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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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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안면도(安眠島)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과 고남면을 이루는 이다.

개요[편집]

  • 안면도는 한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으로, 태안반도 중간에서 남쪽으로 뻗은 남면반도의 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고랍국, 고려시대에는 안면소·광지향, 조선시대에는 안상면·안하면이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뒤에 안면소·안면곶이라고 하였다. 1895년에는 태안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상면·안하면이 안면면에 병합되어 서산군에 속하였다. 1980년 안면면이 안면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9년 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유적으로 신야리에 조개무지, 고남리에 고인돌(지석묘)이 있으며, 승언리에 안면도의 모감주나무군락(천연기념물 138)이 있다. 단일 소나무숲으로는 세계 최대인 자연휴양림과 영목항·황도포구 등의 볼거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 5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으며, 안면읍사무소와 고남면사무소를 비롯한 우체국·파출소·농업협동조합·보건지소 등이 있다.[1]
  • 안면도는 충청남도 태안군에 있는 섬으로 충청남도에서는 가장 큰 섬이다. 동쪽으로는 천수만이 있고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섬의 북쪽은 안면대교와 안면 연륙교로 태안군 본토와, 섬의 남쪽은 원산안면대교와 보령 해저터널로 보령시와 연결되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섬의 북부와 중부는 태안군 안면읍, 섬 남부는 고남면에 속한다. 원래 섬 전체가 안면읍이었으나, 1986년 섬 남쪽 지역이 고남면으로 분리되었다. 역사적으로 홍주목, 서산군, 태안군 관할이었으며 1901년 오천군이 신설되면서 이에 편입되었다가, 1906년 태안군으로 환원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태안군이 서산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태안군이 서산군에서 분리되어 복군되면서 태안군 관할로 돌아갔다. 바닷가지만 농업·관광업이 성한 지역이다. 주로 곡류나 마늘, 고추, 생강 등을 재배한다. 관광으로는 섬 서부의 해수욕장들과 허브 농장 등 펜션 민박촌이 주로 조성되어 있다. 섬 동부인 본토 맞은 편에는 염전이 많다. 긴 해안선을 가진 장점을 이용해 관광지로서 발전을 유도하는 정도 외에는 딱히 할만한 사업이 없다. 천수만을 끼고 있지만 조력 발전과도 상관이 없다. 천수만 사업 추진 지역은 태안반도의 간월도로 안면도와 마주 보고 있는 지역이다. 안면도에서 가장 어업이 성한 곳은 백사장항이다. 2013년 9월부터 태안반도의 드르니항과 교량으로 연결돼 있다.[2]
  • 안면도는 대한민국 태안반도 남쪽에 있는 섬으로,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과 고남면이 속한다.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넓은 섬으로, 면적은 113.5km2이다. 안면도는 본래 태안반도에서 남쪽 바다로 길게 뻗어나온 곶(串)이었는데, 17세기에 육지에서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섬은 안면읍의 국사봉(109m)을 제외한 대부분 산지가 구릉지대여서 조선시대에는 대규모의 목장과 농장지로 이용되었다. 1970년에 대한민국의 3번째 연륙교(連陸橋)인 안면교(安眠橋, 총길이 208.5m)가 건설되었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조선 시대에 국가의 주요 자원으로서 중요하게 관리되었다. 궁궐이나 함선 등을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재목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 등 주요 함선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도 안면송(安眠松)이라 불리며, 휴양림(안면도 자연휴양림)을 이루어 유명하다.[3]

섬의 분류[편집]

  • 섬은 바다로 완전히 둘러싸인 땅이다. 섬은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는 큰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적당히 큰 섬은 도(島, island)라 하고 작은 섬은 서(嶼, islet)라 하여 이 둘을 통칭 도서(島嶼)라 한다. 섬은 지각운동에 의하여 해저의 일부가 융기하거나, 해안산맥의 일부가 침수되어 높은 땅의 일부가 해면 위에 남아 있거나, 또는 육지의 일부가 침강하여 그곳에 해수가 들어와서 형성된다. 해저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화산도(火山島)나 해안 지역의 일부가 파도와 빙하의 침식을 받아 육지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섬도 있다.
  • 바다에 있는 섬은 육도(陸島)와 양도(洋島)로 나누어진다. 육도는 지질적으로 대륙과 같은 구성 물질로 되었으며, 육지의 일부가 대륙이나 또는 대륙에 가까운 큰 섬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양도는 육지와 관계없이 생성된 것으로서 화산섬과 산호섬이 여기에 속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은 덴마크의 속령인 그린란드이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섬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각각 분할 통치하고 있는 섬인 보르네오섬이며, 중국에서는 하이난섬이 가장 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섬은 제주도이다.

안면도의 생태조건[편집]

  • 안면읍은 본래 곶으로서 육지인 남면과 연륙 되어있었는데, 삼남지역의 세곡을 실어나르는 것이 불편하자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함으로써 섬이 되었다. 현재는 연륙교로 육지와 이어져 있다.
  • 북쪽에 솟은 국사봉(107m)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환경이 복잡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 간조 때에는 간석지가 넓게 펼쳐진다. 1월 평균기온은 -2.7℃, 8월 평균기온은 25.6℃, 연강수량은 1,155㎜이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 주민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농산물로 쌀·보리·콩·고구마·고추·마늘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고추와 마늘은 생산량이 많아 상인들과의 직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연근해에서는 남방붕장어·우럭·낙지 등이 잡히며, 김·굴·새우류·바지락·백합 등의 양식과 천일제염이 이루어진다.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 군락(泰安 安眠島 妙敢株나무 群落)[편집]

  •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다.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62년 12월 7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학술 연구 자원이 지정 사유이다.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의 방포해수욕장 해변에 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으로 면적이 9,567㎡이고 태안군이 관리하고 있다.
  • 길이가 120m, 폭이 15m이고, 바닥에 자갈이 덮여 있으며, 높이가 3m에 달하는 나무가 400∼500그루가 자라고 있다. 바람을 막기 위한 나무숲의 구실을 해온 것으로 생각되며, 모감주나무로서는 크기가 매우 작은 편이고,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바닷가에 가까운 나무가 안쪽에 있는 나무보다 휠씬 작다. 이 외에도 졸참나무·신나무·소사나무·팥배나무·노린재나무·음나무·갈참나무·고로쇠나무·소태나무·검양옻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안면도자연휴양림(安眠島自然休養林)[편집]

  •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 3리에 있는 자연휴양림. 1992년 9월에 개장했으며, 구역면적은 175만㎡, 1일 수용인원은 2,000명이다. 충청남도청에서 관리한다. 태안해안국립공원과 인접한 해변에 있고, 조선시대부터 자라기 시작했다는 토종 붉은 소나무 안면송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으며, 서어나무, 먹넌출, 말오줌때, 층층나무 등 안면도 특유의 수종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곧게 뻗은 소나무들은 궁중의 궁재와 배를 건조할 때 많이 사용하였고, 경복궁을 지을 때 사용했다.
  • 휴양림에는 산림전시관, 산림수목원, 숲속교실 등의 자연학습장과 숲속의 집, 잔디광장, 어린이놀이터, 캠프파이어장, 물놀이장, 체력단련시설 등이 있다. 산림전시관에는 소나무를 이용해 배 만드는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주변에 방포해수욕장, 꽃지해수욕장, 백사장해수욕장, 청포대해수욕장, 몽산포해수욕장, 삼봉해수욕장 등 질 좋은 모래 해수욕장과 할미·할아버지 바위, 황도 붕기풍어제, 덕산 관광온천휴양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승언리에는 모감주나무(천연기념물 138)가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안면도의 운하절단[편집]

  • 안면도가 이 된 것은 삼남 지방에서 조세로 거두어들인 곡식의 조운(漕運)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조선 인조 때에 지금의 안면읍과 남면 사이를 절단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사실인 것처럼 유포되어 왔다. 그러나, 안면도가 태안반도와 분리된 것이 인공(人工)에 의한 절단인지, 해수(海水)에 의한 침식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운하절단설은 1872년(고종 9년) 간행 태안읍지(泰安邑誌)에 실린 "태안 향리 방경잠이 감영(監營)에 물길을 뚫어서 통하게 할 것을 건의하여 섬이 되었다."라는 빈약한 내용의 기사 외에는 근거로 제시된 사료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 그 밖에 이미 조선왕조실록 광해 8년(1616년) 기사에 "공홍도(公洪道)의 안면도(安眠島, 원문은 安眠道)"라는 기록이 있다는 점, 안면도와 태안반도 사이 바다의 폭은 최소 160m로 경인운하(폭 80m)의 2배가 넘고 한국 서해안의 조수간만 차가 평균 6m에 이른다는 점, 세곡선의 침몰이 잦았던 곳은 안흥량(安興梁) 등 태안반도(근흥면과 소원면) 일대의 바다로 안면도 북쪽이라는 점, 이 때문에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운하 건설이 논의되고 굴착 공사가 시도된 곳이 현재 태안군과 서산시의 경계인 태안읍 인평리 흥인~굴포 사이의 이른바 '굴포운하' 계획이었다는 점 등을 볼 때 신뢰성이 낮다.

안면도판목[편집]

  •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 신온리의 운하 유적.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 신온리와의 접경을 인공적으로 절단해 놓은 곳을 말한다. 안면도(安眠島)는 원래 육지와 붙어 있어 섬(島)이 아닌 안면곶(安眠串)으로 불려졌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안면읍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반도였으나 인조(1623~1649) 때 삼남지역의 세곡선(稅穀船)의 왕래를 돕기 위해 인공적으로 좁은 목을 절단하였다. 이로 인해 두 지역의 가장자리의 판목이 생기고 현재의 안면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안면도의 여행[편집]

  • 꽃지해수욕장 : 충남 태안군 안면읍 광지길에 자리한 꽃지해변은 5km에 이르는 백사장과 할배바위, 할매바위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준다. 2개의 바위 너머로 붉게 물드는 낙조는 태안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풍광 중 으뜸으로 꼽힌다.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어여쁜 이름을 얻었다.
  • 삼봉해수욕장 : 태안군 남면과 안면읍을 연결하는 연육교 남쪽 3km 거리에 있으며 백사장의 길이는 3.8km, 폭 300m, 경사도 6도, 평균수심 1.5m, 수온은 섭씨 22도이다. 세 개의 튀어나온 삼봉괴암과 해당화가 유명하고, 울창한 솔숲이 특히 인상적이다.
  • 기지포해수욕장 : 기지포해변은 태안반도에 있는 크고 작은 다른 해수욕장과 같이 여름 한낮의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울창한 송림과 경사가 완만한 깨끗한 백사장이 일품이며, 가족단위 여행객들의 하계휴양지로 좋은 지역이다. 수질이 깨끗하고 청결하며 해수욕장 길이는 0.8km, 폭은 200m 정도이며 규사모래로 되어있다.
  • 고남패총박물관 :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패총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박물관으로, 멀리 서해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태안군 고남리에 위치하고 있다. 패총은 석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쌓여 만들어진 유적으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이 박물관에는 패총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 석기 등 선사시대 유물 470여 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디오라마를 통하여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준다.
  • 백야기념관 : 서산 간월도와 안면도로 가는 들머리인 홍성나들목을 나가면 왼쪽으로 김좌진 생가와 한용운 생가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란히 서있다. 이를 따라 들어가면 작은 다리 건너편으로 커다란 기와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좌진 생가다.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백야기념관 건물이 있다. 여기에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인생여정과 청산리 전투에 대해 소상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투 당시의 전황도를 비롯해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화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 이종일선생 생가지 :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이신 옥파 이종일선생(沃派 李鍾一先生)이 태어난 생가다. 이종일(1858-1925)선생은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3품에 올랐으며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외교사절로 일본에 다녀와 새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제국신문을 한글로 간행하였으며, 그 뒤 황성신문, 대한신보 등 언론에 종사하면서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그 후 천도교에 입교하여 "보성사"라는 인쇄소를 운영하였는데 기미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으며, 태화관에서 민족대표와 함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1925년 8월 31일 67세의 나이로 조국광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쳤는데 1962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 받았다. 생가 1동이 지난 87년에 복원되어 90년 12월 31일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85호로 지정 및 관리되고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안면도(安眠島)〉, 《두산백과》
  2. 안면도〉, 《나무위키》
  3. 안면도〉,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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