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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햄(Birmingham)은 미국 앨라배마주 북쪽 중앙 지역에 있는 도시이다. 버밍햄은 앨라배마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제퍼슨군의 군청 소재지이며, 일부는 셸비군에 속해 있다. 인구는 약 20만 명으로 앨라배마주에서 헌츠빌과 몽고메리 다음으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이름은 영국의 철강도시 버밍엄에서 따왔고, 철자도 같지만 이쪽은 '버밍햄'이라고 읽는다.[1]
개요
버밍햄은 애팔래치아산맥의 남단, 존스협곡의 좁은 평야에 위치하는 앨라배마주 최대의 도시이다. 1871년 철도의 접속점으로서 목화밭에 건설되었고 1907년 U.S.스틸사가 현지의 철강회사를 매입한 후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여 남부 최대의 제철, 중기계 공업도시로 성장하였다. 1960년대 말까지 버밍햄은 남부의 주요 산업 중심지였다. 1962년에 인종 차별에 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의 시위를 경찰이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근처에서 산출되는 석탄, 석회석, 돌로마이트, 철광석 등 원재료를 이용하여 선철, 강철, 주철 파이프를 비롯한 철제품과 중기계, 시멘트, 화학약품의 제조가 성하다. 서쪽에 있는 베서머, 페어필드 등까지 공장지대가 이어져 있다. 위리어강의 수로에 의해서 멕시코만에 있는 모빌과 연결되며, 철도교통도 편리하며 항공로의 중심이다. 교육기관으로 앨라배마대학교, 버밍햄서던대학교, 하워드대학교 등이 있다. 흑인 민권운동을 다룬 인권박물관과 교외의 대규모 아울렛인 갤러리아 몰이 있다. 그리고 버밍햄 셔틀워스 국제공항 근처에는 항공박물관도 있으며 여기에 퇴역한 F-4 팬텀 전투기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더럽게 할 거 없는 이 도시의 그나마 큰 재미거리다. 그리고 발칸 공원(Vulcan Park)에는 철강도시를 상징하는 발칸 동상이 서 있기도 하다. 버밍햄은 2022년 월드 게임을 개최하였다.[2]
역사
버밍햄은 1871년 6월 1일 엘리턴 랜드 회사(Elyton Land Company)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회사의 투자자들은 면화 재배자, 은행가, 철도 사업가들이었다. 이전에 농장의 일부였던 토지를 포함하여 앨라배마 & 채터누가와 앨라배마 남부 및 북부 철도의 계획된 교차로 근처에 부지를 판매했다. 교차로에서 첫 번째 사업은 무역소와 상점이었다. 철길 건널목의 위치는 철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세 가지 주요 원료인 철광석, 석탄, 석회암이 근처에 매장되어 있었다.
버밍햄은 전 세계적으로 세 가지 광물 모두를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신도시는 처음부터 훌륭한 산업의 중심지로 계획되었다. 엘리튼 랜드 컴퍼니(Elyton Land Company)로 조직된 설립자들은 그 점을 광고하기 위해 영국의 주요 산업 도시 중 하나인 버밍엄(Birmingham)의 이름을 차용했다. 계획된 도시의 성장은 1873년 콜레라의 발병과 월스트리트의 붕괴로 인해 방해를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적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앨라배마주 엘리턴(Elyton) 마을과 기타 주변 도시들은 1911년에 버밍햄에 흡수되었다. 0세기 초에는 저층 건물에서 도심 지역이 발전하면서 버밍햄에 "마법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상당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상업 및 주거 지역을 신고전주의 양식의 중층 및 고층 건물과 분주한 전차 노선으로 이루어졌다. 1902년에서 1912년 사이에 도시의 중앙 남북 척추인 20번가와 동서 철도 회랑을 따라 뻗어 있는 창고와 산업 시설을 연결하는 1번가 노스(1st Avenue North)의 교차점에 4개의 대형 사무실 건물이 건설되었다. 인상적인 초기 고층 빌딩 그룹은 " 지구상에서 가장 무거운 코너 "라는 별명을 얻었다.
버밍햄은 1916년 아이언데일 지진(규모 5.1)을 겪었다. 해당 지역의 몇몇 건물이 약간 손상되었다. 지진은 애틀랜타와 인근 주까지 감지되었다.
흑인들은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산업 일자리에서 제외되었지만, 기회를 위해 시골 지역에서 도시로 주민들의 이주에 동참했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특히 버밍햄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이는 이 도시의 성장을 촉진했던 자본의 원천이 급격히 고갈됨과 동시에 토지에서 쫓겨난 농장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뉴딜 프로그램은 많은 도시 주민들이 벌컨 타워와 오크 마운틴 주립 공원과 같은 주요 개선 사항을 포함하여 도시의 기반 시설과 예술적 유산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전쟁 중 철강에 대한 수요와 전후 건물 붐은 버밍햄을 빠르게 번영으로 이끌었다. 원자재 생산을 넘어 제조가 다양해졌다. 학교, 공원, 박물관 등 주요 시민기관이 그 범위를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의 인구와 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 주민들은 주 의회에서 현저히 과소 대표되었다. 주 헌법은 10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조사의 변화에 따라 선거구 조정을 요구했지만, 주의회는 연방 법원의 "1인 1표"를 강제로 시행한 1970년대 초까지 이 작업을 수행하지 않았다. 또한 각 카운티에 한 의석을 부여하는 상원의 지리적 기반은 농촌 카운티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시골 카운티 대표자들도 주의회에서 불균형적인 권력을 갖고 있었으며 버밍햄과 같은 도시 인구 중심지 개발에 대한 인프라 및 기타 개선 사항에 대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때 총회는 입법 대표단을 통해 국가의 연장선으로 군정부를 운영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버밍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위한 민권 투쟁의 중심지로서 미국 및 국제의 주목을 받았다. 지역적으로 이 운동의 활동가들은 폭력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전설이 된 불타는 전도사 프레드 셔틀스워스(Fred Shuttlesworth )가 이끌었다.
민권 운동의 분수령은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셔틀스워스가 공동 창립한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 (SCLC)가 킹이 목사로 재직했던 버밍햄으로 오도록 요청했을 때 발생했다. 그들은 함께 짐 크로우 시스템에 대한 대규모 공격인 대결을 시작했다. 4월과 5월에는 운동 지도자인 제임스 베벨(James Bevel)이 조직하고 주도한 일일 연좌 농성과 대규모 행진이 경찰의 탄압, 최루탄, 공격견, 소방 호스, 체포에 직면했다. 이 시위 동안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체포되었는데, 그들은 거의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이러한 시위는 궁극적으로 성공적이었고, 버밍햄의 공공 숙박 시설의 분리뿐만 아니라 1964년 민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비폭력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동안 킹 박사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자신의 주장을 정의하는 논문인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를 썼다. 버밍햄은 16번가 침례교회에 설치된 폭탄에 의해 흑인 소녀 4명이 사망한 폭탄테러로도 유명하다.
1998년 지역 변호사 제임스 로치(James Rotch)가 작성한 버밍햄 서약(Birmingham Pledge)이 마틴 루터 킹 연합 조찬식(Martin Luther King Unity Breakfast)에서 소개되었다. 인종 차별과 편견에 맞서기 위한 풀뿌리 공동체의 헌신으로 이후 이 프로그램은 50개 주 전체와 20개 이상의 국가에서 프로그램에 사용되었다.
1970년대 도시 재개발 노력은 주요 의료 및 연구 센터로 발전한 버밍햄 소재 앨라배마대학교 개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앨라배마대학교 버밍햄은 주요 의료 및 연구 중심지로 발전했다. 1971년 버밍햄은 벌컨 공원의 업그레이드와 2,500석 규모의 심포니 홀, 극장, 1만9,000석 규모의 아레나, 전시장을 포함하는 주요 도심 컨벤션 센터의 건설을 포함한 공공사업들의 대대적인 개선으로 100주년을 기념했다. 버밍햄의 은행 기관들도 상당한 성장을 누렸고 1920년대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고층 건물들이 도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도시의 경제를 다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많은 도시 주민들이 인근의 독립적인 교외로 이주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979년 버밍햄은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장으로 리차드 애링턴 주니어(Richard Arrington Jr.)를 선출했다.
2011년 버밍햄의 하이랜드 파크 인근은 미국 기획 협회(American Planning Association)에 의해 2011년 미국 최고의 장소로 선정되었다. 2015년 국제월드게임집행위원회는 2021년 월드게임 개최지로 페루 리마와 러시아 우파 대신 버밍햄을 선정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회가 1년 연기됐다. 2020년 인구조사 이후 버밍햄은 앨라배마 최대 도시로서의 오랜 지위를 잃었고, 헌츠빌은 전체 인구에서 버밍햄을 추월했지만 버밍햄은 주 최대 대도시 지역으로 남아 있다. 버밍햄은 2022년 7월에 2022년 월드 게임을 개최했다.[3]
교통
버밍햄에는 4개의 주간 고속도로가 있으며 각각 20번 주간 고속도로, 65번 주간 고속도로, 59번 주간 고속도로, 22번 주간 고속도로미며, 남서쪽으로는 I-20/59, 남쪽으로는 I-65, 동쪽으로는 I-20, 북동쪽으로는 I-59와 연결되는 남부 우회 고속도로 459번 주간 고속도로가 있다. 미국 고속도로 31호선과 미국 고속도로 280호선을 모두 통과하여 레드마운틴을 통과하거나 넘어가는 남동쪽의 레드마운틴 고속도로이다. 22번 주간 고속도로는 2012년에 완공되어 버밍햄과 테네시주 멤피스를 연결한다. I-22는 버밍햄시 경계 바로 북쪽에서 I-65와 연결된다. I-422의 첫 번째 구간인 I-459에서 버밍햄 반대쪽 교외 지역을 운행할 버밍엄 노던 벨트라인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대도시의 대중교통 분야에서 버밍햄은 1985년부터 2008년까지 MAX(Metro Area Express)로 브랜드화된 버밍엄-제퍼슨 카운티 교통국(BJCTA) 버스, 트롤리 및 파라트란스 시스템에 의해 서비스를 받는다. BJCTA는 또한 중심 업무 지구에 2개의 노선과 UAB 지역에 1개의 노선으로 구성된 "DAT"(Downtown Area Runabout Transit)라는 "다운타운 서큘레이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버밍햄에는 버밍햄-셔틀스워스 국제공항이 있다. 공항은 매년 3백만 명 이상의 승객을 수용하고 있으며 매일 160편 이상의 항공편이 운항되는 이 공항에서는 미국 전역의 37개 도시로 항공편을 제공한다.
앨라배마대학교 버밍햄캠퍼스
앨라배마대학교 버밍햄캠퍼스(University of Alabama-Birmingham)는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 있는 앨라배마대학교 캠퍼스로 1969년 설립된 앨라배마대학교 시스템 중의 한 캠퍼스이다. 앨라배마대학교 시스템은 터스컬루사와 버밍햄 그리고 헌츠빌에 위치하는 3개의 연구중심 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는 주립대학교이다. 버밍햄 캠퍼스에는 인문·교육·음악·예술·상업·보건학과 등이 있는 2개 단과대학와 대학원이 있다. 2개 도서관에는 160만 1,023권의 도서와 107만 3,622점의 마이크로폼 자료 및 CD를 포함한 5만 361점의 시청각자료가 소장되어 있으며, 5,162종의 정기간행물이 비치되어 있다. 부속시설로 미술관, 라디오 방송국, 레이놀즈 역사도서관 등이 있다. 버밍햄 도심에 위치한 약 728㎢의 캠퍼스에는 기숙사를 포함한 110개동의 건물이 있다.[4]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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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버밍햄〉, 《위키백과》
- ↑ 〈버밍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앨라배마 주 버밍엄〉, 《요다위키》
- ↑ 〈앨라배마대학교 버밍햄캠퍼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버밍햄〉, 《위키백과》
- 〈앨라배마 주 버밍엄〉, 《요다위키》
- 〈버밍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앨라배마대학교 버밍햄캠퍼스〉,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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