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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9일 (금) 22:0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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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곶(Cape Horn, 네덜란드어: Kaap Hoorn, 스페인어: Cabo de Hornos)은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곶이다. 칠레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 위치하며, 지명은 네덜란드의 도시인 호른(hoorn)에서 유래하였다. 케이프혼이라고도 부른다.[1]
개요[편집]
혼곶 지역은 남아메리카 최남단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며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지점이다. 세 개의 그레이트 케이프들(Great capes; 아프리카의 희망봉, 오스트레일리아의 루윈곶, 남아메리카의 혼곶)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또한 드레이크 해협(Drake Passage)의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곶은 오랫동안 세계를 돌며 무역을 행했던 범선들이 이용하던 클리퍼 루트(clipper route)의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혼곶 주변의 바다는 강풍과 큰 파도, 빠른 해류와 유빙 때문에 극히 위험하며, 이러한 위험 때문에 선원의 무덤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때문에 대항해 시대 때에는 선원들 사이에 희망봉 근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유령선 괴담과 같은 '백의 노인'괴담이 있었는데, 조타수들이 파도를 조심하려고 뒤를 돌아볼 때 배 뒤로 지팡이를 질질 끌며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바다 위를 걸어 배 뒤를 쫓아온다는 것이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서 선박들이 혼곶을 돌아가야 할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혼곶 주위를 항해하는 것은 요트 항해에서 주요한 도전 과제이며, 몇몇 취미 항해자들이 이 항로를 이용한다. 때로는 세계 일주의 한 부분으로 이용된다. 비록 많은 수의 항해자들이 혼 섬을 지나기 위해 날씨가 화창해지기를 기다리고, 심지어 이 섬을 방문하거나 과거와 같이 이 곶을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곶보다 북쪽에 있는 운하를 이용한다. 몇몇 저명한 요트 경기에서, 특히 벤데 글로브(Vendée Globe) 같은 경기에서는 혼곶을 지나 세계일주를 하고, 이 항로를 활용한 세계 일주 최고 속도가 기록된다.[2][3]
역사[편집]
1526년 로아이사 탐험대(Loaísa expedition)의 일원인 프란시스코 드 호체스(Francisco de Hoces)가 이끄는 스페인 선박 산 레스메스(San Lesmes)는 강풍에 의해 남쪽으로 날아가 56°S의 육지 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마젤란 해협 앞을 지나 혼곶에 도달했다. 이 발견 이후 남아메리카와 남극을 가르는 바다에는 발견자의 이름이 스페인 자료에서 기록되었다. 대부분의 스페인어 지도에서 Mar de Hoces(호스해)로 나타난다. 그러나 영국 차트에서는 그것은 드레이크 항로(Drake Passage)라고 명명되었다. 1578년 9월, 프란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 경은 세계를 일주하는 동안 마젤란 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향했다. 그가 북쪽으로 항해를 계속하기 전에 그의 배는 폭풍을 만나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남쪽으로 날아갔다. 드레이크는 만난 광활한 바다로 인해 이전에 믿었던 것처럼 다른 대륙이 아니라 티에라 델 푸에고가 남쪽에 바다가 펼쳐진 섬이라고 추측했다. 이 발견은 선박들이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는 알려진 통로를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
17세기 초까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당시 극동으로 향하는 유일한 경로였던 마젤란 해협과 희망봉을 통한 모든 네덜란드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얻었다. 미지의 테라 오스트랄리스(Terra Australis)로 가는 대체 항로를 찾기 위해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상인인 아이작 르 메이어(Isaac Le Maire)와 호른(Hoorn)의 선장인 빌렘 슈텐(Willem Schouten)은 호른 상인들의 추가적인 재정적 지원과 함께 기업에 동등한 지분을 기부했다. 아이작의 아들인 제이콥 르 메이어가 탐험을 떠났다. 1615년 6월 초에 네덜란드를 출발한 두 척의 배는 슈텐과 르 메이어를 태운 360톤의 장전함과 110톤의 장전함으로 그 중 슈텐의 동생 요한은 선장이었다. 당시 난파한 호른호 선원들이 타고 르메레 해협을 통과해 위대한 발견을 했다. 발견 당시, 혼은 티에라 델 푸에고의 최남단 지점이라고 믿어졌다. 드레이크 항로의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바다 상황의 폭력성은 탐험을 어렵게 만들었고, 혼이 섬으로 밝혀진 것은 1624년이었다. 드레이크 항로를 건너 겨우 650km 떨어진 남극 대륙이 200년 동안 주요 항로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820년에야 발견됐다는 것은 그곳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혼곶은 세계 무역의 많은 부분을 운반하는 클리퍼 루트의 일부였다. 범선들은 호주에서 유럽으로 양털, 곡물, 금을 싣고 혼을 항해했다. 여기에는 1930년대 대곡류 경쟁(Great Grain Race) 전성기의 윈드재머(windjammers)가 포함되었다. 유럽과 극동 사이에서 많은 무역이 이루어졌고 무역선과 여객선은 혼곶을 통해 미국 해안 사이를 여행했다. 그러나 혼곶은 매우 위험한 조건의 조합으로 인해 운송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인근 지역에서 선박을 서비스하거나 공급하거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시설은 포클랜드 제도였다. 그곳의 기업들은 가격 폭리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때때로 손상된 배들은 포트 스탠리에 버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증기선으로 바꾸고 나중에 파나마 운하를 사용했지만, 플라잉 P-라이너(Flying P-Liners)와 같은 독일의 강철 선체 범선은 1890년대부터 혼곶 주변의 기상 조건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는 그들이 남미 질산염 무역과 나중에는 호주 곡물 무역을 전문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도 혼곶 주변을 여행하면서 길을 잃지는 않았지만, 프레우젠 범선과 같은 일부는 해협에서 충돌되었다. 1788년 HMS 바운티호의 혼곶을 도는 역사적인 시도는 바운티호의 반란으로 인해 역사에 영원히 남아 있다. 이 실패한 혼 항해는 타히티에서 자메이카로 빵 열매를 운반하는 선장 윌리엄 블라이의 임무에 관한 세 개의 주요 영화에서 그려졌다. 바운티호는 항로를 바꿔 아프리카를 일주하는 것으로 포기하기 전까지 동서로 항해하는 31일 동안 겨우 85마일을 나아갔다. 비록 1984년 영화가 반란의 촉진 요인으로 혼을 돌기로 한 또 다른 결정을 묘사했지만, 사실 그것은 혼 근처의 낮은 온도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에 고려되지 않았다. 1914년 중앙아메리카에 개통된 파나마 운하뿐만 아니라 북미 대륙횡단철도는 무역을 위한 혼의 사용을 점차 감소시켰다. 기선이 범선을 대체하면서 플라잉 P-라이너 파미르는 1949년 호주 포트 빅토리아에서 영국 팔머스까지 곡물을 싣고 화물을 적재한 마지막 상업 범선이 되었다.[4]
위험[편집]
혼곶 주변의 항로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항로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여러 요인이 결합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남극해에 널리 퍼져 있는 험악한 항해 조건, 혼곶 남쪽 항로의 지리, 그리고 남위 56°에 있는 혼곶의 최남단 위도이다. 아프리카 남단의 아굴라스곶은 남쪽 35°, 뉴질랜드 남단의 스튜어트섬, 라키우라는 남위 47°이다. 남위 40도 이하의 위도에서 부는 바람은 육지에 의해 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포효하는 40대", 훨씬 더 거친 "분노의 50대", "비명의 60대"라고 일으킨다. 이러한 바람은 동쪽으로 이동하는 선박이 40도의 북쪽(남위 40도 이하)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충분히 위험하다. 그러나 혼곶을 일주하려면 선박이 가장 강한 바람의 영역인 남위 56도까지 남쪽으로 압력을 가해야 하며 가장 맹렬한 바람이 부는 지역까지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바람은 안데스산맥과 남극 반도의 유입 효과로 인해 혼곶에서 더욱 악화되며 상대적으로 좁은 드레이크 항로로 바람을 전달한다.
남극해의 강한 바람은 그에 상응하는 큰 파도를 일으킨다. 이러한 파도는 육지의 방해 없이 남극해를 돌 때 큰 높이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혼곶에서 이러한 파도는 혼곶 남쪽의 얕은 수역에 부딪히는데, 이는 파도를 더 짧고 더 가파르게 만들어 선박에 대한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 드레이크 항로를 통해 동쪽으로 향하는 강한 해류가 반대쪽 동풍을 만나면 파도가 더욱 커지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정상적인 파도 외에도 혼 서쪽 지역은 특히 30m 높이의 거친 파도로 악명이 높다. 만연한 바람과 해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뿔을 우회하려는 선박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가장 좋은 시기에 바람을 거슬러 거의 나아가지 못하는 전통적인 범선들에게 특히 심각한 문제였다. 현대 범선은 풍향에 훨씬 더 효율적이며 글로벌 챌린지 경주처럼 더 효율적이며 혼곶 서쪽으로 통과할 수 있다. 얼음은 남위 40도 이하로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위험하다. 빙하 한계가 혼곶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떨어지지만 빙산은 이 지역의 선박들에게 중대한 위험요소이다. 2월의 남태평양(남반구 여름)에서는 일반적으로 빙산이 남위 50도 이하로 제한되지만 8월에는 빙산의 위험이 남위 40도 이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심지어 2월에도, 혼곶은 빙산의 한계 위도를 훨씬 밑돌고 있다. 이러한 위험으로 인해 혼곶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선박 통로로 악명높게 되었다. 많은 배들이 난파되었고 많은 선원들이 혼곶을 항해하다가 사망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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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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