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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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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4월 23일 (일) 21: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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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자치시(特別自治市)는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이다. 2009년 4월 21일 국회 행정 안전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법적 지위를 '정부 직할의 특별자치시'로 확정하고, 국가위임사무도 원칙적으로 특별자치시에 위임하기로 합의하였다. 2012년 7월 1일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가 현재 대한민국의 유일한 특별자치시이다.[1]

개요

2008년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에 따라 연기군 지역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논쟁이 불붙었다. 국방의 기능만을 담당하던 계룡시와 달리 연기군 지역은 내부 민정을 담당하는 행정기관 거의 전부가 내려가게 되었기 때문에 일부 기능만 넘어가 만들어진 과천시처럼 연기군 지역을 충청남도 산하의 시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격이 안 맞는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회는 제주특별자치도처럼 연기군 지역을 광역자치단체로 만들어서 승격시키기로 결정하고, 지방자치법 제2조 1항을 개정하여 광역자치단체 형태를 신설하는데, 이게 바로 광역자치단체의 새로운 형태인 특별자치시이다. 광역시로 만들기에는 인구나 도시의 규모가 초라하다 보니 자치 시를 도 산하에서 특별히 분리한다는 뜻에서 '특별자치시'가 된 것이다.

역사

1977년, 박정희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산하 중화학공업 추진 위원회 실무기획단이 2년 동안 150여 명의 국내외 전문 인력을 투입해서 만든 이른바 '백지계획'의 보고서에는 수도 이전 계획의 기조와 기본 이념, 건설 목표, 기본 방향 등과 외국의 신수도 건설 사례가 담겨 있었는데, 수도 이전 대상지로 대전 인근의 공주, 연기, 논산, 천안, 옥천, 금산 등으로 후보지를 압축한 후 최종적으로 공주군 장기면(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을 선정하였다.

새 수도의 모형으로는 격자형 도로망을 주축으로 한 계획형 도시와 중앙광장에 행정, 업무, 문화, 예술 기능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주거지역을 배치한 동심원형 도시를 계획하였고, 각론으로 수도의 도시기반 시설, 교 통체계, 주택 건설, 상수도 시설 등에 대한 하부계획 보고서가 20여 권 있다고 한다.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였던 노무현이 2002년 민주당 중앙 선거대책 위원회 출범식에서 충청권으로 청와대 이전 정책을 공약하였다. 수도 이전지로 대전을 염두에 두고,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 문제점의 근본적인 해소와 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며,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이동하여 배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은 2003년 4월에 신행정수도 건설 추진기획단·지원단을 발족시켰다. 7월 신행정 수도특별 조치법(안) 입법 예고하였고, 12월 신행정 수도특별 조치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가결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는 판단을 내리며, 수도 이전은 법률 제정이 아닌 헌법 개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일부 행정 부처만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정부는 2006년 건설교통부 외청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설립하였다. 이후 12월에는 국민 공모를 통해 행정중심 복합도시 명칭을 세종으로 확정하였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듬해인 2009년에 대통령 이명박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의 적당한 타협은 없다'라며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국무총리 정운찬은 내정 당시 '원안대로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는 '세종시는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원안대로 정상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권 내에서도 이명박 정부와 충돌하였다.

2009년 12월에는 이명박의 행정 수도 건설 재검토에 반발하여 충청남도지사였던 이완구가 사퇴하였다. 2010년 1월 이명박 정부는 행정부처 이전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세종특별자치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 중심의 경제 도시로 전환한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당과 한나라당 친박계 및 충청계는 수정안에 반발하며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였고, 같은 해 6월 치러진 제5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충청 지역에서 참패함으로써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은 결국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였다. 당시 세종시의 인구는 10만 7백 명이었고, 행정동은 1개(한솔동)였다. [2]

특징

특별자치시는 특별자치도와 달리 지방자치법상 기초자치단체인 군과 자치구를 둘 수 있었다. 구 지방자치법 제3조에서는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 특별자치도는 정부의 직할(直轄)로 두고, 시는 도의 관할 구역 안에, 군은 광역시, 특별자치시나 도의 관할 구역 안에 두며, 자치구는 특별시와 광역시, 특별자치시의 관할 구역 안에 둔다고 되어있다.

지방자치법 제3조에서는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 도, 특별자치도는 정부의 직할(直轄)로 두고, 시는 도의 관할 구역 안에, 군은 광역시나 도의 관할 구역 안에 두며, 자치구는 특별시와 광역시의 관할 구역 안에 둔다고 되어있다.

다만 세종특별자치시는 광역자치단체의 명색에 걸맞지 않게 2020년 11월 기준 인구가 35만 명을 넘는 수준에 불과하는 중소규모 지역으로 하위에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상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자치구나 자치군을 설치할 수 없기에 단층형 광역자치단체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제6조에서는 세종특별자치시의 관할구역에는 지방자치법 제2조 제1항 제2호의 지방자치단체를 두지 아니한다고 되어있다.

2022년 1월 13일부터 시행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령에서는 특별자치시에 구나 군을 둘 수 있는 조항이 삭제되었다.[3]

편견

특별자치시는 '특별'과 '자치'라는 타이틀 때문에 "기존의 광역시를 특별자치시로 격상시키자"는 등 '특별자치시'의 타이틀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별자치시는 사실상 일반 자치시의 규모보다도 못한 연기군(+일부 인접 편입지역)을 광역자치단체로 격상시키면서 신설된 제도이며, 광역시나 특별자치시는 명칭만 다르지 실질적으로는 같은 제도나 다름없다. 기존 광역시에 비해 제도적으로 자치에 관한 실질적 특례가 따로 더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 비슷한 이름의 특별자치도는 상당한 부분에서 권한을 넓게 가지는데 특별자치시는 그런 권한까지 주어지진 않았다. 고로 광역시와 등급은 같지만 시민들이 인식하는 격은 광역시보다 약간 낮은 셈이다. '특별시'여서가 아니라 '서울'이기 때문에 수도 특례 지위를 가진 서울특별시와 마찬가지로 세종특별자치시 또한 '특별자치시'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종'이기 때문에 행정수도로서의 특례 지위를 가지는 것이다.

특별시 혹은 특별자치시는 자질구레한 수식어로 점철된 억지나 다름없는 것이며 광역시나 특별시나 특별자치시나 기능적 차이는 거의 없는데도 비효율적으로 세분화하여 도시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지나치게 권위주의적, 구시대적이라는 이유로 폐지하고 특별시, 특별자치시를 모두 광역시로 단일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특별시 폐지론에서 자세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세종특별자치시밖에 없지만 특별자치시가 더 생겨날 가능성은 지방자치법상 열려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지방자치법에 따른 특별자치시 개념과 세종시 특별법에 따른 세종특별자치시를 다르게 취급하고 있기에 세종특별자치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특례시가 광역시 승격을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추진해볼 만하다는 여론도 일부 있다.

문제점

2010년 1월 11일, 세종시를 행정복합도시 대신 교육과학 중심도시로 추진한다는 개정안이 발표되자 당시 여당 한나라당의 친이계는 호응했지만, 친박계와 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진보 정당 등은 반발했다. 또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 양상도 일어났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사실상 패하면서 추진동력을 잃고 결국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까지 갔으나 6월 29일 본 회의에서 야당+친박의 결집으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며 원안인 행정복합도시로 개발하는 방안이 쐐기를 박았다. 이로써 세종시에 관한 논란과 갈등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세종시 아파트 업체 입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교육과학 중점도시로 계획을 변경하려 하자 대기업들이 일제히 아파트 사업권을 반납했다. 때문에 공사가 일찍 시작된 첫마을 이외에 2013~14년 입주 아파트들은 대우 푸르지오와 포스코를 제외하고는 중견, 혹은 중소기업이 지었는데 이 중 하청 관계가 불결한 일부 소규모 기업에서 각종 건축 비리와 부실공사가 속출했다. 대표적으로 모아 미래도 아파트의 경우에는 철근 350t, 설계량의 3분의 2를 빼먹었다. 보수를 통한 해결은 되었지만, 전 세대 분양을 취소하고 재분양에 들어갔다. 불안감 때문에 앞으로도 분양에는 난항을 겪을 듯하다. 정권교체로 인한 일관성 없는 행정정책이 빚은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세종시의 경우 대부분의 건물이 20층 이상이며, 3~40층 이상의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점이 뿜어져 나오고 있고,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내재된 문제점도 수두룩하다. 비단 세종시만의 문제점은 아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설계 사이즈 때문에 파급력도 메가톤급이다.[4]

지도

동영상

각주

  1. 특별자치시〉, 《위키백과》
  2. 세종특별자치시〉, 《위키백과》
  3. 특별자치시〉, 《나무위키》
  4. 세종특별자치시/문제점〉, 《나무위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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