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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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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적도

덕적도(德積島)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있는 이다

개요[편집]

  •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섬이다. 이 에는 덕적면의 진리(鎭里), 서포리(西浦里), 북리(北里) 등 3개 법정리가 있다. 덕적군도는 8개의 유인도와 34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덕적도는 덕적군도의 주도(主島)이며, 면적은 22.97km2, 해안선 길이는 37.6 km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60년 백제를 정벌하기 위한 신라의 요청에 부응하여 당나라의 소정방이 대군을 이끌고 들어온 덕물도(德物島, 德勿島)가 바로 덕적도이다. 덕물도란 '가득한(德) 물(勿)에 있는 섬', 즉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덕적도는 갯벌이 발달되어 바지락, 굴 등을 양식하고, 흑염소나 포도, 표고버섯 등의 특산물을 많이 생산한다. 섬에는 세 개의 해변이 있다. 덕적도 내에서는 서포리, 밭지름 해수욕장과 비조봉 등이 찾아볼 만하다.[1]
  •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의 본섬이다. 면적은 22.97㎢, 해안선 길이는 37.6㎞로 옹진군 내 舊 부천군 지역 주요 섬 중 가장 크고,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소야도·선미도·문갑도·굴업도·백아도·울도 등과 같이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해 있으며 소야도와는 연도교로 이어져 있다. 원래의 지명은 깊고 큰 바다에 위치한 섬이라는 의미인 '큰물섬'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한자화되면서 덕물도(德勿島)가 되었고, 다시 덕적도(德積島)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 남양부(南陽府)가 설치된 이후 남양부에 소속되었고, 조선 초기까지 남양도호부에 속하였다. 조선 성종 때에 인천도호부로 이속되었고 숙종 때 덕적진(德積鎭)이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 시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부천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옹진군이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면서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이 되었다.[2]
  • 덕적도는 동경 126°81′, 북위 37°14′에 위치한다. 덕적면의 주도이고 경기 서해안 연안도서 중 행정·교통의 중심지이다. 면적은 22.97㎢이고, 해안선 길이는 37.6㎞이다. 원래의 우리말 지명은 '큰물섬'이라 전한다. 이것은 '깊고 큰 바다에 위치한 섬'이라는 의미로 한자화되면서 덕물도(德勿島)가 되었고, 다시 덕적도(德積島)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지역민들은 이곳을 '큰물이' 혹은 '덕물도'라고 부른다. 덕적도는 1310년(고려 충선왕2)에 남양부(南陽府)가 설치된 이후 남양부에 소속되었고, 조선 초기까지 남양도호부에 속하였다. 1486년(성종17)에 인천도호부로 이속되었고 1708년(숙종34)에 덕적진(德積鎭)이 설치되면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파견되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부천군에 편입되었고, 1973년에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이 되었다.[3]
  •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德積面)에 딸린 섬이다. 면적 20.87㎢, 해안선길이 37.6㎞이다. 덕적군도(德積群島)에서 가장 큰 섬으로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75km 해상에 위치하며, 최고점은 국수봉(314m)이다. 덕적도라는 이름은 '큰 물섬'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물이 깊은 바다에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1973년 7월 1일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삼국시대부터 황해 해상교통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수군을 두어 지키게 했고, 말을 기르는 국영 목장도 있었다고 한다. 산세가 가파르고 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농경지는 전체 면적의 10% 미만에 불과하지만 개펄이 발달되어 바지락·굴·김 등을 양식한다. 한때는 수산자원이 풍부하여 연평도 조기어장의 전진기지로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해산물 외에 산더덕·흑염소·포도·칡엿·표고 등의 지역 특산물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4]

덕적도의 명칭 유래[편집]

  • 덕적도는 옹진군청이 있는 인천광역시로부터 서쪽으로 75.2㎞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덕적군도(德績群島)의 모도(母島)이다.
  • 덕적도의 옛 지명은 덕물도(德勿島, 德物島), 득물도(得物島), 인물도(仁勿島) 또는 수심도(水深島) 등으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고려말 왜구에 관한 기사 중 덕적(德積)은 '덕물'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덕적이라 쓰더라도 '덕물'이라 발음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클 인(仁)자를 사용하여 인물도(仁物島)·인물도(仁勿島)라고도 표기하였는데 본래 '큰물섬' 이라는 우리말을 한자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 덕적도의 원명은 수심도(水深島)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깊고 큰 바다의 큰 섬'이라는 뜻으로 이를 한자화하면서 큰 덕(德)자와 재물 물, 또는 만물 물(物)자인 '덕물(德物, 德勿)도'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덕수(德水)와 덕물(德勿)은 공통된 음이여서 결국 '큰물'이라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현재도 덕적도의 지명을 '덕물도' 또는 '큰물이'라 부르고 있다.

섬의 분류[편집]

  • 섬은 바다로 완전히 둘러싸인 이다. 섬은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는 큰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적당히 큰 섬은 도(島, island)라 하고 작은 섬은 서(嶼, islet)라 하여 이 둘을 통칭 도서(島嶼)라 한다.
  • 섬은 지각운동에 의하여 해저의 일부가 융기하거나, 해안산맥의 일부가 침수되어 높은 땅의 일부가 해면 위에 남아 있거나, 또는 육지의 일부가 침강하여 그곳에 해수가 들어와서 형성된다. 해저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화산도(火山島)나 해안 지역의 일부가 파도와 빙하의 침식을 받아 육지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섬도 있다. 바다에 있는 섬은 육도(陸島)와 양도(洋島)로 나누어진다. 육도는 지질적으로 대륙과 같은 구성 물질로 되었으며, 육지의 일부가 대륙이나 또는 대륙에 가까운 큰 섬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양도는 육지와 관계없이 생성된 것으로서 화산섬과 산호섬이 여기에 속한다.

덕적도의 생태환경[편집]

  •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놓여 있는 국수봉(314m)이 가장 높다. 이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사면은 완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에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해안선이 복잡하고 여러 곳에 소·만입·곶(串)이 발달하여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이지만, 일부에는 사빈이 형성되어 있다. 1월 평균기온은 -2.1℃, 8월 평균기온은 25.2℃, 연강수량은 1,234㎜이다. 취락은 섬의 동남쪽 진리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에 면사무소가 있으며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 토지이용 현황은 논 1.14㎢, 밭 1.01㎢, 임야 20.59㎢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마늘·무·배추·파 등인데, 쌀을 제외하고는 자급이 가능하다. 연안에서는 민어·꽃게·새우·우럭·낙지·주꾸미 등이 많이 잡힌다. 김과 굴도 생산되며 표고버섯은 특산물의 하나이다. 진리에서는 선사시대 조개무덤이 발견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서포리해수욕장은 길이가 1.5㎞나 되고 백사장의 면적도 넓으며, 울창한 송림과 해당화, 그리고 해변을 따라 담수가 흐르고 있어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덕적도의 볼거리[편집]

  • 덕적도(德積島)는 '큰물섬'이라는 순 우리말에서 유래되었다. '물이 깊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한자화된 덕물도(德勿島)라 불리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섬 사람들이 어질고 덕이 많다'하여 덕적도라 칭하게 되면서 한자 그대로 풀이되어 '덕을 쌓는 섬'이라 알려졌다.
  • 덕적도를 본섬으로 하는 덕적면(德積面)은 유인도 8개(덕적도, 소야도, 문갑도, 굴업도 등)와 무인도 33개, 총 41개 섬이 옹기종기 모여 덕적군도(德積群島)를 형성하고 있다. 군도 곳곳에는 다양한 관광명소들이 산재하여 덕적도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덕적도의 서해를 바라보고 솟아오른 비조봉(292m)과 국수봉(314m), 쾌적한 무공해 자연해변 4개소(서포리, 밧지름, 이개, 소재해변) 등은 등산, 낚시, 해수욕을 즐기기 위한 가족단위 관광객과 백패커들이 즐겨 찾는 서해 대표 관광명소이다.
  • 덕적군도에 속해있는 굴업도는 섬의 모양이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려 땅을 파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해안경관이 수려하고 주변에서는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문갑도는 섬의 형태가 책상의 문갑(文匣)과 같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현재는 문갑(文甲)으로 고쳐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독갑도(禿甲島)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섬이 '장수가 투구를 쓴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덕적도에서는 민어파시의 옛 명성을 되찾고자 2015년부터 도우선착장(덕적바다역)의 주차공간을 활용하여 섬 주민들의 주말장터로 운영해오고 있다. 매년 이른 봄(3~4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장터에서는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덕적도산 제철 농수산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2017년부터는 시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섬 주민들의 마음을 담아 '북적북적 덕적바다역시장'으로 이름을 정하고 새 단장을 하였다. 더욱 깨끗하고 품질 좋은 착한 농수산물은 기본이고 방문객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쉼터를 만드는 한편 소소한 주민공연도 준비하여 모두가 함께 어울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덕적군도[편집]

  • 인천 옹진군 덕적면(德積面)에 속하는 군도. 인천 남서쪽 약 82km 떨어진 경기만 앞바다에 흩어져 있으며, 덕적도 ·소야도(蘇爺島) ·백아도(白牙島) ·굴업도(掘業島) ·문갑도(文甲島) ·지도(池島) ·선갑도(仙甲島) ·선미도(善尾島) ·울도(蔚島) 등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해안지방이지만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나타내며,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이 강하여 눈이 많이 내린다. 주도는 덕적도이며, 부근 연안의 수산업 중심지로, 특히 조기 ·새우 ·갈치 등의 어획이 많으며, 바지락과 백합이 채취된다.
  • 인천시의 서남쪽 약 82㎞ 지점에 있다. 덕적도를 비롯하여 소야도(蘇爺島)·문갑도(文甲島)·선갑도(仙甲島)·굴업도(掘業島)·선미도(善尾島)·백아도(白牙島)·울도(蔚島)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덕적군도는 최북서단에 있는 선미도를 기점으로 하여 남동으로 거의 일렬로 산재하는 섬들인데 비교적 험준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면적(22.97㎢)에 비하여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곳곳에 소만입이 발달, 소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하다. 연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분포하여 간조 시에는 육지가 된다. 기후는 해안 도서 지방이기는 하나 해양의 영향이 크지 않아, 기온의 연교차가 비교적 큰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특히, 겨울철에는 북서계절풍이 강하고 눈이 많이 내리며, 같은 위도의 동해안에 비하면 연평균기온이 2∼3℃ 정도 낮은 편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덕적도〉, 《위키백과》
  2. 덕적도〉, 《나무위키》
  3. 덕적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덕적도(德積島)〉,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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