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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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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청

영등포구(永登浦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남서부에 있는 구이다. 서쪽으로는 강서구양천구, 남서쪽으로는 구로구, 동쪽으로는 동작구, 북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마포구, 용산구와 접해있다. 한강안양천 그리고 안양천과 도림천, 대방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평지 형태를 취하고 있다.[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의 남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52´ 38˝~126˚ 57´ 10˝,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28´ 55˝~38˚ 33´ 16˝에 위치한다. 동서 간 거리는 6.48㎞, 남북 간 거리는 7.91㎞이며, 면적은 24.36㎢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약 4%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0번째로 크다.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동(34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는 2020년을 기준하여 40만 7367명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4.1%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2번째로 많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목련,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청둥오리이다. 구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영롱한 아침이슬을 모티브로 하여 늘 맑고 활기차게 미래로 발전해 나아가는 영등포를 역동적인 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영롱이'이다. 구청 소재지는 당산동 3가이다.

서울 서남권의 중심지로서, 서울과 수원, 안양, 부천수도권 서남부 지역을 연결하는 수도권 서남부 최대 거점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영등포한강 이남 지역 중에서 처음으로 서울에 편입된 지역이다. 특히 영등포역은 도심과 외곽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예산 규모는 약 2000억 원 정도이다.

영등포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조선 후기 정조 13년(1789년)에 실시, 1790년경 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호구조사 자료집인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부터이다. 서울 강남의 이전 명칭인 영동(永東) 역시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1968년 여의도 신시가지 섬 조성을 선두로 1970년대에 들어서 서울 강남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영등포구에서 1973년 7월 1일 관악구, 1977년 9월 7일 강서구, 1980년 4월 1일 구로구가 분리되었다. 이후 1975년 10월 1일 관악구에서 동작구와 강남구(일부)가 다시 분리되었으며, 1988년 4월 1일 강남구와 강서구에서 다시 서초구와 양천구가, 1995년 4월 1일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분리되면서 영등포구는 서초구 · 동작구 · 관악구 · 강서구] · 양천구 · 구로구 · 금천구 7개 구의 모체로서, 해방 후 서울에서 지역분할이 가장 많았던 구였다.[2][3]

자연환경[편집]

한강안양천의 합류점에 위치하여 범람원 충적지가 발달하였으며, 성산대교 남단 부근에 있는 나지막한 쥐산(50m)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발고도 10m 이하의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북쪽에 한강 본류가 마포구와 경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가고, 서쪽에는 안양천이 양천구·강서구와 경계를 이루며 북류하여 한강에 합류하며, 남서부에서는 도림천이 구로구와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문래동에서 안양천에 합류하는 등 동작구와 경계를 이루는 동남부를 제외하고는 하천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다. 한강변에는 여의도·선유도·밤섬 등의 하중도(河中島)가 형성되었으며, 여의도와 선유도는 육지와 연결된다. 여의도는 영등포구 면적의 약 12%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며, 본토와의 사이에 샛강이 흐른다. 지질은 선캄브리아 시대에 형성된 변성암류를 신생대 제4기의 충적층이 부정합으로 덮고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며, 해발고도 30m 정도의 낮은 기복을 보이는 동남부 신길동 지역에 선캄브리아 시대의 화강암질 편마암이 분포한다.

한강변에는 여의도·밤섬과 같이 화강편마암 잔구인 하중도가 발달해 있고, 여의도와 영등포구 충적지 사이의 샛강은 자연 생태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양천은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목감천과 대림천을 합류하여 흐르면서 구의 서쪽 배후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대림천은 일명 마장 천이라고도 하는데 관악산의 지봉인 삼성산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관악구·동작구를 지나 영등포구에서 안양천과 합류된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바탕으로 한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도시기후를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12.1℃, 1월 평균기온은 -2.5℃, 8월 평균기온은 25·1℃, 연 강수량은 1,358.4㎜이다.

역사[편집]

영등포구 지역에서 선사 문화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한강변의 암사동 선사주거지 등을 통하여 볼 때 한강변의 영등포구 일대에도 선사시대 인류들이 살았을 개연성은 높다. 영등포구를 포함한 한강 유역을 무대로 최초의 정치세력이 등장한 것은 진국(辰國)과 삼한 사회의 마한(馬韓) 그리고 초기 백제였다. 서기전 1세기 말 백제국이 마한을 정복하고 초기 고대국가인 백제(百濟)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강 유역의 경제성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생산 활동과 인구 증가를 이루었고 보다 큰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475년 한강 유역은 고구려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남평양이 설치되었는데, 영등포 지역은 잉벌노 현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553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래 신라 삼국통일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신라는 전국에 9주를 설치했고 영등포구를 포함한 서울 지방은 한산주(漢山州)에 편입되었다. 한산주는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서울 지방에 한양군(漢陽郡)을 설치하면서 한주(漢州)로 개칭되었으며, 영등포 지역은 율목 군과 곡양현 지역이 되었다. 후 삼국시대에는 왕건의 활동으로 태봉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918년 왕건이 국왕에 추대되어 고려왕조를 개창함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은 고려에 편입되었으며, 940년(태조 23)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편성하고 주군현를 개칭함에 따라 한양군은 양주(楊州)로, 한주는 광주(廣州)로 편제되었으며, 영등포 지역에 속했던 곡양 현은 금주(衿州)가 되었다. 995년(성종 14) 도제(道制)가 실시되어 금주는 관내도(關內道)에 속하였고 단련사(團練使)가 배치되었으며, 시흥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금주는 양광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1069년(문종 23)에 신경기(新京畿)에 편입되었다. 1172년(명종 2) 금주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지방행정관이 파견되기에 이르렀으며, 1390년(공양왕 2)에 경기좌도에 속하여 과전과 공신전의 반급 지역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영등포 지역을 포함한 금주는 금천현(衿川縣)이 되었다가 금과현(衿果縣), 금양현(衿陽縣) 등으로 일시 개편되었고, 1416년 다시 금천으로 복구되었다. 1795년(정조 19) 왕의 능행길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어 시흥 현으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 시흥 군으로 개편되었다. 영등포 지역은 금천현·시흥 현·시흥군의 상북면과 하북면에 해당되었다. 1789년의 호구조사에 의하면 상북면은 원지목리, 구로리, 사촌리, 도야미리, 양평리, 당산리, 선유리, 간포리로 이루어져 320호에 인구는 1,205명이었으며, 하북면은 우와피리, 번대방리, 방하곶리, 영등포리, 신길리, 신고사리로 이루어져 209호에 인구는 731명이었다. 그리고 양평동·양화동의 지명과 관련하여 영등포구 일대는 양화나루를 건너 김포·인천지방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영등포 지역은 1911년에 하북면 영등포리, 신길리, 번대방리와 상북면 도림리로 이루어졌으며, 1914년에 시흥·과천·안산군이 통합된 시흥군의 동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7년 영등포리·당산리·양평리 지역은 영등포면이 되었고, 그 외 지역은 북면으로 남았다. 1931년 다시 영등포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6년 경성부의 구역 확장 때 영등포읍과 더불어 북면·동면의 일부 지역과 함께 경성부에 편입되어 영등포 출장소의 관할에 속하였다. 1943년 구제 실시에 따라 영등포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영등포구는 경인선과 경부선의 분기점에 위치하여 원료와 제품의 수송이 편리해짐에 따라 공업지역이 되었다. 1937년에 실시된 영등포 구획정리사업에 따라 공장 용지가 확보되어 이미 들어선 조선 피혁㈜, 용산 공작소㈜ 등 군수 산업체들이 들어섰고, 경성 방적·종연 방적·동양 방적 등의 방적 공장과 기타 염색·제분·요업·자기·기와·토관 공장들이 대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수도가 들어오고, 화장장과 공동묘지, 공설시장 등이 설치되고, 1937년에는 노량진에서 영등포까지 전차가 연장되었다. 1945년 6월 말 영등포구의 인구는 11만 1102명이었다.

영등포구는 1949년에 시흥군 동면(東面)의 3개 리, 1963년 김포군 양동면(陽東面)과 부천군 오정면(吾丁面)의 2개 리, 소사읍(素砂邑)의 7개 리, 시흥 군 신동면(新東面)·동면의 5개 리를 각각 편입하여 한강 이남의 중서부를 차지하는 큰 구가 되었다. 그 후 1973년에 구의 동부를 관악구로, 1977년에 북서부를 강서구로, 1980년에 남서부를 구로구로 각각 분구함으로써 종래 관할 지역의 중심부만 남게 되어 현재의 관할범위로 축소되었다.

영등포구는 한강 이남 지역 중에서는 가장 먼저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시가지화한 곳으로 공업지대로 입지한 전통이 계승되어 많은 공장이 입지해 있으며, 특히 교통이 발달하고 인구가 집중된 부도심을 이루어 일찍이 공설시장이 설치된 이래 일상 생필품의 공급지로 기능하였다. 나아가 시가지의 발전과 함께 상가 건물이 번창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대형 백화점과 쇼핑센터 등이 건립되어 상품 유통의 중심 기능을 하고 있다. 한편 주거지로는 각광받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여의도동과 당산동 등지에 형성된 아파트 단지의 형성으로 고급 주택지를 이루었으며, 신길동과 대림동이 주택지로 개발되었다.

특히 한강의 하중도인 여의도를 개발하여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언론기관·금융기관·사무실용 빌딩 등이 잇달아 건설되어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특히 우리나라 언론과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05년을 전후하여 재래시장 개발과 영등포 도심 뉴타운과 신길 뉴타운 개발이 진행되어 앞으로 서울 부도심의 중심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2008년 영등포 1동과 신길 2동이 영등포 본동으로, 영등포 2~3동이 영등포동으로, 도림 1~2동이 도림동으로, 문래 1~2동이 문래동으로 합동되어 18개 행정동으로 정비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동(당산 1~2동·대림 1~3동·도림동·문래동·신길 1동·신길 3~7동·양평 1~2동·여의동·영등포동·영등포본동) 34개 법정동(당산동·당산동 1~6가·대림동·도림동·문래동 1~6가·신길동·양평동·양평동 1~6가·양화동·여의도동·영등포동·영등포동 1~8가)으로 이루어져 있다.[4]

산업[편집]

금융·보험업과 사업서비스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며, 여의도에 한국거래소(KRX)를 비롯하여 은행·증권·보험사들이 집중하여 '한국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금융 중심가로 자리 잡았다. 2018년을 기준하여 지역 내 총생산(GRDP)은 34조 2999억 원으로 서울시 전체 GRDP의 8.1%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강남구·중구·서초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금융·보험업(10조 3889억 원)이 약 40%를 차지하고, 이 밖에 사업서비스업(16.0%), 도소매업(14.0%), 정보통신업(10.5%), 부동산업( 6.1%) 등의 순이다. 금융·보험업은 서울시에서 중구에 이어 2번째, 사업서비스업은 강남구·서초구·중구에 이어 4번째로 비중이 크다.

사업체별로는 도소매업체(1만 1068개)가 약 26%로 가장 비중이 크고, 이 밖에 숙박·음식점 업체(16.2%), 운수업체(9.8%), 제조업체(9.3%),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7.2%) 등의 순이다. 전체 사업체의 절반가량이 여의동(18.9%)·영등포동(14.4%)·문래동(12.4%)에 분포하며, 개인 사업체가 약 71%,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약 76%를 차지한다. 사업체 종사자는 36만 7557명으로 서울시 전체 종사자의 7%를 웃돌아 강남구·서초구·중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며, 사업시설관리·사업 지원 서비스업 종사자(15.7%)가 가장 많다.

제조업은 1960년대에 구로공단(지금의 구로구·금천구 서울디지털산업단지), 1970년대에 영등포 기계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경제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분구와 공업지구의 수도권 외곽 이전 등으로 예전에 비하여 약화되었으나, 서울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작지 않다. 2018년을 기준하여 제조업체 수(3957개)는 서울시 전체 제조업체의 6.7%를 차지하여 중구·성동구·종로구 다음으로 많으며, 업종별로는 금속가공품(32%), 기타 기계·장비(15%), 인쇄·기록 매체 복제(10%)의 비중이 크다. 제조업 부가가치(7704억 원)는 서울시 제조업 총 부가가치의 4.7%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6번째로 비중이 크다.

전통시장은 영등포동 5가에 영등포전통시장·삼구 시장을 비롯하여 영등포동 6가에 영등포청과시장, 대림동에 대림 중앙 시장·우리 시장, 신길동에 대신 시장·영진시장, 양평동 4가에 양평시장, 문래동 3가에 영일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이 밖에 유통업체로는 백화점 2개소와 대형 할인점 5개소, 전문점 2개소, 쇼핑센터 3개소, 복합 쇼핑몰 1개소, 기타 대규모 점포 15개소 등이 있다.

교통[편집]

양화대교·마포대교·성산대교·원효대교·서강대교·당산 철교와 2021년에 개통한 월드컵 대교 등이 한강을 가로질러 영등포구와 강북 지역을 연결한다. 도로 교통은 도시 고속화도로인 올림픽 대로가 강서구 행주대교를 기점으로 영등포구를 거쳐 강동구 강동대교까지 이어지고, 서부간선도로가 영등포구 성산대교 남단을 기점으로 금천구 소 하 분기점까지 이어진다. 성산대교 남단에서 올림픽대로와 서부간선도로가 접속한다. 이 밖에 양천구 신월동에서 영등포구를 거쳐 마포구 신정동까지 이어지는 국회 대로와 여의도를 동서로 잇는 여의대로를 비롯하여 시흥 대로(금천구 시흥동~대림동)·경인로(인천시 미추홀구~여의도동)·가마산로(경기도 광명시~신길동)·노들로(양화동~동작구 본동)·디지털 단지로(광명시 철산동~대림동)·선유로(문래동~양평동)·영등포로(신길동~양천구 목동)와 국제금융로·여의나루로·여의동로·여의서로·버드나루로 등이 영등포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1905년에 개통한 경부선이 서울역을 기점으로 영등포역을 거쳐 부산역까지 운행하며, 영등포역에서 KTX 일부 열차를 비롯하여 ITX-새마을호와 무궁화호 전 열차가 정차한다. 지하철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소요산역을 기점으로 영등포구의 대방역~신길역~영등포역을 거쳐 인천시(인천역)·충남 아산시(신창역)·경기도 오산시(서동탄역)·광명시(광명역)까지 운행하고, 서울 주요 지역을 순환하는 2호선이 영등포구의 문래역~영등포구청 역~당산역을 경유한다. 방화역을 기점으로 하는 5호선이 영등포구의 영등포구청 역~영등포시장역~신길역~여의도역~여의나루역을 거쳐 하남 검단산 역·마천역까지 두 갈래로 운행하고, 장암역~석남역을 운행하는 7호선이 영등포구의 보라매역~신풍역~대림역을 경유한다. 이 밖에 9호선이 개화역을 기점으로 영등포구의 선유도역~당산역~국회의사당역~여의도역~샛강역을 거쳐 중앙보훈병원역까지 운행한다. 신길역에서 1호선과 5호선이, 영등포구청 역에서 2호선과 5호선이, 당산역에서 2호선과 9호선이 각각 접속한다.

관광[편집]

양화대교 아래 선유도의 정수장 구조물을 재활용하여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선유도공원은 수생식물원·시간 의정원 등 다양한 테마 정원과 산책로, 한강과 탁 트인 서울을 조망하는 전망대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여의도 중앙부의 여의도공원 또한 약 23만㎡의 면적에 한국 전통의 숲·잔디마당·문화의 마당·자연 생태의 숲 등 4개의 공간과 산책로·자전거도로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이다. 여의도 샛강에는 토종 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여의도샛강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반대편 한강 둔치의 여의도 한강공원에는 물빛광장·수상 무대·수상 분수·빛의 폭포·피아노 물길·요트 마리나 와 한강유람선(이랜드 크루즈) 선착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대형 실내 수족관에서 다양한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수중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아쿠아 플라넷 63과 해발 264m의 전망대로 유명한 63스퀘어(63빌딩),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사 KBS, 백화점·호텔·멀티플렉스 영화관·대형 마트·대형서점 등 상업∙업무∙문화∙레저를 아우르는 복합 쇼핑몰 타임스퀘어, 영등포구 서쪽 경계를 따라 광명시까지 이어지는 안양천 벚꽃길, 중국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대림동 차이나타운 등의 명소가 있다. 걷기 명소로는 도림천과 안양천을 따라 걷는 8.2㎞ 구간의 영등포 수변 둘레길, 강서구와 경계부의 염창교를 기점으로 한강을 따라 걷는 11.3㎞ 구간의 여의도 생태순환길 등 2개 코스의 '영등포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교육[편집]

전통 교육기관은 조선 시대에 경기도 시흥군에 속하여 시흥향교가 영등포 지역의 공공 교육기관 역할을 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은 1905년에 일본인 학교로 개교한 영등포 심상 고등소학교를 모태로 하여 1945년 서울 영등포 국민학교가 재개교한 뒤 지금의 서울 영등포 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이 학교에서 지금의 서울 도신초등학교·서울 문래초등학교 등이 분리되었다. 1915년에는 영등포 공립 보통학교가 개교한 뒤 경성 우신 공립 심상소학교·경성 우신 공립 국민학교 등의 변천을 거쳐 지금의 서울 우신 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이 학교에서 지금의 서울 대방초등학교·서울 도림초등학교 등이 분리되었다. 이 밖에 1943년에 설립된 경성 당산 공립국민학교가 지금의 서울 당산 초등학교로 이어지고, 이 학교에서 서울 영중 초등학교·서울 당중초등학교·서울 당서초등학교·서울 선유초등학교 등이 분리되었다.

중등교육기관은 1907년 지금의 중구 장교동에서 개교한 경성 장훈학교를 모태로 하는 장훈중학교가 1962년 신길동으로 이전한 뒤 1964년 장훈고등학교가 설립되어 지금에 이르며, 장훈중학교는 2000년에 폐교되었다. 이밖에 1950년 영등포여자중학교(지금의 영원중학교), 1953년 영등포여자고등학교, 1969년 당산중학교, 1973년 여의도중·고등학교, 1974년 관악고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2019년을 기준 하여 교육기관은 고등학교 9개교, 중학교 11개교, 초등학교 23개교 등이 있다. 학생 수는 2만 9600여 명으로 서울시 전체 학생의 약 1.5%를 차지한다

문화재[편집]

지정 문화재로는 서울유형문화재 2점(조선 이흠례 묘지·법화영험전)과 서울무형문화재 1점(살풀이춤)이 있다. 이 밖에 1936년에 건립되어 경성방직주식회사의 사무동으로 사용되었던 '서울 구 경성방직 사무동'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문서' 등 4점이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영등포구〉, 《위키백과》
  2. 영등포구〉, 《네이버 지식백과》
  3. 영등포구〉, 《나무위키》
  4. 영등포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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