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사천시(泗川市)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서남부에 있는 시이다. 1995년 5월 10일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어 생긴 도농복합시이다.[1]
개요[편집]
사천시는 동경 127°54′∼128°11′, 북위 34°56′∼35°09′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고성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남해군, 북쪽으로 진주시에 접한다. 면적은 398.6㎢이고,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108,966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7개 면, 6개 행정동(27개 법정동), 231개 행정리(90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덕곡리에 있다.
사천(泗川)이란 지명은 유래상 물과 관련이 깊은 고을로, 신라 경덕왕 때의 이름이 사수(泗水)였던 점이나 그 泗水가 노나라(魯) 때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곳의 강 이름과 뜻의 인연이 있다고도 한다.
사천짜장, 사천탕수육 등의 요리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중국의 사천(四川) 지방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인지도에서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중국의 사천이 더 높은 탓에 지명도에서 상당히 손해보는 도시다. 그나마 삼천포는 잘 알려져 있지만, 도시명으로가 아닌 다른 의미로 더 유명한 게 문제다.[2][3]
자연환경[편집]
진주만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천만의 양안에 걸쳐 있다. 시역의 중앙부는 좁고 긴 사천만(泗川灣)이 내륙 깊숙이 만입해 지역을 동부와 서부로 크게 나누고 있다. 서부지역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뻗어 평탄한 편은 아니나 표고 100∼200m의 기복이 낮은 구릉지가 대부분이다. 그 줄기가 남쪽으로 차츰 낮아져 그 끝은 광포만과 사천만 등의 바다에 닿는다. 동부지역은 사천만 만구 지역의 평야부와 사천에서 구삼천포 해안 가까이 약 12㎞의 폭이 매우 좁은 해안 저지대가 전개되고 있으며, 동쪽은 고성 쪽으로 동서 방향의 병영산맥이 연이어 있다.
이 시에는 와룡산(臥龍山, 799m)·흥무산(興武山, 455m)·이명산(理明山, 570m)·봉대산(鳳臺山, 409m) 등이 있다. 이 밖에도 구룡산(九龍山, 298m)·남산·성황당산(城隍堂山)·봉명산(鳳鳴山)·무선산 등이 있다.
주요 하천은 북부 중앙의 가화천이 남강댐의 인공수로로서 사천만에 이르며, 와룡산 동쪽을 흐르는 백천(白川)이 사천 선상지를 지나 사천만으로, 길호천이 동북부와 사천읍을 흘러 사천만으로 각각 흘러든다. 하동군에서 발원하는 서부의 곤양강(昆陽江)은 서부지역을 남류해 광포만으로 흘러들면서 유역에 평지를 형성하였다.
기후는 온난 습윤한 난대성 기후를 띠며 연평균기온 14℃, 1월 평균기온 1.1℃, 8월 평균기온 27.1℃이며, 연 강수량은 1,701㎜, 평균습도는 69.8%이다.
지질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의 경상계 지층이지만 남쪽의 산지부는 불국사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생은 대나무·동백나무·탱자나무·비자나무·팽나무 등의 난대성 식물이 자란다.[4]
역사[편집]
사천만 해안평야 지대의 곳곳에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특히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서포(西浦)지방의 조개더미에서는 신석기시대 말기의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상당한 인구가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삼한 시대에는 이 지방이 변진 12국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에 나타난 사천시의 처음 이름은 3세기 초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이다. 그 뒤 삼국의 정립으로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은 한때 백제에 속하기도 했으나, 6세기경 법흥왕대에 이르러 신라에 정복됨으로써 여러 지역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하나는 사물현으로 오늘날 사천시의 동부이며, 하나는 곤명현(신라 때는 포촌현, 또는 하읍현)으로 오늘날의 서부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축동면 전역과 고성군의 상리면·하이면의 일부 지역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본래의 이름은 사물현(泗勿縣)인데 757년(경덕왕 16) 사수현(泗水縣)으로 개칭해 고성군(固城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 사수현을 진주목(晋州牧)으로 이속했고, 1011년(현종 2) 사주(泗州)로 개칭하였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다. 서부에 있었던 곤명현의 삼국시대 이름은 알 수 없으나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의 영현이 되었다. 성종 때 조세미(租稅米)를 수송하기 위해 전국에 12조창을 두었는데, 그 중의 하나인 통양창(通陽倉)이 사천현 남쪽 통조포(通朝浦)에 설치되었다. 992년(성종 11) 현종의 아버지인 안종(安宗) 욱(郁)이 사수현으로 유배되어 와룡산의 배방사(排房寺)에서 일생을 마쳤다. 현종도 어린 시절 이 곳에서 지내면서 갖가지 비화를 남겼다. 고려 말 왜구의 약탈이 심할 때 이 지방은 침입로가 되었으며 1379년(우왕 5)과 그 이듬 해에는 큰 피해를 입었다.
1413년(태종 13) 현의 이름을 사천(泗川)으로 고치고 1415년에는 진(鎭)을 두어 병마사가 현정(縣政)을 겸장하였다. 1419년(세종 1) 세종과 단종의 어태(御胎)를 곤명현에 안치했으며, 남해안과 합쳐 곤남군으로 승격하였다. 1437년 남해현을 복구하면서 진주목의 금양부곡(今陽部曲)을 편입해 곤양군(昆陽郡)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수군이 거북선을 앞세우고 사천 선창에 있는 왜수군을 외양으로 유인해 전멸시킨 사천해전이 치러졌다. 1759년(영조 35) 곤양군의 호구수는 3,759호 1만 6,374인이었고, 1771년 사천현의 호구수는 3,313호 1만 4,620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곤양군과 합병되면서 군의 이름이 사천군이 되었다. 이 때 창선면(昌善面)이 남해군으로, 문선면(文善面)이 진주군으로, 남양면(南陽面)이 고성군으로 분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을 다시 13도제로 개편하자 곤양군은 사천군에서 분리되고 사천군과 곤양군은 진주부에서 경상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 남양·문선·축동의 3개 면이 사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곤양군을 사천군에 통합하면서 금양면과 서면을 하동군에 이관했으며, 삼천리면을 수남면(洙南面)으로 개칭하였다. 1918년 문선면과 수남면을 삼천포면으로 통합하였다. 1931년 11월 1일 삼천포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읍동면·읍서면·읍남면이 각각 정동면·사남면·용현면으로 개칭되었다.
1956년 7월 8일 삼천포읍은 남양면을 합해 삼천포시로 승격되어 사천군에서 분리되었으며, 같은 날 사천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6년 사천읍 수석리에 새 청사가 완공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사천시가 되었다. 1998년 행정동 통합으로 대방동을 동서동으로, 동좌동을 선구동으로, 봉이동을 향촌동으로 통합, 남양 1,2동을 남양동으로 통합하여 1읍 7면 6동으로 개편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재 동서·선구·동서금·벌룡·향촌·남양동의 6개 동과 사천읍 및 정동·사남·용현·축동·곤양·곤명·서포의 1 읍 7면의 행정구역을 이룬다.
산업[편집]
농업·수산업·공업이 주요 산업이다. 삼천포의 경우 어항 기능이 굉장히 오래된 도시로 1956년에 시로 승격했을 만큼 연근해 수산업이 번성했던 곳이다. 특히 쥐치의 가공업이 유명했으나 쥐치는 삼천포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씨가 마른 지 몇십 년 됐고 쥐포 공장도 가동을 멈춘 지 오래됐다.
현재 사천시의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은 항공 관련 제조업이다. 국내 유일의 완성 항공기와 우주선 제조업체인 한국 항공우주 산업의 본사와 우주탐사 R&D센 터, 공장이 위치해 있으며 항공국가 산업단지가 조성 중으로 국내 항공우주 산업의 메카이다. 프랑스의 에어버스 헬리콥터스 공장도 사천공장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한다. 국내 항공산업이 부울경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국가단위로 조성하는 국가산업단지는 항공국가산업단지가 유일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 항공우주기술은 4차산업 혁명과도 관련이 있어 관련 기업들이 대거 유치될 예정이다.
경상국립대학교의 산학협동 지원단지가 용현면에 위치하고 있다. 경상국립대와 협정을 맺은 여러 기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BAT의 공장이 사남면 유천리에 있다. 여기서 던힐 담배가 생산 중이다. 방지리에는 스카니아 출하센터 있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농산물은 감 등이 특산물이다.
교통[편집]
사천시 남부 지역에 속하는 구 삼천포에는 오래전부터 소규모의 항구가 발달해 있어 과거에는 부산, 마산, 거제, 광양, 여수를 무역선과 여객선이 오고 갔으나 항구 수송이 퇴화되어 현재는 인근 해역에서 어로를 하거나 남해 앞바다 있는 사량도, 신수도, 욕지도를 이어주고 있다. 2012년 3월부터는 제주도로 가는 뱃길이 취항되어 이용객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이후 선령이 25년으로 제한되면서 28년 차였던 여객선으로는 운행이 불가능하여 현재 운행을 중단한 상태다.하지만 현승 MCT라는 회사가 사천시와 함께 다시 뱃길을 열고자 노력중이다. 빈자리가 없어 입항이 어려운 제주도항 접안문제만 해결된다면 운항 재개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사천시 축동면에 위치한 사천공항은 서울 노선과 제주 노선이 있다. 그러나 2005년에 통영 대전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된 이후 공항을 이용해 온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점차 이용객들이 줄어들어 이용객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운항편수도 줄어들면서 2009년부터 20만 명 선이 무너졌고, 2010년에 16만 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2019년에 20만 명대를 회복하였고 점점 이용객이 다시 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이용객이 억수로 줄어들어, 아시아나항공 제주편이 운항 중단되었고, 도리어, 대한항공의 김포, 제주편도 운항 중단되었다. 지금은 하이에어에서 김포편 하루 3회 ATR-72로 운항중이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경상남도 사천시 동서금동에는 진삼선의 삼천포역이 존재했고 개양역, 예하역, 사천역, 선진역, 금문역, 노룡역, 죽림역을 연결했었다.
현재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경전선의 완사역이 존재한다. 목포역, 광주송정역, 순천역, 광양역, 하동역, 횡천역, 진주역, 마산역, 창원역, 삼랑진역, 구포역, 부전역을 연결한다.
관광[편집]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내륙호 같은 잔잔한 사천만을 사이에 두고 있어 명승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해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지도 많고 또한 피해도 많았던 곳이다. 삼천포항 앞바다, 한려수도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무인도 학섬은 삼천포의 빼어난 명승지로 울창한 해송에 학과 왜가리가 날아들 때면 마치 눈이 내리듯 장관을 이룬다. 또한, 모래가 곱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향촌동의 남일대해수욕장은 여름철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며, 신라의 석학 최치원이 유람했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이 거북선으로 왜적에게 치명타를 가한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묘충공원은 한려수도의 빼어난 해상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이 밖에 대방동의 대방진굴항은 팽나무와 소나무가 이루는 숲 가운데 만들어진 100여 평의 바다못으로, 자연경관의 극치를 이룬다. 각산산성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며,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여름철이면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동금동의 삼천포 재래시장은 삼천포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입지조건이 매우 양호하며 4일과 9일에 장이 선다.
동림동의 문화예술회관은 지역문화예술의 산실로서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으로 이루어진다.
수석리에 사천체육관, 용강동에 삼천포체육관, 정의리에 사천공설운동장, 벌리동에 삼천포공설운동장과 수영장, 삼천포 공설테니스장, 사천읍에 관덕정궁도장 등이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문화행사로는 해마다 10월 말에 열리는 와룡문화제와 해마다 4월에 열리는 벚꽃축제가 있다. 와룡문화제는 1995년 5월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통합하면서 수양문화제와 한려문화제를 통합하여 명칭을 바꾼 것이며 짝수년에는 사천읍에서, 홀수년에는 동지역에서 해마다 번갈아 가면서 개최한다. 성화채화 및 봉송·축등행렬을 시작으로 열림한마당, 축포발사 등의 전야제 행사와 시민체육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전시회, 발표회 등 개막식 행사를 열고 시민화합을 도모하고 지역 전통문화예술행사를 계승, 발전시켜나간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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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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