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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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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천

삽교천(揷橋川)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에서 발원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길이 58.60km, 유역면적 1,649.87㎢이다.[1]

개요[편집]

  • 삽교천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오서산에서 발원하여 북류해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길이는 58.6 km, 유역면적은 1,649 km2이다. 유역형상은 평행형 유역이다. 넓은 평야와 간석지를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한수해(旱水害)를 자주 겪어온 이 지역의 유일한 수원인 삽교천이 방조제로 인하여 거대한 인공호수로 조성되었다. 삽교천 유역에는 덕산도립공원, 덕산온천, 도고온천, 예당저수지, 삽교방조제, 삽교호 등의 관광 자원이 풍부하여 중요한 국민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2]
  • 삽교천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長谷面)에서 발원하여 아산만(牙山灣)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며 길이 58.60km, 유역면적 1,649.87㎢이다. 청양군 비봉면(飛鳳面)에서 발원하여 예당(禮唐)저수지를 거쳐 오는 무한천(無限川)과 예산군 신암면(新岩面) 하평리(下坪里)에서 합류하고, 다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구 부근에서 천안시 광덕면(廣德面)에서 발원하는 곡교천(曲橋川)과 합류한다. 예산평야·아산평야 일대의 관개수원(灌漑水源)이 되며, 하천 연안에 홍성읍·삽교읍 등이 자리한다. 하구에 삽교천 방조제가 있다.[3]
  • 삽교천은 충청남도 당진시의 동쪽 끝 아산시와의 시, 군 경계를 흘러가는 충청남도에서 두 번째로 큰 하천인 국가 하천이다. 버그내, 범근천, 범근내, 사읍교천, 신교천, 금마천 등의 이칭으로도 불린다.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상풍 마을 신풍 저수지 윗쪽 기러기재(345m) 부근에서 발원하여 장곡천(長谷川)이 되고, 금마면을 거치면서 금마천(金馬川)이 되고, 여러 지천들을 합류하여 북쪽으로 계속 흘러가면서 예산군 삽교읍에 이르러서 삽교천(揷橋川)이 된다. 삽교천 유역은 일찍부터 내포 지방이라 하여 하나의 지역 문화권을 형성해 왔다. 내포 문화권의 교류는 주로 삽교천과 아산만을 통하여 경강을 무대로 하여 이루어졌다. 삽교천 유역은 당진을 비롯하여, 천안, 아산, 예산, 홍성, 청양 등 3개 시 4개 군에 걸쳐 있다. 삽교천은 하류 일대에 넓은 충적지를 형성하여 예당평야를 형성하고 있는 자유 곡류 하천이었다. 하류 쪽으로 내려오면서 하방 침식이 한계점에 이르러서 하천의 유로 변동을 가져와 한국의 대표적인 사행천을 이루었다. 현재는 홍수 방지를 위해서 1980년대부터 진행된 하천 직강화 공사로 인하여 인공 제방이 설치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4]
  • 삽교천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오서산(烏棲山, 791m)에서 발원한 후, 북류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길이는 61㎞, 유역면적은 1,619㎢이다. 주요 지류로는 청양군 화성면에서 발원하는 무한천(無限川), 천안시 광덕면에서 발원하는 곡교천(曲橋川), 당진시 면천면에서 발원하는 남원천(南院川) 등이 있다. 삽교천 주변에는 넓은 충적지(沖積地)가 발달하여 예당평야의 주요부를 이룬다. 삽교천지구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1975~1983)의 핵심 사업으로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됨에 따라 충청남도 홍성·예산·당진·아산 등 4개 시군 22개 읍·면에 걸친 2만 4700ha의 농토는 전천후 농토로 탈바꿈하였다. 과거 삽교천 유역은 충분한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가뭄과 홍수를 자주 겪어왔으며, 하구(河口)로 흘러드는 바닷물로 인하여 염해(鹽害)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1979년에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었고, 이에 따라 저수량 8400만 톤의 거대한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완공되고 수도권과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삽교천 유역은 더욱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삽교' 는 여러 고지도에 나타난다. 『조선지도』뿐만 아니라 『대동여지도』에도 덕산현 인근에 기재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다리와 함께 삽교점이 그려져 있다.[5]

한국의 강[편집]

  • 강(江)은 내륙을 흐르는 하천(河川) 중에 규모가 제법 크고 뚜렷한 물줄기를 말한다. 강의 순우리말은 '가람'이며, 한자어원인 강(江)자는 본래 중국의 장강(양쯔강)을 가리키던 글자였으나 의미가 확대되어 지금의 모든 강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 강(江)과 내(川)를 합쳐서 하천(河川)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크고 작은 모든 하천을 망라해서 그냥 하천이라 부르지만, 하천 중에서 크고 길게 흐르는 하(河)를 특별히 강이라 부른다. 한강, 낙동강, 대동강, 금강 등과 같이 주요 하천들의 이름 뒤에는 '江'이 붙어 있다.

삽교천의 유래[편집]

  • 조선 시대 하천 이름은 '범근내', '버그내'였다. '다음 가는', '다음이 되는', '버근', '버금' 단어에, '내'라는 '하천'을 뜻하는 단어가 붙어서 된 합성어인 '버근내'가 동음 음운 탈락 현상에 의해서 '버그내'가 되었다. 아산만에서 안성천이 제일 큰 하천이고, 두 번째로 큰 하천이어서 버그내라고 불린 것이다.
  • 일제 강점기에는 주로 삽교천으로 불렸다. 삽교천은 섭다리가 음운 변천으로 삽다리가 되고 삽다리 한자 표기 시 '삽교(揷橋)'로 되었다는 설과 삽내에 다리가 놓이므로 삽내를 한자로 표시한 삽천(揷川)과, 다리를 한자로 표시한 교(橋) 자가 붙어서 삽천교(揷川橋)가 되고, 이것이 줄어서 삽교(揷橋)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삽'은 백제어로' 붉은 색상'이란 뜻으로 삽내가 홍수질 때 붉은 탁류가 되어서 범람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내'는 시내보다 크고 보다 작은 물줄기를 말한다.
  • 삽교천 하구는 익곡형(溺谷形)[지반의 침강이나 해면의 상승으로 육지에 바닷물이 침입하여 해안에 생긴 골짜기]으로서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에 의한 침수 가능 지역으로 내륙 쪽으로 깊숙이 넓게 전개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삽교천의 중하류는 기복이 극히 작은 관계로 오늘날도 그렇지만 후빙기의 해면 상승 직후에는 대단히 넓고 깊숙한 만입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에서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큰 이 지역은 간조 시에 조류에 의하여 하천의 운반 물질이 대부분 바다로 밀려갔다가 만조 시에 조류에 의하여 그 일부가 다시 하구 쪽으로 운반되어 와서 퇴적됨으로써 간석지가 형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간석지의 지면이 높아졌는데, 이 높아진 곳을 주민들이 간척하여 경지로 만들었다. 삽교천에는 예산군 덕산면 구만리(九萬里) 포구까지, 무한천은 예산읍 창소리(倉所里) 포구까지 조석(潮汐)이 미쳤다. 따라서 이곳까지 배들이 다녔으며, 구만포가 삽교천의 가항 종점이었다. 구만포는 대원군 부친 남연군 무덤 도굴 사건으로 유명한 오페르트 사건 시 그레타호의 최종 상륙 지점으로 유명한 포구이다.

삽교천의 생태환경[편집]

  • 내포 지방의 젖줄로 불리는 삽교천은 조선 시대 이래 예당평야의 수원지 역할을 해 왔으며, 내포 지방의 심장인 가야산과 함께 내포의 상징이다. 아산만에 유입되는 삽교천은 중하류에 대평야를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해안의 간석지를 간척하여 만든 해성 퇴적 평야(海成堆積平野)이다.
  • 삽교천 유역의 암석은 상류로부터 편암과 화강 편마암, 화강암, 편마암과 편암 순으로 바닷가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화강암 심층풍화대는 넓고 낮은 저지대를 이루고, 편마암 심층 풍화대는 구릉 지대를 이루고 있다. 삽교천 유역의 저습지는 화강암 심층 풍화대로 수평, 수직 풍화가 진전되고 제거되는 속도가 빨랐던 곳이다. 그리하여 후빙기 해면 상승에는 넓은 와지(窪地)의 모습이 되었고, 현 해수면 이하의 고도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후빙기 해수면 상승에 의해서 해침을 받게 되면서 삽교천 유역의 저습지는 커다란 만의 형태로 변화되었다. 이후 만으로 변한 저습지에는 갯벌이 쌓였다. 후빙기 갯벌의 성장에 의하여 저습지는 평평하게 메워졌으며 해수면은 상대적으로 약간 하강하였다. 육지화되어 가는 저습지에는 하천이 범람하기 시작하였으며, 범람은 주로 불어난 하천물이 만조와 겹치는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삽교천의 본류와 지류[편집]

  • 삽교천은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 부근에서 무한천(無限川)과 만나서 계속 북류하여 아산시 인주면 대음리에서 곡교천(曲橋川)을 다시 만나 아산만의 삽교호에 유입된다. 삽교천 본류에는 주요 지천인 곡교천, 무한천 이외에도 도고천, 남원천, 덕산천, 화양천, 신양천 등 많은 지천들이 유입된다.
  • 삽교천을 두고 옛날에는 상류 지역인 홍주 지역에서는 금마천(金馬川), 중류 지역인 예산 지역에서는 신교천(薪橋川), 덕산에서는 선화천(宣花川), 사읍교천(沙邑橋川), 최하류인 면천[현 당진시 우강면 일대]에서는 범천(犯川), 범근천(犯斤川), 버그내 등으로 불렀다. 하나의 하천을 두고 상류에서 하류까지 지역에 따라서 하천 지명이 다르게 불리는 것은 다른 하천에서도 흔한 현상이다.
  • 삽교천 변에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유명한 회해포(懷海浦), 풍해포(豊海浦), 범근내포(犯斤乃浦)를 비롯하여, 유궁진(由宮津), 장포(獐浦), 강문포(江門浦), 호두포(狐頭浦), 구만포(九萬浦), 돈곶포(頓串浦) 등 많은 포구들이 있어서 주변에 장시(場市)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내포 지방 교통의 허리 역할을 했으며 문화 통로의 창 역할을 하였다. 삽교천은 금마천, 효교천, 석우천, 남원천, 무한천, 곡교천 등 많은 지류를 가지고 있으며 옛날에는 '사읍교천(沙邑橋川)'이라 불렸다. 또 고려 시대에는 '신교천(新橋川)'이라 불리기도 했다. 삽교천은 중상류에 하천이 뱀 모양으로 사행하여 구부러져 흐르는 자유 곡류 하천(自由曲流河川)으로 유명한데, 옛날에는 하천 연변에 많은 나루가 있었다. 또, 삽교천 연변인 당진시 우강면 강문리(江門里) 일대는 조선 시대에 범근내포라는 큰 포구가 있고, 그 인접지에 공세 창고가 있어 공주, 홍주목[현 홍성]에서 관할하던 세곡미를 쌓아 두었다가 한양 마포의 경창(京倉)으로 운반하였다. 그리고 이중환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 나오는 큰 나루인 유궁진(由宮津)도 있어서 서울을 오가는 내포 지역의 상인이나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후에 삽교천이 곡교천과 만나는 곳에 위치한 범근내포가 바닷물의 역류와 토사의 퇴적으로 하상이 높아져 더 이상 조운선이 정박할 수 없게 되자, 인접한 아산시 인주면 공세곶창으로 1478년(성종 9)에 이전했다.

삽교천방조제(揷橋川防潮堤)[편집]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로 흘러드는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둑이다. 길이 3,360m, 최대 너비 168m, 높이 12∼18m. 1976년 12월에 착공하여 1978년 3월 최종 물막이 작업에 성공, 1979년 10월에 완공되었으며, 168억 원의 사업비와 연인원 33만 6,000명이 동원된 대역사였다.
  • 이 방조제는 충청남도 당진·아산·예산·홍성의 4개군 22개 읍·면 지역을 전천후농토(2만 4,700ha)로 개발하기 위하여 삽교천지구대단위농업종합개발사업(1975∼1992)의 중추적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본래 이 지역은 넓은 평야와 간석지를 포용하고 있으면서도 풍부한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해마다 한수해(旱水害)를 겪어왔으며, 거기에다가 하구에서 역류하는 바닷물로 염해까지 입어 왔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삽교천방조제가 축조되었으며, 이 제방의 건설로 삽교천 하구일대에 저수량 8,400만t의 삽교호(揷橋湖)가 조성되어 4개군 지역의 농업용수가 해결되었다.
  • 방조제에 너비 20m, 높이 6m의 6련 12개 문의 배수갑문이 부설됨으로써 초당 5,300t의 담수를 흘려보내는 홍수조절의 기능도 가지게 되었다. 담수호인 삽교호에 1단 양수장 3개소, 2단 양수장 16개소, 3단 양수장 2개소 등 21개소의 양수시설이 설치됨으로써, 삽교천·곡교천·무한천 등 상류부의 고지대 농토에 관개가 가능하여 토지생산성을 높이게 되었다. 이 밖에 방조제 도로의 이용으로 서울∼당진간의 육로거리가 40㎞나 단축되고, 새로운 담수호 조성으로 서해안 관광명소로 등장되는 간접효과도 얻게 되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삽교천〉, 《나무위키》
  2. 삽교천〉, 《위키백과》
  3. 삽교천(揷橋川)〉, 《두산백과》
  4. 삽교천〉, 《향토문화전자대전》
  5. 삽교천(揷橋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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