾸어 놓은 것이라 한다.
이용안내[편집]
- 관람료
- 개인 : 어른 2,000원, 청소년 및 군경 1,300원, 어린이 600원
- 단체 : 어른 1,500원, 청소년 및 군경 1,000원, 어린이 500원
- 이용시간 : 일출~일몰 시
- 주차시설 : 주차 가능 (50~60대) / 무료
- 연락처 : 봉정사 종무소 ☎ 054-853-4181
- 템플스테이 자세한 안내는 〈여기클릭〉
교통안내[편집]
자가운전[편집]
- 서울 → 중부고속도로 → 호법분기점 → 영동고속도로 → 여주 → 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제천·단양·영주·예천 → 서안동IC → 안동방향 → 봉정사
- 대전 → 4번 국도 → 옥천 → 37번 국도 → 보은 → 25번 국도 → 상주시 → 예천 → 안동방향 → 봉정사
- 대구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봉정사
- 부산 → 경부고속도로 → 대구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봉정사
- 광주 → 올림픽고속도로 → 대구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봉정사
- 전주 → 호남고속도로 → 대전 → 경부고속도로 → 구미 → 중앙고속도로 → 서안동IC → 안동방향 → 봉정사
- 청주 → 보은 → 상주 → 점촌 → 예천 → 안동방향 → 봉정사
안동시내교통[편집]
버스 안동초교앞 출발 시외버스터미널 출발 봉정사 출발 비고 서후봉정사 (51번)
06:00 06:10 06:50 봉정사 08:15 08:25 09:20 봉정사 10:40 10:50 11:50 봉정사 13:30 13:40 14:45 봉정사 17:10 17:20 18:00 봉정사 18:50 19:00 19:20 봉정사
열차[편집]
자세한 안내는 〈여기클릭〉
시외 버스[편집]
구간 시간(첫차,막차) 운행횟수 소요시간 봉화 ↔ 서울 08:10 ~ 18:40 6회 3시간 30분 안동 ↔ 서울 07:10 ~ 20:10 9회 3시간 안동 ↔ 부산 08:40 ~ 19:00 4회 3시간 안동 ↔ 대전 07:55 ~ 19:10 10회 2시간 40분 안동 ↔ 대구 06:35 ~ 21:30 33회 1시간 30분 안동 ↔ 경주 06:25 ~ 17:16 6회 3시간 30분 안동 ↔ 포항 06:25 ~ 18:00 11회 3시간 안동 ↔ 광주 09:30 ~ 15:00 2회 4시간 안동 ↔ 구미 06:00 ~ 21:00 13회 1시간 20분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봉정사 공식 홈페이지 - http://bongjeongsa.org/
- 〈봉정사〉, 《위키백과》
- 〈봉정사〉, 《나무위키》
- 신대현 / 논설위원·사찰문화연구원, 〈37. 안동 봉정사〉, 《불교신문》, 2008-11-08
- 노규엽 객원기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③ 봉정사, 산 속에 숨은 듯 자리해 장구한 역사를 이어오다〉, 《여행스케치》, 2019-09-05
- 〈봉정사〉, 《티티어스》
- 세상 밖으로, 〈드론 여행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산암 가는길 입장료〉, 《컴플》, 2020-04-29
- 〈안동 봉정사〉, 《대구트립로드》
-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안동을 걷다,먹다> 21. 엘리자베스 여왕이 찾은 산사, 봉정사〉, 《매일신문》, 2021-02-19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