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문경시(聞慶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북서부에 있는 시이다. 북쪽으로 충청북도 단양군·제천시·충주시, 동쪽으로 예천군, 남쪽으로 상주시, 서쪽으로 충청북도 괴산군과 접한다.[1]
개요[편집]
동경 127°52′∼128°22′, 북위 36°31′∼36°52′에 위치한다. 면적은 911.61㎢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69,524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7개 면, 5개 행정동(11개 법정동), 218개 행정리(119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문경시 모전동에 있다. 시조는 매, 시목은 박달나무, 시화는 철쭉이다.
과거 문경군과 점촌시가 합쳐진 도농복합시로, 문경시의 시내동 구역은 과거 점촌시의 행정구역이다. 시청이 소재하는 점촌(店村)을 중심으로 도심을 형성한다. 과거 석탄의 도시로 이름이 높았으나, 최근에는 석탄 산업의 사양화와 함께 발전이 다소 정체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로는 문경새재 등을 통한 관광 산업에 의존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문경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문경 새재가 떠오르는데 이 관문은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영남을 잇는 영남대로의 주요 관문이었고 그만큼 문경은 교통의 요지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경부고속도로나 경부선 등 각종 도로, 철도망이 생기면서 이러한 교통 기능을 상실했지만 대신 영화와 사극 촬영지, 트레킹 코스 등으로 각광받고 있다.
경제개발 시기에는 석탄개발이 활발한 곳이었으며 이때는 여느 광산 도시와 마찬가지로 번성하던 곳이었으나 석탄사업의 몰락과 함께 크게 쇠락한 곳으로 경상북도 유일의 폐광지역진흥지구이다. 석탄이 많이 나던 곳답게 지질이 복잡하다.[2][3]
자연환경[편집]
서쪽과 북쪽에 태백산맥에서 흘러나온 소백산맥이 뻗어 내리며 북쪽의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의 태백산맥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의 중앙부에 속하는 험준한 지역으로, 동북부는 험산준령(險山峻嶺)이 둘러 있고,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분지상(盆地狀)으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동남부는 석회암지역으로 카르스트(Karst)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산계(山系)는 일반적으로 산세가 험준하고 고도가 높아서 대략 700m 이상의 기복차를 나타낸다. 시의 중앙부 남쪽 오정산(烏井山, 811m)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부운령(富雲嶺, 535m) · 단산(檀山, 956m) · 조항령(鳥項嶺, 673m) · 운달산(雲達山, 1,097m) · 마전령(馬轉嶺, 946m) · 대미산(大美山, 1,115m)이 있고, 대미산에서 동쪽으로 황정산(黃庭山, 1,077m), 황정산 남쪽으로 공덕산(功德山, 913m) · 천주봉(天柱峰, 845m)이 있으며, 이들 산령(山嶺)이 형성하고 있는 산맥은 북쪽으로 이어진다.
시의 북서부에는 대미산(大美山, 1,115m)에서 시작해 포암산(布巖山, 962m) · 주흘산(主屹山, 1,106m) · 마패봉(馬牌峰, 925m) · 조령산(鳥嶺山, 1,017m) · 이화령(梨花嶺) · 갈정산(葛霆山, 991m) · 백화산(白華山, 1,064m) · 희양산(曦陽山, 998m)이 있다.
남서부에는 장성봉(長城峰, 915m) · 대야산(大耶山, 931m) · 둔덕산(屯德山, 969m) · 조항산(鳥項山, 951m) · 청화산(靑華山, 970m)이 있다.
운달산과 공덕산에서 시작되는 대하천(大下川)과 황정산에서 발원한 동로천(東魯川)이 산북면 대상리에서 금천(錦川)에 합류해 산북면 · 산양면을 관류해 영순면 달지리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남서부 산지에서 발원한 양산천과 농암천은 가은천(加恩川)으로 흘러든다. 조령에서 시작되는 조령천(鳥嶺川)과 대미산에서 시작되는 신북천(身北川)은 문경읍 마원리에서 소야천(蘇耶川)에 흘러들고 마성면의 중앙부를 관류해 진남교(鎭南橋)에서 가은천과 합류해 영강(潁江)을 이룬다.
영순면과 산양면 지역에 들어서면, 주변에 띠모양의 길고 좁은 약간의 평야 지대를 이루고 문경 도심지 남쪽에서 이안천(利安川)과 합류해 영순면 남쪽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이 영강은 관산(觀山) · 견탄(犬灘) · 주평(舟坪) · 장평(長坪) · 영순(泳順) 들판의 농업용수로 공급되었다. 또 2018년 공장 폐쇄 전까지 문경시멘트공장의 공업용수로 공급되었다. 문경시민의 식수로도 이용되고 있다.
지질은 주로 화강암질 편마암과 이를 경사부정합(傾斜不整合)으로 덮고 있는 조선계(朝鮮系) 대석회암통이 발달되고 있으며, 여기에 관입된 화성암층에는 각종 금속 및 비금속 광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동남부의 평안계와 대동계 지층에는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
높고 험한 산세와 내륙에 위치한 까닭으로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해 한서의 차가 큰 편이며, 연평균기온 12.0℃, 1월 평균기온 -2.0℃, 8월 평균기온 23.6℃이며, 연 강수량은 1,505.3㎜이다.[4]
역사[편집]
문경의 초기 역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산북면 · 호계면 등의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보아, 이 시기에는 인간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발전을 통해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소국(小國: 城邑國家)이 형성되었는데, 진한의 근기국(勤耆國: 지금의 산양면)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다.
근기국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156년(아달라왕 3) 신라에 의해 계립령로(鷄立嶺路: 문경새재 북쪽)가 개통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라 지배집단이 남하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을 통과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내물왕대 이후 신라가 비약적으로 팽창하면서 이 지역도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관문현(冠文縣, 또는 高思曷伊城, 冠縣: 지금의 문경읍), 가해현(加害縣: 지금의 가은읍), 호측현(虎側縣 또는 拜山城: 지금의 호계면) 등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시 이들은 각기 관산현(冠山縣) · 가선현(嘉善縣) · 호계현(虎溪縣) 등으로 개명되어 고령군(古寧郡: 지금의 상주시 함창읍)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이 때 산양면 일대는 가유현(嘉猷縣)으로 예천군에 속해 있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는 이 곳 가은현 출신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우자 이 지역은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으나, 뒤이은 후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왕건(王建)이 친히 근암성(近巖城: 지금의 산양면)을 함락시켰는데, 이 때 고사갈이성 성주(城主) 흥달(興達)이 귀부해 오자 크게 우대하였다. 이를 계기로 후백제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들이 고려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 고려의 지배체제에 들어가 관산현은 문희군(聞喜郡)으로, 가선현은 가은현(加恩縣)으로 개명되었다. 1018년(현종 9) 이들 지역은 모두 상주(尙州)의 속현으로 편입되었으며, 문희군은 뒷날 문경군으로 개명되었고, 산양현에는 감무가 설치되었으나 1180년(명종 10) 폐지되었다. 1390년(공양왕 2) 문경군에 감무가 설치되면서 가은현을 속현으로 하였다.
이후 조선 1413년(태종 13) 문경현에 현감이 설치되면서 상주 소속의 호계현이 내속하게 되었고, 8도체제가 정비되면서 신구(新舊) 경상도관찰사의 교대 장소인 교구정(交龜亭)이 이 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당시 문경현의 토지는 척박했으며, 풍속은 검솔(儉率)했다고 하며,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161호 2,564인이었다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으로 통하는 새재[鳥嶺]로 인해 적의 주력이 이 곳으로 진격해 왔는데, 이 때 이 곳의 관병(官兵)은 대구(大丘)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문경현감 신길원(申吉元)은 수십 명의 관병을 이끌고 현청을 수비하다가 패배해 적의 포로가 되었으나, 끝까지 항거하다가 순국하였다.
임진왜란 뒤에 새재가 국방상 요새가 됨으로 인해 이곳이 계속 중시되어서, 1708년(숙종 34) 조령산성(鳥嶺山城)이 축조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어 현감이 수성장(守城將)을 겸하다가 다음 해에 별장(別將)을 두었다.
1871년(고종 8) 이필제(李弼濟) · 정기현(鄭岐鉉) 등의 지도하에 민중항거가 일어나 지방관과 향리의 불법을 규탄했고, 1877년에는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시 다른 군현과는 달리 군이 되지 못했으나, 다음 해에 13도제가 실시되자 군으로 독립하였다.
1906년 동로면(東魯面)과 화장면(化莊面)을 예천군에 할양했고, 1914년 군면통폐합에 따라 산양면과 영순면(永順面)의 일부가 상주군에 편입되었다. 한편 1907년 이래 이 곳 유지들에 의해 신식학교가 설립되어 인재양성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일진회에 의해 만들어진 도천학교(道川學校)가 민폐를 많이 끼치자, 의병들이 이를 소각하기도 하였다.
또 항일의병투쟁도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팔도의병총대장 이인영(李麟榮) 및 의병대장 이강년(李康年) 등은 이 곳 출신이었다. 1919년 3 · 1운동 때에는 4월 13∼15일산북면 주민들이 갈평(葛平)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49년 문경군의 군청 소재지가 문경면 하리에서 호서남면의 점촌리로 이전해 오자 이 지역의 발전은 급속도화되었고 그 결과 1956년 호서남면(戶西南面)이 점촌읍으로 개칭, 승격한 이래 관할 행정구역의 개편이 있었고, 1973년 문경면과 가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점촌읍이 호계면 오암리의 일부를 편입해 시로 승격되자 시군이 분리되었으며, 이 시기를 전후해 석탄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자 지역의 경제력이 크게 저하되었다. 1986년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가 중앙동에 편입되었고 1994년 충현동을 점촌동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점촌시와 문경군이 통합되어 문경시가 되었으며 1996년 산북면 거산출장소와 동로면 수평출장소가 각각 폐지되었다. 2004년 관내 5개 동이었던 점촌동·중앙동·신흥동·신평동·모전동이 점촌 1~5동으로 바뀌었다.
현재 문경읍·가은읍을 비롯해 영순면·산양면·호계면·산북면·동로면·마성면·농암면과 점촌 1~5동 등 2읍 7면 5동의 행정구역을 이룬다.
산업[편집]
산악] 지역이 많아 임야는 약 703㎢이며 밭은 약 56㎢, 논은 약 66㎢이다. 농경지는 금천·조령천·영강 유역 등의 충적지에 주로 발달하였다.
농산물은 쌀·콩·감자·잡곡·잎담배·누에고치 외에 무·배추·사과 등을 생산한다. 전작지는 주로 하천 연안에 분포하며, 영순면·산양면 등지가 농업 중심지를 이룬다. 축산업으로는 한우, 젖소, 돼지, 산양, 오리, 닭 등을 사육한다. 문경의 특산물은 문경사과, 호산춘, 오이지, 칡즙, 문경한과, 빙어, 도자기, 포도, 한백주 등이 있다.
사업체 및 종사자는 도매 및 소매업이 가장 많고, 숙박 및 음식점업, 제조업, 운수업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석탄광산은 1990년을 전후하여 대부분 폐광된 반면, 도자기·생사·카바이드 공업이 활발하여 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광공업의 발달은 시 북부 및 가은읍에 상업을 발달시켰다. 산양·산북·동로·문경·마성 등지에 정기시장이 열린다. 문경시는 한강 이남의 석탄사업 중심도시로 발전하여 오다가,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현재는 그동안 광산개발로 훼손된 자연환경 등을 복원하고 폐광 지역에 관광 휴양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교통[편집]
문경은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 이전에는 교통망이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개통 이후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서울과의 거리가 거의 2시간으로 줄어들면서 접근성이 좋아져 서울 및 수도권 소재 기업, 대학의 시설을 많이 유치하고 있다. 또 수도권-충주-문경을 잇는 중부내륙 철도를 복선전철-일부 단선-로 건설 할 계획이어서, 완공시 경북선, 중부내륙선, 중부내륙고속국도가 교차하는 일대 교통의 요지가 될 것이다. 중부내륙 고속도로의 점촌 함창 나들목과 문경새재 나들목이 문경에 소재한다. 국도 제3호선과 제34호선이 문경을 관통하며 한국철도공사 경북선이 문경을 지나면서 영주와 김천, 충주를 연결한다. 예로부터 문경 새재는 '조령'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조선 시대 주요 간선축이었던 영남대로의 관문으로 이용되었다.
관광[편집]
쌍룡 계곡은 농암천 상류쪽 도장산 기슭 4㎞ 구간에 펼쳐진 계곡으로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용추에서 청용, 황용이 살았다 하여 쌍룡 계곡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용추계곡은 용추폭포와 월영대 등 유명한 명소를 포함하고 있는 계곡으로 가은읍 완장리에 위치하며,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소백산맥 고지에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채 깊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다. 선유동 계곡은 전국에서 선유동으로 이름붙여진 명승지 증 으뜸인 곳으로 하상에는 대리석을 깔아놓은 듯 하얀 암반이 펼쳐져 있고 아홉 구비로 나뉘어져 선유구곡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정취를 잘 간칙하고 있는 곳이다. 골짜기마다 한여름에도 손을 담그면 얼음덩어리를 띄워 놓은 듯 차가워서 냉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운달계곡은 수령 300년이 넘는 전나무 숲속이 조각품 마냥 운치를 더해주어 더욱 유명하다.
조령계곡은 백두대간의 조령산을 넘는 조령새재가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 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으며,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동학과 의병이 남긴 사담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봉암사 백운대계곡은 봉암사 내에 위치한 계곡으로 옥석대라고도 불리우며, 봉암사의 목탁 소리와 울창한 숲, 맑은 물이 어우러져 평온한 곳으로 금강산 막폭동에 버금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진남교반은 문경의 유명한 광산이었던 문경탄광을 끼고 있는 곳으로 마성면 신현리에 속한다. 이 곳은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고 하여 문경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경천호반은 낙동강 지류인 금천을 막아서 만든 전형적인 계곡형 저수지로 맑은 물과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며 댐이 조성된 이후 수량이 풍부하여 낚시터로도 각광받고 있다. 여기까지 언급한 총 8개의 명승지를 문경 8경이라 부른다.
문경시는 과거의 활발함을 잃어버린 폐광과 탄광촌에 새로운 체험관광지를 개발하여 주목받고 있다. 산악 지형을 이용한 사계절 썰매장, 계곡을 이용한 레프팅, 폐광 지역을 활용한 철로자전거 등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색있는 아이템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문경시는 사극 드라마 제작에 협조하여, 개발로 인해 오염되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들을 드라마 촬영지로 개발한 한편, 그 이후에도 인기 드라마 촬영지를 유지 · 관리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 촬영지로는 가은읍에 연개소문(SBS) 촬영지, 문경읍에 태조 왕건 · 제국의 아침 · 무인시대(KBS) 촬영지가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문경시가 개최하는 축제로는 전통차를 테마로 하여 관광객들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문경 한국 전통찻사발축제, 문경 지역의 명산들을 아울러 산악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한 문경 마운틴 페스티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과거길 달빛 사랑축제. 문경시의 특산물인 오미자를 활용한 문경 오미자 축제 문경 사과 축제 등이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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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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