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롱스크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동유럽 위치 지도}} 썸네일|300픽셀|폴란드 위치 썸네일|300픽셀|실롱스크주 위치 '''...) |
(차이 없음)
|
2024년 6월 6일 (목) 17:14 판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실롱스크주(폴란드어: Województwo śląskie)는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주이다.[1][2]
목차
개요
실롱스크주의 면적은 12,334㎢이며 인구는 4,402,950명(2021년)이다. 서쪽으로는 오폴레주, 북쪽으로는 우치주, 북동쪽으로는 시비엥토크시스키에주, 동쪽으로는 마워폴스카주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체코,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한다. 주도(州都)는 카토비체(Katowice)이다. 19개 도시군과 17개 군, 167개 그미나(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폴란드의 16개 주 중 두 번째로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도 가장 높으며, 폴란드에서 인구 상위 40개 도시 중 12개가 위치한다. 카토비체, 체스토호바(Częstochowa), 소스노비에크에(Sosnowiec)가 인구 2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이다.
오랜 기간 여러 국가가 공존하여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추도프성(Castle in Chudów)을 비롯해 주 전체에 25개에 달하는 성이 산재할 정도로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카토비체에서 남쪽으로 38km 떨어진 프슈치나(Pszczyna) 마을은 18~19세기 공동주택으로 둘러싸인 시장광장과 네오바로크 양식의 궁전 등 여러 역사적인 건축물로 인해 '상부 슐레지아의 진주(pearl of Upper Silesia)'라고 불리는 유명한 곳이다. 카토비체와 호주프 사이에는 광산폐기물 저장지와 늪지대를 개발하여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공원인 실롱스키 공원(Park Śląski)이 조성되어 있다. 실롱스키 공원은 상부 슐레지안 민족지리박물관(Upper Silesian Ethnographic Park)과 폴란드 최대 규모의 천문관 및 국제박람회장 등이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휴양과 관광을 겸해 찾는다.[3]
자연환경
실롱스크주 남서부로에는 체코, 남부는 해발 1,725m의 베스키드지비에츠키 산맥(Beskid Żywiecki Mountains)을 경계로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한다. 중앙과 북서부는 슐레지엔 고지대(Silesian Upland)로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갖는다. 카토비체 인근의 도시 호주프(Chorzów)에는 폴란드 최대 규모의 시립공인인 슐레지엔공원(Silesia Park)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
10세기 이후 여러 슬라브계 부족이 거주하였고 지정학적 위치로 무역로로 번성하면서, 중세부터 폴란드, 오스트리아 및 체코간 끊임없는 대립으로 여러 공국으로 분할되었다. 중세말엽부터는 신구교도간 종교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18세기부터는 1, 2차에 걸친 슐레지엔전쟁(Silesian Wars)과 7년전쟁(Seven Years)으로 프로이센이 본 지역을 대부분 점령하여 독일화가 이루어졌다. 19세기 초 이미 인구가 200만 명에 달하고 석탄과 철강산지로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어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대표적인 산업지대로 발전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슐레지엔 영토 중 상부슐레지아(Upper Silesia)를 포함한 약 44%가 폴란드에 할애되어, 현재의 실롱스키에주를 구성하였으며, 나머지 지역은 독일과 체코에 속한다.
1999년 폴란드 지방정부 개혁으로 인근의 3개주의 일부를 합쳐 독립된 주로 창설되었고, 역사적으로 슐레지엔(Silesia)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었다. 수세기에 걸쳐 폴란드, 독일 및 체코간 대립에 따른 오랜 피지배로 폴란드인의 민족의식이 유난히 강한 곳이며, 동시에 현재도 소수의 독일인이 거주할 정도로 주변국가의 문화가 융합된 지역이다.
산업
폴란드 전체 면적의 4%에 불과하지만, 국내 총생산의 약 13%를 점하는 핵심적인 산업 지역으로 주산업은 석탄, 납, 아연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활용한 광업, 금속가공 및 전력생산이다. 19개의 탄광에서 여전히 석탄이 채굴되는데 현재와 같은 소비 규모로 향후 800년 이상을 채굴할 수 있을 정도로 매장량이 막대하다. 폴란드는 국내 전력생산의 80%이상을 석탄발전에 의존하므로 본 지역은 에너지 안보측면에서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폴란드 온실가스 배출의 약 40%를 점해, 청정에너지 전환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압력으로 광업은 점차 사양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대신 엔지니어링, 자동차 및 화학 등의 전통적 제조업이 활발해 약 20만여 개의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시차원에서 지역내 카토비체대학교(University of Silesia in Katowice)를 비롯해 11개의 공립대학을 연계한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디지털과 녹색경제 전환을 대대적으로 진행해 스마트 혁신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교통
카토비체국제공항
카토비체 도심에서 북쪽으로 30km 떨어진 피르조비체(Pyrzowice)에 있다. 중앙 유럽을 기반으로 운항하는 저가 항공회사인 위즈항공(Wizz Air)의 허브공항이며 이탈리아항공(Air Italy)·라이언항공(Ryanair)·저먼윙스항공(Germanwings)·루프트한자항공 등 여러 항공사들이 취항한다.
평균 해면 고도는 303m이다. 2007년 완공된 터미널은 두 개의 여객 터미널과 화물터미널로 이루어진다. 활주로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으며 길이는 2,799m, 너비는 59m이다. 2007년 터미널 건물과 포드바르피에 교차점(Podwarpie junction) 사이에 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카토비체 중앙역에서 공항까지 매시간 버스가 운행된다. GTL(Górnośląskie Towarzystwo Lotnicz)이 소유·운영한다.[4]
교육
실레지아대학교
실레지아대학교는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실롱스크주의 주도(州都)인 카토비체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1968년 설립된 이 대학교는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시에 업그레이드해 대응하고 있다. 다양한 학부에서 고등교육과 연구시설을 제공하며, 학사 · 석사 · 박사과정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박사후 과정과 지속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카토비체, 소스노비체, 치에신, 호주프 등 네 곳에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시설은 메인 캠퍼스인 카토비체에 있다. 카토비체는 광산도시이자 공업도시로 인근에 라바강이 흐르며, 폴란드 제2의 도시인 크라코프에서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실레지아대학교는 전 세계의 여러 대학 및 기관과 600건 이상의 양자협약을 체결했다. 이 대학이 협력하는 대학들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주립대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 캐나다 앨버타대, 중국 베이징외국어대, 일본 도쿄외국어대 등이다.
유럽연합(EU)의 에라스무스+(Erasmus+)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와 핀란드 헬싱키대, 체코 프라하의 찰스대, 영국 버밍햄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이탈리아 볼로냐대 · 사피엔자대 · 로마대 · 베로나대, 포르투갈 리스본대, 스웨덴 스톡홀름대, 노르웨이 오슬로대, 프랑스 파리소르본대, 스위스 취리히대,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등과 교환학점제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대학협회(EUA), 중유럽대학연구교환프로그램(CEEPUS), 유럽물리학교육네트워크(EUPEN), 유럽법학협회(ELFA), 유럽사회사업학과협회(EASSW), 유럽대학정보시스템기구(EUNIS), 유럽원자력연구기구(CERN), 유럽화학테마네트워크(ECTN) 등 다양한 유럽 기관의 회원이다.
이 대학교는 대학평가기관 QS의 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1201-1400위권에 들었으며, 신흥유럽 ・ 중앙아시아(EECA) 대학 중 92위를 기록했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는 세계 1407위, 유럽 대학 중 516위, 폴란드 대학 가운데 21위로 각각 평가됐다.[5]
카토비체
카토비체는 폴란드 남부 실롱스키에주의 주도(州都)로 지하자원이 풍부한 상(上)실레지아 지역에 위치한다. 석탄과 아연 · 납 등을 생산하는 광산도시이자 공업도시이다. 역사적으로 폴란드, 보헤미아, 프로이센, 독일의 지배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영토에 귀속되었다.
카토비체 인근에는 라바강이 흐른다. 동쪽으로 70km 거리에 폴란드 제2의 도시인 크라쿠프가 있고 동남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아우슈비츠(폴란드어 오슈비엥침)수용소 박물관이 있다. 카토비체는 실레지아 고원의 일부인 카토비체 고원 내 석탄분지에 자리 잡은 탓에 지하자원을 탐낸 주변 각국의 영유권 다툼에 휘말려왔다. 중세에는 폴란드 최초의 왕조인 피아스트 왕조의 영토였다가 1327년 보헤미아 왕국의 지배하로 넘어갔다. 1598년에는 다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역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카토비체’라는 지명이 공식 기록에 등장한다. 1742년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 왕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1740~1748)을 틈타 카토비체를 포함한 실레지아 지역 대부분을 합병했다. 실레지아를 놓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벌인 실레지아 전쟁은 세 차례 치러졌으나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났고, 오스트리아는 영토를 되찾지 못했다.
카토비체는 프로이센 왕국 실레지아주 소속 도시이던 1865년에 도시 인증을 획득했다. 1871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독일제국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풍부한 지하자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카토비체는 공업도시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독일제국의 카토비체 지배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면서 종식되었다.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카토비체는 다시 나치 독일의 제3제국 치하에 들어갔다. 카토비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폴란드 영토로 돌아왔다. 이후 폴란드 공산 정권하에서 카토비체는 탄광 · 공업도시로 한층 성장했다. 그러나 생산량 증대에만 몰두한 나머지 공기 · 토양 · 물 오염이 심각해졌다. 현재도 카토비체와 인근 크라쿠프는 공해가 심한 지역에 속한다. 소련의 위성국가 시절이던 1953년~1956년에는 소련 독재자 스탈린을 기린다는 의미로 도시 이름을 스탈리노그루드로 바꾸기도 했다.
폴란드에서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던 1981년 12월에는 카토비체의 부예크 탄광 광부들이 공산정권에 반대해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군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9명이 숨지고 21명이 부상했다.
1989년 폴란드공화국으로 바뀐 후 카토비체는 1999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실롱스키에주의 주도(州都)로 지정되었다. 카토비체는 중부 유럽 도로 · 철도의 요충지 중 하나이며 카토비체 국제공항을 보유하고 있다. [6]
지도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
각주
- ↑ 〈실롱스크주〉, 《위키백과》
- ↑ 〈실롱스키에〉, 《나무위키》
- ↑ 〈두산백과: 실롱스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 ↑ 〈두산백과: 카토비체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 〈세계의 대학: 실레지아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카토비체〉,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실롱스크주〉, 《위키백과》
- 〈실롱스키에〉, 《나무위키》
- 〈두산백과: 실롱스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카토비체국제공항〉, 《네이버 지식백과》
- 〈세계의 대학: 실레지아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카토비체〉,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동유럽 같이 보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