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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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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평야

영흥평야(永興平野)는 함남 영흥군과 고원군의 동쪽 및 문천군 북쪽(현 고원군 ·금야군 일대)에 펼쳐진 평야이다.

개요[편집]

  • 영흥평야영흥만으로 흘러드는 용흥강(龍興江)과 덕지강(德池江) ·전탄강(箭灘江) 등의 하류 유역에 발달되어 있다. 북쪽의 함흥평야, 남쪽의 안변평야와 합하여서 함남평야라고도 한다. 함흥평야와의 사이에는 만풍산(萬風山)과 정암산(靜庵山)을 연결하는 구릉을 경계로 구분되고, 남쪽의 안변평야와의 사이에는 천불산(天佛山)을 중심으로 하는 구릉을 경계로 하고 있으며, 대략 사방 40㎢의 면적을 가진다. 원래 영흥만이 함몰됨에 따라 얕은 바다를 이루었던 곳이 지질시대에 서부 산지의 토사가 용흥강 ·덕지강을 통해 운반 ·퇴적되어 형성된 충적평야이다. 그들 하천은 영흥만의 지만을 이루는 송전만(松田灣)에 계속 복합삼각주와 석호(潟湖)를 충적시키고 있다. 벼농사와 보리 ·콩 ·감자 ·잎담배 재배가 성하고 사과 산지로 유명하다. 석탄 ·금 ·텅스텐 등의 채굴도 활발하여 함흥과 원산 사이의 관북공업지역(關北工業地域)의 일부를 이루며, 그중 천내리(川內里)의 시멘트공장이 유명하다. [1]
  • 영흥평야함경남도 영흥군ㆍ고원군ㆍ문천군에 걸쳐 있는 평야이다. 동서 약 20㎞, 남북 약 16㎞ 지역에 펼쳐진다. 함경남도 내에서 함흥평야 다음으로 넓은 편이다. 연안의 주민은 산란기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연어와 어패류잡이 및 간척 사업, 갈대를 이용한 노점 제작 등의 부업을 한다. 주민 생활은 인구밀도가 높은 평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은 역사 깊은 영흥읍ㆍ고원읍 등과 이곳을 연결하는 동해안국도와 함경선을 이용하여 농산물의 집산과 일용품 구매, 행정ㆍ교육ㆍ의료 등 여러 문화시설을 갖추었다. 내해와 강변 주민은 종래 수산물을 통한 풍토병으로 시달리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송전반도를 비롯한 여러 섬에서 굴채집ㆍ노점제작 등의 부업으로 소득을 올려 안정된 생활을 한다. 최근에 와서는 관북 지방의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 과정으로 인해 순수한 농업 지대로서의 성격은 약해지고 있으나 영흥주(永興紬 : 명주)의 생산은 성하다.[2]
  • 영흥평야는 함경남도 용흥강과 덕지강 유역에 있는 충적평야이다. 특히 동북부 지역은 쌀 생산 지대이다. 영흥평야 지역은 고려 시대에 축조한 천리장성(千里長城)이 정평군과의 경계를 따라 의주까지 이중으로 방비된 것으로 보아 군사 및 행정상 관북의 전방 요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성계의 탄생지로서 여러 유적이 많으며, 식량 생산지 및 전통적인 농촌 생활 무대로서 우리 민족사에 큰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호도반도가 송전만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비교적 내만의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하구역을 따라 양지호와 금호 등 석호 성의 호수도 발달하고 있다. 평야의 남쪽으로는 문천시가 있으며 영흥만을 따라 원산이 자리하고 있다. 1930년에서 1940년 사이에는 제방 개수와 간척 사업 및 개답(開畓 : 논을 새로 만드는 것)의 토지개량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어 관개ㆍ배수시설이 이루어짐으로써 종래의 수수 경작에서 미작 지대로 전환되어 논의 경지면적이 2,200㏊에 달하며 수확량이 많다. 밭에 콩ㆍ조ㆍ보리가 경작되고 뽕나무의 재배가 성하다.

한반도의 평야[편집]

  • 한국의 평야(平野)는 주로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 해안, 큰 강의 하류 지역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하고, 평야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던 중 상공업이 성행하여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평야 지대의 농촌은 일반적으로 북쪽의 낮은 산을 등지고 논과 강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북쪽의 산은 겨울철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며, 남향의 산기슭은 햇볕을 잘 받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강물이나 시냇물은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하다. 평야 지역의 농촌에서는 물을 대기 쉬우면 논으로 이용하며, 홍수 때 물에 잠기던 곳을 둑으로 막고 수문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바닷물을 막아 물을 빼내고 논으로 만드는가 하면 경사진 곳은 층층이 논두렁을 쌓아 논밭으로 개간하기도 하며,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만경강 유역의 호남평야와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로서 갈수록 현대화가 추진, 발전되고 있다. 또한 물이 많지 않은 곳에는 밭을 일구어 보리, 감자, 옥수수 등 작물과 배추, 무 등 채소를 재배한다.
  • 한국의 평야는 척량산맥(脊梁山脈)인 한국방향(남북방향)의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이 한반도의 동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서해안과 남해안에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야도 연속적으로 광대하게 발달되어 있지 않고,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에서 분기해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는 중국방향과 랴오둥(遼東) 방향의 산맥들에 의해 소규모 평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평야 중 비교적 규모가 큰 평야로는 김제평야ㆍ만경평야ㆍ나주평야김해평야ㆍ논산평야ㆍ예당평야ㆍ평택평야ㆍ김포평야ㆍ재령평야ㆍ평양평야ㆍ안주평야ㆍ용천평야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의 평야는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평야의 핵심부는 대개 하천의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범람원이고, 평야에서 '들'이라고 불리는 곳은 거의 전부 이러한 범람원이다. 평야 주변의 구릉지, 즉 야산도 기복이 아주 작으면 평야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은 여러 면에서 범람원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하천의 범람에 의한 침수의 위험이 없을 뿐 아니라 대개 기반암의 풍화토인 적색토로 덮여 있고, 밭ㆍ과수원ㆍ목장ㆍ임야 등으로 이용된다.

영흥만[편집]

  • 영흥만은 북한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만이다. 원산만이라고도 하며 북쪽에서 호도(虎島)반도가 내리뻗고, 남쪽에서 갈마(葛麻)반도가 돌출하여 영흥만을 둘러싸고 있다. 두 반도 사이의 바다에는 여도(麗島)·웅도(熊島)·신도(薪島)·모도(茅島) 등을 비롯한 많은 섬이 만구(灣口)를 감싸고 있다. 원산만은 지질시대에 함몰로 형성된 만으로서 북부의 송전만(松田灣), 남부의 덕원만(德源灣)으로 나누어진다. 함몰된 고(古)영흥만은 낭림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용흥강(龍興江)·덕지강(德地江)·남대천(南大川) 등에 의해 운반된 토사가 퇴적되어 넓은 충적평야가 되었다.
  • 송전반도와 호도반도로 구획된 송전만 연안에는 복합삼각주가 형성되어 계속 퇴적이 진행되고 있으며, 해안선의 굴곡도 복잡하다. 남부의 덕원만은 외해인 동해에 개방되어 있으며, 호상사빈(弧狀砂濱)이 형성되어 송도원(松濤園)·명사십리(明沙十里) 등의 해수욕장이 있다. 갈마반도의 서쪽에는 동해안 유수의 큰 항구도시인 원산이 발달하였고, 정미·기계·조선·차량·정유 등의 공장이 입지해 있다. 송전만 안에서는 굴의 양식이 성하고, 원산만 전 해역에서 고등어·가자미·청어·명태·전갱이 등의 어로가 활발하다.

천리장성(千里長城)[편집]

  • 고려 초기에 여진족 등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은 장성이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았다. 길이가 1천 리라고 하여 '천리장성'으로 불렸으며, 고려장성(高麗長城)으로 인식되었다. 거란, 여진, 몽골 등 북쪽으로부터의 외적 침입 위협이 상존하였던 고려 시대에 군사적 방어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관방 시설이다. 천리장성의 위치는 서해안에 있는 옛 국내성(國內城) 경계의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으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는 지금의 의주(義州) 지역인 위원 · 흥화 · 정주 · 영해 · 영덕 · 영삭 · 정융 · 영원 및 그 부근의 평로 · 맹주 · 삭주 · 운주 · 안수 · 청새 등의 13성(14성)을 거쳐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永興) 지역인 요덕 · 정변 · 화주 등의 3성에 연결되어 동해안에 이른다.

영흥평야의 자연환경[편집]

  • 영흥평야의 주위는 편마암계의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남부는 문천군의 송전반도(松田半島)와 여러 섬으로 막힌 내해(內海)인 송전만(松田灣)에 접하고 있다. 이 내해로 흘러드는 하천으로는 영흥의 북서부 산간지대에서 이 평야를 거쳐 흐르는 용흥강(龍興江)과 고원군 지대를 흐르는 덕지강(德池江), 문천군의 서남부에서 고원군과의 경계를 거쳐 만으로 흘러드는 전탄강(箭灘江) 등이 있다. 영흥평야는 이들 3대 하천이 운반한 토사의 퇴적으로 이루어진 충적평야이다. 이들 3대 강은 하구에서 10여㎞까지 주운(舟運)이 가능할 정도로 유량이 풍부하고, 특히 용흥강과 전탄강 연안은 저평하여 하천이 자유곡류한다. 용흥강은 동북방에서 평야를 흐르는 여러 소하천을 합하여 영흥군 억기면과 문천군 명구면과의 경계를 흘러서 영흥만에 들어간다.
  • 영흥평야는 후빙기 해수면 상승이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지형의 윤곽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러한 범람원 지역은 빙하기에 깊이 파였던 골짜기에 하천의 토사가 현재의 해면고도를 기준으로 쌓였기 때문에 해발고도가 10m 내외로 아주 낮은 것이 특징이다. 토질은 양토 또는 사질양토(砂質壤土)이며, 그 표층은 대부분 3m 이상으로 깊다. 산지 근처에서는 자갈을 이루나 영흥읍ㆍ고원읍 이하는 6∼9m의 깊은 표층을 이루어 비옥하고 토지생산성이 높다.
  • 영흥평야는 북쪽의 함흥평야, 남쪽의 안변평야와 합하여서 함남평야라고도 한다. 함흥평야와 사이는 만풍산(萬風山)과 정암산(靜庵山)을 연결하는 구릉을, 안변평야와 사이는 천불산(天佛山)을 중심으로 하는 구릉을 경계로 한다. 영흥평야는 낭림산맥의 토사가 용흥강·덕지강·전탄강을 통해 운반, 함몰된 고영흥만에 퇴적됨으로써 만들어진 충적평야이다. 기후는 북부지방의 일반적인 특성에 따라 비교적 한랭하여 겨울이 일찍 오는데 11월 초순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2월에 가장 많이 내리고 3월 중·하순까지 계속된다. 또한 비는 8월에 많이 오는 편이다.

영흥군[편집]

  • 함경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동해, 동북쪽은 정평군, 서쪽은 낭림산맥으로 평안남도 맹산군 · 양덕군, 북쪽은 영원군, 남쪽은 고원군 · 문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35′∼127°35′, 북위 39°15′∼39°52′에 위치하며, 면적 2,192.25㎢이다. 1개 읍 11개 면 282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영흥읍 도정리이다. 군의 서부에는 낭림산맥(狼林山脈)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 북으로부터 사수산(泗水山, 1,747m) · 백산(白山, 1,724m) · 병풍산(屛風山, 1,353m) · 오봉산(五峰山, 1,289m) 등이 솟아 고원 지대를 이룬다. 또한, 주요 산으로는 국태산(國泰山, 330m) · 성력산(聖歷山, 100m) · 진수봉(鎭戍峰, 160m) 등이 있다. 하천은 서부의 고원 지대에서 발원하는 크고 작은 여러 냇물이 합쳐진 용흥강(龍興江)이 남동류하여 흐르다, 선흥면의 사수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단속천(端屬川)과 합류하여 송전만(松田灣)으로 들어가는데, 그 유역에 충적지인 영흥평야가 형성된다. 영흥평야는 군의 주요 생산 지대이자 거주 지대를 이룬다.
  • 진평면은 영흥군의 동부에 있는 면이며 면 소재지는 진흥리이다. 고려 시대 장평진(長坪鎭)이었다가 조선 시대 장평사(長坪社) · 장평현(長坪縣)이라 불렸으며, 1914년 진평면으로 되었다. 이는 진(鎭)이 있던 곳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 영흥평야를 지나는 용흥강 하류의 동편 구릉 지대와 남부의 인접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동부 영흥평야의 중심지로 예로부터 교통 및 군사적 요지이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지만 용흥강 삼각주에서의 노점 제조, 저도(猪島)의 굴양식, 대덕산 중심의 금광업, 그리고 군내의 시장 중심지로서의 상업 등 각 분야가 골고루 발달하였다. 특히, 굴 양식은 한때 그 생산량이 전국에서 으뜸이었으며, 쪄서 말린 것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국도가 면을 지나며 도내 남북 간선도로가 진흥리에서 교차되고, 용흥강의 수로도 이용할 수 있어 예로부터 교통상의 요지이다. 서쪽으로는 영흥평야, 동쪽으로는 바다에 면하는 전략상의 중요한 위치인 만큼 유적이 많다.

용흥강[편집]

  • 함경남도 고원군 운곡면의 각고산(角高山, 1,038m) 남쪽에서 발원하여 영흥평야를 관류하며 송전만(松田灣)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 134.8㎞. 유역 면적 3,397㎢. 각고산 남쪽 계곡을 흘러 영흥군 횡천면 산성리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쳐지고 다시 창평에서 입석천(立石川)과 합류한다. 영흥군 선흥면 용반리 북쪽에 이르러 동북쪽에서 나온 단속천(端屬川)과 합류하여 동남류하면서 영흥읍을 거쳐 덕지강과 합류한다. 문천군 명구면과 영흥군 억기면의 경계에 이르러 영흥만의 북부 송전만으로 흘러든다. 용흥강은 여러 지류가 합류하면서 영흥(지금의 금야)에 충적평야를 만들었다. 영흥평야는 함경남도의 주요 곡물 생산지 중 하나이다. 용흥강(龍興江)은 선흥면(宣興面)에서 단속천을 합쳐 동류하며, 유역에 충적평야인 영흥평야를 이룬다. 영흥평야는 함남에서 가장 넓은 농업지대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영흥평야(永興平野)〉, 《두산백과》
  2. 영흥평야(永興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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